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에 펼쳐진 와인 전성기 | 지큐 코리아 (GQ Korea)

언택트 시대에 펼쳐진 와인 전성기

2020-07-30T14:14:36+00:00 |drink|

언택트 시대, 늘어나는 랜선 술자리. 심리적 욕구와 이해관계가 섞여 와인이 때 아닌 전성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여파로 출판업이 선전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사람들이 거리 두기를 하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출판업은 위축됐다. 사람들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은 확실히 많아졌으나 차분히 책을 읽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해서다. 가뜩이나 싱숭생숭한 마음을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사람들은 말문이 막히는 전개에 주말 밤을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망가져 가는 지선우(김희애)가 밖에서는 멀쩡한 척 행동하다 집에 돌아오면 와인을 병나발 부는 모습은 ‘한 모금만’을 외치게 만들었다. 와인 수입사 아영FBC 홍보팀 변원규 팀장은 실제로 <부부의 세계>가 국내 와인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수치화할 수는 없으나 와인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야기. 드라마에서 지선우가 싹쓸이한 메독 지방의 레드 와인은 금세 동났다. 16회차 내내 지선우가 집에서 레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은 확실히 와인이 우리 일상에 한발 더 밀착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그 가속도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와인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이 대다수다. 어쩌다 맛을 본 레드 와인의 시큼털털한 첫인상이 영 못마땅했거나 와인을 주문하려 들면 겉멋 들었다고 놀림을 당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이들까지도 최근 입 안을 와인색으로 물들이게 된 배경에는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우선 코로나19 여파로 회식 등의 술자리가 취소되자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혼술’, ‘홈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집에서조차 술잔을 기울이는 이유는 단순히 술이 절실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그립고 관심이 필요해서다. 사람들은 자신이 혼술하는 모습을 촬영해서 소셜 미디어에 올려 관심을 유도하거나 소셜 미디어의 라이브 기능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특정 시간을 잡아 라이브 혹은 영상 통화를 통해 온라인으로 술자리를 갖는 행위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고, ‘랜선 술자리’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는 모습은 처량해 보인다. 혼자이기도 하고, 집이라는 훨씬 더 내밀한 공간을 공개하는 만큼 사람들은 ‘난 사실 와인파야’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게 진실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소셜 미디어에 ‘홈술’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물 중 와인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정부가 푼 재난지원금도 한몫했다. 일종의 공돈이 생긴 사람들은 평소 약간의 심리적 장벽이 있던 물건을 사는 데 이를 적극 활용했다. 일례로 재난지원금 지급 후 편의점에서 상대적으로 고가 품목에 속하는 와인, 양주 등의 수입 주류와 고기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와인 매출은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등 모든 편의점에서 공통으로 20퍼센트 이상 상승했다. 그중에서도 이마트24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와인 매출이 216.7퍼센트, 세븐일레븐은 주류 스마트 오더를 도입한 후 와인 매출이 60퍼센트 증가했다고 한다. 국세청이 지난 4월 전통주에만 허용한 온라인 판매를 다른 주류에도 부분적으로 허가하며 파생한 결과다. 주류 스마트 오더란 주류를 앱이나 웹을 통해 주문, 결제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찾는 서비스다. 온라인 결제를 통해 할인 받거나 필요한 제품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한편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없는 대형 마트에선 와인 할인 행사로 고객을 그러모았다.

사실 코로나19로 가속화됐을 뿐이지, 와인의 대중화는 지난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그 배경에는 대형 마트가 있다. 5천원도 안 되는 금액대의 초저가 와인을 내놓으며 사람들이 와인을 한결 더 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1만원 이하의 와인이 있었으나 그때만 해도 초저가 와인은 요리용으로 인식됐습니다. 그런데 대형 마트들이 대량 구매를 통해 보다 더 질 좋은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내놓으면서 초저가 와인도 마실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와인 시장의 저변을 확대시켰습니다.” 아영FBC 변원규 팀장의 설명이다. 최근에는 롯데마트가 3천9백원짜리 초초저가 와인을 출시해 일 평균 1만 병씩 팔아 치우고 있다. 와인 한 병이 프랜차이즈 커피값보다 저렴해진 이유는 한 와이너리의 와인을 한 번에 1백만 병씩 수입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제품별 와인 수입량이 3천 병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마트24는 최초로 PB 와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대량 수입, 유통으로 기존에는 1만원대에 속했을 와인을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자 확실히 와인 시장에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와인 소비에 불을 지핀 제도 변화는 또 있다. 2017년 7월 주세법 개정안에 따라 직접 조리한 음식에 부수해 주류를 배달하는 일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이 중 와인도 포함됐지만 당시에는 치킨과 맥주를 배달 주문해 집에서 ‘치맥’을 즐길 수 있는지가 무척 중요한 사안이었기 때문에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집으로 배달해 마실 정도로 와인이 대중적이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며 홈술과 배달의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다 보니 바와 레스토랑들이 앞다투어 음식에 술을 끼워 파는 배달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매출의 급락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하다. 주류 수입사 씨에스알와인이 운영하는 와인스토어 ‘레드텅’은 서래마을점 내 카페를 이용해 음식과 함께 와인을 배달한다. 특히 레스토랑이나 바와 달리 와인을 소매가에 구매해 배달시킬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제법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복잡해졌다. 주문한 음식 가격이 주류 가격을 초과할 경우에만 배달이 가능하도록 국세청이 규제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신사동에서 와인 바를 운영하며 주류 배달을 적극 활용하는 ‘위키드와이프’의 이영지 대표는 규제 개편에 앞서 자신의 SNS에 “이 법으로 인해 댁에서 맛있는 루비고 한 병 배달 받을 기회를 완전히 상실하셨습니다”라며 허탈한 마음을 토로했다. 바뀐 규제는 소비자까지 얽맨다.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원하는 술을 마시는 것 또한 소비자의 특권이다. 전통주와 국산 수제 맥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 같은 규제 개편에 ‘개선’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은 양쪽 산업의 관계자보다 더 많은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처사가 아닐까.

“배달 앱의 와인 리스트를 375밀리리터 하프 보틀 와인이나 저가의 스파클링 와인으로 교체하는 동시에 음식 메뉴의 금액대를 다양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규제에 대응하려고 노력합니다.” 레드텅 연정숙 팀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배달 앱의 시스템이 개편되지 않아 여전히 주류 가격이 음식 가격과 동일하거나 더 높더라도 결제가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업체들은 주문이 들어오면 일일이 주류와 음식 가격을 확인하고 만약 주류 가격이 음식 가격 이상일 경우 주문을 취소해야 한다. “취소 콜을 한다는 건 고객과의 신뢰가 깨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무척 우려됩니다.”

와인 시장이 확대되고 덩달아 관련 규제들이 변하는 현시점이 다소 혼란스럽다. 얼마 전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에서 와인을 배달한다는 기사가 보도되기도 했다. 바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배달 시 주류의 비중을 규제하는 법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활 속 거리 두기를 주장하는 동시에 배달에 제한을 둔다는 게 와인을 찾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점에 정말이지 아이러니하다.
글 / 이주연(푸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