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나라 몰타의 정체성 | 지큐 코리아 (GQ Korea)

작은 섬나라 몰타의 정체성

2020-08-07T11:58:53+00:00 |travel|

외세와 함께해온 역사를 가진 몰타는 그 덕에 지금껏 수많은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 작은 섬나라가 마침내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때 몰타의 수도였던 음디나의 사라 팰리스 호텔 Xara Palace Hotel 발코니.

발레타의 뮤지엄 카페.

식민지 시대에 세운 발레타 로어 바라카 가든의 기념물.

침묵의 도시로 불리는 음디나의 자갈길.

몰타섬 바다에서 매해 열리는 요트 행사 ‘The Rolex Middle Sea Race’의 풍경.

언젠가는 몰타풍 나무 발코니가 달린 집에 살고 싶다. 숲속에 지은 오두막이나 정원 끄트머리의 작은 헛간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물끄러미 바깥을 구경하기에 몰타의 갈레리야 Gallarija만큼 좋은 장소는 드물다는 생각이다. 캔틸레버 구조로 지어 거리 위로 돌출된 화사한 색의 발코니들이 사암으로 지은 바로크식 타운하우스에 늘어선 모습은 마치 알록달록한 케이블카를 보는 듯하다. 발코니의 면적은 의자 한두 개와 화분 몇 개, 그리고 음료 한 잔을 곁에 놓을 수 있을 정도다. 몰타의 발코니는 숨바꼭질을 하거나 이웃과 수다를 떨고, 어부들이 배를 정비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런 곳이다. 또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와 갈매기처럼 새하얀 돛을 단 범선, 그리고 번쩍이는 시미터를 든 해적이 등장하는 꿈속으로 빠져들기에도 좋은 곳이다.

몰타는 얼핏 떠올려서는 쉽게 그 모습을 그리기 어려운 땅이다. 수세기 동안 영국령이었다가 영국의 통치에서 벗어나 독립한 뒤에도 특유의 빨간 공중전화 부스는 남았다. 공중전화 부스들은 마치 눈으로 뒤덮인 숲의 가로등처럼 느닷없이 나타나 놀래키곤 한다. 영국 지배 이전에는 페니키아와 아랍, 이탈리아로부터 차례로 침략을 받았으며 그 흔적은 언어와 건축, 그리고 음식 문화에 고스란히 남았다. 오히려 몰타인들은 몰타의 역사를 형성하는 과정에 단역으로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 주변부에 자리 잡은 몰타섬의 위치는 한편으로 지중해의 심장부에 해당하기도 한다. 북쪽의 대륙을 바라보지만 남부의 성향이나 기질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몰타는 작은 군도지만 외세의 침략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유럽 대륙의 축소판이 되었다. 신비한 거석 구조물과 로마 제국의 잔재, 식민지 시절 해상 전투의 흔적과 프랑스 파리 양식의 아기자기한 상점 간판까지 겹겹이 쌓여 공존한다. 이들을 한데 아우르는 것은 섬의 단단한 돌벽이다. 몰타는 세계 속에서 자국의 위치와 역할을 고민하며 국가 정체성 확립에 나선 섬나라이기도 하다.

몰타에는 강이나 호수가 없지만 어디에서 출발해도 15분 내에 바다에 도착한다. 몰타에 먼 곳이란 없다. 몰타의 중심인 몰타섬의 면적은 너비 약 16킬로미터에 길이 약 32킬로미터밖에 안 된다. 농촌 마을 구디야에서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동안 활주로 주변을 따라 풀을 뜯는 염소들을 볼 수 있다. 마을에서 공항까지는 도보로 5분밖에 안 걸린다. 나는 몰타의 조그마한 수도 발레타에서 서쪽에 위치한 딩글리 지역의 절벽에 다녀온 적이 있다. 옹기종기 모여 바다 저편을 응시하는 선사 시대 사원들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아르 랍시에서 수영을 즐기기 위해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비하이브 스타일로 머리를 단장한 채 목걸이를 차고 물속에서 고개를 내놓은 여성들을 만나 함께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크리스마스가 와도 골든 베이나 네이나 베이의 해변에서 여전히 수영을 즐길 수 있다. 그맘때면 몰타의 전원 지역은 담황색에서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오렌지 나무에는 아직도 열매가 매달려 있다. 저녁에는 옛 수도인 음디나를 둘러봤다. <엘시드>의 배경을 그림으로 옮긴 듯 들판에 우뚝 선 바로크 양식의 도시로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몰타의 오래된 가문 여럿이 그곳에 남아 살아가며 지금도 초콜릿 케이크를 먹기 위해 방어벽 위 폰타넬라 Fontanella 카페에 모이곤 한다. 이튿날 아침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발음이 목에 걸리는 아랍식 지명을 가진 마르사실로크라는 어촌 마을을 찾아가는 것이다. 외부로 난 산업 시설 굴뚝과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꽃밭을 지나 성 베드로 수영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피부가 갈색으로 그을린 십 대들이 모여 납작한 바위에서 물속으로 뛰어들며 노는 곳이다.

몰타의 풍경은 자연적으로 브루탈리즘을 실천하는 듯하다. 다닥다닥 들어선 사암 덩어리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저항과 생존을 피력하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조난자와 몽상가들은 이곳으로 이끌렸다. 이곳의 사암은 부분적으로 흰개미 둥지처럼 구멍이 가득하다. 둥지로 연결되는 터널과 통로롤 뚫는 데 아마 수세기가 걸렸으리라. 하지만 내 눈에는 이 구멍들이 오히려 미래와 과거를 넘나드는 비밀스러운 토끼굴로 보인다. 교회의 기사단과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 스케치북을 가져와 몰타에서 휴가를 보낸 난센스 시인 에드워드 리어와 아편을 끊기 위해 섬을 찾은 사무엘 콜리지가 구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다. 오디세우스가 그 뒤를 따르고,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기원후 60년에 배가 난파되어 간신히 몰타에 도착했다는 사도 바울도 모습을 드러낼 것 같다. 그리고 다른 구멍에서는 영화 <뽀빠이>의 출연진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제는 잊힌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뽀빠이>는 몰타섬 서쪽에서 촬영했는데, 당시 북유럽 목수들이 섬 북부 해안가에 지은 세트장은 지금도 건재하며 테마파크로 사용되고 있다. 반신반의하는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테마파크를 방문하곤 한다.

“베이루트랑 비슷해요. 몰타의 매력을 알거나 알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죠”라고 수잔 샤프는 말한다. 우리는 음디나 바로 옆에 붙은 아타드라는 조용한 마을의 18세기 건축물 카사 보나비타 Casa Bonavita에 있다. 수잔과 그녀의 남편 크리스토퍼는 이 건물을 호텔로 개조하는 중이다. 영화 <전망 좋은 방> 느낌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화단으로 꾸민 울타리, 그리고 여름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뜰을 갖춘 곳이 될 거라고 한다. “이곳에 와서 마요르카처럼 근사하게 해변에서 휴가를 보낼 거라고 기대한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몰타인들은 관광과 거리가 먼 삶을 살죠. 다들 열심히 살아가는 곳이고, 또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해요. 조그마한 만을 홀로 즐기고 있는데 어느 순간 다른 가족 전체가 나타나 바로 옆에 식탁과 의자를 놓을 수 있죠. 어떤 의미로는 자유로운 곳이에요. 일부 법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기도 하고요.” 러그 컴퍼니 The Rug Company의 설립자이자 텍스타일 디자이너인 샤프는 몰타의 오래된 가문 출신이다. 시칠리아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그녀는 부둣가 일꾼들의 걸걸한 목소리에 둘러싸여 이곳 몰타섬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한번은 카다피 대령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을 숨어서 훔쳐보기도 했다. 샤프는 크리스토퍼와 함께 아타드의 빌라 볼로냐 Villa Bologna에 위치한 도예 공방을 매입해 복원하는 중이기도 하다. 1920년대에 지은 이 공방에서 옛 디자인을 되살려 꿀떡거리는 소리가 나는 항아리 모양 주전자와 손수 색을 입힌 파인애플 램프, 아티초크 모양의 그릇 같은 것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샤프는 과거 이드라섬과 이비자섬 사이를 잇던 시절의 수수하고 조용한 몰타를 기억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젊은 세대의 일원이다. 당시 따사로운 햇빛과 느긋한 전원생활에 끌려 몰타를 찾은 이들이 있었다. 영국의 추상화가로 유스턴 로드파를 창시한 빅터 파스모어는 몰타의 허름한 농가에 머무르며 고양이 수십 마리를 키웠고, <털 없는 원숭이>의 저자 데스몬드 모리스는 몰타에 도착한 후 곧바로 고기잡이배의 뱃머리에 새겨진 페니키아풍 눈 장식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면 <시계태엽 오렌지>의 작가이자 박식가로 알려졌으며 항상 담배를 입에 물고 지낸 앤서니 버지스는 자신의 저서가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어 압수당하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니콜라스 몬서랫이 고조섬에 살았고 마사 겔혼도 몰타에 머물렀죠”라고 샤프는 회상한다. “마사 겔혼이 글쓰기 외에 가장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것이 수영이었어요. 그녀는 몰타의 깨끗한 바다에 완전히 빠져 있었죠. 마노엘섬 근처의 집을 빌려 매일같이 글을 쓰고 수영을 했어요.” 보헤미안들이 차곡차곡 몰타에 모였고, 마치 늘어지는 더위 아래 후기 블룸스버리 그룹이 형성된 것만 같았다. 그 시절의 증인이 되어줄 인물을 섬 동쪽 휴양지 세인트 줄리안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바로 시인이자 건축가인 리처드 잉글랜드다. 팔십 줄에 접어든 그의 둥근 머리는 존 길구드가 연기한 프로스페로만큼이나 하얗다. 몰타에서 태어나 20세기 중반의 르네상스인 지오 폰티를 사사한 잉글랜드는 몰타에서 나는 재료와 몰타의 단순 명료함에 영향을 받아 추상화를 닮은 알록달록한 모더니즘 건축을 선보였다. 그가 자신의 상상 속 도시를 그린 그림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 안에서 도시는 개구리알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갔는데, 이탈로 칼비노로부터 영감을 받은 듯했고, 어쩌면 이 예측 불가한 섬나라에 질서와 정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또한 신석기 시대의 사원과 고대의 지혜, 그리고 남서쪽 해안가에 자리 잡은 미스터리한 필플라섬에 대해 얘기했다. 혹자는 필플라섬이 아틀란티스 대륙의 잔재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악마의 눈에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죄가 많은 마을이라 악마가 내던져 만들어진 섬이라고 한다.

이따금 홀로 정처 없이 몰타섬을 걷다 보면 거리 모퉁이에 서서 간원하듯 손을 든 창백한 성인 석상을 마주할 때가 있다. 때로는 몰타에 정착한 지 20년 된 친구 두슈카 말레셰비츠가 나의 동행이 되어주기도 한다. 유고슬라비아 출신 이민자인 그녀에게는 어딘가 스키아파렐리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녀는 외부인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졌으며, 젠트리피케이션을 경계하며 이 엉뚱한 섬에 애착을 보이기도 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카메라를 들어 좁고 침침한 카페 바와 카톨릭 상징물, 그리고 한데 엉킨 전선 덩어리에 들이대고 그림엽서와는 거리가 아주 먼 사진들을 찍곤 했다. 많은 곳이 이미 사라지고 없다. “20년 전만 해도 몰타는 지금보다 훨씬 비어 있었어요. 그리스의 어느 작은 섬에 갇히게 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영화 <지중해>와 비슷했죠. 미국 개척 시대의 서부 같기도 했고요. 요즘은 관광객들이 제가 발코니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 사진을 찍더라고요. 그러면 저는 가운뎃손가락을 올려주지만, 그걸 오히려 더 좋아하는 듯해요.”

탐탁지 않은 변화에 대해 얘기할 때 두슈카의 입꼬리는 일그러진다. 옛날식 문구점이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스포츠웨어 상점이 들어온다거나 발레타의 연철로 지은 빅토리아풍 시장이 에스컬레이터까지 갖춘 푸드 코트로 탈바꿈한 그런 변화들 말이다. 그런 곳들 대신 그녀를 따라 지역 마칭 밴드 소유의 회관으로 향한다. 금관악기를 든 그들이 나타나면 성인 축일조차 마르디 그라처럼 흥겨운 축제로 변한다. 회관에 들어가보려는 외부인은 잘 없는 편이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이다. 장엄함을 뽐내는 노동자 사교 클럽으로, 참치 샌드위치와 감자칩이 담긴 접시가 상에 차려지는 동안 주름깃 차림을 한 라 발레트의 조각상이 실내를 내려다본다. 라 발레트는 불굴의 구원자로서 1565년 몰타 대공성전 도중 오스만 제국의 전설적인 드라구트를 물리치고 몰타를 지켜낸 인물이다. 한편 라밧이라는 마을에 있는 크리스털 팰리스 Crystal Palace 카페는 선박 가득 형형색색의 사탕과 과자를 판매하고, 유리잔에 내어주는 차는 달콤한 연유를 첨가해 차이처럼 만들어 파스티찌와 함께 제공한다. 얇고 바삭한 파스티찌는 리코타나 으깬 콩으로 속을 채운 몰타의 빵이다. 올리버 하디처럼 펑퍼짐한 바지를 걸친 말수 적고 나이 든 남성들은 일 없이 모여 앉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지만, 딱 한 명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분홍색으로 근사하게 차려입은 우리 맞은편의 우아한 여성은 데려온 강아지의 옷과 발톱마저 같은 색으로 맞춘 모양새다.

침략자들 중 몰타에 가장 짙은 흔적을 남긴 건 성 요한 기사단이다. 1565년 오토만 대군에 용맹하게 맞서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로마 가톨릭계 기사단이다. 그들이 지은 거대한 절벽 같은 요새는 지금도 남아 있다. 당시 기사단이 사용한 그랜드 하버(발레타 항구)는 몰타의 황금기를 극적으로 연출한 거대한 볼거리 같은 곳이다. 해 질 녘이면 은은한 빛을 발한다. 항구를 오가는 데는 루쭈(나무로 만든 몰타의 전통 고기잡이배)가 최적이다. 행운을 기원하는 뜻에서 뱃머리에 새긴 오시리스의 눈은 <클레오파트라>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만큼이나 눈 주위로 짙게 화장을 한 모양이다. 항구 건너편 조그마한 땅덩이에는 스리 시티즈 Three Cities가 자리 잡고 있다. 양쪽 끝에 솟은 둥근 교회 지붕 사이로 집들이 뒤죽박죽 들어선, 다빈치의 스케치에서 볼 법한 색감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중 가장 매력적인 도시는 비토리오사다. 화분이 줄줄이 늘어선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프랑스 기사들이 묵던 낡은 여인숙과 일요 벼룩시장이 나타난다. “북쪽의 부유한 사람들은 절대 여기까지 오지 않아요.” 한때 베이커리가 있던 자리에서 디자인 상점을 운영하는 바네사가 들려준 말이다. “그들은 여전히 스리 시티즈를 빈민가로 생각하거든요.” 과도기적 시간이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집의 계단을 오른다. 13세기 본래의 모습으로 서툴게 복원한 집이다. 텅 빈 모습은 마치 집주인이 터키군 함대와 싸우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다. 다시 거리로 나오자 상의를 벗어 던진 실버백 고릴라 같은 반백 머리 남성이 자동차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친구들과 함께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이력이 있는 낡은 비행기를 몰고 피자를 먹으러 시칠리아까지 다녀오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러다 하나둘 추락하기 시작했고, 다음 차례는 내가 될 거라는 것을 예감했죠.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뒀어요”라고 슬픈 목소리로 얘기한다.

찬란한 햇살 가득한 바위투성이의 거친 섬에는 대성당에 걸린 카라바지오의 ‘참수당하는 세례자 요한’만큼이나 어두운 일면이 존재하기도 한다. 3년 전, 정치 부패를 본격적으로 조사하던 탐사 저널리스트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지아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 주된 원인이다.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진 상태다. 여기에 더해 탐욕으로 인한 과잉 개발이 문제되고 있다. 오늘날 파처빌에 가보라. 핀볼 기계처럼 요란하고 번쩍거리는 모습에 질려 곧장 뱃머리를 돌리고 말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시민 대부분의 불신을 사는 반면 몰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이들도 있다. 이 작은 섬나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외세의 손에 너무나 오랫동안 맡겨왔고, 또 1565년 대공성전과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 재만 남긴 무자비한 공습이라는 두 사건에 의해 역사가 좌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안개가 걷히고 몰타인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는 동시에 똑똑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모두가 입을 모아 발레타는 박물관 도시라고 얘기하곤 했다. 해가 떨어진 후에는 죽은 도시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이제는 내추럴 와인을 만드는 와이너리가 생겼고, 한때 싸움과 여자를 찾는 선원들로 득실거리던 스트레이트 스트리트 지역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칵테일 바들이 들어섰다. 그중 가장 흥겨운 곳은 부둣가로 내려가는 계단에 위치한 카페 소사이어티 Café Society다. 여름철 몰타 곳곳에서 열리는 페스티벌들에 대한 소식과 정보가 온라인에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한편 몰타의 문화적 명성 또한 높아지는 중이다. 큐레이터로 활동하는 알렉산드라 페이스의 조부모 소유로 지난 30년간 아무도 살지 않은 타운하우스에 문을 연 블리츠 Blitz 갤러리는 몰타 출신 작가 케인 칼리의 흰 천으로 뒤덮인 것 같은 3D 조형물 등의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2021년에는 MICAS(몰타 국제 컨템포러리 아트 스페이스) 개관이 예정되어 있다. 과거 몰타 기사단이 지은 요새에 자리 잡게 될 거대 전시 공간 MICAS는 실내 건축 디자이너이자 빅토리아&앨버트 디자인 펀드 관련자인 프란시스 설타나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덕에 실현 가능해졌다. 렌조 피아노가 재해석한 시티 게이트와 나란히 설 장대한 프로젝트다. 일대 장관을 연출하는 시티 게이트는 발레타의 방어벽을 환대와 포용의 장소로 바꿔놓았다.

최근에 방문한 몰타의 어느 오후, 갑작스러운 폭발음이 나를 놀래켰다.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 쓰는 듯했다. 뭔가 펑펑 터지는 소리가 잇따랐다. 낮에 쏘아 올린 불꽃놀이임을 알아차렸다. 연기와 함께 하늘에 불꽃이 퍼져간다. 성인 축일 행사가 있었던 것이다. 줄에 매단 조명들이 교회를 환하게 밝혔고 신문지를 찢어 만든 종잇조각은 눈발처럼 이리저리 흩날렸다. 복면을 쓴 중세풍 차림의 행렬 아래로 나이키 운동화가 비죽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시드니 베쳇의 연주처럼 흥겹게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두 다른 일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기쁨에 몸을 맡긴 듯했다. 몰타는 소음과 소리, 달콤한 공기와 화약, 그리고 종소리로 가득한 곳이다. 세상이 뭐라 하건 자기들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그런 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