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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2020.05.25GQ

친구들과 함께 꿈꾸고 그려왔던 예지의 빛나는 순간.

뉴욕은 저녁 8시네요.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보통 음악 작업을 낮 12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해요. 끝나고 나면 집에서 저녁을 먹고 같이 사는 친구들과 영화를 보면서 쉬엄쉬엄 지내고 있어요.

고립된 시간이 일상을 많이 바꿔놓았죠? 레스토랑도 상점도 거의 대부분 문을 닫은 상태예요. 두 달 넘게 집 밖으로 못 나가고 있어요.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이런 상황 때문에 혼란스러워하고, 외로움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음악을 만들면서 조금이나마 답답한 마음을 달래요.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월드 투어를 하고 있었을 텐데. 공연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가끔 무대 위에 서 있는 제 모습이 굉장히 일반인처럼 보일 때가 있거든요. 춤을 통해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카포에라라는 전통 무술을 오래 공부한 흑인 댄서분과 힙합과 전통이 결합된 재미있는 퓨전 댄스를 만들었어요. 내년에는 무대에서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예지 씨도 관객도 모두 울컥했던 순간이 기억나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다른 두 세상이 만나는 자리였어요. 그 의미가 너무 커서 공연하기 전부터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찔끔 나왔거든요. 친한 친구들, 가족, 무대에 함께 선 드래그 퀸, 관객, 여러 얼굴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어요.

4월에 발매한 <WHAT WE DREW>는 친구와 가족에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앨범이라고 소개했어요. 제가 그동안 만난 친구들은 모두 살면서 차별도 경험하고 상처도 받고, 각자의 어려운 시기를 통과하며 자라왔어요. 제 곁에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조금 추상적이긴 한데 친구들과 저는 아주 편안한 공간 속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있어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요.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어떻게 보면 가족 같은 관계죠. 굉장히 한국적인 스타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어요(웃음).

이번 앨범에도 귀엽고 몽환적인 한글 가사가 많이 등장해요. ‘에헴’이란 의성어가 맴돌아요. 사실 한국어를 배운 기간은 3년 정도밖에 안 돼요. 거의 영어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한국어 실력이 부족하죠. 어떻게 보면 그런 지점 때문에 색다른 가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음악은 언어와는 다르게 잘 몰라도 그냥 느낌으로 다 알아듣고 이해할 수 있잖아요.

아빠가 녹음해서 보내준 흥얼거리는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게 무척 낭만적이에요. 아빠가 학창 시절에 음악을 굉장히 사랑했어요. 밴드 활동도 했었고, 늘 손에서 기타를 놓지 않았대요. 제가 음악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세요. 항상 곡 작업에 함께 참여하고 싶어 하고요(웃음). 타이틀 곡을 완성하고 나서 인트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아빠가 보내준 음성 파일이 떠올라 그걸 붙여봤는데 너무 잘 어울렸어요. 저는 자연스러운 사운드가 좋아요. DIY 스타일로 녹음도 집에서 하는 경우가 많죠. 나중에 들어보면 숨소리도 담겨 있고 가끔 ‘삑사리’도 들리지만 그게 뭔가 더 정이 가요. 아빠의 소리도 완벽하지 않아서, 그 점이 오히려 더 좋았어요.

음악을 통해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음악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친구도 별로 없고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대학교 라디오팀에서 남들이 듣지 않는 음악을 찾아 듣는 아웃사이더 같은 친구들을 만났죠. 그때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표현해도 된다는 해방감. 어떻게 보면 그건 음악보다는 음악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제게 가르쳐준 것 같아요. 예지 씨에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거의 10년 넘게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어요. 그러면서 성장통을 크게 겪었어요. 외로움도 커졌고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적도 많았죠. 상처받지 않으려고 늘 강한 척해야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어른은 인디펜던스, 혼자서 다 알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거예요.

요즘처럼 힘든 시기에 들으면 좋을 음악이 있을까요? 아슬 씨가 최근에 발표한 <Slow Dance>라는 앨범을 추천하고 싶어요. 사운드에 노스탤지어가 굉장히 많이 묻어 있는 따뜻한 노래예요.

    피쳐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한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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