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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시즌 1보다 시즌 2가 재미있는 이유

2020.03.20GQ

시즌 1에서 못한 푼 서사를 시즌2에서 드디어 풀어냈다. 동시에 시대적인 상황까지 맞아떨어지며 [킹덤] 시즌2는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섯 편짜리 드라마가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한 듯한 느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 2를 한 줄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시네마틱한 느낌을 주기 위해 세심하게 클로즈업 컷과 풀숏을 배치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전개는 충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킹덤> 시즌 1이 처음 공개됐을 때만 해도 작품의 서사적 흐름이 좀비물이라는 장르적 성격에 기대 다소 진부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도 했다. 시즌 1의 느리고 진부해 보였던 걸음은 시즌제라는 장벽에 부딪혀 잠시 멈췄고, 드디어 시즌 2에서 서사를 풀어가기 위해 앞선 단계가 필요했다는 점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재미없는 농담을 즐기고 무뚝뚝하며 정의롭기만 한 세자 이창(주지훈)의 모습은 시즌 2에 이르러 비로소 온갖 배신과 상처를 이겨내고도 권력을 놓는 이상적인 왕자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이성적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직감과 의지로 상황을 극복하는 그의 모습은 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생겼는지 납득이 가게 만든다. 역병의 원인을 파헤치는 의녀인 서비(배두나)의 역할 또한 마찬가지다. 의학에 뛰어난 캐릭터답게 이성적인 연구원의 역할을 수행하며 혼란스런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핵심적인 퍼즐을 제공하는 자리에 놓인다. 이외에도 다양한 조연들이 등장해 자신들의 사연을 풀어놓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중요한 역할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시즌 2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드라마를 드라마답게 풀어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킹덤>의 시즌 2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적재적소에 화려하게 쓰인 카메라 워크로 연출한 전투 장면이다. 기존의 방송 플랫폼에서 방송된 사극들에서도 전투 장면을 어떻게 실감나게 살리느냐는 연출 면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포인트 중 하나였다. 그러나 <킹덤>의 전투 장면은 장르물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좀비가 사라지지 않는 한 지속이 되어야만 한다. 이 거듭되는 설정의 지루함을 극복하기 위해 제작진은 갑작스럽게 카메라에 튀는 핏방울로 시청자를 놀라게 만들거나 거꾸로 매달린 사람의 시선을 활용한다. 검었던 그림자가 갑작스럽게 좁은 틈 사이로 피와 함께 침투하고, 좀비들 하나하나가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산 사람을 잔혹하게 물어뜯는 방식을 스치듯이 빠르게 보여주는 카메라는 그동안의 한국 사극에서 보지 못했던 긴장감과 박진감을 조성한다.

<킹덤> 시즌 2의 장점인 전투 장면이 연출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시즌 2의 전사나 다름없던 탓에 지루하다는 평을 들었던 시즌 1에는 없던 서사적인 깊이가 생기면서, 일견 단순해 보이던 장르물은 1년 전과 비슷한 전투 장면에서조차 더욱 깊이를 지닌다. 왜군, 명나라군 등 단순한 외부의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전염병을 위시한 국가 내부의 권력 다툼이라는 점은 겨우 목숨만 연명하며 굶주리던 백성들 한 명, 한 명의 안타까운 사연이 뒤틀리는 좀비의 움직임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전달한다. 동시에 칼날에 부질없이 목이 잘려 나가는 사체 아닌 사체들은 백성과 양반, 그리고 왕족 사이에 결국 구별이 없다며 신분제 사회의 명분을 무너뜨리는 역할까지 수행한다.

별것 아닌 듯이 익숙한 교훈을 장르물의 외형을 빌어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고작 이 작은 벌레였구나. 사람들을 죽이고 경상 땅을 뒤엎고 이 나라의 왕실을 뒤흔든 게 고작 이 작은 벌레였어.”라는 창의 한마디는 너무나 공교롭게도 21세기에 전염병으로 무기력함을 마주한 우리의 현실과 맞닿는다. 나라를 이끌 사람은 따로 있다고 믿는 정의로운 왕자의 가치관이 통하던 세상의 이야기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다시 서점에서 팔리는 2020년 3월에 히트하고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즌제의 한계를 극복한 타이밍에 시기적으로도 치밀하게 맞아떨어진 이 작품의 흥행은 흥미롭지만 씁쓸하고, 반갑지만 무겁다. 몰락한 국가를 재건하려는 이들의 노력 이상으로 현실에서의 노력이 버겁다는 것을 알기에.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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