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예술가의 마음들

2020.06.12GQ

아무 말도 없는 작품에서 어떤 이의 눈과 마음을 보았다. 그건 자신을 돌보고 다듬을 줄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발끝, 2020

최성임

최근 전시의 제목 <발끝으로 서기>에 담긴 의미는? 발끝으로 서기는 불안과 위기의 상황에서 나온 선택이지만, 움직이며 내딛고자 하는 행위는 결국 도약이라는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리고 윗몸일으키기, 오래달리기처럼 훈련으로 누구나 가능한 행위임을 강조했다. 단호한 결심처럼 느껴지듯이 삶과 작업 전반에 대한 점검이자, 앞으로의 각오 같은 것이기도 하다.

예술이란 여정 속에서 삶은 어떤 진전을 이뤘나? 예술의 힘을 믿는다. 내게 예술은 기억하는 행위다. 소중하지만 사라지는 것, 혹은 사소하지만 삶의 대부분이었던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기억하는 작업은 삶에 무늬를 새기며 의미 있게 만든다.

작업의 키워드는? 무늬, 글, 시간, 집.

그것에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는? 유한한 존재로서 늘 시간을 등진 상황이 쓸쓸하고 외롭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속의 많은 도전과 기억을 함께하며, 다양한 ‘무늬’를 찾고 만들어가는 작업이 내가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글’은 내가 작업을 시작하는 첫 번째 드로잉이자 시각적으로 구현해야 하는 대상이다. ‘시간’은 작업의 재료이자 내 작업이 가진 힘이다. 작업의 주제였던 ‘집’은 물리적, 정신적 제약이자 무한한 상상력이 가능한 작업실이다. 집의 은유적 의미뿐만 아니라 그 안의 사물, 공간을 작업 속에 끌어들였다.

일상적 요소를 다루는 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 작업은 삶에서 부딪히고 쌓아 올린 것이다. 일상을 표현한다기보다 일상에서 작업으로서 살아남은 작업이라 말할 수 있다.

자화상 같은 작품은? 이번에 제작한 ‘발끝’이란 작품이 나를 잘 표현한다. 삶과 죽음, 따뜻함과 차가움, 권태와 충동, 만족과 분노 등의 양가적인 감정이 드러난다. 여러 감정을 조율하며 긴장감 있게 맞춰간 작업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

자존감은 어떤 편인가? 난 여성이자 엄마이자 작가이다. 엄마와 작가라는 단어로 묶어 한 문장 안에 쓰기까지 힘든 시기가 많았다. 오랫동안 극복의 대상으로 여겼던 모든 상황에서 비로소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됐다.

자신을 지탱하는 철학이나 믿음은? 시간의 축적을 믿는다. 삶이든 작업이든 나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여 시간과의 싸움을 한 모든 것이 소중하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건? 무조건 행동으로 하길 잘했다. 아이디어나 스케치, 글로만 남기지 않고 매번 재료를 찾고 생각을 다듬고 완성도를 맞춰가며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예술가로 살면서 견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늘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생각한다. 작업에 들어가는 시간이 짧고, 주위 상황이나 여건의 영향을 잘 받지 않는 편이다. 꾸준히 어떤 식으로든 작업을 한다.

위로를 얻는 나만의 방식은? 어릴 때부터 괜스레 마음이 힘들거나 쓸쓸할 때 커튼, 벽지, 이불의 무늬를 눈으로 따라가며 시간을 보냈다. 이내 다른 세계가 펼쳐지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최근 일상에서 발견한 예술적 순간은? 설거지가 너무 하기 싫던 날, 개수대에 놓인 접시의 배열이나 서 있는 상태가 흥미로워 작업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깨진 파편에선 거미집이 떠올랐고, 세제 거품을 닦아내며 안개처럼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그 너머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스스로 정의하는 나란 사람은? 손으로 무언가를 쓰고 그리는 일을 좋아하며, 예술의 힘을 믿는다.

 

대화의 풍경 T-9, 2018

양정욱

자화상 같은 작품은? 결혼하면서부터 시작한 ‘대화의 풍경’이란 시리즈는 집을 꾸미면서 말다툼하는 내용을 담은 작업이다. 그 모습을 미래의 우리가 멀리서 바라본다면,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업에서는 매번 식물, 가구, 색, 그 밖에 집 안팎에서 할 법한 선택적 상황을 동반한 대화의 풍경이 소재가 된다. 우리는 특별하진 않지만, 집에 대한 각자의 야망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어쩌면 예견된 작업이며, 지금까지의 작업 중에서 현실과 가장 근사한 작업이기도 하다.

일상적 요소를 다루는 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각자의 일상에는 독창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에서는 본인이 현실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가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없는 독창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이 바탕이 되거나, 반대가 되거나, 그 사이의 무수한 각자의 독창성이 있을 뿐이다. 주변 모습들은 내가 자리 잡은 현실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가장 익숙한 바탕이다.

예술이란 여정 속에서 삶은 어떤 진전을 이뤘나? 10년 가까이 해온 작업들을 다시 보면, 당시의 고민들을 다루고 있다. 해결된 것은 없다. 다만 이런 고민들이 소재가 되면서 직업을 핑계로 원하는 만큼 고민할 수 있다. 이 일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골똘히 고민하는 일은 시간을 보내기도 좋고 해결할 것만 같아서 두근거리고 즐겁다.

오랜 시간의 노동이 느껴지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염원하고 바라는 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정성에는 어떤 숙연함이 있다. 정성과 그 안에 담긴 숙연한 기분을 좋아하고 의식적으로 애용한다. 종종 하는 말이지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하지도 못하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거칠고, 무섭고, 고통스럽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능한 신중히 조금만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그 정성의 매력은 버리기 어렵다.

일관되게 붙들고 있는 주제는? 내가 느끼는 당시의 관심사에 따라 이야기를 쓰고, 보여지는 재료나 규모도 계속 변했기 때문에 명확하게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그 주변을 계속 서성거리는 느낌으로 일을 한다. 지금도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런 걸 이런 식으로 만들어서 남겨둬야겠어’라는 마음이 있다.

작업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것을 기록할 때 이야기와 선택 가능한 단어들, 어렴풋한 모양과 비슷한 경험이 머리에 들어온다. 정확하게는 쏟아져 내린다. 그것을 내 방식대로 받아 적는다. 이 순간은 언제나 벅차다.

예술가로서 느끼는 한계나 고민은? 한계는 언제나 핑계가 된다. 한계는 느리게 만들지만 멈추게 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 속에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게 한다. 그래서 한계는 어떤 중요한 지점이다.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내면적 동기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작업이 시작되는데, 첫째는 자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고민을 서성이다 머리에 떠오른 이야기들은 대부분 훌륭하다.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어딘가로부터 온 것인데 그동안 꾸준히 서성였던 덕분에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살을 더하면 자랑할 만한 상태가 되는데, 글자나 물리적 작품으로 남겨두면 이것을 도구 삼아 자랑하기 쉬워진다.

자존감은 어떤 편인가? 자존감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열등감이 적지 않으니 자존감은 아주 소량으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 없이 날던 새가 ‘내가 왜 날고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건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증거일 수 있다. 언젠가 이 문제로 자존감에 대해 들여다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적이 없다.

자신은 작업과 얼마나 닮은 사람인가? 작업에서의 이야기들은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모습들이다. 내용 속에는 내가 등장하거나 경험의 일부가 있다. 하지만 그것들의 실제 모습은 시작은 같지만 대부분 속상한 상황들이고, 이야기는 주로 “그때 그 일이, 혹은 지금의 이 일이 이렇게 되면 좋겠다”이다. 난 소심하고 비겁한, 독창적인 개인이다. 그래서 커다란 동물을 동굴에 그렸던 어느 존재처럼 나도 이야기를 적어 들고 소망한다. 다음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지루함을 못 참는 능력과 지루함을 기억 못 하는 능력.

 

다 내 거야!!, 2012

청화새를 찾는 중, 2018

김재용

도넛 시리즈에 담긴 내밀한 사연은? 한마디로 자전적인 작업이다. 도넛은 내게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언어이자 도구다. 또 살아가면서 받는 수많은 질문을 도넛이라는 캔버스를 통해 풀어간다. 수많은 도넛 작품 하나하나가 다 다른 모습인 것은 매일 일기를 쓰듯 그날의 이야기를 담기 때문이다.

작업의 키워드는? 즐거움, 색, 개성.

그것에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는? 작업의 가장 큰 목표는 즐거움이다. 즐겁게 작업을 하면서, 시각적으로 달콤하고 기분 좋은 작업을 선보이는 것이다. 색은 원래 내 약점이었다. 적녹 색약이 있어 색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고,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긴 채 화이트, 그레이, 실버 위주의 색을 썼다. 하지만 이에 맞서기로 했다. 도넛 작업을 통해 색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고, 수백 개의 도넛으로 전시를 하면서부터 다양한 색 작업을 즐긴다. 사람이 다르듯 도넛 작업들도 각각 다른 개성을 지녔다. 용기를 내 남과 다름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각자의 개성이 특별해진다고 믿는다.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에 <DONUT FEAR>라는 제목을 쓴 배경은? 제목에 쓰인 Donut은 도넛이면서 ‘Do not’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원하지만, 변화와 도전을 통한 전진은 두려워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길을 마주하면 두려움부터 앞선다. 열심히 준비한 전시를 앞두고 코로나19 사태가 닥쳐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자화상 같은 작품은? 이번 전시에 ‘청화새를 찾는 중’이라는 작품이 있다. 여러 개의 도넛 조각으로 캔버스를 형상화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큰 그림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중동의 카펫, 한국의 청화, 미국의 도넛이란 3가지 문화가 혼재되어 있다. 하나하나 띄어져 있는 도넛들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고 있는 것이 어쩌면 나 자신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또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달팽이는 매일 아침 거울에 비친 내 표정과 기분을 담고 있다. 일종의 자화상인 셈이다.

작업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도넛 매드니스!!’ 연작은 전시장을 1척3백58점의 도넛 조각으로 가득 채운 작업이다. 완성하기까지 4개월쯤 걸렸다. 불가능할 것 같은 작업을 구상하고,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를 현실화시켜 스스로의 한계점을 넘어선 순간 성취감을 맛본다.

예술가로서 느끼는 한계나 고민은? 완전히 에너지가 소진되어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을 때가 가끔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두렵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사용하는 예술적 언어가 공감을 이뤄내고 있지만, 훗날 새로운 이야기를 다뤄야 할 때 용기를 내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내면적 동기는? 작업의 출발점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강한 믿음이다.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앞으로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이야기는 계속 있지 않을까.

자존감은 어떤 편인가? 자신을 믿기보단 작업에 대한 철학을 믿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예술가로 살면서 견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는? 다양한 모자를 바꿔 쓰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예술가, 교육자의 삶을 동시에 꾸려가면서 상황에 따라 모자를 적절히 바꿔 쓰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 정의하는 나란 사람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암흑이 깔린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항해자.

 

Orange Warmth ll, 2019

김지선

작업의 키워드는? 자연, 빛, 시간.

그것에 자꾸 마음이 가는 이유는? 주로 자연 풍경에서 영감을 받는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하며, 빛과 시간에 따라 형상도 달라진다.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거대하고 무섭고 묘하기도 하다. 자연은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오랜 시간의 노동이 느껴지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염원하고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지만 내가 감각했던 공간, 시간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다. 기억이란 시간에 따라 희미해지니까.

감정과 기억을 재현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 특정 장소로부터 작업실로 돌아와 빈 캔버스 앞에서 몸에 남아 있는 시각적, 청각적, 촉각적 감흥을 떠올리며 그 정서와 감각을 담으려고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내가 경험한 기억에 현재 시점의 내면적 정서를 더하는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캔버스 안에서 내면의 풍경과 조우하게 된다.
자화상 같은 작품은? 내 작업은 감각했던 기억의 공간을 바탕으로, 시시때때로 기억에서 변해가는 인상을 담은 다이어리 같다. 그중에서 붓 터치로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과장하고 않고, 감정과 정서 등 경험한 그대로 표현한 작업일수록 나답게 느껴진다. 메이크업을 하기 전 나의 본모습이랄까.

작업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은? 마침내 완성된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면 기억하고 싶은 그때의 시간과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예술가로서 느끼는 한계나 고민은? 어느 순간 작업 안에서 반복적으로, 습관적으로 표현되는 형상과 붓 터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 매너리즘을 깨야 할 때다.

작업을 지속하게 만드는 내면적 동기는? 한계를 맞닥뜨릴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와 고민을 하다 보면 나만의 기술을 하나씩 습득하게 된다. 나름 뿌듯하고, 그 희열을 기억하면서 또 다른 난관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자존감은 어떤 편인가?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자존감은 높은 것 같다. 작업을 하면서 아무도 관심 없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건?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부분이지만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을 한다는 것의 기쁨은? 내가 제일 잘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것.

예술가로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일상은? 예술가는 부족함 속에서 작업이 잘된다는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생계 걱정 없이 원하는 재료를 구입하고, 작업에만 집중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

최근 일상에서 발견한 예술적 장면은? 제주도에서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걷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 사이로 빛의 움직임을 발견했고, 동시에 온갖 자연의 소리가 내 주위를 에워쌌다. 혼자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묘한 기분이었다.

예술이란 여정 속에서 삶은 어떤 진전을 이뤘나?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 말을 좋아한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질문을 던져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뭐든지 열심히 바라보고, 자세히 보려고 한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서.

    피쳐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김래영
    사진
    Courtesy of Gallery Hyund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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