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산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이태원에 산다

2020-01-08T16:08:39+00:00 |culture|

4년째 이태원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이태원이 아니다. 문화적 다양성과 활력이 사라진 거리에서 이태원 프리덤보다 강한 자본의 힘을 목격하는 중이다.

뉴밀레니엄을 앞둔 세기말 이태원. 대학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 제주에서 올라온 나는 잠시 신세를 지고 있는 친구 손에 이끌려 이태원에 입성했다. 친구는 그곳에 가면 이름 있는 옷과 신발 브랜드를 싼값에 ‘득템’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뒤섞인 이태원은 말 그대로 딴 세상이었다. 낯설다거나 흥미롭다거나 무섭다, 식의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느낌. 그건 아마도 ‘여긴, 뭐지?’라는 어리둥절에 가까웠던 것 같다. 해밀톤 호텔 뒷골목 빈티지 숍에서 국내에는 공식 수입되지 않는 브랜드의 재킷 하나를 값싸게 구매해 제주로 내려갔다. 내가 옷을 걸친 것인지, 옷이 나를 덮은 것인지 혼동되는 애매한 사이즈의 옷이었다. 엄마의 반응은 “이걸 어디에 쓰려고”였던가. 엄마의 예언대로 내겐 그다지 쓸모가 없었던 그 재킷은 한동안 서랍 어딘가에 자리만 차지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재킷에 딸려온 이태원에 대한 잔상은 꼬리를 물고 강렬하게 남았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제주에서 서울로 상경했다. 호기심이 왕성할 때였고, 놀기도 좋아할 때였지만 딱히 이태원을 찾지는 않았다. 2000년대 초반은 홍대 앞 클럽과 카페 문화가 뜨거울 때였고, 너도 나도 카메라를 들고 삼청동으로 향하던 시기였으니까. 이태원을 다시 찾은 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다. 기억 속에 저장돼 있던 이태원과는 많이 달랐다. 미군 부대 안에서 흘러나와 조성된 이태원 특유의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거리는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활기가 넘쳐 보였다. 후미진 이태원 골목을 겁 없이 돌아다녔다. 외국인들이 주요 고객인 클럽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이태원 소방서 뒤에 위치한 트랜스젠더 바에서 돈 주고도 받을 수 없는 인생 조언을 얻어 나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쩌면 변한 건 나인지 모른다고. 2010년대 들어 이태원은 SNS 발달과, 유니크한 공간을 찾는 밀레니엄 세대들의 니즈와 맞닿아 점점 뜨거워졌다. UV의 ‘이태원 프리덤’ 가사처럼 강남이나 홍대나 신촌이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태원은 부족한 2퍼센트를 채워주는 핫플레이스가 된 것이다.

인생은 때로 계획과 무관한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내겐 2016년이 그랬다. 그해 나는 해밀톤 호텔 반대편 방향으로 길게 뻗은 고(古)가구 상점들이 모인 앤틱가구거리에 위치한 집을 전세 자금 대출을 끼고 덜컥 계약했다. 예정대로라면 합정동 부근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미 합정동의 여러 집을 발품 팔며 봐둔 터였다. 이태원의 집을 발견한 건 정말이지 우연이었고, 첫눈에 반한 건… 인연이라 하면 낯간지럽겠지만 그땐 그렇다고 믿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태원 주민이 됐다. 이태원 주민이 된 나를 반긴 건 윗집도 아랫집도 아닌, 친한 지인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사 온 2016년은 이태원 상권이 한창 물이 올라 있을 때였다. 지인들은 ‘힙’한 이태원에 놀러 갈 구실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친구 A는 <무한도전>의 노홍철과 하하가 찾았던 곳이라며 경리단길로 나를 이끌었다. 친구 B는 이태원 언덕에 우뚝 솟은 이슬람 사원을 걸어보자 했다. 친구 C는 심야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태원 밤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장소로 내 집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매해 10월 ‘이태원 앤틱 페스티벌’과 ‘이태원 지구촌 축제’가 열릴 땐 휴대 전화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집 앞이다. 나와라.”

이태원 생활이 점차 익숙해지고, 노는 게 차츰 시시해질 무렵, 이태원의 다른 면모가 보이기 시작했다. 인종이 다양하고 음식이 다양하고 언어가 다양한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계층도 다양한 동네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태원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해밀톤 호텔을 기준으로 남산으로 향하는 북쪽의 가파른 언덕은 고급 단독주택이 밀집된 부촌이다. 중세 시대 성벽처럼 높고 견고하게 세워진 담벼락 안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회장과 유명 연예인들이 살고 있다. 해밀톤 호텔 남쪽 범이태원권에는 후미지고 낡은 주택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거나 재래시장이 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서민들이 살고 있다. 체험 극과 극을 경험할 수 있는 동네. 재벌과 저소득층이 도로 하나로 양분된 요상한 동네. 남산에서 시작해 아래로 걸어 내려오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가족들이 계단을 통해 수직 직하하는 순간의 기분을 어렴풋이 대리 체험할 수 있는 곳. 바로 이태원이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태원>에는 이 동네의 역사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힌트들이 있다. 영화는 이태원에서 30년 넘게 살아온 세 여성인 삼숙, 나키, 영화의 삶을 쫓는다. 모두 미군을 대상으로 한 유흥산업에 종사한 여성들로, 이태원 기지촌에서 외화를 벌어 가족들을 부양했지만 여러 편견과 낙인 속에서 살았고 살고 있다. 삼숙은 말한다. “아가씨가 택시 운전사에게 이태원 갑시다 하면 아래위로 째려보잖아. 그런 거 못 느껴봤어?” 1940년생인 삼숙은 1975년부터 현재까지 이태원에서 외국인 상대 컨트리클럽 ‘그랜드 올 아프리’를 운영하고 있다. 미군이 용산으로 이전할 때 함께 이태원으로 옮겨온 삼숙의 삶은 용산 미군기지의 역사뿐 아니라, 미군기지의 움직임에 따라 파도를 탄 이태원 상권의 흐름을 고스란히 투영한다. “88올림픽 때까지는 가게가 아주 잘됐지. 가게가 안 되기 시작한 건 9.11 테러 때부터였어. (그때부터 미군의) 통금 시간이 밤 10시니까 어떻게 클럽에 오겠어?” 미군이 평택으로 떠나면서 ‘그랜드 올 아프리’의 살림은 더욱더 빡빡해졌다.

2014년 촬영돼 2016년 DMZ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이태원>의 이번 극장 버전은 처음과 조금 달라졌다. 이태원 경리단길, 우사단길에 자리 잡고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개봉 버전에선 빠졌다. 5년의 시간 동안 젠트리피케이션이 경리단과 우사단길을 빠르게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익숙한 그림이다. 임대료가 저렴한 상권에 청년 문화가 들어선다. 젊은 예술가들이 상권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입소문을 타고 동네가 유명해진다. 자본이 유입된다. 이걸 보고 잠자고 있던 건물주들의 욕망이 깨어난다. 그 욕망의 배후엔 부동산 투기꾼들의 장난이 있을 터다. 월세가 오르고 임대료가 치솟는다. 그러면 동네의 변화를 이끌어낸 청년들이 상권에서 밀려나는 패턴.

박서준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 중인 광진 작가의 웹툰 <이태원 클라쓰>에서 “세계를 압축해놓은 듯한 이 거리”라고 언급된 이태원은 이제 그다지 세계를 압축해놓은 거리 같지 않다. 미군들이 흘린 문화로 그 독특한 위치를 선점했지만, 미군은 떠났고, 한국 술집들과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렌차이즈들이 대로변을 점령하면서 점차 개성을 잃어가고 있다. 콘텐츠에서 차별화를 잃은 도시는 상권도 위협받는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상가정보연구소가 한국감정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3분기 공실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이태원으로 무려 26.5퍼센트를 기록했다. 중대형 상가 4곳 중 1곳은 비어 있는 셈이다. <이태원 클라쓰>는 이태원을 “평균 권리금 2억원 후반대” 동네라고 소개했지만, 2019년 현재 이태원 거리엔 무권리금 상가도 즐비하다. 웹툰이 연재된 게 언제인가. 2017년이다. 이태원 거리에서 성공 신화를 써내려 온 홍석천은 최근 14년 동안 운영했던 태국 식당의 문을 닫는다고 알리며 SNS에 이런 글을 남겼다. “구청에서 명명한 세계음식거리라는 이름은 이제 포차거리라고 바꿔야 할 듯요. 골목은 그렇게 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원은 여전히 뜨겁다. 뉴타운 지정과 재개발 이슈가 이태원의 땅 값어치를 연일 들썩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빠져나간 용산기지 자리에 용산공원이 조성되고 한남 뉴타운 사업이 진행되면 이태원 상권이 다시 부흥기를 맞을 것이란 기대가 개발 욕망과 함께 이태원의 역사를 삼키는 중이다. 실제로 내가 머무르는 앤틱가구거리도 지난 몇 년간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 고가구를 취급하던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지더니, 공인중개사 사무실들이 들어섰다. 중개업소 창문엔 어김없이 ‘한남뉴타운 재개발’ 문구가 붙어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이태원 상권은 다시 과거의 영광을 찾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태원을 이태원답게 했던 문화적 다양성과 활력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홍석천의 말이 맞다. 골목은 그렇게 변한다. 나는 여전히 이태원에 살고 있지만, 이전의 이태원이 아니다.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