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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자기위로 [인간수업]

2020.05.15GQ

넷플릭스 [인간수업]을 보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이들을 위한 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은 완벽한 남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몇 시 근무야?” 남성 아이돌 연습생을 성매매에 끌어들인 규리(박주현 분)는 너무나 즐거운 나머지 지수(김동희 분)의 집을 찾아와 그를 끌어안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자해를 하면서도 완벽한 아이로서의 얼굴을 하고 지내던 그에게 남이 하는 성매매를 통해 돈을 버는 일은 그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흥미로운 놀잇거리다.

<인간수업>이 미국 청소년 성장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도발적인 소재와 리드미컬한 전개, 소위 ‘너드’가 가장 ‘빌런’에 가깝다는 캐릭터성을 가져온 점은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에 최적화된 연구의 결과다. 그러나 넷플릭스의 성질과 별개로 한국 청소년 집단에 대한 묘사는 한국의 남성들이 주로 즐기고 만들어온 환락의 시스템을 아이들의 세계로 옮겨온 것에 가깝다. 성매매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라는 뜻의 ‘유흥’에 속하는 어른들의 삶 안에서, 그리고 서열이 필요한 학교 안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모두 버림받은 소년이 찾아낸 고수익 일거리는 온라인 포주가 되는 일이다. 지수는 자신이 하는 일이 “경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라며 성매매를 요청하는 이들에게 “고객님”이라고 말하지만, 미성년자 성매매에 나선 청소년들에게 앱을 통해 업무 허가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사람이 그라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 ‘몸을 보호한다’는 경호의 사전적 의미 이상이다. 이미 뉴스를 통해 봐왔듯 많은 남성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성매매, 폭력, 불법 촬영물 등이 소년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수입원의 원형이다.

하지만 지수와 규리, 지수의 중개를 통해 성매매를 하는 민희, 그를 비롯한 성매매 청소년들이 가끔씩 비추는 얼굴은 여전히 아이의 눈빛을 하고 아이 같은 행동을 한다. 성매매 청소년들은 아기자기한 방 안에서 고기나 치킨을 먹자고 깔깔대고 웃으며, 업체를 바꾸자는 말에 의리를 논한다. 규리는 남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욕을 쓰고 놀며 과자 봉지를 딱지처럼 접어둔다, 그 딱지들을 고이 모아 보물처럼 간직하는 것은 규리를 좋아하는 지수다. 심지어 지수는 자신의 성기에 닿은 규리의 몸에 화들짝 놀라고, ‘섹스’라는 단어에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숙맥이기까지 하다. 이런 일말의 순수성은 <인간수업>이 평범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게 내 잘못이야?” 변태 성욕자인 남성을 만난 후에 공황 장애가 생긴 민희는 일을 그만두라는 지수와 규리의 통보에 소리를 지르며 억울해한다. 지수는 모텔 밖에서 서성이며 성매매 여부를 고민하는 이에게 “만약 업무 중 어떤 일이 생겨도 즉각 해결할 수 있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잘못하기는 했는데, 잘못을 물을 수 있는 곳은 다른 데에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줄 방법은 돈과 섹스이고, 자신을 압박하는 엘리트 엄마와 아빠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성매매 포주 노릇을 하며 필요치도 않은 돈을 모으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랄한 빌런이 된 남학생 지수는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자신이 소중하게 키우는 소라게처럼 밟혀서 으스러지지 않기 위해 목숨만 부지하면 되는 것이다.

<인간수업>은 차가운 드라마이지만, 어른들에게 보내는 투서와 다름없이 뜨겁다. 그러니까, 다시 생각해보자. ‘버닝썬 사건’, ‘n번방 사건’ 등 온갖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인 2020년에 결국 보통의 어른, 나아가 인간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성매매로 스트레스를 풀고 돈을 벌어야만 먹고 살며 차를 끌고 집을 사는 게 보통의 어른이 되는 방법이라면, 이 사회는 ‘인간’을 품을 수 있는가. <인간수업>이 던지는 질문의 답은 지금처럼 망가진 사회에 대한 유일한 답으로 제작진이 넣어놓은 마지막 자막에서만 찾을 수 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을 알고 계신다면,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청소년 상담: 전화1388, cyber1388.kr, 문자#1388.”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어쩌면 이조차도 어른들의 자기위안에 불과하겠지만.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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