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한 과학 수사 | 지큐 코리아 (GQ Korea)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한 과학 수사

2020-08-10T17:16:30+00:00 |culture|

끔찍한 사건, 진실을 파헤치는 과학자 집단, 그들을 향한 싸늘한 눈초리. 범죄 수사물의 줄거리 같지만 이건 실화다.

사진가 맥스 아길레라-헬위그는 별나다. 병원을 암실처럼 편안하게 여긴다. 카메라를 메고 병원으로 출퇴근하기도 한다.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간다. 거기에는 의대 졸업이 명시되어 있다. 그는 의사와 다름없다. “환자 모니터링 장치를 판독할 수 있고 병리학에 대해서도 좀 알아요. 의사나 환자와 전문적인 대화도 가능해요. 나와 몇 마디 나누면 다들 의심을 거두곤 해요.” 아길레라-헬위그는 의학 전문 촬영으로 잔뼈가 굵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3백 건 이상의 수술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작업의 기원은 십 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진 수업의 과제로 외과의사의 손을 찍게 된 그는 난생처음 개복수술 과정을 지켜봤다. “수술대 앞에 선 의사가 한 걸음 비켜서더니 내게 ‘여기 한번 찍어봐’라고 하더군요. 눈앞에 척추 같은 게 드러나 보였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척추가 맞더라고요. 세상에서 가장 내밀한 공간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요.” 엄청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경험을 계기로 그는 의료계로 진로를 정했다.

하지만 아길레라-헬위그의 손에는 메스 대신 카메라가 들려 있다. 그는 의학·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해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흥미를 유발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래야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을 이해하게 돼 질문을 던질 수 있어요. 의학·과학계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도록 이끄는 거죠.” 늘 호의적인 반응만 얻는 것은 아니다. 1997년에 출간된 사진집 <성스러운 심장: 외과 수술을 통해 본 인체 지도>를 펼친 사람들은 곤욕스러워했다. “사실 그대로의 사진을 보고 구역질이 난다는 말도 들었어요. 상상도 못한 반응이었죠.” 물론 그도 나름의 직업윤리를 갖고 있다. 예컨대 의뢰를 받아 진행한 병원 화상센터의 사진들은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수술 장면을 찍기 시작한 뒤로 스스로에게 이 장면을 왜 찍는지, 내게 그럴 권리와 이유가 있는지 늘 질문을 해요. 그리고 합당한 답을 얻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의학 사진으로 쌓은 명성은 그를 법의학, 법과학의 비밀스러운 세계로 이끌기도 했다. 아길레라-헬위그의 최근작은 과학수사 연구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최첨단 실험과 수사 과정을 흡사 TV 과학 범죄 수사물의 클로즈업 장면처럼 가까이서 포착했다. 사진에는 구구절절 드러나지 않지만 이 시리즈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그가 카메라를 들고 법과학 연구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할 무렵 법과학 분야는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2009년 미국 정부가 과학수사의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보고서를 발표하자 싸늘한 시선과 요란한 말들이 쏟아졌다. 논란의 중심에 놓인 과학수사는 존재의 필요성을 증명해야만 했다. 운이 좋게도 아레라-헬위그는 그 변곡점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버지니아주의 콴티코로 향했다. 그곳은 FBI의 고장이기도 하다. FBI 요원을 양성하는 아카데미와 FBI 산하의 과학수사 기관들 중에서 본부 격인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FBI 과학수사 연구소는 그의 출입을 특별히 승인했다. 전문가들과의 접촉도 허용했다. “외부의 복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했어요. 끔찍한 범죄들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사건 해결을 위해 그들의 능력이 필요했으니까요”. 지문 분석과 같은 전통적인 수사 기법부터 범죄 현장을 정확하게 재현해내는 첨단 레이저 기술까지, 아길레라-헬위그는 현존하는 과학수사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우직하게 셔터를 눌렀다. 현대 법과학의 특별한 증거가 되어주는 이 사진들은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 그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FBI 과학수사 연구소의 분석관이 두 개의 탄피를 면밀히 조사하고 있다. 이 중 하나는 범죄 현장에서 수거한 탄피이며,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압류한 총을 발사하여 얻은 것이다. 탄피들에 난 흔적들을 분석해 동일한 총기에서 발사됐는지 알아낼 수 있다. “이러한 비교, 대조 작업은 상당 부분 분석관의 눈에 의지해요.” 아길레라-헬위기의 설명이다. 몇몇 총기 전문가들은 탄피를 육안으로 정확하게 감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번번이 토를 달기도 한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분석관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를 찾아내 그 입을 다물게 만든다.

과학수사 연구소에는 종종 불이 난다. 분석관들이 일부러 불을 내는데 불장난 수준이 아니다. 열기가 느껴지는 사진은 침실 화재를 재현한 대조 실험을 찍은 것이다. 천장에 설치된 집진기가 연기를 채취한다. 상대를 정확히 알아야 상대할 수 있다. “화기류·폭발물 단속국에서 만든 커다란 창고가 있어요. 실내에서 불을 낼 수 있는 공간인데, 다양한 환경 속에서 인화 물질들을 태워 화재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요.” 아길레라-헬위그가 사진을 찍는 동안 화재 실험은 개방된 환경과 폐쇄된 환경에서 두 번에 걸쳐 실시됐다. 창문의 개폐 여부에 따른 화재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분석관이 권총의 배럴에 남아 있는 지문을 관찰하고 있다. 작업대에는 미세한 잔여물을 확인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블랙 라이트를 비롯해 갖가지 광원기기가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아길레라-헬위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사진은 촬영을 위해 연출한 장면이다.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 중인 사건의 증거를 찍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품으로 쓰인 권총은 종결된 사건의 증거물이다. 지금은 끔찍한 범죄 도구의 때를 벗었다. 총기 실험이나 새롭게 입수한 증거의 비교용으로 쓰인다. ‘총기 도서관’이라 불리는 곳에는 이처럼 개과천선한 총들이 보관된다.

스티븐 D. 앳킨슨은 FBI 과학수사 연구소의 공구흔 전문가다. 과학수사에서 심심찮게 거론되는 ‘공구흔’은 공구와 사물이 접촉하면서 생기는 흔적을 일컫는다. 앳킨슨은 화기류에도 일가견이 있다. 사진에서 그가 증거물로 압류된 고성능 소총을 시험 발사하고 있다. 실험의 목적은 총기 사건이 일어난 상황을 재현하는 것이다. 표적은 피해자의 옷과 같은 옷감으로 덮여 있고 앳킨슨은 거리를 달리하며 총을 쏜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만 최대한 흡사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후 분석관들이 탄환 조각의 흩어진 모양을 토대로 범죄 현장에서 발견한 흔적을 조사한다.

예전에는 범죄 현장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일일이 사진과 영상을 찍어야 했다. 흉기와 시신 사이의 거리를 측정하는 경우에는 줄자를 꺼내 그 사이를 오가며 쟀다. 신입 수사관들이 속을 게워냈을 게 뻔하다. 지금 이 이야기를 꺼내면 옛날 사람 취급을 받기 쉽다. 요즘은 도구 대신 기술을 쓴다. 3D 스캐닝과 복원 기술이 현장을 고스란히 재현해 아무 때나 들여다볼 수 있다. 길이와 거리는 레이저로 정확하게 측정해 증거가 오염될 염려도 없다. 사진 속 장면은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 과학수사학과의 건물 보일러실에 차려진 모의 범죄 현장이다.

FBI 법과학연구부장을 지낸 브루스 부도율은 유전자 프로파일링의 대가로 통한다. 과학수사의 대표 기법인 유전자 지문 분석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이다. 영국의 유전학자 알렉 제프리스가 유전자 염기서열을 개인 식별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밝혀내자 FBI는 신속하게 움직했다. 영국으로 파견된 부도율은 제프리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이때 얻은 기술과 지식을 바탕으로 미국식 유전자 감식 프로토콜을 확립했다. 이후에도 부도율은 관련 연구를 파내려가며 보다 진화된 유전자 분석 기법인 핵 검사 기술의 기틀을 다졌다.

분석관이 채취한 지문 사진을 확대해 지문을 이루는 다양한 곡선, 즉 융선의 특징을 판별하고 있다. 법과학 분야에서 지문 감식법은 1세기 이상의 역사를 쌓으며 범죄사건의 결정적 증거를 밝혀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위상이 흐릿해지고 있다. 제각각의 형태를 갖는다고 알려진 지문은 고유하지 않을 수 있고, 지문의 모양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만만찮게 제기됐다. 하필이면 부정확한 감정 결과들이 문제가 되면서 논란을 키웠다. 진실이라 믿었던 것을 진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게 됐다. 과학수사 연구소의 마음이 복잡하다.

아길레라-헬위그와 그의 카메라는 캐나다 토론토의 국립 과학수사 연구센터에도 출입했다. 이곳의 치의학자가 인간의 피부와 가장 유사한 새끼 돼지의 가죽을 이용해 교흔, 쉽게 말해 물린 자국을 재현하고 있다. 두 손과 힘싸움을 하고 있는 서슬 퍼런 도구는 치악력 측정기다. 사건에서 발생한 교흔을 감정할 때 오차가 발생할 확률을 확인하는 중이다. 이 실험에는 치과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지닌 서른 명의 민간 전문가가 참여했다. 그들에게는 물린 자국을 단서로 용의자의 치아를 찾아내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채점 결과는 감식의 오차 범위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총격 사건이 발생하면 과학수사관은 레이저를 쏴 총알의 궤적을 추적한다. 아길레라-헬위그는 FBI 과학수사 연구소의 창고에 재현한 범죄 현장에서 이 장면을 찍었다.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는 촬영을 구상하면서 여러 가지 레퍼런스를 참고했다. 과학수사관들이 촬영한 현장 사진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레이저가 사방으로 교차하는 영화의 총격신도 있었다. 실제로 레이저가 선명하게 빗발치는 사진을 얻기 위해 연기와 오일이 쓰였다. 아길레라-헬위그는 당시의 촬영 현장을 이렇게 회상했다. “환상적이었어요. 거대한 포스트모던 예술 작품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