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엄 건축의 자리 | 지큐 코리아 (GQ Korea)

뮤지엄 건축의 자리

2020-07-06T13:42:13+00:00 |culture|

건축은 어떤 형식으로 뮤지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적 실천은 뮤지엄 건축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1년 전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까지 박물관·미술관(뮤지엄) 186곳을 추가 건립하겠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기준 전국 1,124개인 뮤지엄을 1,21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뮤지엄의 증가 추세는 역사학자 도미니크 풀로 Dominique Poulot가 <박물관의 탄생>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과는 반대로 몇몇 기관이 폐관 절차를 밟는 등 위기론도 동반되고 있다. 더불어 지금 가장 위협적이면서도 장기적인 문제는 코로나19가 던져준 관람 문화의 변화다. 지금도 진행 중인 지구적 위기는 물리적 공간의 공유 경험을 전달하는 뮤지엄에 대한 총체적인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고 전시하는 일이 일상이 된 시대의 뮤지엄 건축이 어떤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갖춰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새로운 뮤지엄은 그것이 발아할 공간인 ‘건축’으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이때의 건축은 건립 타당성 조사, 건축물 현상설계 공모, 설계안 발표, 건물 시공에 이르는 건설 과정에 주로 국한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이 촉발한 ‘빌바오 효과’처럼 랜드마크로서 뮤지엄 건축물에 관심이 쏠려 있다. 하지만 건축은 단순히 미학적 영역에 그치는 대상이 아니다. 건축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이룬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생장하는 구성체이다.

그렇다면 건축은 어떤 형식으로 뮤지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 뮤지엄 건물뿐만 아니라 전시 기획, 운영 전반에서 건축은 어떤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 글은 물질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건축하기’에 가까운 수행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뮤지엄 제도에 건축이 가하는 비평적 역할을 탐색하며 거칠게나마 뮤지엄이 대면할 여러 조건과 변화에 한 편의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려는 시도다.

오늘날 뮤지엄에서 건축이 전시 프로그램으로서 가장 대중적으로 접속하는 것은 파빌리온 건축이다.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는 미술가에 비해 경험이 없어도 쉽고 빠르게 공간을 밀도 있게 채우는 “파빌리온 건축가”들이 지닌 “전투 능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이러한 전시장 바깥의 건축 실천은 한국의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YAP’처럼 2010년 이후에 두드러졌다. 한편으로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론이 지식의 형태로 잘 쌓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고군분투 끝에 완성된 결과물은 기획과 실행, 사후 관리와 문서 절차가 전통적인 미술 전시와는 다른 체제로 실행되기에 새로운 뮤지엄 운영을 위한 ‘선례’가 된다. 결과적으로 파빌리온 경험은 운영뿐만 아니라 전시 디자인 부문에서도 뮤지엄의 보수적인 기존 한계들을 돌파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뮤지엄 건축의 연장선에 놓인 파빌리온은 도시와 뮤지엄의 경계 공간을 어떻게 규명하고 기획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의제들을 던져준다.

파빌리온 경험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기존 뮤지엄 건축을 공간적으로 재구성하는 시도들도 있다. 이 시도에는 시간의 문제가 개입한다. 2015년 아트선재센터 공간 재정비 프로젝트를 맡은 독일 건축가 니콜라우스 허쉬 Nikolaus Hirsch와 미헬 뮐러 Michel Müll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흔히 전시는 건축과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빨리 만들고 실험적이며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건축은 점점 더 변화무쌍해지는 문화계와 더욱 빨라지는 전시 리듬에 발맞추기 어려운 비활성의 느린 매체로 보인다. (···)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건축과 전시의 관계를 다시 상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일 것이다. 이 둘 사이의 갈등은 모든 훌륭한 미술관에서 밀고 당기기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미술관 건축은 단순히 전시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적 실천과 큐레토리얼 실천에 필요한 안정적인 프레임 그 이상인가?” <건축과 전시/전시로서의 건축, 새로운 아트센터>라는 동명의 책에서 니콜라우스 허쉬는 견고한 기존 뮤지엄 건축에 활력 있고 순간적인 리듬을 생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완벽한 해체나 재건축과 같은 일반적인 건축 변형 행위보다 전시 기획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물리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건축은 곧 전시가 되고 전시가 건축”이 되는 유기적인 시간 설계는 뮤지엄 건물의 생애 주기와 관련된 질문을 다시금 촉발한다. 노후화되는 건축이 처한 상이한 조건들은 큐레이터-작가에게 새로운 도전과 인식을 요청한다.

한편 뮤지엄은 역사적으로 도시의 공공장소였던 지난 의제를 따르면서 사회적 연구기관으로 확장하기 위해 몸짓한다. 현대의 가장 흥미로운 시각 예술을 보존하는 미술관의 근대적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강조한 건축·미술사학자 테리 스미스 교수는 뉴욕의 뉴뮤지엄 사례를 통해 21세기 미술관이 갖춰야 할 어떤 모습을 제시한다. 테리 스미스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리사 필립스 뉴뮤지엄 관장은 “도시 싱크 탱크”나 “테크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혹은 “공정무역이나 도시계획 등 미술관의 전문 지식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의 갈증에 반응하는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실행하려는 기관의 비전을 밝혔다. 뮤지엄과 도서관이 오늘날 인본주의를 위한 마지막 공공장소라는 테리 스미스 교수의 지적처럼 일부 미술관에서는 성찰과 저항의 공간을 내세운다. MoMA R&D 센터도 “자기 성찰에 주안점을 두면서 MoMA의 책임과 가능성을 탐구하고 대중을 위해 행동하고자 하는 취지”로 설립한 장소다.

이처럼 뮤지엄에서 건축이 이끄는 혹은 건축과 접속해 떠오르는 여러 이야기는 뮤지엄이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고유한 영역을 넘어선 뮤지엄의 새로운 역할과 만나게 한다. 도미니크 풀로 교수의 지적처럼 아직은 불완전하고 모호해 보이는 목표이지만 “사회적 변화의 주체로서 재탄생”하려는 뮤지엄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 모습을 보다 선명히 그리기 위해 뮤지엄에는 건축의 자리가 필요하다. 건물에서 시작한 뮤지엄 건축하기에 대한 논의는 전통적인 작품 소장의 방식에도 비평적 관점을 더한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에서 6월 14일까지 열린 <모두의 (건축) 소장품>전이 보여주듯이 대체로 재현의 대상을 수집할 수밖에 없는 건축은 건축의 창작뿐만 아니라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파편을 수집의 영역으로 포함한다. 이는 사물과 작품의 관계, 뮤지엄이라는 제도 속에 존재하는 작품의 분류 체계에 대한 의구심을 동반한다. 큐레이터로 하여금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소장 체계를 재고찰하는 시도가 진행되는 지금, 건축은 뮤지엄에서 사유의 자리를 마련한다. 뮤지엄 운영에 가장 많은 예산과 물적 자원이 소요되는 건축은 공사장 가림막을 걷어낸 직후 건물의 매끈한 모습을 공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이후에 공간과 사용자가 함께 만드는 다양한 사건을 감안해야 하며 큐레이터 또한 뮤지엄 건축의 공간적 재사유를 통해 전시 기획, 작품 소장을 포함한 큐레토리얼 방법론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건축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베아트리체 폰 비스마르크 교수가 말한 대로 큐레토리얼 활동이 “사람, 공동체, 사물보다 그들 사이의 일시적이지만 역동적인 관계”를 주목하게 만든다. 글 /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