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즈의 골든 에이지 | 지큐 코리아 (GQ Korea)

한국 재즈의 골든 에이지

2020-05-08T11:53:07+00:00 |music|

한국 재즈는 짧은 역사와 선입견 속에서도 더 넓고 아름답게 성장해왔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금, 여기, 한국 재즈 신의 새로운 이름들.

뜬금없이 벨기에 희곡 <파랑새>가 생각났다. 이 작품은 진짜 소중한 가치(행복)는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우리는 늘 ‘지금’의 것, 바로 옆에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낮춰 보곤 한다. 음악에도 이런 사례는 부지기수다. 가령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1997)>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반이지만, 명반 순위를 정할 때면 으레 핑크 플로이드나 레드 제플린처럼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나온 명반 뒤에 놓곤 한다. 오직 음악적인 판단인 걸까? 당연히 아니다. 시대(시간)적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순위를 매기고 있는 상당수가 <OK Computer>와 동시대를 보냈기 때문에 동경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보다는 더 후순위에 두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고전(클래식)’이란 건 시간의 흐름을 견디어 살아남은 작품이다. 그래서 더 오랜 시간을 견뎌온 핑크 플로이드와 레드 제플린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일종의 절대적인 기준처럼 작용하며 1위부터 10위까지의 앨범이 50년 전 작품으로 도배되는 건 식상하고 재미도 없다. 일정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면 25년이나 50년이나 검증의 시간으론 충분하다.

글머리가 길었다. 지금 한국의 재즈를 말하려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에게 지금 한국 재즈는 파랑새와 같다. 여전히 재즈를 즐기는 애호가들은 고전 위주로 들으며 블루노트와 임펄스와 ECM의 재즈를 이야기하지만, 고전만 사고 듣기를 반복하기엔 지금의 한국 재즈가 너무나 즐겁다. 가끔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지를 만날 때가 있다. 어느 음악 관계자는 자신은 마일스 데이비스나 빌 에번스, 존 콜트레인의 음반을 한 장도 갖고 있지 않다며, 이미 세상을 떠난 빌 에번스를 듣는 대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프레드 허쉬나 브래드 멜다우의 피아노 연주 듣는 걸 더 선호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빌 에번스보다 못하다 생각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며.

한 음악 전문 기자는 송영주의 피아노 솔로 실황 앨범 <Late Fall>을 들으며 과연 이게 키스 재럿의 수많은 솔로 피아노 앨범보다 못한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한다. 하지만 습관처럼 키스 재럿의 앨범을 사고 듣는 사람들이 송영주의 앨범에 그만한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이게 현실이다. 여느 장르나 마찬가지지만 재즈는 특히 심하다. 레이블 위주로 역사가 쌓여온 만큼 같은 앨범을 버전별로 사 모으며 음질을 논하는 경우는 많지만 새로운 재즈를 찾아 듣는 데는 대부분 인색하다.

한국 재즈는 재즈 애호가 사이에서도 외면 받으며 성장해왔다. 짧은 역사, 실력이 떨어질 거라는 선입견, ‘들을 게 많은데 굳이 왜 한국 재즈를?’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맞물리며 외면받아 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재즈 클럽 ‘야누스’와 ‘공간사랑’ 같은 곳에서 본격적으로 재즈 1세대가 연주해왔으니 햇수로 40년이 넘어가지만 한국 재즈는 늘 선입견과 싸워왔다.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를 통해 한국 재즈 1세대가 조명받았고,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조명과 관심이 한국 재즈 전체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

임인건과 이영경 같은 1.5세대 또는 2세대 음악가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부족하고, 유학파가 대거 귀국해 연이어 좋은 작품을 발표하던 2000년대에도 재즈 애호가들의 눈과 귀는 여전히 해외와 과거로만 향해 있었다. 언론은 관습적으로 이른바 ‘이야기가 되는’ 재즈 1세대 이야기만을 반복해왔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면 지금 한국 재즈의 도약은 감동스러울 정도다. 수많은 파랑새가 눈앞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40년이 넘는 한국 재즈 역사에서 감히 지금을 한국 재즈의 최전성기라 부르고 싶을 만큼 좋은 앨범이 쏟아져 나온다. 재즈라는 장르 특성상 ‘디지털 싱글’ 같은 개념보다 ‘앨범’ 단위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곳이 재즈계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온 한국 재즈 앨범은 양적인 팽창은 물론이고 하나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질을 담보하고 있다. 특히 2019년에 나온 일련의 한국 재즈 앨범들은 작년 내 음악 듣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라고, 예술에 우열은 없는 거라고 황희 정승처럼 말할 순 있겠지만 난 이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무의식적으로 숱하게 예술의 우열을 가려왔을 것이다. 난 황희 정승이 아니기 때문에 예술에 높낮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예술엔 우와 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장에서 기본적으로 재즈가 가장 고등한 음악이라 생각한다. 창작과 기술이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난 음악이 재즈다. 숱하게 들어온 “음악 감상의 끝은 재즈”란 말을 어느 순간부터 인정하게 됐다.

재즈 음악가들은 창작과 기술이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난 음악을 한 장의 앨범 안에 담고, 무대 위에서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배장은의 <Liberation Amalgamation>은 지금의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앨범이라 할 만하다. 2006년 첫 앨범을 발표한 배장은은 이수진(기타), 신동하(베이스), 신동진(드럼) 같은 또 다른 한국 재즈의 주역들과 함께 앨범을 만들었다. 피아니스트의 음악이지만 베이스 연주를 듣는 즐거움이 가장 컸던 앨범이기도 했고, 연주를 듣는 즐거움 말고도 새로운 창작곡을 듣는 즐거움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앨범이었다.

송영주와 써니 킴이 함께한 <Tribute>는 앨범의 의미로도, 그리고 완성도로도 훌륭했다. 여성이 만들고 여성이 부르고 여성이 연주한 앨범으로, 송영주의 피아노와 써니 킴의 목소리로 의미를 채워나간다. 조니 미첼의 ‘A Case Of You’는 지금껏 수없이 리메이크돼 왔지만 감히 최고의 커버라 말하고 싶을 정도로 둘이 만들어낸 호흡은 빼어나다. 배장은과 송영주, 써니 킴 같은 중견 연주자들이 여전히 좋은 창작과 연주를 들려주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여기에 각각 8년, 9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한 임미정과 남경윤, 두 피아니스트의 작품도 베테랑의 관록으로 신의 풍성함에 일조했다.

지금 한국 재즈는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이 등장해 중견 연주자들과 공존한다. 베이시스트 조민기는 자유로움으로 가득한 자신의 첫 리더작 <Invisible>을 발표했다. 작년 최고의 신인 작품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건 물론이다. 2018년 <Neoliberalism>으로 자그마한 파장을 일으켰던 베이시스트 정수민은 얼마 전 <통감>을 발표해 여전히 치열하며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다.

정수민과 서로의 연주를 돕는 김오키의 존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김오키는 지금 재즈계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이다. 그에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재즈 연주자들도 있지만, 그가 지금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창작자이자 연주자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작년에 그가 발표한 ‘코타르 증후군’보다 내 마음을 움직인 곡은 없었다.

재즈 음악가들의 이름만 나열했는데 지면이 줄어들어 안타깝다. 한국 재즈 최초의 오르간 트리오인 트리오웍스부터 최성호 특이점, 김민희, 이한얼 트리오 등의 이름을 기억하고 한 번쯤은 그들의 음악을 들어보자. 비록 재즈가 멀게 느껴질지라도 어느새 파랑새가 되어 마음 안에 자리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단편적으로 갖고 있는 재즈의 이미지보다 한국 재즈의 세계는 훨씬 더 넓고 아름답다. 과거의 재즈도, 해외의 재즈도 아닌, ‘지금, 우리의 재즈’를 듣자. 글 / 김학선(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