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첫자락에 선 F8 트리뷰토 | 지큐 코리아 (GQ Korea)

여름의 첫자락에 선 F8 트리뷰토

2020-07-14T15:01:38+00:00 |car|

여름의 첫자락에 F8 트리뷰토에 올랐다. 달아오른 붉은 색이 여전히 진화 중인 페라리의 열의를 대변하는 듯했다.

크기 L4611 × W1979 × H1206mm
휠베이스 2650mm
공차중량 1460kg
엔진형식 V8 가솔린, 트윈 터보
배기량 3902cc
변속기 7단 자동(DCT)
서스펜션 (모두)더블 위시본
타이어 (앞)245/35 ZR 20, (뒤) 305/30 ZR 20
구동방식 MR 0 → 100km/h 2.9초
최고출력 720마력
최대토크 78.5kg·m
복합연비 6.6km/l
가격 3억 5천2백만원

생명체는 변화하는 생태에서 선택압을 받는다. 여건이 맞는 곳으로 이주하거나, 환경에 맞게 적응하거나 혹은 멸종하거나. 모빌리티 역사에 적용된 이치도 다르지 않았다. 세파에 적응하지 못한 스웨덴의 사브와 미국의 허머는 퇴장했다. 항공기, 군수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해 무게를 분산 시킨 브랜드도 있다. 페라리 역시 여러 차례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오일 쇼크와 점점 더 엄격해지는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가 거듭됐다. 슈퍼카를 제조한다는 특수성이 면피 사유가 될 순 없었다.

페라리는 매번 돌파구를 찾아냈다. 거대 자동차 그룹에 잠시 몸을 의탁하기도 하고, 기존 성능을 유지하면서도 배기량을 줄인 다운사이징 엔진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사수한 기조가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면서도 레이싱팀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운영하고, 지극히 ‘페라리스러운’ 슈퍼카의 틀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았다.

F8 트리뷰토는 488 GTB의 자리를 승계한 모델이다. 둘 사이의 격차는 5년에 불과하지만, 성격 급한 세상은 그사이 다시 한번 과제를 던졌다. 운전자에게 자동차 통제권 전부를 맡기는 전통적인 엔지니어링이 점점 의문을 샀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페라리 역시 결단의 시점을 더 이상 미룰 순 없었다. 하지만 단순히 축적된 기술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의 도전과는 성격이 달랐다. 전자 장비의 개입을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지, 혹여 새롭게 도입된 기술이 운전에 도취한 드라이버를 교란하지는 않을지 딜레마가 뒤따랐을 것이다. 자칫 지금까지 고수한 정체성과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F8 트리뷰토는 그래서 고민의 결과를 내보여야 하는 임무까지 부여받은 채 출시됐다.

하필 아스팔트가 융해될 듯 달아오른 날씨였다. 서킷으로 진입하기 전 대기하는 피트에서 타이어 예열을 마친 F8 트리뷰토가 거칠게 호흡하고 있었다. 뙤약볕을 받은 ‘페라리 레드’는 도어를 열기 전부터 나를 초흥분 상태로 몰아붙였다. 출발 신호와 동시에 페달을 밟자 중력 가속도를 나타내는 G포스 미터가 요동쳤다. 숨 고를 틈도 없었다. 산을 깎아 만든 인제 스피디움은 고저차가 엄청나 여느 서킷보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급회전 구간에서도 급격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해 적절한 제동과 변속 시점을 놓치면 경로에서 내동댕이쳐지기 일쑤다. 더구나 720마력짜리 페라리를 다루고 있었다. 엔진의 반응, 조향에 따른 선회, 제동에 따른 무게 중심 변화에 다섯 가지 감각을 총동원해야 했다.

한 바퀴를 돌자 무전기 너머로 앞서 달리는 인스트럭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 밟으세요. 그리고 더 과감히 파고드세요. 괜찮아요.” 페이스를 가다듬을 새도 없이 오른발을 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타이어가 찢어질 듯한 굉음와 엔진이 박동하며 울리는 진동이 가속을 채근했다. 속도는 무절제했고, 난폭한 본성이 여과 없이 전신에 전달됐다. 488 GTB와 비교해 40킬로그램 줄어든 무게와 50마력 증가한 최고출력은 사전에 숙지한 상태였지만, 설계의 변화가 도출하는 쾌감은 수치로 분석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어 있었다.

기세에 압도된 것일까. 비현실적인 속도를 넘나들며 몇 번의 실수를 저질렀다. 코너를 돌아나오며 가속과 제동 시점을 잘못 계산한 상황이 발생했다. 평범한 자동차였다면 이내 접지력을 잃고 코스를 이탈했을 게 분명했다. 반면 F8 트리뷰토는 운전자의 의도를 짐작하고, 실책에 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차가 그리는 궤적을 바로잡았다. 최신 버전의 ‘사이드 슬립 컨트롤 6.1’이 횡방향으로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감지한 후 이에 대처했다. ‘어댑티브 퍼포먼스 런치’ 기능은 가속 시 노면 그립력을 분석해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힘을 조절했다. 레이스에 최적화된 주행 보조 시스템은 운전자가 전혀 느낄 수 없도록 은밀하고 신속하게 개입했다. 극한을 향해 달려나가는 상황에서 믿음직한 코-드라이버처럼 최적의 코스를 유도했다.

속도를 줄이며 피트로 돌아와 씩씩대는 페라리를 멈춰 세웠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다리는 맥이 풀려 있었다. 더위가 제철이 아닌데도 혼자만 폭염에 휩싸인 것 같았다. 가장 페라리스러우면서도 가장 페라리스럽지 않았던 주행 경험이다. 지금까지의 페라리와 기계적 특질을 공유하는 반면, 슬며시 운전을 보조하는 친절한 태도가 생소하기까지 했다. F8 트리뷰토는 ‘V8 미드십 엔진 슈퍼카’라는 표징 외에도 새로운 의미를 내포했다.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동시에 창립 때부터 내세웠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자신들의 창작물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아는 것처럼. 변화를 직시하고 정면으로 마주한 용기를 떠올리며, 페라리의 미래를 긍정하는 찬사를.

1저중심 설계와 공기 흐름을 개선한 전면 디자인으로 488 GTB보다 공기 역학 효율이 10퍼센트 향상됐다.

2 전면부에서 흘러 들어온 공기를 보닛 위로 내보내 다운포스를 생성하는 보닛 위의 덕트.

3 고성능 차나 슈퍼카는 앞뒤 타이어의 규격이 다르다. F8 트리뷰토 역시 뒷바퀴가 앞바퀴보다 폭이 넓다.

4 차체 뒤쪽에 설치된 V8 엔진. 488 GTB에 실린 것을 개선해 시속 0→100킬로미터 기록도 0.1초 단축했다.

5거의 모든 차량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 스티어링 휠. 지름을 줄이고 두께를 얇게 제작해 손에 꼭 감긴다.

6 격렬한 주행에도 몸을 지탱하는 스포츠 버킷 시트. 소재와 색상은 선택 사양에 따라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