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K리그의 르네상스

2020.01.24GQ

마지막까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쓴 2019 시즌 K리그가 역대급이라는 평가 속에 막을 내렸다. 이야기 하나하나를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하나원큐 K리그 2019 모든 경기가 마무리됐다. 올 시즌은 가히 역대 최고의 시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년 만에 총관중 230만 명을 돌파했다. 7년 전 관중 집계는 ‘뻥튀기’에 가까웠으니 230만 명의 실제 관중이 경기장에 들어찬 건 근래에 없었던 일인 것 같다. 시즌 최종전에서 대역전 우승이 이뤄졌고 생존을 놓고 다투는 강등권도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강등의 주인공이 결정됐다. 내용과 결과 모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 시즌이었다.

역대급 우승 경쟁은 리그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지난 11월 23일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울산은 승리를 거두면 남은 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전북과 1-1 무승부에 그쳤고 우승은 시즌 마지막 라운드에서 결정됐다. 울산의 우승 가능성이 더 높아 진품 우승 트로피는 울산에, 가품 우승 트로피는 전주에 준비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울산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을 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최대 라이벌 포항에 완패했고 결국 전북의 극적인 우승으로 시즌이 끝났다.

K리그에서 가장 극적인 우승은 지난 2013년이 손꼽힌다. 울산과 포항의 경기에서 포항은 후반 종료 직전 터진 결승골로 막판 뒤집기 우승에 성공했다. 아마도 올 시즌 우승 경쟁은 2013년 못지않았다고 역사에 남을 것이다. 전북 현대가 독주를 이어가던 K리그에서 이제는 그 아성을 위협할 팀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우승 트로피가 거의 울산으로 넘어갔다 왔다는 것만으로도 올 시즌 K리그는 대단히 흥미로웠다. 올 시즌 마지막 라운드는 앞으로도 울산과 포항의 ‘동해안 더비’에 더 큰 불을 지피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최고의 배경이 완성됐다.

강등권 경쟁도 역대급이었다. 제주가 일찌감치 강등을 확정 지은 상황에서 경남 FC와 인천 유나이티드가 승강 플레이오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단판승부를 벌인 건 이 일정을 미리 계획한 프로축구연맹으로서는 ‘신의 한 수’가 됐다. 시즌 말미 파이널 A와 파이널 B로 각각 나뉜 상황에서 연맹이 짠 시즌 막판 일정 하나하나는 마치 결과를 다 알고 영화의 각본을 써내려간 것처럼 기가 막혔다. 역대급 시즌을 완성한 건 연맹의 공도 크다. 진품과 가품 트로피를 각각 두 경기장에 배치해야 하고 강등권 외나무다리 승부와 대구 FC-FC 서울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 티켓 결정전 등의 상황을 모두 만들어낸 건 최고의 선택이었다.

올 시즌 K리그의 팬 서비스와 사회공헌활동 등도 칭찬받아야 한다. 최근 KBO리그와 KBL에서는 선수들의 팬 서비스 논란이 일었다. 어린아이들의 사인 요청과 하이파이브 요청을 거부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런 면에서
올 시즌 K리그의 팬 서비스는 인상적이었다. 대구 FC 홍정운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비를 맞으며 일일이 어린 선수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모습이 뒤늦게 알려졌고, 광주 FC 여름은 한 팬이 사인을 부탁하자 무릎을 꿇고 사인해주는 모습으로 감동을 자아냈다.

울산 현대 이근호는 사비로 무려 1억원을 들여 홈 팬들을 위한 이벤트를 개최했고, 대구 FC 조현우는 직접 아내와 함께 편지 스티커를 붙인 음료수를 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외국인 선수들은 자비를 들여 원정 응원 버스를 대절한 적도 있다. K리그가 올 시즌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적극적인 팬 서비스를 펼쳤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고 한 시간 넘게 팬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고 경기장을 떠나는 선수들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안산 그리너스는 올 시즌 총 381회의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등 K리그에서는 지역민, 팬과 함께하기 위한 활동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관중 대박의 시작은 여기에서부터다.

여기에 올 시즌 K리그는 스토리도 넘쳤다. 췌장암 4기 투병 중인 인천 유나이티드 유상철 감독은 끝까지 선수단을 지휘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대구 FC는 새로 옮긴 경기장에서 대단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가장 ‘핫’한 팀이 됐다. 같은 대구 지역 연고팀인 KBO리그 전통의 명문 삼성 라이온즈 평균 관중을 넘어서는 대형 사고(?)도 쳤다. 지금껏 대구에서 축구와 야구의 인기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수준이었지만 대구 FC는 어느덧 삼성 라이온즈를 넘어서고 있다. 별 볼 일 없던 열악한 시민구단이 최고의 팀으로 성장하는 스토리는 기존 K리그 팬들뿐 아니라 신규 팬들에게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모든 흥행 요소는 지난해부터 이어온 분위기를 잘 이어간 덕분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며 시작된 축구 열기는 2개월 뒤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따내며 더 뜨거워졌다. 여기에 U-20 청소년 월드컵에 나선 어린 선수들이 준우승을 차지하며 축구는 더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올 시즌 K리그는 이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여러 호재까지 겹치며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동안 관중 없는 리그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꾸준히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경기력을 키우고 유소년 육성에 집중한 결과다. 충분히 누릴 만한 자격이 있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올 시즌에도 또 다시 심판의 판정 논란이 꾸준히 불거졌다. 울산 현대 김도훈 감독은 지난 8월 대구전에서 주심에게 거칠게 항의하다 퇴장당해 3경기 출전 정지와 1천만원의 제재금 징계를 받았고, 강원 FC 김병수 감독은 지난 7월 FC 서울과의 경기가 끝난 뒤 판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심판을 모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해 7백만 원의 제재금을 받았다. 광주 펠리페는 지난 9월 안산전 후반에 판정 항의로 경고를 받은 뒤 경기장 밖에서 부상 치료를 받다가 물병을 걷어차고 벤치를 주먹으로 치는 거친 행동으로 퇴장당한 뒤 제재금 7백만 원을 받았다. 이들은 올 시즌 상을 받을 만한 성적을 내고도 결국 이 징계로 K리그 대상 시상식 후보에서 제외됐다.

감독과 선수의 항의도 문제였지만 판정 논란이 더 큰 문제였다. 지난 8월 전북이 포항을 2-1로 제압한 경기에서 로페즈는 골을 넣었지만 이 골은 인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프로축구연맹은 로페즈의 핸드볼 판정 논란에 대해 오심을 인정했다. 지난 7월 서울-울산전에서 김원식의 핸드볼 파울을 선언하지 않아 페널티킥이 주어지지 않은 것도 이후 오심으로 인정됐다. 대구 FC 김동진은 강원전에서 퇴장을 당했는데 이 장면 역시 이후 오심으로 판명이 나 김동진의 징계가 철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강원전에서 10명으로 싸워야 했던 대구의 피해는 그 누구도 보상해줄 수 없었다. 비디오 판독(VAR)을 도입하고도 여전히 오심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올 시즌 K리그는 내부적으로는 흥행을 이어나갔지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적도 아쉬웠다. K리그에서 가장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전북 현대와 울산 현대는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상하이 상강과 우라와 레즈에 발목을 잡히며 결국 8강에 오르지 못했다. 대구 FC와 경남 FC는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동부 아시아 8강 진출 네 팀은 일본과 중국이 각각 두 팀씩 나눠가졌다. 중국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K리그는 아시아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투자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시즌이었다. 올 시즌 K리그는 흥행 요소가 컸지만 이런 개선점도 분명히 나타났다.

내년 시즌 K리그는 올 시즌 못지않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열악했던 대전 시티즌이 하나금융그룹의 투자를 받으며 태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전 시티즌은 약 2백억원을 투자해 K리그1으로 승격하겠다는 각오다. 서울 이랜드는 U-20 청소년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 정정용 감독을 선임하며 지도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 어떤 팀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또한 K리그1의 빅클럽들은 K리그를 넘어 아시아 무대에서 성적을 내기 위한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올 시즌 K리그의 흥행 대박은 내년 시즌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호재가 겹치며 승승장구한 K리그는 내년 시즌에도 악재보다는 호재가 더 많다. K리그는 ‘르네상스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글 / 김현회(스포츠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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