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의 B급 세계 | 지큐 코리아 (GQ Korea)

오정세의 B급 세계

2020-02-13T22:09:30+00:00 |tv|

오정세는 2020년 2월 현재 가장 잘나가는 남성 배우 중 한 명이자 시청률 타율이 놀랍도록 높은 배우다. 하지만 그는 잘나가는 배우이면서도 늘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머물러 있다.

최근 배우 오정세는 가장 인기를 끈 드라마 두 편에 연달아 출연했다. 최고시청률 23.8%(닐슨코리아 기준, 이하 동일)를 기록한 KBS <동백꽃 필 무렵>이 끝나자마자 SBS <스토브리그>에 등장한 그는 또다시 순간 최고시청률 19.4%로 승승장구하는 시간을 맛봤다. 곧 막을 내리는 <스토브리그> 이후에는 4월에 방영 예정인 JTBC의 <모범형사>에 출연한다.

오정세는 2020년 2월 현재 가장 잘나가는 남성 배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그는 잘나가는 배우이면서도 늘 중앙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머물러 있다. 주연보다는 조연을 맡은 횟수가 더 많고, 앞에 나서서 극을 이끄는 주체 대신에 이야기의 한 구석에서 빛이 나는 감초 같은 역할들로 ‘신스틸러(scene stealer)’ 같은 별명을 늘 달고 사는 배우. 심지어 그가 주연을 맡았던 대표 작품들을 이야기할 때는 한국 B급 영화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인 <남자사용설명서> 속 한류스타 이승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다른 작품들보다 먼저 언급되는 주연작조차도 B급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그에게 “잘나간다”는 표현이 어색하게 들릴 수 있는 이유다.

A가 아닌 B의 삶. 어쩌면 오정세라는 배우의 정체성은 1등이 아닌 주변부의 삶에서 규정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가 맡은 주변부의 인물들은 그 누구보다 B의 그늘을 완벽하게 표현해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 속 노규태는 공식 소개에 #자칭차기옹산군수, #홍자영변호사남편, #노땅콩씨와 같은 키워드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듯 허풍과 허세에 절어 사는 중년 남성이었다. 누군가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대다수 여성의 삶 대신 누군가의 남편으로 먼저 소개되는 남자는 술집에서 서비스로 주는 땅콩에 자신의 명예를 걸 만큼 하찮았다. 자격지심과 사랑받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쩔쩔매는 노규태의 삶이야말로 B의 삶이었다.

언뜻 보기에 <스토브리그> 속 오정세가 맡은 권경민은 적어도 사장 자리를 노릴 수 있는 A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노규태처럼 자격지심, 인정욕구로 뭉쳐있으면서도 권경민은 매번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는 야구단에게 혐오의 감정을 투영하면서 더욱 악랄한 인물이 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악역 같지만 오정세는 권경민을 통해 자격지심이 혐오라는 감정으로 튀었을 때 벌어지는 B의 가장 어두운 면을 그려낸다.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스토브리그>를 통해 A급이, 1등이 될 수 없는 노규태와 권경민의 삶을 연결하면서 오정세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구석진 곳에 자리한 자격지심이라는 감정이 가장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과 가장 악랄해지는 순간을 모두 보여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정세는 이 인물들을 통해 A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작품이 끊이지 않으며, 모두가 그의 대표 캐릭터들을 읊을 수 있게 된 잘나가는 배우의 삶은 비주류들의 애환과 비주류를 보며 느끼는 동정심 내지는 동질감으로 완성됐다. 앞으로 그가 어떤 역할을 맡게 되든 간에, A보다 B가 많은 현실에서 오정세가 만들어낸 B급 인간들의 삶을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나가는 배우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서 이토록 흥미로우면서 먹먹하기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