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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8, 한국의 SF에 대해 말하다

2020.08.05GQ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가 MBC, 수필름, 한국영화감독조합(DGK)과 함께 선보인 8편의 SF 시네마틱 드라마 프로젝트 ‘SF8’에 참여한 여덟 명의 감독과 함께 한국의 SF 장르에 대해 조명해본다.

한국의 SF는 어디쯤 있을까? 한국형 로맨스, 한국형 액션, 한국형 코미디. 비단 SF장르에서도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선뜻 떼어놓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봉준호의 <괴물>을, 누군가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말하며 ‘한국형 SF’를 재단할지 모른다. 어쩌면 ‘한국형 SF’라는 틀을 만들어 가둔 것은 관객들 스스로이지 않을까? 그러한 선입견이 깨지길 바라며, 혹은 어떠한 기대가 만족에 도달되길 바라며 SF 시네마틱 드라마 여덟 편이 탄생했다. 극장이 아닌 OTT 플랫폼 ‘웨이브’를 통해 한국 SF 장르의 언어가 더욱 가까이 전달되기 바라며. ‘SF8’ 프로젝트에 뛰어든 8명의 감독에게 ‘한국 SF’에 대해 물었다.

 


이윤정 감독 <나를 잊지 말아요>

<우주인 조안> 미세먼지로 뒤덮인 세상. 항체 주사를 맞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뉜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두 청춘이 만났다. 김보라, 최성은 주연.

‘SF’란? | ‘저런 게 영화라면 나도 하고 싶어’. 영화라는 매혹에 빠지게 된 계기.

지금까지의, 그리고 앞으로의 한국 SF | 지난 십여 년간 한국 영화는 다 같이 정답을 찾아 헤매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장르 영화가 상업영화의 주류가 되면서 하나의 장르가 관심을 모으면 ‘이 장르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족보’ 같은 게 생기고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가 그 고정관념에 지쳐갈 때쯤 새로운 장르를 찾아 떠나버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이랄까. 그러니 지금 시작된 SF에 대한 관심이 스릴러, 재난, 사극, 좀비물을 초토화시키고 도착한 또 하나의 무주공산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SF는 이야기의 종류라기보다는 세계의 종류이고 그렇기에 몇 가지 관습으로 수렴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게다가 지금 SF를 향한 열망은 단지 영화계 내부에서 새로운 장르로 이동하느라 시작된 것이 아니라 문학과 웹툰계에서 수년에 걸쳐 안정적인 창작자, 독자층이 만들어진 토대 위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계가 좁은 시각으로 SF 본연의 가능성을 소진시켜버리지만 않는다면, 이것이 한 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깊은 철학적 고민까지 다양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창의 역할을 하며 오랫동안 머물 것이라 생각한다.

‘SF8’이 한국 SF 장르에 의미하는 바 | 그동안 만들어진 영화들 중에 SF 장르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들이 종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케팅 단에서 SF를 전면에 내세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동안 한국 극장에서 SF라는 이름을 달고 걸리는 영화들은 주로 헐리우드에서 만들어진, 거대 자본과 기술력을 기반으로 하는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바에는 그 이름을 숨기는 편을 선택하는 게 올바른 판단이라고 여겼을 것 같다. 하지만 ‘SF8’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꺼번에 뛰쳐나온 여덟 편의 작품을 봐주신다면 ‘이런 것도 SF구나’, ‘SF라는 게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갈 수 있구나’, ‘그게 다 한국 배경으로 한국 사람이 등장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구나’ 정도는 생각해주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은 또 다음에 공개되는 영화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OTT 플랫폼 ‘웨이브’가 갖는 의미 | SF라는 장르가 이야기 만드는 사람으로서 현실을 재창조할 자유를 보장해주었다면, 웨이브라는 플랫폼은 영화감독으로서 창작적 선택에 대한 자유를 보장해주었다. 최대한 넓은 관객층의 보편적 관심을 끌어모아야 하는 상업 영화의 제작 과정에서 개입되는 수많은 지표와 데이터들로부터의 완전한 자유. 웨이브와 더불어, DGK 제작이라는 특수성이 더해져 감독의 100% 자유로운 창작적 선택이 가능했다. 이용자의 관심을 보다 잘게 쪼개서 특정 관객에게 높은 만족도를 끌어내는 콘텐츠 제작을 목표로 하는 플랫폼의 존재가 없었다면 이런 프로젝트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노덕 감독 <특종: 량첸살인기>, <연애의 온도>

<만신> 미래를 완벽하게 예언하는 운세 서비스, ‘만신’이 등장했다. 그리고 ‘만신’의 정체를 쫓는 두 남녀의 이야기. 이연희, 이동휘 주연.

‘SF’란? | 좀 더 넓고, 동시에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

SF 장르에 처음 도전하며 | SF는 한국에서 아직 많이 시도되지 않은 장르’라는 인식 자체가 제작과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기타 장르에서는 현실을 배신할 수 없기에 필요했던 자기절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해방감을 느끼며 훨씬 과감한 도전을 추구할 수 있었고 우리가 만들어낸 그림이 현재의 모방이 아닌 고유의 세계관을 갖고 있는 제3의 공간이라는 사실에 즐거움을 느끼며 함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한국 SF에 대해 깨야 할 선입견 | 우린 SF를 좁은 해석으로만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전적 의미로 이야기 요소 안에 과학적 상상력이 포함되어 있느냐를 가지고 SF 장르를 나눈다면 아마 우리가 이전에 즐겼던 많은 작품들 중 상당수가 SF였음을 재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한국 SF의 방향 | SF는 기본적으로 시선을 외부로 돌리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현재가 아닌, 여기가 아닌, 내가 아닌 그 무엇을 바라보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린 우리 자신을 기준으로만 외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물들은 한편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때문에 내가 기대하는 한국형 SF란 궁극적으로 지금 현재의 한국을 얘기하되, 그 방식은 우리에게 낯설고 배척당한 재료들로 이루어진 형태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한국 영화 시장에서의 SF 장르 | 한국 영화는 새로운 장르에 대한 시장을 개척하며 확장해왔다. 스릴러가 그랬고, 재난물이 그러했으며 최근엔 좀비물이 그랬다. 올해 본격 SF영화를 표방한 영화들이 나오면서 그 결과에 따라 시장성이 판단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긍정적 신호를 보고 있는 것은 주류에서 기획되고 있는 SF 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시장의 미시적 결과와 상관없이 얼마 동안은 SF영화들이 나올 것이고 그들이 시장을 계속 두드릴 것이다. 계속 두드리면, 언젠간 열리겠지.

SF 장르 안에서 <만신>을 제작하면서 | 만신의 재밌는 점은 우리가 익숙하게 접하던 운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SF영화에서는 A.I.로봇 등등이 나오고 그들을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그와는 다른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됐다. 우린 과학기술을 미래지향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애초 주변의 초현상적인 일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된 학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과학 안에서 끊임없이 발견되는 미스테리한 일들이 미신으로 남아있는 여러 현상들과 결국엔 만나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하다.

웨이브이기에 가능했던 것 | 웨이브는 한국 시장을 주요 대상으로 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관객이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인다는 것은 그 문화권의 정서와 요소들을 작품 안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SF8은 다양한 SF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우리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기호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고, 관객 반응을 예상하며 제작하기도 수월했다.

 

민규동 감독 <허스토리>, <간신>, <내 아내의 모든 것> 등

<간호중> A.I.가 간병을 대신할 수 있다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돌봄 로봇 ‘간호중’, 그리고 그가 겪는 고뇌와 인간에 대한 고찰. 이유영, 예수정 주연.

‘SF’란? |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 사유의 틀.

‘한국형 SF’라는 이름표 | 한국 스릴러, 한국 코미디, 한국 미스터리 등의 장르 구분은 없지만, 한국 SF 영화라는 명칭은 아직도 선명하게 살아 있다. 마치 아이폰을 지칭하며 양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지만, 양담배나 수입차 등, 몇몇 제품들은 한국산과 외국산을 명확히 구분 지어 부르는 것처럼, SF는 외산과 국산의 차이가 명징하며, 스토리나 스타일보다, 그 제품의 출산지가 어디인지가 감상법을 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무의식적 주장이다. 아마도 기술적 퀄리티에서 압도적인 성취를 보여준 외국 영화들과 비교하여 한국 영화들이 이루어놓은 바가 미약하기에 형성된 지형일 텐데, 이 국적 구분이 개입되는 기이한 선입견 자체가 한계점이라고 생각한다. 그 검열 필터에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 한계 또한 돌파될 것이라고 본다.

<간호중>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 근미래라고 하기엔 이미 닥쳐버린 저출산과 고령화 시대. 그중에서도 인간이라면 결코 한번은 피할 수 없는 돌봄 노동의 의무와 여전히 정답을 알 수 없는 존엄사에 대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그에 대해 극단적으로 다른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낀 인간. 그 인간이 새로운 종족으로 맞이해야 할 기계를 대하는 윤리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Sf라는 장르에 올라타면 왠지 이 무겁고 힘겨운 질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훅 정면으로 던져볼 수 있다. 묘하다.

SF8’ 그리고 웨이브라는 플랫폼 | ‘SF8’은 불필요한 외형적인 욕심을 내지 않고, 주어진 내적 화두의 화력을 최대로 올려 본 적 없는 신선한 출구를 찾아내야 하는 여행이었다. 무릇 여행이 그렇듯 실제 과정은 불편함과 피곤함이 가득한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돌아보면 몰랐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던 무모한 선택이었기에 이뤄낼 수 없는 멋진 추억이다. 게다가 새로운 웨이브의 플랫폼은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무한의 자유를 허용해주었기에 창작자로서는 쉬이 마주하기 힘든 행복한 쾌감을 누릴 수 있었다.

 

한가람 감독 <아워 바디>, <장례난민>

<블링크>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로 인공지능을 불신하게 된 형사가 뇌에 인공지능 파트너를 이식하게 된다. 이시영, 하준 주연.

‘SF’란? | 폭넓은 상상으로 현재를 고민해볼 수 있게 하는 것

‘한국형 SF’란? | SF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도 더 다양해졌다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도 많은 발전이 있었고, 이제는 시각적인 효과만을 기대하고 SF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해외 콘텐츠를 통해서 다양한 상상력을 접했기 때문에 오히려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미래나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다루지만 결국에는 현재의 한국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한국형 SF라고 생각한다.

SF 장르가 의미하는 것 SF | 장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수많은 SF 물이 만들어졌다. 시각적으로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체험하기도 하고, 다양한 상상력으로 수많은 소재들이 다뤄졌다. SF 장르도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주제를 갖고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재를 사는 관객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SF8’을 통해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 SF | 안에도 다양한 장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SF라고해서 미래의 어떤 모습, 현실에서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 장르 안에서도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 SF 장르에 대해 좀 더 폭넓게 생각할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SF8’의 <블링크>를 만들면서 SF 장르 | 관심이 없었거나 취향이 아니었던 관객들도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SF라고 하면 소재에 따라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블링크>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것이 SF라는 장르 안에서 여러 가지 재밌는 상상력과 합쳐진다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었고, SF라고해서 주저하던 관객들에게도 좀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웨이브이기에 가능했던 것 | 나도 평소에 OTT를 꽤 즐겨보기 때문에 웨이브와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영화를 보기 마련인데, ‘SF8’을 만들면서도 다양한 환경에서 이 영화를 접할 관객들을 상상해보곤 했다. 영화가 극장에서 체험되는 것도 좋지만 웨이브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더욱 편하게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창작자로서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한국 관객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SF라는 장르가 서로 다른 8가지의 에피소드로 웨이브를 통해 전달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좀 더 친숙해지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오기환 감독 <패션왕>, <오감도>, <작업의 정석> 등

<증강콩깍지> VR 애플리케이션 ‘증강 콩깍지’에서 서로의 얼굴을 속이고 만난 두 남녀의 좌충우돌 로맨스. 최시원, 유이 주연.

‘SF’란? | 수퍼 판타지(Super-Fantasy).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재미가 있다.

한국 SF의 현재는? | 한국에서 SF 장르는 더 개척해야 하는 길이다. 작품을 만드는 모두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찾아가야 한다. 2020년 올해부터 만들어지는 모든 한국 SF 작품들이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한국 SF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우주로 향하는 시선, 미래로 향하는 시도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한국의 CG 기술력을 세계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 축적된 한국형 스토리 또한 준비되어있다. 곧 개봉할 영화들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여러 편의 SF 작품이 한국 영화 시장에 출범한다. 관객들은 이제껏 보지 못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곧 SF 장르는 한국 영화산업의 중심장르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곧 새로운 슈퍼 판타지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증강콩깍지>를 만들면서 접한 SF 장르 | 8편 중 가장 가벼운 이야기를 선택했고, 관객에게 전혀 무겁지 않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현실과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라는 것을. 현실에 없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 이야기만 구성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을 먼저 만들고 그 안에서 적용 가능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SF 장르를 선택하실 분들이 있다면 먼저 어떤 세상인지를 정하고 그다음에 그 세상에 맞는 이야기를 선택하는 SF적 스토리 창작 과정을 거치길 권유한다. 힘든 과정이기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창조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의석 감독 <죄많은 소녀>

<인간증명> 안드로이드를 이식해 죽은 아들을 살려낸 여자. ‘이 아들은 진짜 내 아들이 맞을까.’ 문소리, 장유상 주연.

SF 란? 더욱 자유롭게 사색할 수 있게 허락된 구역.

<인간증명>, 그리고 SF 장르에 대해 | 작업한 <인간증명>은 SF라는 장르를 차용했지만 또한 그 장르성을 지울 수 있는 영화가 되기를 바랐다. 그 나름의 법칙을 가진 독립된 세계를 그린다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장르성을 파괴하거나 이탈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쨌든 묘한 대사와 상황을 더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고민과 사유를 더 전면에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인 즐거움이었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의 SF | 앞으로 더 많은 영화산업의 가능성을 더 넓혀주는 장르가 될 거라는 확신은 든다. 하지만 특정한 하나의 장르를 굳이 응원하고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SF뿐 아니라 우리 영화 역사가 깊어지고 산업이 발전하면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지금도 관객과 만날 방법을 찾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출격을 대기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 관객에게 SF영화란 어떤 것일까? | 한국 관객뿐 아니라 해외 관객에게도 SF는 낯설지 않을까. 그게 미덕인 장르라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는 이 장르의 영화가 외국만큼 많지 않아서 그 만듦새에 때로는 기준을 더 높여서 보기도, 때로는 감안하고 보기도 하는 것 같다.

‘SF8’, 그리고 웨이브가 갖는 의미 |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독특한 시도의 기획이 많아진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상업적인 플랫폼 안에서 내가 가진 언어를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재미있는 도전이었고, 많이 배울 수 있었다. 현재는 50분 분량에 넣지 못한 장면들을 추가하여 90분 분량의 장편으로 재편집하고 있다. 나 같은 창작자가 더 많이 더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다면 한참 경직되어간다고 우려했던 영화산업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관객으로서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안국진 감독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일주일만에 사랑할 순 없다> 4년의 고시생활 끝에 경찰이 되었는데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고? 지구 멸망을 일주일 남겨두고 펼쳐지는 현실적인 이야기. 이다윗, 신은수 주연.

‘SF’란? | 보이는 것 이전에 관념적이고 사색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장르.

연출자로서의 SF 장르 | 장르 자체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성보다 이야기 자체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SF 장르의 배경은 대게 미래를 지향하지만, 이야기의 끝은 과거를 향한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SF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의 끝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선행되어야만 SF 장르의 매력이 존재하게 된다.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 한국 SF는? | 나는 한국의 관객들이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영화를 많이 접하는 수준 높은 관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굳이 SF 장르가 한국 관객에게 특별히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통찰력 있는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장르를 ‘제대로’만 만든다면 한국의 관객들이 장르 때문에 이야기를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에게 SF 장르가 생소하다는 것은 한국에서 SF 장르가 다른 장르에 비해 잘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착각일 뿐이다. 이미 한국의 대중들은 외국의 수많은 SF 영화들을 접하고 있고 익숙해져 있다. SF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한국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SF | 나는 사회, 문화에 예민한 한국의 영화 시장에 앞으로 SF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실제로 기술과 과학이 우리 사회의 큰 틀을 바꾸기 직전의 과도기라고 믿는다. 대중들 역시 무의식중에 그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무의식적 변화가 SF 장르를 더욱 대중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장철수 감독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하얀 까마귀> 과거 조작 논란으로 나락에 떨어진 스타 게임 BJ. 재기를 꿈꾸며 도전한 가상현실 게임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안희연, 신소율 주연.

‘SF’란? | 나에게 SF란 대확불이다. 우주, 미래, 전쟁, 종말, 괴물, 외계인, 거대악당 등 대단한 것이 주는 확실한 불안. 따라서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이 주는 소확행에 감사하게 된다.

한국에서 SF를 만든다는 것 | 일종의 금기에 대한 도전. SF는 헐리우드에서 만들거나 그들이 공인해줘야 할 것 같은 전매특허 같은 장르였다. 그래서 한국에서 만들면(만들기도 어렵지만) 짝퉁 제품을 만드는 것 같은 무시를 받기도 했다. 결과는 흥행 참패와 재기불능으로 이어진 것도 많다. 그런 선배님들의 노고와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 SF를 만드는 것은 덜 어색한 일이 되었다. 앞으로 익숙함을 넘어, 경이로운 작품들이 많이 나올 것이다.

‘SF8’이 가지는 의미 | ‘SF8’은 SF는 대작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과 상상력의 한계점을 깼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SF의 현재를 보려면 ‘SF8’을 봐야 할 것이고, 전망하자면 한국 SF는 ‘SF8’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하얀 까마귀>가 SF 장르로서 갖는 의미 | 미래과학은 외적으로 더 멀리 더 크게 더 세게 가게 할 수도 있지만, 더 깊이 더 세밀히, 더 부드럽게 내적 여행을 하게 할 수도 있게 해 줄 것이다. <하얀 까마귀>는 내적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SF8’이 갖는 의미 | 플랫폼, 장르, 50여분이라는 러닝타임 모든 게 도전이었고, 난관이었다. 하지만, 구세주 같은 이들이 나타났다. 안희연, 신소율, 이세희, 한일규, 이명하, 최배영, 안기영, 학생 연기를 해준 배우들, 심지어 보조출연자들까지 너무나 잘해줬다. 또한, 프로듀서를 비롯한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미술, 녹음, 의상, 분장, 무술, 음악, 편집, 믹싱, D.I팀과 CG팀등 모든 스테프들 모두가 너무나 훌륭했다.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의미고, 행복이었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준 웨이브에게 감사드린다. 씨네마틱 드라마라는 이번 작업을 계기로 머지않아 2시간짜리 SF 영화나 SF 미니시리즈를 만들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에디터
    GQ promotion (브랜드 컨텐츠 에디터 유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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