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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만 할 수 있는 이 눈빛

2020.02.24GQ

전도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에서 최후의 변론자처럼 보인다. 분노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을 한.

“약해빠져가지고.”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상대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아니꼽게 쳐다보는 전도연의 모습은 섬뜩할 것 같지만 의외로 친근하다. 시종일관 돈이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달려가는 연희라는 인물은 가정폭력, 유흥업소에서 팔려나가는 여성들, 그리고 그 시스템 안에 수긍한 자신의 모습을 일절 부정하지 않으며 자꾸만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너라면 죽이고 싶지 않겠어? 너라면 이 돈을 갖고 싶지 않니?

사람을 망설임 없이 죽이고, 협박하고, 여유롭게 웃으며 농락하는 연희의 얼굴은 그렇게 관객의 내면을 날카롭게 찌르며 마음으로 가까워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돈에 대한 욕망, 비틀어진 욕망에 관해 평이하게 접근하면 외연을 겉돌던 영화가 가장 히스테릭하고 악랄해보이는 연희가 등장하는 중반부부터 달라지는 이유다. 영화는 이야기의 진실이 무엇인지 풀어나가기 위해 연희의 말과 행동을 무게중심의 축으로 삼기 시작한다. 전도연이 연기하는 연희는 자신의 고통스런 과거를 핑계 삼아서 모든 범죄를 합리화하고, 덕분에 남성과 여성 할 것 없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삶은 작고 깡마른 연희의 시선으로 재구성되는 효과를 낳는다.

전도연이 만든 연희라는 여성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마치 최후의 변론자처럼 기능한다. 이전에 출연한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전도연은 작고 마른 체구는 늘 애처로움을 자아내는 도구였다. 덕분에 전도연의 연희는 이토록 작고 연약해 보이는 한 여성이 기를 쓰고 생존을 추구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하며, 동시에 오로지 돈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주인공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어떤 이유를 대든 간에 살인, 강도와 같은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용서받기란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범죄의 이유를 설득하는 변호사들이 종종 법정에 존재하는 것처럼, 전도연은 뻔뻔스러운 표정으로 연희의 자조를 감추고 기꺼이 비굴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속 연희는 전도연을 통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비통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여성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선택지를 부여하고 있는지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끝까지 자조를 감추던 연희의 삶이 미완으로 끝나는 순간조차도 배우 전도연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형형하게 눈을 빛내고 있다. 정말, 짐승처럼.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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