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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멋진 눈빛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2020.03.24GQ

지금껏 김성규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랬던 그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튀르쿠아즈 컬러 하이넥 니트 톱, 코스.

브이넥 니트 톱, 블랙 팬츠, 모두 닐 바렛.

하이넥 니트 톱, 코스. 포켓 셔츠, 휴고 보스.

플라워 포인트 셔츠, 스트링 팬츠, 모두 디올 맨.

누드 핑크 수트, 화이트 셔츠, 모두 지방시. 스트라이프 니트, 이자벨 마랑 옴므.

머리를 짧게 깎았다. 드라마 때문에 스타일을 바꿨다. 긴 머리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민을 좀 했다.

드라마는 처음이다. 커다란 스크린에서 봤던 얼굴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내 연기를 봤을 때 어떤 반응이 있을지 기대도 걱정도 된다. 아무래도 <범죄도시>, <악인전>보다 훨씬 말끔하고 단정한 역할이라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거다. 개인적인 목표라면 드라마의 전반적인 흐름에 내 역할이 잘 흡수되는 거다. 튀지 않는 게 중요하다.

바뀐 헤어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말을 길게 하는 김성규도 낯설다. 이전 작품들에선 눈빛으로 주로 말했달까? 드라마 <반의반>에선 더 많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 전과 비교하면 대사가 확실히 많긴 한데, 너무 기대하지 마라. 슬럼프에 빠진 클래식 피아니스트 역을 맡아 초반에는 연주 장면이 주로 나온다.

사실 장발일 때 풍겼던 분위기 때문에 아티스트 역할을 연기하면 어떨지 호기심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떠올린 캐릭터 이미지 같은 게 있을까? 가을이 끝날 무렵 시나리오를 읽은 탓인지 스산하고 적막한 풍경 속에 홀로 서 있는 메마른 나무가 떠올랐다. 그 나무가 어떻게 변해갈지, 과연 봄을 맞이할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김성규라는 배우도 그런 이미지가 없지 않다. 집에서도 몇 마디 안 할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 거다. 그 정도로 과묵하지는 않다. 집에서 막내다. 어머니와 대화도 많이 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캐릭터가 지닌 쓸쓸하고 외로운 면이 내게도 있을 거다. 난 생각이 많은 편이고, 지금은 덜하지만 고민 같은 게 생기면 혼자 안고 있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그런 부분을 잘 살려야 하겠지.

복싱이 취미라고 들었다. 혼자 있을 땐 뭘 하는 편인가? 집에서 쉬거나, 걷는다. 운동도 되지만 머릿속에 엉킨 생각을 정리하거나 환기시킬 수 있어서 좋다.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기도 하고. 걷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기도 했다면서? <킹덤 시즌 1> 촬영을 끝내고 산티아고로 떠났다. 그런데 다 못 걸었다. 한 달쯤 됐을 때 영화 <악인전>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정을 마치고 싶다.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을 텐데, 깨달음 혹은 스스로 얻은 게 있을까? 한참 걷다 보면 사람이 참 단순해지더라. 평소에도 하루하루를 이렇게 여행하듯이 보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살다 보면 본인 의지대로 안 되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하는데 이때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다. 매사에 긍정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이다.

서울에서는 주로 어떤 코스를 걷나? 동네 근처에 있는 중랑천을 따라 쭉 걸어서 한양대 부근을 찍고 다시 돌아온다. <킹덤> 시리즈를 함께한 지훈이 형, 석호 형과 한강변을 걷기도 한다. 땀나도록 걷는 동안 아주 일상적인 얘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킹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시즌 1은 몇 번이나 봤나? 처음에 다른 배우들과 모여서 4부까지 보고 나머지는 집에서 혼자 봤다. 그러고는 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되게 재밌게 봤다.

큰 호평과 인기를 얻은 이 작품으로 당신이 얻은 건 뭔가? 작품을 쉬지 않고 하거나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보게 된 것도 있지만 체감하는 건 따로 있다. 촬영 내내 같이 고생을 해서 그런지 배우들끼리 돈독하게 지낸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본다.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배, 동료가 생긴 게 가장 큰 수확이다. 내게 힘이 되는 사람들이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데? <범죄도시>를 하고 나서 지금처럼 일을 계속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원래 배우 생활을 시작했던 연극판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연이어 작품을 하게 됐다. 당시엔 거의 정신이 없었다. 일이 잘 풀렸지만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있었다. <킹덤 시즌 1>을 촬영할 땐 걱정이 많았다. 배우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맡은 역할을 소화하는 데 급급해 놓치는 건 없는지 마음이 복잡했는데 동료 배우들과 지내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1편을 긍정적인 긴장감 속에서 촬영했다면, 곧 공개되는 시즌 2는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다.

“닥치는 대로 경험하는 것이 인생의 콘셉트입니다”. 작년 <지큐>와의 유튜브 인터뷰에서 당신이 한 말이다. <범죄도시> 이후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다. <악인전>으로 칸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것도 굉장히 큰 경험이었고, <킹덤> 시리즈를 통해 느낀 것도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볼 수 있는 작품을 해보니까 다양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레 생겼다. 배우라는 직업은 잘되다가도 잘 안 풀릴 수도 있다. 지금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알 수 없다. 누가 알겠나. 그래서 큰 계획을 그리기보단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다. 사실 배우로서 안 해본 것이 많다.

현재에 충실한 사람 같다. 비교적 그렇다. 미래를 꿈꾸기보단 지금 일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매 순간이 큰 경험이라 생각한다.

그나저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김성규의 진짜 얼굴을 제대로 보여준 건 <지큐> 유튜브 인터뷰라고 생각한다. “연기로 얼굴을 가렸다”라는 댓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자신의 얼굴에 내재된 힘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 딱 그 지점이다. 내 외모는 개성이 강하지도 않고 어떤 뚜렷한 특징도 없다. 그래서 역할이나 헤어스타일의 변화에 따라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게 강점이다. 또 이전 작품들을 통해 눈빛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내가 봐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멋진 눈빛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범죄도시> 이전의 얼굴은 상상이 되질 않는다. 내가 속한 상황이나 환경이 달라졌을 뿐이지 사람 자체는 그때와 똑같다. 여전히 어설픈 구석이 있고, 편안하고 재밌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변함없다. 마음의 여유라고 해야 하나. 지나고 보면 가족,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만나는 일에 왜 그렇게 시간을 못 썼는지 안타깝고 후회가 된다. 하루에 한두 시간만 내면 가능한데.

그러게 말이다. <킹덤 시즌 1>이 공개된 직후 배두나 씨를 만나 가능성을 지닌 배우를 발견하기도 하냐고 물었더니 당신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 질문을 당신에게도 하고 싶다. 내가 눈여겨본 배우들은 이미 얼굴과 이름을 알렸다. 개인적으로는 이다일이란 배우를 좋아한다. 극단에서 같이 공연을 한 선배이기도 한데 연기에 관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많은 사람이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이 이름을 추천한다. 좋은 배우다.

극단의 창단 멤버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진취적인 성격인지 궁금했다. 내가 극단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창단 계획을 갖고 있던 이들을 통해 참여하게 된 거니까. 그보단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연극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때마침 함께하게 됐다. 정말 다행이었다. 그 제안이 없었다면 혼자 아등바등하다 방황하거나 힘에 부쳐 금세 지쳤을지도 모른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극단 배우들과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관객의 눈빛이 그립기도 한가? 연극을 했던 시간이 다 그립다. 작품성이 강한 공연을 주로 해서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지만 배운 것이 참 많다. 매번 작품을 하는 일이 도전 같았다.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고, 연기적으로 한계도 많이 느꼈다. 그 시간을 잘 보냈기 때문에 지금 연기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보다 훨씬 전으로 거슬러 가서 고등학교 때 춤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인생이 바뀌었을까? 그랬을 거다. 나중에 동아리 선배의 뮤지컬 공연을 보고 배우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으니까. 고등학교 시절 내내 춤을 췄는데, 부모님의 응원을 받기도 했다. 장래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할 수 있는 시기에 뭔가 열심히 하는 아들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춤 말고 소질이 또 있나?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최근에 밀가루를 반죽해서 칼국수와 수제비를 해 먹었다. 나중에 작은 가게를 하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크지 않지만 편안한 공간에서. 재미있을 것 같다.

기분 좋은 상상인가 보다. 이번 드라마, 로맨스던데 지금의 그런 달달한 눈빛도 볼 수 있는 건가? 아마도.

 

<지큐> 유튜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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