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홀랜드의 네버랜드

2020.02.17GQ

헤맴 끝에 네버랜드를 찾아 날아갔던 소년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가장 홀랜드다운 모습으로.

옐로 데님 코트 가격 미정, 우영미. 머스터드 숄 가격 미정, YCH. 리버시블 재킷 1백45만원, 카툰 패턴 재킷 2백38만원, 스트라이프 셔츠 85만원, 블랙 쇼츠 68만원, 모두 꼼데 가르송 옴므. 화이트 퍼 슈즈 가격 미정, 엠포리오 아르마니. 이어커프 가격 미정, 포트레이트 리포트. 곰돌이 캡은 에디터의 것.

송치 소재와 애니멀 패턴이 어우러진 재킷 가격 미정, 김서룡 옴므. 재킷 가격 미정, 지방시. 셔츠 가격 미정, 우영미. 와이드 팬츠 가격 미정, 오프화이트. 오가영 작가의 콜라주 사진이 프린트된 스카프 13만2천원, 카바 라이프. 체크 타이 가격 미정, 폴로 랄프 로렌. 블랙 펄 네크리스 3만8천원, 친다운.

체크 패턴 코듀로이 재킷, 블루 셔츠, 빈티지한 워싱의 데님 가격 미정, 모두 우영미. 퍼플 첼시 부츠 1백54만원, 구찌. 핑크 데님 쇼츠 10만9천원, 친다운.

엠브로이더리 디테일 셔츠, 스트라이프 니트, 레드 햇, 그레이 캡 가격 미정, 모두 미우 미우. 스팽글 장식 레드 스트라이프 머플러 가격 미정, 프라다.

핑크 재킷 가격 미정, 지방시. 오가영 작가의 콜라주 사진이 프린트된 스카프 13만2천원, 카바 라이프.

송치 소재와 애니멀 패턴이 어우러진 재킷 가격 미정, 김서룡. 옐로 셔츠 가격 미정, 우영미. 블랙 와이드 팬츠 가격 미정, 오프화이트. 체크 타이 가격 미정, 폴로 랄프 로렌. 블랙 펄 네크리스 3만8천원, 친다운. 워커 부츠 가격 미정, 프라다.

레드 체크 셔츠 2백33만원, 핀 스트라이프 셔츠 83만원, 미키 마우스 프린트 쇼츠 1백45만원, 헤라클레스 목걸이 4백80만원, 블랙 첼시 부츠 1백54만원, 모두 구찌. 프린지 디테일 벨트 50만원, 오프화이트. 가죽 벨트 가격 미정, 우영미. 화이트 캡 7만9천원, 레드 캡 6만9천원,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요즘도 사진 많이 찍어요? 사진을 전공했다고 들었거든요. 나르시시즘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제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는 편이에요. 사진을 배울 때도 셀프 포트레이트에 관심이 많았어요. 근데 데뷔 후 사진을 찍히는 일이 많다 보니 이전보다는 사진을 덜 찍게 돼요.

왜 사진이었나요? 고등학생 때 미술을 했어요. 사진을 공부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같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경험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거든요. 사진을 통해 철학도 배우고, 재미있는 예술 같았어요.

직접 곡을 쓰는데 사진을 배운 경험이 작업에 영향을 주기도 하나요? 특정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는다거나. 그렇진 않아요. 제 음악의 시작점은 자전적인 이야기와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거든요. 그 대신 요즘 음악은 비주얼이 중요하잖아요. 모든 제작을 주도하고 있는데 뮤직 비디오와 앨범 재킷을 촬영할 때 리드하는 게 편해요.

이런 생각도 해요? 홀랜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어떤 장면으로 시작하고 싶어요? 현재 모습요.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고 팬들과 만나는. 그다음에 제 과거를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커밍아웃과 동시에 첫 앨범 <네버랜드>로 데뷔한 지 2년이 됐어요. 큰 용기를 냈고 평범하지 않은 시작이란 건 확실해요. 솔직히 잘될 거란 자신은 없었어요.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10만을 넘기만 하면 성공이었죠. 그래도 이건 확신했어요.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중학생 때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저도 그랬거든요. 같은 상처를 입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을 위한 노래가 처음 목표였어요.

그 후로는 많은 일을 겪었죠? 해외 매체에서 먼저 홀랜드를 주목했고 케이팝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조명했어요. ‘네버랜드’ 뮤직비디오는 천만 뷰를 돌파했고요. 얼마 전에는 월드 투어도 마쳤다면서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죠. 데뷔를 하자 국내에선 호불호가 갈렸고 해외에선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졌어요. 예상은 했지만 일일이 반응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어요. 아무것도 없이 데뷔한 상황이었거든요. 이다음은 어떡하지? 뭘 해야 하지? 걱정하느라 바빴어요. 근데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어요. 어떤 활동을 했는지 체감하지 못할 만큼.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 생각해요.

어릴 적 꿈은 뭐였나요? 샤이니 선배들의 팬이었거든요. 실제로 처음 본 연예인이기도 했는데 선배들을 보고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어요.

만약 커밍아웃을 하기 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거쳐 데뷔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았겠지만 과연 행복했을까요? 게이임을 밝히고 데뷔를 한 데는 학창 시절 저를 괴롭힌 아이들한테 당당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컸어요. 저도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게 우선이었고, 그렇게 된다면 자아실현이 이루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 응어리를 풀지 못한다면 견디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그건 저한테도,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에게도 못할 짓이기도 해요.

홀랜드의 노래는 자전소설 같아요. ‘네버랜드’는 차별 없이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겠다는 메시지를 담았고, 최근 발표한 ‘Loved You Better’는 과거 미워했던 자신을 사랑했어야 했다는 후회에서 그런 제목을 지은 걸로 알아요. 가사를 쓸 때 자주 쓰는 단어가 있나요? 저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별’이나 ‘하늘’이 제 노래에 자주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살면서 은하수처럼 무수한 별들이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별이란 단어에 로망을 갖고 있나 봐요. 또 하늘은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어요.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도망가는 거죠. 하지만 요즘 하늘의 의미는 달라요. 지금의 홀랜드는 그때와 다르니까요.

그럼 홀랜드와 고태섭은 같은 사람인가요? 아뇨. 다르다고 생각해요. 고태섭으로 살다가 홀랜드로 데뷔했는데, 그러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어요. 고태섭으로 계속 살았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죠. 이렇게 팬들의 사랑도 받지 못했을 테고. 그런 생각을 하면 한없이 우울해요. 그래서 홀랜드가 아니더라도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다독여요.

고태섭은 홀랜드 이후의 삶에 잘 적응하고 있나요? 그게 매일매일 하는 고민이에요. 아직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어요. 적응하고 있는 중이에요. 아뇨, 솔직히 말해 적응하지 못했어요. 경쟁도 심하고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으면서 하루에 몇 번씩 생각해요. 힘들어 죽겠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살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 공허함도 느껴요. 한편으로는 지금 일을 정말 잘해내고 싶은 욕심도 커요. 상반된 마음들이 매일 충돌해요.

의외네요. 그럴 때 마음을 다잡는 방법 같은 게 있나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교과서에 제 이름이 실리는 게 평생의 꿈이거든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여기에는 좋은 어른, 좋은 부모도 포함돼요. 나중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지금의 값진 경험이 그때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주변에 좋은 어른이 많나요? 좋은 어른을 많이 봤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은 더 많이 봤어요.

그러니까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게 두렵기도 한가요? 홀랜드로서 쌓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지만 언제든 돌아갈 준비가 돼 있어요.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과 잣대는 남들과 다르잖아요.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대중이 저를 완전히 거부하거나 팬들마저 돌아선다면, 그리고 고태섭의 행복을 위한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큰 결심을 했어요. 사회적 지위나 인기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은 어때요? 행복한가요? 그럼요. 미니 앨범도 나왔고, 월드 투어도 끝나서 푹 쉬고 있어요. 일을 할 땐 굉장히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든요. 앨범과 공연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무척 힘들고 지쳐서 울기까지 했어요. 근데 아무 결과 없이 쉬는 것과 열심히 뭔가를 하고 쉬는 건 다르잖아요. 보상심리랄까, 지금은 뿌듯해요.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런던 등 유럽에서 투어를 하는 동안 충분히 즐겼나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무대는 뭔가요? 파리의 공연 분위기가 진짜 뜨거웠어요. 장소가 지닌 의미부터 특별했어요. 동성애자에 대한 총기 범죄가 발생했던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리고 공연 당일 프랑스 총파업이 있었어요. 그 여파로 대중교통이 대거 취소되면서 먼 곳에 사는 팬들은 공연장에 오기가 어려웠거든요. 제가 실망하지 않도록 공연 내내 관객들이 발을 구르며 열정적으로 호응해줬어요.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비치는 팬들의 눈빛과 표정이 큰 위로가 됐어요. 저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았죠.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알 것 같아요. 그럴수록 한국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는 갈증이 커질 것 같은데요. 맞아요. 한국 활동은 무척 중요해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러면 한국에서도 인정해주겠지, 그런 생각이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역수입’이 작전이었죠. 근데 최근 생각이 바뀌었어요. 밖에서 직접 겪어보니 케이팝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어요. 게다가 저는 한국인이고 한국에서 데뷔했어요. 이곳에서 먼저 인정받는 게 첫 번째 같아요.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겁니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편협한 시선이 남아 있어요. 미국, 유럽에 비해 LGBTQ 이슈에 소극적이지만 그래서 한국 활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고 좋은 본보기가 된다면 이 이슈를 둘러싼 인식도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요? 그게 제일 큰 고민인데 일단 예능으로 뜨려는 생각은 없어요. 방송의 힘을 잘 알지만 음악으로 먼저 인정받고 싶어요. 올여름에 정규 앨범을 낼 계획이에요. 잘 준비해야죠. 근데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인지도가 낮아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돼요. 이 인터뷰 내용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을 테고, 만약 작은 실수라도 한다면 남들보다 결과는 더 나쁠 거예요. 그래서 누가 봐도 좋은 사람,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좋은 마인드네요. 어찌 됐든 세상은 변할 거예요. 결국 버티는 게 중요해요. 홀랜드라는 아티스트가 오래 버티고 활동한다면 그것도 성공이라 생각해요. 언젠가 인정받는 날이 오겠죠.

홀랜드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설령 버티지 못하더라도 그 가치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이연주, 허람 피쳐 에디터 / 김영재
    포토그래퍼
    김희준
    헤어 & 메이크업
    장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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