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의 끊임없는 개척 | 지큐 코리아 (GQ Korea)

아르메니아의 끊임없는 개척

2020-07-17T17:23:34+00:00 |travel|

아르메니아는 특유의 뿌리 깊은 전통문화를 통해 정치의 변화를 극복해왔다. 불완전한 듯 완전하게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미케일리안 가족 농장의 숙성 치즈, 아르티바카르.

툰 아르메니 게스트 하우스.

세반 호수 근처 시장 풍경.

게하르트 수도원의 가타 브레드.

가르니 근처 양떼를 모는 양치기.

예레반과 가르니 사이로 아라라트산에 오르는 길.

예레반의 베르니사주 시장의 카펫.

딜리잔에 있는 툰 아르메니아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점심 식사.

예르반의 보스탄 식당

소비에트 스타일 자동차.

가미 마을 근처 암반층.

고쉬 마을의 고냐방크 수도원.

아르메니아 고지대에 있는 세반 호수에는 생선 장수들이 호숫가 길을 따라 반 마일 가량 늘어서 있었다. 차들이 다가오자, 상인들은 팔을 넓게 벌리고 아래로 기울이면서 마치 크리켓 심판이 수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낯선 동작을 취했다. 생선의 지느러미를 마임으로 표현한 걸까? “누가 알겠어요?” 소금에 절인 민물송어인 시그 Syg 가판대를 지키던 십 대 다비트가 말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냥 생선을 파는 거예요.” 이러다가 팔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는 훈제 시그가 특히 맛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400드람을 주고 시그 한 마리를 샀다. 생선 살은 니코틴 같은 갈색이었고 퍽퍽하고 질긴 식감은 꼭 밧줄 같았다. 생선 육포에 가까운 친근한 맛이었다.

아르메니아를 여행하면 풍경, 사람,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을 연달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시그를 파는 거리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호숫가에는 ‘구소련 작가 연합 USSR’s Union of Writers’을 위해 1930년대에 지은 수련회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산비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아이스하키의 볼 모양 건축물인데, 한쪽 다리만 받치고 있어서 마치 철근 콘크리트로 된 버섯 같았다. 어떤 각도에서는 엔터프라이즈호의 접시 부분이 추락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건물은 마치 햇볕에 그을려 피부 껍질이 벗겨진 코처럼 안타까운 상태였다. 이러한 공산주의 시대의 유물은 이미 옛것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이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낙관주의를 품고 있는 브루탈리즘 양식의 건물을 보존하고 싶어 한다.

옛 소련은 이 고대 국가를 통치한 마지막 제국이었다. 지난 2천 년 동안 아르메니아는 로마와 페르시아, 타타르, 비잔티움, 오스만 제국 그리고 러시아 차르에 전복되거나 지배되어 왔다. 그러나 험준한 바위와 절벽을 고수하는 황량한 수도원처럼 아르메니아는 어떻게든 민족주의 사상을 오래도록 유지해왔다. 나는 1983년에 처음 이 거친 바위와 돌의 땅을 방문했다. 당시에는 레닌 동상이 수도 예레반 중앙광장에 서 있었고, 주요 호텔에는 투숙객을 감시하는 비밀경찰이 숨어 있는 층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제 그곳은 스위스 메리어트 호텔이 되었고, 레닌의 기념비적 초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르메니아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독립했으나, 그 이후 소련에 이웃한 아제르바이잔과 치열한 영토 전쟁을 경험했다. 1994년에 휴전을 선포했지만 여전히 그 앙금은 남아 있다. 그 후 20여 년간 아르메니아의 주요 문제는 정부의 부패였다. 2018년 봄이 되어서야 이른바 ‘벨벳 혁명’으로 새로운 정권과 함께 희망찬 시대를 열었다. 마침내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된 아르메니아인들은 관광객이 자신들의 유려한 문화를 보러 올 것으로 생각했다.

아제르바이잔과 동맹국인 터키와의 국경은 탐탁지 않은 입마냥 굳게 닫혀 있다. 나라 밖으로 나가려면 남쪽으로는 이란, 북쪽으로는 조지아를 통해야만 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해 이 나라는 일종의 섬으로 여겨진다. “아르메니아는 아시아에 속해 있고, 우리 고유의 이름은 ‘하야스탄 Hayastan’이에요.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유럽에 가까워요. 바로 이 점이 우리나라에 독특한 특징을 부여하죠. 우리는 두 세계에 발을 단단하게 딛고 있어요.” 한 젊은 여성이 내게 말했다. 확실히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스스로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본다. 우선 그들은 독특한 외모를 가졌다. 언뜻 지중해 사람들 같지만, 거친 토스카나 사람처럼 호리호리한 체형에 매부리코를 가졌다. 걸걸한 선율의 언어는 여느 나라와 다르며, 목수의 작업대에 떨어져 있는 돌돌 말린 톱밥처럼 꼬불꼬불하게 늘어진 39개의 독특한 문자를 사용한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자 체계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 문자를 다루는 박물관도 만들었다. 예레반 중심부에 있는 마테나다란 Matenadaran은 복음서와 성무일도서, 시편 등의 필사본이 소장된 도서관으로, 마치 나비 날개를 수집해 전시하듯 유리 케이스에 펼쳐져 있다.

도시 중심부에서는 아라라트 Ararat산이 청명하게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도착한 곳이다. 이제 이 산은 아르메니아 영토가 아니지만, 지역 주민들은 이 산을 민족의 산으로 생각한다. 아라라트산은 넘어갈 수 없는 계곡에 잘못 세운 텐트처럼 터키와의 국경에 고통스럽게 서 있다. 여기에서 ‘아라라트’라는 이름은 여러 방식으로 존재한다. 레스토랑, 기업 그리고 증류한 술 이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인다.

예레반을 지나 오르면 금세 상상을 초월하는 산악지대가 펼쳐진다. 이 울퉁불퉁한 배후지를 전부 돌아보려면 차로 한 주가 족히 걸리지만, 한 시간 거리에 넋을 잃을 만큼 멋진 두 곳이 위치하고 있다. 첫 번째는 가르니 신전 Temple of Garni이다. 협곡 끝에 있는 작은 파르테논 신전처럼 생긴 그리스-로마 양식 건축물이다. 매우 고전적인 건축물을 이렇게 멀리 떨어진 생경한 환경에서 마주하는 경험은 낯설었다. 더 이상한 점은 이 건물이 1679년에 대지진으로 무너졌음에도 1960년대까지 재건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 이 건물은 로마 건축물이면서 소비에트의 건축물인 셈이다.

두 번째로 잊을 수 없는 곳은 역시 예르반에서 가까운 게하르트 수도원 Geghard Monastery이었다. 아르메니아 땅에는 책 한 장에 찍힌 구두점처럼 많은 수도원이 산재해 있지만 이곳과 비교할 만한 곳은 없다. 펜촉처럼 뾰족한 타워가 있는 주 성당 건물은 바위 한 면에 기대어 세워졌는데 이것이 게하르트의 엄청난 비밀의 단서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검은 바위를 깎아 만든 예배당의 미로로 이어지는 벽을 밟고 지나가게 된다. 한 방에는 화려한 십자가 장식을 한 석조 제단이 있는데, 벽과 바닥과 이 모든 것이 한 덩어리로 흐르듯 조각되어 있다. 가장 인상적인 문양은 출입문 위에 있는 한 쌍의 사자인데, 사랑스럽고 순진하면서 다소 침울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세이렌이 조각된 좌대가 있는데, 새의 몸에 뒷날개는 마치 재클린 케네디의 헤어스타일처럼 보였다.

게르하트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토피 사탕처럼 달고 쫀득한 건살구를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자동차 휠 정도 크기의 동그란 형태에 장식이 된 달콤한 빵인 가타 Gata가 한 더미 쌓여 있었고, 길게 엮은 호두를 젤리가 될 때까지 포도 시럽에 담가 초의 심지처럼 땋은 긴 줄 모양의 수죽 Sujukh도 한 뭉치 있었다. “아르메니아식 스니커즈예요.” 한 주민이 말했다. 이런 것들이 아르메니아 여행의 전형적인 길거리 간식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멀리 이동했던 남쪽의 해발 7,905피트 바덴야츠 길에서도 간식거리를 발견했다. 그 길 위에는 약 700년 전에 실크로드 여행자의 피난처 역할을 하는 여행자 쉼터 Caravanserai가 기다란 석조 건물로 세워졌는데, 지금도 여전히 십여 명의 상인과 그들을 태우고 다니는 가축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문 위에는 1332년 지었다는 문구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수죽 상인들은 오랫동안 이 높고 황량한 곳에서 장사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흑요석 칼날과 흰 뿔 손잡이로 된 단도와 말린 과일 그리고 마르멜루, 오디, 포도로 만든 홈메이드 보드카 한 잔을 권했다. 단도와 술 중 어느 것이 더 치명적인지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아르메니아 음식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예레반보다 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은 흥미가 생길 정도였다. 북부 타부시 지역에 있는 오래된 스파 도시인 딜리잔에서 나는 페르시아 전통 요리인 필라프와 석류를 뿌린 샐러드를 먹었다. 러시아 어로 닻이란 뜻의 길가 식당 ‘야코르 Anchor’ 주인이 세반 호수에서 본 시그와 같은 흰 살 생선 튀김에 매콤한 물냉이, 파슬리, 무잎, 톡 쏘는 보라색 바질과 타라곤을 곁들여 냈다. 그는 이것을 양피지처럼 얇은 플랫브레드에 넣고 짭짤한 치즈인 브린자 Brynza와 함께 싸서 먹어보라고 권했다. ‘독수리가 둥지를 튼 곳’이란 뜻의 아르츠바카르 마을에서 나는 아즈만 미카일리안 Azman Mikayelyan이라는 치즈 생산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홉에서 열 종류의 치즈를 만드는데 모두 실험적인 치즈예요.” 그가 말을 이었다. “하나는 우리 집 나무에서 수확한 사과로 만든 와인으로 숙성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 년 내내 매일 코냑으로 씻어낸 것입니다. ‘블루 세반’이라 부르는 두 종류의 연질 치즈도 있고, 누군가 아르메산 Armesan이라고 하기 전까지는 뭐라 부를지 모르던 딱딱한 치즈도 있어요.” 나는 그 치즈를 모두 시식해보았는데 각각 다르게 맛있었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 포도나무가 우거진 아레니 마을 근처에서 와인 생산자인 엔버 가자르얀 Nver Ghazaryan을 만났다. “아버지에게서 와인 양조 기술을 배웠어요. 스탈린이 조지아 사람은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최고의 코냑을 만든다고 말했다지만, 스탈린의 말은 틀렸어요. 아르메니아 코냑은 당연히 최고고, 아르메니아 와인도 최고예요.” 그가 자신있게 말했다.

가자르얀의 아내이자 사업 파트너인 나린 Narine 은 우연히 석공이 되었다. 그녀는 강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복잡한 형태의 십자가인 하츠카르 Khachkar를 만든다. 아르메니아 미술 양식은 1천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만, 나린의 말에 따르면 전문적으로 하츠카르를 만든 여성은 아직까지도 그녀가 유일하다. 아르메니아에서는 하츠카르를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어딜 가나 있다. 교차로에도 서 있고, 도시의 공원을 수놓기도 한다. 어떤 것들은 무덤에 세워지기 때문에 교회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하츠카르는 마을의 이정표나 기념비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의 기도를 실질적으로 가시화시켜 놓은 징표가 될 수도 있다. 노라우스 마을에는 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고대 하츠카르 지대가 있다. 몽고의 티무르가 이곳을 휩쓸러 왔을 때, 방어하려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돌에 창을 받치고 방패를 둘러서 군인처럼 보이게끔 하여 몽골군을 속여 다른 길로 돌아가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내 마음에 남은 하츠카르는 고쉬 마을로 향하는 가파른 내리막이 시작되는 높은 산등성이에 홀로 서 있었다. 이 돌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둘로 쪼개져 있었다. 깨지거나 불완전한 고대 보물들이 그렇듯, 이 모습이 훨씬 엄숙하고 신비롭게 보였다.

아르메니아의 갈라지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보낸 시간이 과거로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바람이 향에 잠기고 촛불이 겨우 어둠을 밝히는 엄숙한 교회의 뒤편에 서면, 지난 10세기를 살아온 사람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예레반으로 돌아가는 것은 스타일리시한 현재와 다시 마주하는 것 같았다. 예레반에는 지내기 너무 편한 ‘호텔 알렉산더’가 새로 지어져 있고, 몽마르트에 있을 것처럼 보이는 타만얀이나 사르얀 같은 거리도 있었다. 유럽식 이름의 카페들이 있고, 사람들은 야외에 앉아서 비트와 라임으로 만든 주스를 마시며 얇은 아라라트를 태운다. 타만얀의 맨 위쪽에는 소비에트 시대의 거대한 계단인 카스카드 Cascade가 있다. 카스카드의 572계단은 예르반의 위쪽을 도시의 문화 중심지로 연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구조물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고 맨 위에 틈이 남아 있다. 이제 카스카드는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구조물 1층 잔디가 깔린 곳에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러브’ 여러 점과 게르하트의 침울한 사자를 닮은 보테로의 뚱뚱한 고양이 가족 등 현대 미술 조각으로 가득 차 있다. 내부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예술 작품이 줄지어 있었다. 그 효과는 희한했다. 웨스트민스터 지하철역을 그 깊이만큼 테이트 모던의 작품으로 바꿔놓았다고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이 작품을 다시 감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뿐이다.

카스카드 맨 꼭대기에 오르면 빅토리아 공원에 있는 70피트 높이의 아르메니아에서 가장 큰 조각인 ‘아르메니아 어머니상’으로 걸어갈 수 있다. 주춧돌 위로 우뚝 솟은 소비에트 조각상은 마치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내던지고 베이스 기타를 들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보이는 것처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웅대함을 자랑한 조각이 아니라, 일종의 비밀스러운 하츠카르로서 십자가를 암시하려는 포즈라고 진지하게 주장한다. 아마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를 보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녀의 시선은 예레반의 루프톱과 안개를 가로질러 어렴풋이 보이는 잃어버린 산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