1월의 새 물건 사용기 | 지큐 코리아 (GQ Korea)

1월의 새 물건 사용기

2020-01-06T15:03:37+00:00 |tech|

새로운 물건이 도착했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 막 써봤다.

빨갛고 납작하고 귀엽다. 네모반듯한 라이카 소포트 레드를 본 첫인상. 투박해서 어쩐지 조심조심 쥐게 된다. 아마도 앞으로 이런 감각으로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소포트는 독일어로 ‘즉시’라는 뜻으로, 찍는 즉시 나오는 즉석카메라다. 간편하고 손쉬운 스냅일 수도 있고, 번복할 수 없는 순간일 수도 있다. 게딱지처럼 귀여운 그것을 뒤집어, 필름 열 장이 든 카트리지를 넣었다. 이제부터 한 장 한 장 쓸 때마다 액정에 남은 필름 숫자가 표시된다. 첫 셔터는 라이카 매장에서 눌렀다. 진열된 사진집까지 보일 정도로 또렷하다. 조리개 값을 f12.7로 고정시켜 살짝 어두운 대신, 포커스가 나가는 일은 거의 없다. 두 번째 셔터는 멀리 보이는 아파트를 향해 초점거리를 길게 빼서 눌렀다. 접사 시 0.3에서 0.6미터, 평소엔 0.6에서 3미터, 원경은 3미터 이상 세 단계로 렌즈 링을 돌려 조절한다. “경축 재건축 결정!” 알록달록한 현수막이 선명하다. 밤에는 내장 플래시를 켰다. 파티 모드로 취한 얼굴들이며 글라스들을 팡팡 터뜨려 찍다가, 이중 노출을 시도해본다. 먼저 센터피스를 찍었다. 다음 캔들을 찍었다. 불 위로 피어오르는 화사한 한 장. 다음 날, 촬영 현장에 소포트를 가져갔다. 의상을 입고 서로 찍어주기 바쁜 멤버들을 찍어 선물하니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것은 한 장 가졌다. 즉석카메라는 역시 인물. 인어처럼 바라보는 눈빛이 매초롬하다. 돌아가는 밤에 소포트를 켰다. ‘1’이라는 숫자가 떴다. 마지막 한 장은 어두운 집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랑하는 나의 흰 개를 찍었다. 인화지에 동그마니 선 개. 생에도 남은 숫자가 뜬다면, 마지막이 덜 슬플 수 있을까? 열 장의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열 장의 기억이 남았다. 이예지

언제부터인가 술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좀처럼 취하지 않는 자의 최후 발악이랄까? (종종 간이 두 개냐는 말을 듣는다.) 생각해보면 패션에도 향수에도 레이어드가 있다. 겹치고 겹쳐 시너지 효과를 내는 기법. 두 개의 술을 겹쳐 마시는 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튤립의 봉오리 같은 위스키 텀블러에 글렌피딕 IPA 익스페리먼트를 사뿐히 따른다. 날렵한 맥주잔에 IPA를 호방하게 거품까지 털어 넣는다. 두 술을 연달아 마시면 좋은 이유는 교집합이 있기 때문이다. IPA 익스페리먼트는 인디아 페일 에일(IPA)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싱글 몰트위스키다. 글렌피딕은 ‘도전정신’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바탕으로 전 세계 전문가들과 실험적인 협업을 전개한다. IPA 익스페리먼트는 글렌피딕 익스페리멘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홉 함유량과 숙성 기간 등 다양한 변수를 두고 완전히 새로운 IPA 크래프트 맥주를 양조했다. 그것을 아메리칸 배럴 오크통에 채웠고, IPA 맥주 향을 머금은 오크통에 글렌피딕의 원액을 넣었다. 각 전문가의 팽팽한 토론을 거쳐 마침내 유일무이한 위스키가 탄생했다. 마셔보면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와 강렬한 시트러스 향이 느껴지며 무엇보다 끝에서 맥주 특유의 홉 향이 오래도록 지속된다. 그 여운을 음미하며 맥락이 끊기기 전에 IPA 맥주를 연달아 마시면 흥미로운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상대적으로 도수 차이가 크게 나기 때문에 독한 술을 마시고 바로 이어서 청량음료를 곁들이는 일종의 체이서 Chaser 역할 같달까. 물론 취기는 더 빨리 오르겠지. 하지만 결국 술은 몽환의 세계로 입문하기 위한 촉매제 아니었던가. 맥주를 안주 삼아 위스키를 홀짝이는 일은 근사한 변신술이다. 김아름

3천5백 번. 이틀에 한 번꼴로 어림잡았을 때 살면서 지금까지 얼굴을 면도한 횟수다. 면도는 양가적인 의미를 남기는 행위였다. 날 선 금속으로 뺨과 목을 쓸어내리는 과정으로 인해 피부는 혹사당했지만, 조촐하게 거울 앞에서 용모를 살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면도라는 행위 덕분이었다. 20년 동안 예약된 일과처럼 반복된 과정. 면도는 하루를 여는 애증 섞인 절차였다. 조금이라도 피부 손상을 덜기 위해 그동안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자극으로 인해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불이라도 끄려는 듯 애프터 셰이브 로션으로 뒤덮었다. 프리 셰이브 오일로 고통받을 피부를 미리 어르고 달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결국 면도라는 의식의 주인공은 면도기니까. 질레트에서 새로 개발한 스킨텍은 피부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면도기다. 날과 날 사이에 위치한 ‘가드콤’이 피부를 슬며시 눌러 칼날이 얼굴에 직접 가하는 압력을 최소화한다. 얼굴 표면에 날카로운 칼날이 지나가며 일으키는 불편한 촉감이 전혀 없었다. 칼날이 두 개 달린 면도기지만, 정밀하게 가공한 날을 적용해 5중 날 면도기와 비교해도 절삭력 차이가 거의 없었다. 스킨텍을 사용하는 동안 해묵은 면도 습관도 바뀌었다. 여태까지 수염이 뻗은 반대 방향으로 면도기를 움직이는 역주행은 감히 시도도 하지 못했다. 수염이 온전히 제거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피부 자극이 부담스러워 반쪽짜리 면도를 했다. 하지만 20회 넘게 스킨텍이 전방위적으로 휘젓고 간 뺨과 목은 어느 때보다 멀끔했고, 피부는 처음으로 차분해졌다. 한 달 동안, 면도는 하루를 여는 애정 섞인 절차였다. 이재현

톤플러스 프리를 보자마자 조약돌이 생각났다. 마카롱이나 쿠션 팩트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마카롱이 당장 먹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쿠션 팩트를 쓰는 일이 없어서인지 시냇물에 곱게 다듬어진 조약돌이 떠올랐다. 톤플러스 프리는 밀물처럼 차오르는 무선 이어폰 시장에 LG전자가 마음먹고 던진 조약돌이다. 넥밴드형 무선 이어폰을 출시하긴 했지만 완전한 무선 이어폰은 처음이다. 보자마자 음질에 집중했구나, 짐작했다. 오디오 명가 메리디안의 손길이 닿은 톤플러스 프리는 이를 대놓고 강조했다. 패키지의 전면과 충전 크래들에 LG전자 대신 메리디안의 로고를 새겼다.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없는 건 의외였다. 이건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인데. 무선 충전도 지원하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는 외모에 맞춰 잔뜩 덜어낸 걸까? 기발한 게 아예 없진 않았다. 크래들 안쪽에 ‘UV 나노’ 기술을 탑재했다. 이어폰을 충전하는 동안 자외선으로 이어버드를 청결하게 만든다고 했다. 근사하게 들리는데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음질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다. 결론은 끝내주는 소리는 아니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고음은 살벌하게 찢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들렸다. 저음은 울림이 적었다. 대신 이어버드를 터치해 고음이나 저음을 강화할 수 있다. 음역대는 고르게 균형이 잡혀 있지만 대체로 정제된 느낌이 맴돌았다. 담백한 생김새가 다시 생각났다. 안정적인 데뷔작이지만 앞선 경쟁자들을 압도하거나 저릿하게 만드는 한 방은 부족했다. 내 눈높이가 높았을까? 그렇다 쳐도 메리디안의 명성과 25만원이란 가격을 내밀고 큰 기대를 하지 말라는 건 너무하다.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