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준 "정말 신나게 연기했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박해준 "정말 신나게 연기했어요"

2020-05-29T14:51:00+00:00 |interview|

박해준은 가득히 채우고 다시 비워낸다. 어렴풋이 그려온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며.

화이트 데님 재킷, 팬츠, 모두 질 샌더. 화이트 타비 부츠, 메종 마르지엘라.

화이트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 화이트 데님, 질 샌더. 첼시 부츠, 폴로 랄프 로렌.

네이비 셔츠, 기트맨 브로스 at 샌프란시스코 마켓. 데님 팬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스틸 스트랩 워치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까르띠에. 실버 체인 브레이슬릿, 이에르토르.

그레이 니트 톱, 라르디니. 그레이 와이드 팬츠, 스튜디오 니콜슨 at 비이커. 화이트 척 테일러, 컨버스. 스틸 스트랩 워치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까르띠에. 실버 체인 브레이슬릿, 이에르토르.

블루 터틀넥, 코스.

네이비 스트라이프 수트, 조르지오 아르마니. 화이트 티셔츠, 메르츠 비 슈바넨 at 샌프란시스코 마켓. 레더 스트랩 워치 산토스 뒤몽 까르띠에, 까르띠에. 화이트 척 테일러, 컨버스.

화이트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 화이트 데님, 질 샌더. 첼시 부츠, 폴로 랄프 로렌.

다크 그레이 트렌치 코트, 코스. 네이비 니트 톱, 라르디니. 베이지 쇼츠, 폴로 랄프 로렌. 화이트 척 테일러, 컨버스.

다크 그레이 트렌치코트, 코스.

선한 인상, 수줍음, 망설임, 옅은 미소. 드라마의 과몰입을 막아주는 인간 박해준의 진짜 얼굴을 오늘 본 것 같아요. 평소 제 모습이 그렇습니다. 별생각 없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드라마 <부부의 세계> 덕분에 금, 토요일 SNS와 각종 메신저가 뜨겁습니다. 극단의 감정을 시청자도 같이 느끼고 있어요. 시작하기 전 두렵고 도망치고 싶었다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요. 불륜이라는 소재가 어쨌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이러다 다음 작품을 못 하는 거 아닌가 농담 섞인 걱정도 했고요. 다만 언제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감정을 느껴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욕심을 냈죠. 작품에서 이토록 감정을 극단적으로 사용해볼 기회도 잘 없거든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태오를 항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정말로 철없는 인간이에요. 좋게 말해서 죄송합니다만, 순수한 면도 있고요. 온전히 자기 자신을 인정해주길 바라는 욕심이랄까? 그것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거죠. 초반에 제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봤는데 화를 많이 내더라고요. 저 말고 이태오에게. 말도 못 걸 만큼 완전히 감정 이입을 해서 저도 손에 땀을 쥐고 봤어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한 지점이 있나요? 준비를 많이 해도 막상 현장에 가면 다 잊어버리려고 해요. 그래야 감독님과 상대 배우가 하는 이야기도 들리고,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여요. 상황에 몰입하려고 합니다.

김희애 배우가 본인은 컷이 떨어진 순간에도 감정이 멈추지 않는데 박해준 배우는 편하게 장난치고 전환이 빨라서 배신감을 느낀다고, 역할에 빠져서 연기하는 모습이 괴물 같다고 표현했어요. 너무 과분한 칭찬입니다. 감정의 전환이 빠른 건 연기가 끝난 후 갑자기 부끄러워서 그런 장난스러운 제스처를 취한 것 같아요. 사실 초반에 몇 신을 찍고 선배님께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했는데 제가 하는 연기를 좋아해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신나게 연기했어요. 그분이 나를 인정해준다고 인지한 순간부터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덤벼들었던 것 같아요.

JTBC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어요. 어느 자리에 가도 모두가 이 드라마 이야기를 합니다. 체감하는 현상들이 있나요? 잠깐 잊고 살았던 친구들도 드라마를 보고 회사를 통해 연락이 오기도 했어요. 너무 고마운 일이죠. 욕을 많이 먹고는 있지만 저도 인간인지라 갑자기 주변에서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 약간 들뜨기도 해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그러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어차피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힘들겠지만 지금 이 장면을 제 인생에서 잠시 벗어놓고 싶어요. 드라마를 만나기 이전의 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서 묵묵히 제 일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욕심도 욕망도 없는 초연한 답변에서 <나의 아저씨> 겸덕 스님이 오버랩되네요. 단순한 사람이에요. 삶에 대한 큰 집착도 욕심도 없고. 재밌는 거 보면 웃고,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 좋고, 안타까운 일이 생기면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지금 보니 이마에 작은 상처가 있어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서 난 상처인데 안 없어지네요. 여담인데 액션 배우로 유명한 장 클로드 반담도 정확하게 비슷한 위치에 상처가 있습니다.

농담 좋아하고, 허당기 충만하고, 어딘지 모르게 어수룩하고. 실제로 만나보니 2012년 데뷔작 <화차>부터,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독전>, <악질 경찰> 등 악랄하고 독한 캐릭터와는 상반된 모습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오히려 연극하던 시절에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동네 형처럼 일상적인 배역을 더 많이 했어요. 지금 제 모습 그대로 말하면 되는 약간은 어설픈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

장준환 감독이 “카메라 앞에서 언제나 릴랙스한 상태를 유지하는, 한껏 풀어진 배우”라고 말한 적 있어요. 힘 빼기 기술을 체득한 분처럼 보여요. 사실 연극 무대 위에서 저는 정말 딱딱하게 굳어 있는 놈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오히려 경직되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이 제가 봐도 낯설고 어색했어요. 인간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기엔 제 안에 뭐가 너무 없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부족했고. 그래서 늘 안 해봤던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20대 시절, 실험 극단에서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이 안 되네요.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하얀 코끼리라는 극단을 만들었어요. 홍은동 지하 연습실에 모여 사는 이야기 나누고 술도 한잔씩 마시면서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모임이었어요. 지원금 받아서 연극제에도 나가고 그랬는데. 각자의 반려견까지 데려와서 땀 흘리며 연습하고 밥도 해 먹고.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재밌는 놀이 같았어요.

청년 박해준의 꽃다운 사진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어요. 특히 윤상 씨가 2002년 발표한 ‘이사’ 뮤직비디오에 배우의 리즈 시절이 오롯이 담겨 있더군요. 대학 다닐 때 찍은 뮤직비디오예요. 거기에 함께 출연한 상대 배우가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그때는 연인 사이가 아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아이 둘 낳고 잘 살고 있네요. 당시에 윤상 씨가 고맙다며 아내와 제게 밥을 사겠다고 했는데, 기말고사 기간이라 준비할 시험과 과제가 너무 많아서 거절했던 기억이 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그 시절엔 어떤 배우를 좋아하셨나요? 알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봤어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니콜라스 케이지 형님도 너무 좋아했고요. 영화 속에서 오렌지 주스와 보드카를 페트병에 섞어서 먹는 장면을 보고서, 저도 소주를 사다 똑같이 따라 하다 반쯤 취해서 본 기억이 나네요. 그 영화의 OST가 참 좋았는데 드라마의 문제적 장면에 쓰인다고 해서···. 정말 존경하는 음악가인데 스팅 형님께 너무 죄송해요. 노래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아서(웃음).

한국예술종합학교 2기, 극단 차이무에서 활동한 시간까지 합치면 20년 가까이 연기를 하고 계세요. 중간에 멈추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이 일이 사람을 상당히 조급하게 만들 때가 있어요. 빨리 무언가를 시작해서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니까요. 사실 저도 안 그런 척하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결국 배우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런 시간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순간도 있나요? 네, 쉽지는 않습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무진장 어려운데 그건 무조건 부딪혀봐야 알 수 있어요. 어떤 인물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도 정작 연기하는 순간에는 그걸 다 잊어버리려고 해요. 그러면 빈 공간에 물이 채워지듯이 몸 안에 따뜻한 기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은 그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 비워내는 순간 무엇이 들어오는지 보고 싶거든요.

배우로서 더 갖고 싶은 능력이 있나요? 저 배우는 진짜처럼 연기해. 그리고 정말 편하게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한번 들으면 각인되는 목소리 또한 박해준 배우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생각해요. 사실 발성이 좋은 편도 아니고, 듣기에 좋은 음성은 아니에요. 편집이 잘돼서 그런데 삑사리도 자주 나고요. 술과 담배, 커피 등 몸에 안 좋은 건 다 하는 과정 속에서 갈고 닦은 목소리랄까요. 배우가 자기 목소리를 찾는 건 중요해요. 지금 이 목소리가 제가 낼 수 있는 가장 편한 소리죠.

이해영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잘생겼으나 자각하고 활용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다, 멋있는 걸 걷어내려고 한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솔직히 못생긴 얼굴은 아니죠(웃음). 연기할 때 멋을 부리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요. 자연스러운 것에서 벗어나면 진짜 같은 모습이 드러나지 않아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도리어 그게 멋을 부리는 행동일 수 있어요. 배우가 연기할 때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타당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멋있는 게 있을까 생각해요.

6월에 태어났는데, 생일은 어떻게 보내세요? 집에 들어가는 길에 케이크와 샴페인 한 병을 사서 아내와 함께 먹어요. 그게 전부예요.

드라마가 끝나면 꼭 하고 싶은 게 있나요? <미생>에서 천 과장이 했던 대사가 생각나요. “혼자 빤스만 입고 편하게 마시는 술이 그립다.” 비슷한데요, 저는 한여름에도 꼭 러닝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맥주 한잔 마시면서 가만히 있을 수 있는 그런 일상이 곧 찾아오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