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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스터 N의 출정식

2020.06.06GQ

벨로스터 N이 듀얼 클러치를 달고 다시 등판했다. 스마트 핫해치 장르의 출정식 같은 무대였다.

크기 L4265 × W1810 × H1395mm
휠베이스 2650mm
공차중량 1460kg
엔진형식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배기량 1998cc
변속기 8단 자동(DCT) 서스펜션 (앞)맥퍼슨 스트럿, (뒤)멀티링크
타이어 (모두)235/35 R 19
구동방식 FF 0 → 100km/h 5.3초
최고출력 275마력
최대토크 36.0kg·m
복합연비 10.2km/l
가격 3천3백94만원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는 비유가 적당할까. 벨로스터 N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가 고성능 브랜드를 출범시키며 호기롭게 선보인 첫 번째 모델이었으나 수동변속기만을 탑재해 대중성과는 격차가 존재했다. 왼발로 클러치 페달 위를 휘젓고, 오른손으론 기어 레버를 쉴 새 없이 조작하며 고출력을 통제하는 아슬아슬한 쾌감은 분명 공감한다. 하지만 데일리 카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꽉 막힌 출퇴근길의 동반자 역할. 수동변속기를 감당할 용기가 도무지 솟지 않았다.

벨로스터 N은 대중적인 차로 분류되기엔 중대한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성공을 거뒀다. 꾸준한 수요는 물론, 오리지널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반형 벨로스터의 판매량마저 추월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시점이 분명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자동변속기 버전의 출시가 암암리에 알려진 뒤라 뒤통수가 더 얼얼했다. 생각지도 못한 성과였다. 본격적인 방송 전에 반응을 살피려 제작한 테스트 프로그램이 단숨에 주말 드라마급 시청률을 기록한 격이다.

국산 핫해치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현대가 본방을 시작했다. 현대는 이미 7단 듀얼 클러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건식으로 설계한 메커니즘으론 벨로스터 N의 275마력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스포츠카의 필수 조건인 재빠른 변속 속도를 감안하면 듀얼 클러치 탑재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개발 중이던 8단 습식 듀얼 클러치가 완성됐고, 벨로스터 N으로 재빨리 산지 직송했다. 자동변속기에 익숙하지 않거나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까지 휘모리장단으로 매혹하겠다는 치밀한 움직임이다.

벨로스터 N을 몰고 한달음에 달려간 곳은 경기도 양평의 중미산이었다. 핫해치는 고불고불한 코너가 연거푸 등장하는 고갯길에 접어들어야 숨겨왔던 묘미를 내보일 테니까. 수십 번에 걸쳐 코너에 진입하고 빠져나가는 동안 전륜구동이라는 사실을 잊을 뻔했다. ‘이쯤이면 선회 반경 바깥으로 밀려나겠지’ 싶은 상황이 닥쳐도 전자식 LSD가 개입해 차를 코너 안쪽으로 슬며시 밀어넣었다. 보이지 않는 LSD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후륜구동으로 착각하고도 남을 움직임이었다.

8단 DCT는 지금까지 현대차에서 본 적 없는 변속 속도를 발휘하며 부지런히 기어를 오르내렸다. 드라이버의 운전 패턴을 파악해 코너 진입과 탈출 시 적절한 단수까지 자동으로 결정하는 사려 깊은 태도를 보였다. 동시에 단수를 높일 때마다 순간적으로 뒤에서 누군가 차를 밀어주는 듯한 특수 효과까지 구현했다. ‘감성 품질’을 고려한 설계다. 운전자가 할 일이라곤 그르렁거리는 엔진 소리와 팝콘 터지는 듯한 배기음에 포위되어 운전대와 가속페달에 신경을 집중하는 게 전부였다.

이쯤에서 마무리하기 싱거웠는지 게임 같은 기능도 하나 추가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NGS’ 버튼을 누르자 20초 동안 부스터 모드에 돌입했다. 최대토크에서 2.5kg·m를 추가로 쏟아 부어 도루를 노리는 1루 주자처럼 전력으로 질주했다. 누구나 준 레이서로 만들어주는 요술이다. 수입 스포츠카 중에서도 이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게 시스템을 구성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물론 장시간 운전을 하며 몇 가지 아쉬운 점도 눈에 들어왔다. 수동 버전에 비해 다소 얌전해진 배기음, 조금만 더 낮췄으면 더없이 감격스러웠을 시트의 위치가 끝내 떨떠름했다. 하지만 현대가 벨로스터 N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주관과 비전을 곱씹어보면 사소한 단점은 상쇄되고도 남았다. 대중성에서 해리되지 않은 특수성, 마니아까지 포용할 수 있는 일반성. N 브랜드가 진정한 의미의 개업식을 마쳤다. 출발이 좋다.

수동변속기 버전과는 달리 스티어링 휠 뒤에 금속 재질의 패들 시프트가 장착된다.

선택 사양으로 제공되는 버킷 시트. 알칸타라를 둘렀으며 N 엠블럼에 조명이 들어오기도 한다.

자동변속기용 기어노브. 화려한 디자인보다는 손에 쏙 들어오는 그립감에 중점을 뒀다.

중력 가속도와 랩타임, 엔진 오일 온도 등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화면. 서킷 주행 시 활용하면 유용하다.

N 전용 캘리퍼. 브레이크 패키지를 추가하면 더 큰 로터와 모노블록 타입의 4피스톤 캘리퍼가 설치된다.

좌우에 나눠 달린 머플러 팁. 가변 배기 시스템으로 중독적인 배기음을 쉼 없이 연주한다.

현대차에서 첫 번째 N으로 벨로스터를 택한 이유는 해치백의 구조적 이점 때문이다. 차체가 크지 않아 그다지 높지 않은 출력으로도 체감 성능을 높일 수 있고, 차체 뒷부분이 짧아 급격한 회전 구간에서도 경쾌하게 방향을 틀 수 있다.

    피쳐 에디터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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