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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펠트가 ‘1719’권의 책을 낸 이유

2020.04.30박희아

핫펠트가 정규 앨범을 내면서 CD를 책 속에 넣은 1719권의 한정판 도서를 만들었다.

‘1719’ Concept Photo

얼마 전 정규 앨범 [1719]를 발매한 핫펠트는 CD를 책 속에 넣어서 1719권의 한정판 도서를 만들었다. 이 책의 표지는 여러 가지 색으로 쪼개진 핫펠트의 자화상처럼 보이고, 그림 속 액자이자 거울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모습은 눈도, 코도, 손도 비정상적으로 크다. 아무것도 정상의 범주에 드는 모습은 없는, 제멋대로의 얼굴은 17세부터 19세까지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뱉어낸 한 여성의 회고록으로서 절대적으로 평범하지 않은 가치를 지닌다. 그 어느 부분도 사회에서 떠올리는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책의 첫 페이지에 핫펠트는 우리가 서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이 공간에 서명을 함으로써, 1719권의 책 중에 한 권을 가진 우리는 그와 약속을 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어둡고 지독했던 3년 동안의 일들”을 보고 싶지 않다면 덮어도 좋다. “그럼에도 페이지를 넘기기로 결정하셨다면 아래의 빈칸에 서명해주시고, 부디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이 한 마디는 핫펠트가 원더걸스 예은도, 한동안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했던 아버지와의 싸움으로 지쳐갔던 소녀도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아버지의 부정을 고발하고, 그로 인해 여성으로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털어놓는 그의 모습은 ‘Satellite’의 뮤직비디오 속 홀로 빛나는 그처럼 끝까지 발광(發光)하며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위성을 정말로 닮았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 1719는 단 1719권의 책에만 서명을 할 수 있게 허용함으로써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 또 다른 ‘예은이’들을 응원하는 1719명의 든든한 후원자를 얻는다. 앞서 발표했던 곡 ‘Happy Now’에서 중지를 치켜들고, 스케치북에 “너한테 할 말이 있다”면서 “너 못 해”의 “해”를 실제 해 그림으로 그려놓은 유쾌함은 [1719]에 이르러 좀 더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여성의 명랑함으로 거듭난다. ‘나란 책’, ‘위로가 돼요’에서 로맨티스트의 사고방식을 전시했던 핫펠트는 [1719]에서도 섹슈얼한 태도를 견지하며 로맨틱한 삶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그것에 휘둘려 자신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포장하는 순간, 서명란은 쓸모가 없어지며 그는 1719명의 후원자들 속에 섞여 있을지도 모를 ‘예은이’들이 좌절할 것임을 알고 있다.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어떤 철학적 고뇌가 섞인 이론서나, 위로를 명분 삼은 교훈을 주된 소재로 삼는 시중의 책들보다 실질적으로 높은 효용을 갖는다. <1719>의 내용을 알면서 효용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삶에 대한 의지를 전달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으며, 지은이인 핫펠트에게도 해방감을 안기며 곡 작업을 하는 데에 유용한 기능을 했기 때문에 효용의 관점에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효용은 17세에서 19세라는, 청소년기의 여성들이 놓인 폭력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데로 나아갈 때 완전한 개념으로 정착될 것이다. 그리고 이목구비가 모두 비뚤어지고 상냥하거나 다정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여성의 모습을 얘기할 때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책 <1719>와 음반 [1719]는 그렇게 연결된다. 예은이와 예은이도.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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