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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롭고 자연스러운 식사법 매크로바이오틱

2020.02.06GQ

이름과 다르게 어렵거나 낯설지 않다. 식재료가 제철을 맞아 가장 맛있을 때를 놓치지 않고 맛보는 것. 그게 바로 매크로바이오틱이다.

언젠가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더 이상 우리가 키운 가축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서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좁은 공간에 밀집시켜 키우니 온갖 질병이 만연한다. 독감이나 열병처럼 전염성을 띨 경우 삽시간에 퍼져 수십억 마리의 생명을 앗아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에까지 치명적인 병을 옮긴다. 이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농가들은 엄청난 양의 살충제와 항생제를 투여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 성장 촉진제와 호르몬제를 사용한다. 육식의 비중이 점점 느는 추세도 문제지만 우리가 섭취하는 고기가 대체로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더 섬뜩하다. 지구의 71퍼센트를 차지하는 바다의 오염도는 더욱 심각하다. 수은, 납 등의 중금속에 최근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무방비로 유입되고 있다. 무분별한 육식에 경종을 울리는 끔찍한 사건이 조만간 일어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채식에 작은 관심이나마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채식주의자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각이 육식에 더 지배당하기 전에 채식의 섬세한 맛을 감지하는 본연의 능력을 회복하자는 이야기다. 우리가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영위한 역사는 반세기에 불과하다. 산업 사회가 되기 전까지 수천 년 동안 농경 사회를 유지하며 채식에 어울리는 정서와 몸을 다져왔다.

“농경 민족인 우리는 서양인과 오장육부부터 다릅니다. 대장의 길이가 길고 췌장 기능이 약해 동물성 지방이나 단백질을 소화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전통 식생활에서 벗어나 육식을 즐기면서 우리는 각종 성인병에 노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년간 음양의 질서에 따라 형성해온 식생활을 거시적 관점으로 변증하여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명맥을 잇는 것이 바로 매크로바이오틱입니다.” 이재련 매크로바이오틱 전문가의 설명이다. ‘매크로바이오틱.’ 지난 10년간 간간이 들어온 단어지만,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거시적 시각 Macro으로 생명 Bio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학문 Tics입니다. 흔히 알 듯 단순한 조리법이나 식문화가 아닙니다. 인간은 세상의 만물이 그렇듯 우주의 일부이므로 개인의 건강과 행복만이 아닌, 타인은 물론 자연과 우주의 모든 존재의 안녕까지 거시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세계관입니다.”

이재련 전문가는 매크로바이오틱이 단순한 식문화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마크로브이’라는 쿠킹클래스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인간의 식생활이 곧 개인은 물론 지구의 건강과 직결되며, 속이 불편하면 마음이 불편하여 더 이상 조화롭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식을 매개로 매크로바이오틱을 가르친다. 실제로 매크로바이오틱의 창시자인 사쿠라자와 유키카즈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식생활로 인해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자국민을 보며 전통 식생활의 가치를 깨닫고 매크로바이오틱의 근간을 다졌다.

다 옳고 좋은 말이다. 하지만 학문이자 세계관이라고 하니 이를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을지 더욱 의구심이 든다. 매크로바이오틱 식생활의 3대 원칙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의문점이 다소 해소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일물전체(一物全體)’ ‘음양질서(陰陽秩序)’. 이를 쉽게 풀이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자라는 제철 작물을 뿌리부터 껍질, 속살까지 인간이 소화할 수 있는 전체를 섭취하며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식생활을 실천하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노래해온 신토불이는 잘 알겠다. 음양의 질서, 조화 등도 제법 친숙한 개념이다. 하지만 일물전체는 영 낯설다.

“일물전체란 식재료의 뿌리부터 잎, 열매, 껍질과 알맹이까지 모두 취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의 작물이더라도 땅속의 뿌리와 땅 위에서 자란 잎, 열매가 자연으로부터 흡수한 에너지의 원천이 다르며, 껍질은 원심력을, 알맹이는 구심력을 가집니다. 이를 한 번에 취함으로써 밸런스를 찾는 게 기본 개념입니다.” 일물전체를 실천함으로써 매크로바이오틱의 또 다른 원칙인 음양의 질서를 꾀할 수 있는 셈이다. 무를 취할 때 우리는 무청을 버리지 않고 먹는다. 단호박의 껍질과 속살은 찌거나 삶아 먹고 호박씨는 볶아 먹는다. 당근은 잎까지 취하며, 주식인 밥은 통곡물에 해당하는 현미를 기본으로 한다. 여기서 갑자기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여태 봐온 매크로바이오틱은 일식에 가까웠다. 그런데 일물전체의 예시에서 구수한 한식 냄새가 풍긴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무청을 먹지 않는다. 즉, 무청까지 취하는 것은 우리만의 매크로바이오틱인 셈이다.

매크로바이오틱은 애초에 국내에 잘못 들어왔다고 한다. 요리법에 국한하여 소개됐으며 일식으로 발달한 것을 원형 그대로 들여온 점이 문제다. 일식 매크로바이오틱을 따르면 신토불이의 원칙이 깨진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식재료의 종류나 성질이 서로 다르다. 만약 매크로바이오틱을 레시피로 여기고 메뉴를 그대로 차용할 경우 일본에서 식재료를 공수해야 하는데 이는 매크로바이오틱의 규칙에 위배된다. 제아무리 건강에 좋더라도 낯선 음식을 매일 먹기는 힘들다. “미소 된장, 달콤한 간장 등 기본 양념부터 우리와 많이 다르잖아요. 우리에게는 고추장도 있고, 기본적으로 파, 마늘을 많이 쓰며 김치도 꼭 먹어야 해요. 일식 매크로바이오틱에 없는 요소들이죠. 저는 매크로바이오틱이 새로운 요리법이나 삶의 방식이 아닌, 우리가 여태껏 취해온 전통 생활 방식의 당위성을 매크로바이오틱 이론에 따라 변증하는 학문이라고 여깁니다.” 동치미를 예로 들 수 있다. 입동에 들어서면서 밤이 길어지면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대사 기능이 떨어진다. 이때 식물성은 물론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까지 분해하는 힘을 가진 무로 담근 동치미를 먹는 풍습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음양의 원리가 담겨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매크로바이오틱을 배우거나 스스로 실천하기에는 너무 바쁘다. 또 우리가 고기를 원없이 먹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제 와 강제로 젓가락을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육식이 건강한 식생활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채식 위주의 식사를 선택하길 바랄 뿐이다. 그런 차원에서 매크로바이오틱이 일반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이 중요하다. 다행히 매크로바이오틱을 활용하는 가게들이 생기는 추세다. 홍대에 위치한 ‘수카라’는 이미 역사가 꽤 깊다. 대학로의 ‘맞이한’, 북촌 ‘뿌리온더플레이트’, 서촌 ‘경우의수’와 ‘큔’ 등도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매크로바이오틱 전문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매크로바이오틱 정신에 공감하고 이를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그중 황지수 경우의수 대표가 매크로바이오틱의 세계에 입문한 과정은 흥미롭다.

그녀는 대학에서 한식을 전공한 후 수카라에서 다년간 셰프로 일했다. “애초에 채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채식 메뉴를 많이 들여다보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동물성 재료를 배제했을 뿐 설탕과 소금을 왕창 넣은 채소 요리를 보며 이들이 과연 건강할지 의심이 들었어요.” 채식에 회의감을 가질 무렵 이재련 전문가를 소개받았다. “매크로바이오틱을 한식에 적용하여 채식 위주의 요리를 선보이며 설탕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한식이 곧 채식’인데 굳이 따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죠. 그때 학교에서 한식을 배울 때부터 너무 당연하다는 듯 시판 된장, 고추장, 간장, 설탕을 썼던 사실이 떠올랐어요. 내가 여태껏 배운 한식에 의구심이 들었어요.” 그녀에게 매크로바이오틱은 엄격한 율법이라기보다 인생 선배들의 지혜로운 가르침 같았다. 매크로바이오틱 혹은 약식동원의 가치를 식당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더 이상 우리는 매크로바이오틱을 어려워할 필요 없다. 우리가 어렸을 때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찬찬히 떠올리며 이를 재현하려고 노력하면 된다. 우리를 대신하여 조화롭고 자연스러운 식사법을 고민하는 가게를 찾는 것도 방법이다. 곧 달래와 냉이 등의 봄나물이 언 땅을 딛고 나올 때다. 이들을 한입에 뿌리부터 잎까지 전체를 먹는 일이야말로 매크로바이오틱의 정수다. 봄나물을 제때 챙겨 먹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매크로바이오틱에 발을 디딘 격이다. 가장 맛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그 맛을 음미하는 것, 궁극의 미식을 추구하는 일이 곧 매크로바이오틱이다. 글 / 이주연(푸드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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