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제가 고집이 좀 세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정우성 "제가 고집이 좀 세요"

2020-07-23T15:42:47+00:00 |interview|

정우성은 머물러본 적이 없다. 그의 생각과 말들과 행동은 이곳저곳을 유연하게 오간다.

브라운 코트, 브이넥 니트, 카브라 와이드 팬츠, 몽크 스트랩 슈즈, 모두 톰 포드.

베이지와 화이트 프린트 폴로 스웨터, 하이 웨이스트 실크 팬츠, 로퍼, 모두 돌체 & 가바나.

블루 패턴 실크 셔츠, 화이트 슬리브리스, 가죽 스트랩 샌들, 모두 에르메스. 베이지 레더 와이드 팬츠, 던힐.

그린 레더 블루종, 페인팅 프린트 실크 셔츠, 퍼플 터틀넥, 와이드 팬츠, 모두 벨루티.

그레이 오버핏 수트, 던힐. 화이트 니트 피케 셔츠, 휴고 보스. 네이비 스웨이드 로퍼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반팔 셔츠, 그레이 팬츠, 블랙 다미에 패턴 타이, 모두 루이 비통.

페인팅 프린트 실크 셔츠, 퍼플 터틀넥, 모두 벨루티.

베이지와 화이트 프린트 폴로 스웨터, 돌체 & 가바나.

그레이 오버핏 수트, 던힐. 니트 피케 셔츠, 휴고 보스.

오늘 여러 공간을 오가며 촬영했어요. 공간에 따라 기분이나 행동이 영향을 받나요? 그럼요. 사람은 누구나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기류에 충분히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걸 얼마나 민감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요? 장소에 맞춰 드레스 코드를 챙기게 되잖아요. 결국 공간에 따라 어떤 종류의 예의와 행동이 정해지는 거죠.

안정감을 주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집이 제일 편해요. 특히 혼자 있을 때. 산과 나무가 보이는 곳도 좋지만 직업의 특성상 찾아다니기 어려워요.

갤러리처럼 텅 빈 공간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꾸밀 건가요? 채우기보다는 될 수 있으면 그대로 두고 공간과 어울리는 오브제를 최소한으로 놓을 거예요. 의자, 테이블, 그림 하나.

촬영장에서는 어떤 모드로 전환되나요? 아무것도 바라면 안 돼요. 내가 선택했기에 현장의 컨디션과 분위기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그곳과 하나가 되려고 노력해요. 적응은 빠른 편이에요.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에서는 대통령으로 분해 핵잠수함이라는 밀폐된 공간에 놓였어요. 관객들은 정우성을 통해 어떤 감정을 크게 느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대통령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요. “대통령이니까 해내겠지”, “대통령인데 그것도 못 해?”라며. 영화는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상황에서 대통령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요. 한반도 정세처럼 갑갑한 잠수함이라는 공간에 남북미의 세 정상이 납치되는데 그 사이에 끼여 답답한 인물처럼 보일 거예요. 남북 분단의 당사자이면서 결정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어요.

그는 어떤 무기가 있어요? 인내력뿐이에요.

다른 사람과 대립하거나 갈등을 겪는다면 어떻게 행동하나요? 먼저 손을 내미는 편인가요? 타협을 시도하지 않아요. 이해하고 관용하는 쪽이에요. 계속 지켜보고 바라보다가 저 사람은 절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그냥 안 보고 말아요.

인터뷰를 통해 리더, 어른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종종 드러내기도 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좀 더 고찰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인가요? 어른은 스스로 될 수 없어요. 다음 세대가 어른스러웠다고 평가해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공적, 사적 영역에 따라 좋은 어른의 자질은 다를 수 있어요.

뭐든 사적인 이야기가 더 궁금한 법이죠. 잔소리 안 하는 게 최고예요. 세대가 바뀌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가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판단하고 서서히 저물어갈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어른이에요.

지금 이야기에 자신을 대입한다면요? 적어도 잔소리는 안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적에는 어떤 어른이 되길 바랐어요? 좋은 아빠, 좋은 가장. 아직 못 되고 있네요.

아무것도 없는 아이가 영화 현장에서 모든 걸 얻었다고 한 말이 기억나요. 자신에게 많은 걸 내어준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나요? 어떤 배우, 어떤 동료가 되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요. 계속해서 세대와 동료가 바뀌니까요. 그들과 소통할 때 단어 선택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저는 경험이 좀 더 많은 동료로서 존재하려고 해요. 조언을 해줄 수 있겠죠. 사실 조언보다 솔선수범하는 게 맞아요. 내가 먼저 현장에 관심을 갖고 움직이면 동료들도 저를 보고 같이 움직일 거라 생각해요.

영화 현장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으니 자기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있겠죠? 정우성이란 이름 석 자라고 생각해요. 이젠 정우성의 연기는 정우성이야, 라고들 해요. 그게 바로 내 것인 거죠. 제 연기론을 이론적으로 설명하거나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그런 확신은 언제 처음 갖게 됐어요? 늘 그랬어요. 연기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 것을 찾을 수밖에 없었죠. 현장은 스스로를 발견하는 곳이에요.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는 건 아마추어일 뿐이에요. 프로의 세계에서는 각자의 플레이로 자신을 입증해야 해요.

아까 <강철비2: 정상회담>은 주도적인 결정권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는데, 맨 처음 자신의 의지대로 결정을 내려 좋은 결과를 얻었던 건 뭔가요? 좋고, 나쁜 결과는 없어요. 모든 결과는 다 가치가 있어요. 책임을 어떻게 지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책정돼요. 실패는 당연히 감내하죠. 그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해요. ‘이건 실패했으니 내 것이 아냐, 이번 성공은 내 판단이 절묘했어’, 이런 생각들은 착각이에요.

욕심은요? 없어요. 늘 감사해요.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죠. 정우성으로 사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감사함과 불편함 중에서 어떤 감정이 더 커요? 두 감정은 하나의 접점에 자리해요. 많은 사람이 저를 알아보고 호감을 표현한다는 건 굉장한 축복이에요. 하지만 그게 불편한 상황이 될 수 있어요. 노천카페에 앉아 화창한 날씨를 즐기거나 혼자 길을 걸으며 사색을 하는 건 꿈도 못 꿔요. 일상의 축복을 남들처럼 만끽하지 못하죠. 반대 급부의 축복을 받은 대가라고 여겨요.

스코틀랜드에서 발렌타인의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를 만났는데 브랜드 모델인 당신에 대해 궁금해했어요. 그래서 흔들림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줬어요.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 맞는 것 같아요. 스스로 저에 대해 생각할 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고집이 좀 세요.

좋은 가장이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가훈을 정한다면 무슨 단어가 떠오르나요? 공감과 존중.

어떤 의미죠? 세상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어요. 내 옆에 누군가 존재하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고 위로를 받아요. 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사회가 형성되고 경제가 만들어져요. 그래서 누군가의 가난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 돼요.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함께 돌볼 때 사회 전체가 상향 평준화될 수 있어요. 공감과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해요.

소신을 밝히거나 생각을 전할 때 얼마나 고민해서 말을 꺼내나요? 말하는 순간까지도 고심을 해요.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서 인터뷰를 하면 이 단어가 사람들에게 강요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신경 써요. 최대한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사안을 전달하려고 하죠.

의심 없이 믿고 받아들이는 건 뭔가요? 일이죠. 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노력한 대로 결과가 따라요.

작년에 영화 <증인>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버티다 보니 받게 됐다”라고 말했어요. 27년 동안 꾸준하게 일하며 5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과 마침내 상을 받은 것 중 어디에 더 마음이 가나요? 둘 다 마음이 끌리지 않아요. 제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보편적 연기를 따르지 않고 제 것을 찾다 보면 언젠가 상을 받을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근데 너무 빨리 받은 것 같아요. 솔직히 안 받았으면 하는 생각도 했어요.

예상 시점은 언제였는데요? 죽고 난 뒤에 공로상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했어요. 그게 더 가치 있다고 느껴요. 지나간 존재를 인정해주는 거잖아요. 역사가 되는 거죠.

그럼 일에 대한 보상은 어디에서 찾아요? 현장에서 항상 느껴요. 촬영장 가는 길에, 테이크가 한 번 끝날 때마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감정을 고민하고 표현하는 일은 무척 재미있어요. 연기란 삶의 사소한 교감과 관계가 얼마나 재미있고 위대한지를 극적인 상황에서 확인하는 작업이에요. 어떻게 보면 현실적으로 다양한 교류를 하지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겐 대리만족의 시간이기도 해요.

최근 연출작의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어요. 오랜 꿈이기도 했는데 연출자로서 경험한 현장은 어땠어요? 재미있어요. 연출도 적성에 맞더라고요.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를 논하기에 앞서 충분히 즐기면서 작업했어요.

한계와 가능성 중 무엇을 더 느꼈나요? 한계는 늘 존재해요. 그 너머에 가능성이 있죠. 한계에 부딪히고 그걸 넘어서야 비로소 엄청난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