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TMI에서 MBTI로 넘어간 아이돌 팬덤의 ‘요구’

2020.04.13박희아

아이돌 산업 내에서의 TMI와 MBTI 유행은 교묘하게 사생활의 영역과 무대 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황을 보여준다.

“오빠, MBTI 뭔지 알려주세요!” 지난 10일, 전역 이후로 첫 브이라이브에서 팬들을 만난 하이라이트의 리더 윤두준은 수많은 팬들에게서 같은 질문을 받았다. 윤두준은 헷갈려하면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MBTI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고, 여러 팬들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도출할 수 있는 가상의 질답 상황을 만들어 윤두준의 성격에 대입하고 즐거워했다.

윤두준뿐만이 아니다. 최근 솔로앨범을 발표한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NCT, 더보이즈 등 수많은 아이돌들이 오히려 MBTI를 알려주는 영상을 올리며 이를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이 알고 있는 특정 아이돌의 MBTI는 그의 성격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증거가 아니다. 실제로 한국MBTI연구소에 따르면 MBTI는 “개인의 심리적 선호에 관한 문항들에 스스로 응답하게 하여 자신의 검사결과를 통해 성격유형을 분류하는” 도구이면서, “자신과 타인의 심리적 선호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 차이가 미치는 삶의 다양한 부문에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이 연구소에서 전문가 양성을 위해 진행하고 있는 교육만 해도 수십 개가 넘는다. 모든 심리검사, 성격유형검사가 그러하듯 이 검사 결과 또한 해석에 있어서 각 개인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하고 높은 신뢰도를 갖기 위해서는 검사 대상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필요로 한다. 즉,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성격을 고작 16개의 유형으로 쉽게 객관화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MBTI를 알고 싶어하는 팬들의 심리가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MBTI를 알려달라는 요구는 “TMI 알려주세요”라며 한동안 끊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소한 일과나 취향을 알아가며 그들과 가까워지고 싶어했던 심리의 발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MBTI 결과를 알게 된 팬들 중 다수는 아이돌들이 공개했던 온갖 TMI의 조각들을 모아 이것을 해당 아이돌의 성격으로 연결짓는다. 이 과정에서 아이돌들은 브이앱과 유튜브 리얼리티, SNS 라이브 방송 등으로 사생활을 공개하는 영역으로까지 좁혀진 팬과의 거리를 또다시 자신들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오늘은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라떼를 마실지 엄청 고민했다”는 TMI를 내향적이고 소심한 성격으로 해석하거나 정반대로 외향적이며 말이 많은 활달한 성격으로 해석하는 일은 팬들의 몫이 된다. 한동안 유행했던 TMI에 대한 요구는 MBTI로 변모하며 보다 논리적이어 보이고 체계적이어 보이는 분석의 틀로 쓰이며 아이돌들의 행동이나 이미지를 팬들의 상상 속에서 제한한다. 이는 음악이나 퍼포먼스와 같은 콘텐츠를 통해 팬들 개개인이 주관적으로 아이돌의 서사나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다.

오마이걸의 유아가 같은 질문에 “저는 MBTI 공개 안 한다”고 답한 일은 아이돌들이 자신의 삶을 어디까지 팬들에게 해석의 영역으로 넘겨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알려지는 것은 상관 없는데, 그걸로 나를 국한시키는게 싫어서”라는 유아의 말은 일상의 침해가 이뤄질 수 있는 여지와 함께 자신의 성격과 능력을 연결짓고 한정지을 수 있는 외부의 시도를 막아선다.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타인에 의해 내 일거수일투족이 해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이 무거운 일인가. 가벼운 유희의 수단으로 웃어 넘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산업 내에서의 TMI와 MBTI 유행은 교묘하게 사생활의 영역과 무대 위의 경계가 허물어진 상황을 보여준다. 나아가 아이돌들에게 TMI와 MBTI가 유기적으로 얽히며 만들어진 굴레는 더 다양한 콘셉트,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에 대한 제한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아이돌은 어려운 직업이 되어갈 것이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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