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가 놓치고 있는 김서형의 매력 | 지큐 코리아 (GQ Korea)

[아무도 모른다]가 놓치고 있는 김서형의 매력

2020-03-24T13:16:43+00:00 |tv|

<아무도 모른다>는 주인공에게 부여한 서사가 점점 약해지며 한계에 부딪혔지만, 역설적으로 이런 드라마의 한계 덕분에 김서형이란 배우는 더욱 빛난다.

SBS 드라마 <아무도 모른다>의 포스터 한 장에서부터 배우 김서형은 오로지 미세하게 일그러진 미간과 눈빛으로 형사 차영진을 연기한다. 그의 미간과 눈빛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드라마 내내 고군분투하는 액션 장면에서부터 감정을 억누르고 냉철하게 눈앞의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 차영진의 20년짜리 서사다. 대사 한 줄 없이도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 종교의 폭력성 등을 다루는 드라마의 무거운 소재와 함께 개인적인 복수심, 그 안에 자리한 자신만의 정의를 말하는 치열한 형사의 삶은 모두 김서형이 홀로 만들어낸 것이다.

칸 영화제에서 그의 의상이 화제가 되었을 때처럼, 혹은 JTBC 드라마 에서 그 어떤 주인공들보다 큰 화제가 되었을 때처럼, 막중해진 원톱 주연의 무게는 사실 그가 만들어둔 새로운 여성상에 기대어 힘을 발한다. 쇼트커트의 머리를 한 마르고 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수트와 트렌치코트가 어울리는 차갑고 냉철한 두뇌의 여성. 김서형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이야기하는 긴 생머리의 청순하거나 순종적인 여성상과 정반대에 위치해 있으면서, 사회의 고정관념 바깥에도 다양한 모습을 지닌 여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온 배우였다. 지난 3년 여의 시간 동안 그에 대해 ‘새로운 여성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다. 누군가는 보지 못했던,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여성의 모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사람이 바로 김서형이라는 배우다.

그래서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김서형에게 많은 부분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은호라는 소년과 연을 맺고 나서야 꽁꽁 닫혀있던 마음을 열게 된 18세의 소녀 차영진이 마흔의 어른이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너무 많은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면서 1, 2화에 주를 이뤘던 차영진의 서사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차영진이 홀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액션 장면을 제외하면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은호나 선우 등 남성 조력자들의 힘을 빌려서야 그는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하게 된다. 친구를 죽인 범인을 찾겠다는 다짐 하나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경찰이 되었고, 특진으로 지금의 자리까지 오른 전설적인 경찰이라는 공식 홈페이지의 인물 서사가 무색할 정도다.

이런 전개는 김서형이라는 배우의 쓸모를 제작진의 소개처럼 ‘여경들의 전설’에 한정 지은 제작진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가 제시한 멋진, 터프한, 무엇보다 주체적일 수 있었던 여성의 모습은 결국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며 범인을 잡는 형사의 것이라기보다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멋지게 걷는 인간 김서형의 매력에 그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드라마의 한계 덕분에 차영진을 만들어가는 김서형이란 배우는 더욱 빛난다. 모성애와 같은 편견 어린 개념으로 설명되지 않는 소년과의 우정으로 인해 부드럽게 풀어졌던 표정이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서늘하게 얼어붙었다가, 갑작스럽게 오열까지 해야 하는 넓고 깊은 감정의 진폭을 김서형이 만들어간다. 드라마 속에서 차영진의 서사가 옅어지더라도, 김서형이 만드는 흐름을 따라가며 여성들은 여전히 기대를 건다. 사실 이는 김서형이란 배우를 2020년에 캐스팅한 제작진이 져야 할 무게다. 지금은 배우 김서형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 홀로 버티는 중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