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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피어난 럭셔리 위스키

2020.02.13GQ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을 탄생시킨 설원으로 향했다. 시간의 힘과 유니크함이 그곳에 있었다.

로얄살루트가 후원하는 세인트로지스 월드 스노우 폴로 챕피언십.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 론칭 파티.

로얄살루트의 핵심 멤버 말콤, 바나베, 샌디.

인천에서 로스앤젤레스, 그리고 아스펜까지. 13시간의 비행을 하며 두 계절이 지났다. 따뜻함에서 차가움으로, 야자수 나무에서 설원으로. 운이 좋다면 겨울 바캉스를 즐기러 온 할리우드 톱스타를 길거리에서 마주칠 확률이 상당히 높은 인구 6천 명의 작은 도시 아스펜. 도시 전체를 감싸 안은 은은한 훈연 향기, 스키어들이 개미처럼 지그재그로 내려오는 가파른 경사의 설산, 규칙적인 벽돌 건물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다. 무엇보다 아스펜은 북미의 유일한 스노우 폴로 대회인 ‘세인트로지스 월드 스노우 폴로 챔피언십’이 열리는 도시다. 폴로는 2500년 역사를 가진 유럽 왕실과 귀족의 게임으로, 럭셔리 스포츠의 전형을 보여준다. 눈 위에서 펼쳐지는 스노우 폴로가 공식적인 스포츠로 인정받은 것은 1985년의 일이다. 눈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말 위에서 높이 솟은 스틱을 쥐고 날렵하게 보라색 공을 쫓는 선수들. 스노우 폴로는 뭐랄까 골프와 승마, 럭비가 결합된 것만 같은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다.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고고하다. 스노우 폴로 경기 주간에는 전 세계 VIP들이 낮엔 경기를 관람하고 밤이면 화려한 파티를 연다.

위스키의 왕으로 불리는 로얄살루트는 15개의 국제적인 스노우 폴로 경기를 공식적으로 후원해오고 있다. 왕의 스포츠 폴로는 로얄살루트에게 아주 중요한 매개다. 수많은 장인과 후원자의 헌신을 바탕으로 확고한 전통을 만들어왔다는 점에서도 둘은 뿌리가 같다. 힘과 밸런스, 담대함과 존중, 여유와 품위 등 모든 면에서 닮아 있다. 로얄살루트는 오랜 세월 연결고리를 만들어온 폴로와의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한정판 폴로 에디션을 출시했다. 녹색, 하늘색에 이어 세 번째 에디션은 하얀 눈에서 영감을 받은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이다. 장인의 손길로 완성한 하얀 도자기 병에는 역동적인 폴로 경기의 한 장면이 새겨져 있다. 로얄살루트와 폴로의 접점에 대해 처음 운을 띄운 사람은 말콤 보윅 Malcolm Borwick이다.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그려진 패키지에는 말콤의 시그니처 레드 헬맷과 서명이 담겨 있다. 그는 로얄살루트 월드 폴로 앰배서더이자 영국 프로 폴로 선수다. 증조부, 할머니, 아버지 등 집안 대대로 폴로를 즐겨온 가문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부터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단숨에 주목받은, 영국 문화와 럭셔리 라이프 스타일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훤칠한 키에 치아가 활짝 보일 때까지 웃는 친화력 좋은 신사 말콤. 눈 위에서 그가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말했다. “로얄살루트는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태생부터 굉장히 용감했죠. 특히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위스키는 기존 제품보다 담대합니다. 21년산 럭셔리 그레인 위스키는 굉장한 혁신이었죠.” 행사 기간 동안 말콤은 경기장과 파티장을 바쁘게 오가며 활약했다. 건배사인 ‘슬란지바’를 연신 외치며! 특히 그가 진행한 폴로 클리닉은 아드레날린의 향연이었다. 위스키를 마신 것처럼 두 뺨이 붉어질 정도로 사람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말콤은 사람들을 폴로라는 신세계로 유쾌하게 안내했다. 그는 폴로라는 스포츠를 이렇게 정의했다. “명예, 진정성, 그리고 정직함. 이런 매너들이 중요한 경기죠. 누구도 다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젠틀맨답게 움직여야 합니다.” 기다란 스틱에 동그란 공이 ‘탁’ 맞는 순간,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희열감이 맺혔다. 신나게 두 발을 구르며 공을 쫓았다. 힘과 유연성을 가진 폴로, 그리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로얄살루트는 서로를 함께 즐길 때 그 진가가 온전히 발휘된다. 스노우 폴로 체험을 마치고 나서 마신 위스키는 강렬한 감각을 선사했다. 몸속을 타고 미끄러지듯 흘러간 뜨거운 기운이란.

아스펜에서 열린 스노우 폴로 행사는 로얄살루트의 핵심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인 특별한 자리였다. 로얄살루트의 마스터 블렌더인 샌디 히슬롭 Sandy Hyslop도 그중 한 명이다. 1983년 양조장의 품질 관리사로 입사한 그는 2016년 마침내 ‘블렌딩 디렉터’ 자리에 올랐다. 위스키에 대한 탁월한 감각을 인정받았고, 무엇보다 1992년 전설적인 마스터 블렌더인 잭 가우디 Jack Goudy로부터 그 비법을 전수받았다. 로얄살루트의 고급스러운 풍미와 한결같은 일관성은 그의 손끝에서 결정된다. 36년 동안 같은 업계에 몸담아온 샌디는 현장에서 느끼는 최근 위스키 시장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소비자들이 점점 더 실험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리고 다채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위스키를 마시고 싶어 하죠. 로얄살루트는 위스키 분야의 넘버원으로서 럭셔리 위스키 마켓에 많은 영감을 주는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에게 더 많은 모험과 도전이 필요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유니크한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샌디는 시간의 힘에 대해 강조했다. 21년이란 길고 긴 숙성의 시간이 가진 의미에 대해. “시간은 로얄살루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죠. 몇 세기에 걸쳐 숙성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폴로의 유구한 역사, 그리고 지속적으로 폴로를 후원해오고 있는 로얄살루트의 철학과도 이어진다. 샌디는 또한 블렌딩의 특별함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은 블렌딩에 우리가 얼마나 다르고 특별하게 위스키를 양조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실험 과정이었습니다. 수많은 테이스팅을 거쳐서 완벽한 균형감을 찾아낼 수 있었죠.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제품은 로얄살루트에서도 최초로 시도한 최고의 도전으로 럭셔리와 유니크함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신제품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도수이다. 스노우 폴로가 처음 탄생한 스위스 생모리츠의 위도와 같은 46.5도에서 모티프를 얻어 술의 도수를 기존보다 조금 더 끌어올렸다. “로얄살루트를 떠올리면 굉장히 파워풀하고 풍부한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반면 이번에 선보인 위스키는 세련되고 섬세한, 기존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죠. 마셔보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크리미한 풍미가 두드러집니다. 큰 얼음이 담긴 컵에 담아 즐기면 완벽한 부드러움과 균형을 느껴볼 수 있죠.” 위스키를 만든 사람이 직접 추천하는 궁극의 음용법이다.

위스키는 향이 지배하는 술이다. 로얄살루트 21년 스노우 폴로 에디션은 복숭아, 라즈베리 등의 과일 향과 바닐라처럼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꿀, 오렌지 마멀레이드, 구운 헤이즐넛의 맛이 혀끝에 감돈다. 로얄살루트의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인 바나베 피용 Barnabé Fillion이 묘사하는 향은 조금 더 문학적이다. “겨울밤에 피는 미모자라는 꽃의 느낌에 가깝겠네요.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한겨울 밤의 꽃. 굉장히 따뜻한 질감을 가진 술이죠.” 파리와 멕시코를 오가며, 히피처럼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바나베는 모델과 사진가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향을 디자인하고 컨설팅하는 근사한 일에 안착했다. 그는 에르메스의 전설적인 조향사인 크리스틴 나이젤 Christine Nagel로부터 사사를 받았다. 스킨케어 브랜드 이솝의 ‘마라케시 인텐스’도 그가 만든 작품 중 하나다. 향수를 조향하는 것과 위스키에 향을 입히는 과정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향수가 가장 프레시한 천연 재료로 만들어진다면, 위스키는 가장 숙성된 오래된 재료로 완성되죠.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한 분야예요. 사람들이 오감을 모두 활용해서 위스키를 즐겼으면 합니다. 그것을 돕는 것이 저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그가 로얄살루트의 위스키를 컨설팅할 때 영감 받은 향을 시향지에 뿌려서 건넸다. 마시는 위스키가 아닌 맡는 위스키.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몸 안에 향을 가득 가두려고 했다. 처음 그의 표현처럼 포근하고 안정감 있는 향이 코끝에 잔상을 남겼다. 재킷 포켓 안에 넣어둔 시향지는 다음 날까지 은은한 향이 남아 있었다. 바나베는 위스키를 좀 더 예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는 마스터 블렌더인 샌디와 서로 협업하여 새로운 관점에 겹겹이 층을 입혀 나간다. “위스키를 만들 때 샌디와 함께 200개 이상의 위스키 원액을 놓고 향을 맡으면서 아로마를 선별해 나갑니다. 우리는 서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죠. 후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활짝 열어줄 수 있는 실험적인 경험을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는 때때로 향에 음악을 매칭하기도 한다. “음악과 함께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쿠바산 시가를 피우며 마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의 눈 속에 그렇게 또 하나의 술이 피어오른다.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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