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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급 배우들의 예능으로 몰리는 까닭

2020.08.24GQ

정상급 배우들이 예능으로 몰리고 있다. 속셈은 뻔하고 전에 없던 현상도 아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불안한 눈빛,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는 거친 숨소리, 어두운 밤길 터벅터벅 걷는 남자의 슬픈 뒷모습….

불안한 눈빛,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는 거친 숨소리, 어두운 밤길 터벅터벅 걷는 남자의 슬픈 뒷모습….
시나리오 지문이 아니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공개된 유아인의 일상이다. 유아인의 <나 혼자 산다> 출연은 충무로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방송이 송출되는 시각, SNS 친구를 맺고 있는 업계 관계자들 피드에서도 유아인이 심심치 않게 발견됐다. 거기에선 ‘유아인이 예능에?’란 방백이 들리는 듯했다. 신비주의 행보를 이어온 유아인으로 하여금 사생활까지 까발리게 한 힘. 영화 홍보다.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산다>와 유아인의 연결고리는, 영화 <#살아있다>다.

영화 개봉을 앞둔 배우의 예능 출연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방송사는 시청자를 유인할 게스트가 필요하다. 영화는 인지도를 높여줄 홍보의 장이 절실하다. 예능과 영화의 은밀한 공생 관계가 지속돼온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계에서도 컨트롤하기 힘든 존재가 있다. 소위 말하는 ‘톱 배우’들이다. 예능 출연을 꺼리는 희소성 높은 톱 배우들 말이다. 유아인의 <나 혼자 산다> 여정이 동네방네 화제가 된 건 그래서다. 마침 유아인 못지않게 신비주의 이미지가 강했던 강동원도 유튜브를 순회하며 <반도>를 알렸다. MBC <전지적 참견 시점> 화면에선 황정민과 이정재가 투 샷으로 잡히는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들의 예능 출연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홍보의 일환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보는 이들은 흥미로워했다. 누가 그랬더라. 예능에 새로운 건 없다고. 단지 새로운 게스트가 있을 뿐이라고.

정상급 배우들이 예능으로 몰리는 배경에는 코로나 19가 있다. 영화 홍보는 쇼케이스, 레드 카펫 행사, 관객과의 대화(GV), 인터뷰, 무대 인사 등으로 진행된다. 이 흐름이 코로나 19로 대폭 끊겼다. 홍보를 위한 플랫폼 선택지가 덩달아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 대비 큰 홍보 효과를 볼 수 있는 것? TV다. 코로나 19로 영화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 관객의 관심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는 절박함,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무언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등이 정상급 배우들의 예능행을 부추겼다.

스타의 예능 출연 효과는 다방면에서 나타난다. 그들이 TV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터넷 매체들이 글로 실시간 중계해주고, 장면 장면이 클립 영상으로 쪼개져 인터넷 바다에서 자가 증식하고, 그것이 포털 메인에 걸리고, 네티즌이 이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배우의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다. 배우 이름과 연계돼서 영화제목까지 검색어 순위에 오르면, 영화사 대표는 그날 밥 안 먹고도 배가 부르다. 예능 출연 하나로 실시간 검색어, 연예 기사, 클립 영상 등 파생되는 게 워낙 많다 보니, 배우만 출연을 마음먹어 주면 이보다 먹히는 홍보가 없긴 하다. ‘유아인 숨소리’까지 실시간 검색어에 띄울 수 있는 건 예능의 힘이니까.

스타들의 프로그램 선택은 지금 대한민국 예능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준다. 예능 출연 이유가 홍보인 만큼, 이왕이면 확실히 화제몰이를 할 수 있는 핫하고 힙한 프로그램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사생활 노출이 없던 유아인이 그 많은 예능 중 사생활을 보여주는 <나 혼자 산다> 출연을 감행한 데는 ‘관찰 예능’이 대세인 시대적 흐름이 있다.(물론 여기엔 아파트에 고립된다는 <#살아있다> 속 설정이 프로그램 콘셉트와 절묘하게 어울린다는 전략도 있었을 것이다.) 토크쇼 예능이 인기였던 시절 스타들이 MBC <황금어장-무릎팍도사>, SBS <힐링캠프> 등에 나가 사연을 털고, 먹방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률을 견인할 때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가 냉장고를 털었듯이, 지금은 ‘관찰 예능’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에 <나 혼자 산다>, tvN <온 앤 오프> 등에 출연해 사생활을 파는 것이다.

획일적인 홍보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플랫폼을 다각화하려는 시도도 적잖이 있었다. 공효진이 홈쇼핑에서 <미씽: 사라진 여자> 예매권을 판매한 사례는 ‘쇼퍼테인먼트(쇼핑+엔터테인먼트)’ 트렌드와 맞물린 전략이었다. 남들과 차별화된 홍보 플랫폼을 찾는 과정에서 한동안 사랑을 독차지한 건,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던 생방송 코너 ‘목요 문화 초대석’이었다. 단순한 일회성 영화 홍보를 넘어 배우의 철학과 인생관을 들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 지지도가 높았고, 입소문을 타면서 톱스타들이 자처해서 출연하기도 했다. 1시간 방송을 위해 하루 종일 촬영해야 하는 예능에 비하면 시간상으로도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화제성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일일 기상 캐스터로 깜짝 분하기도 했던 강동원의 <뉴스룸> 출연은 영화 <검은 사제들>의 호감을 끌어올리는 데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뉴스룸> 인기를 타고 SBS <나이트라인>, YTN <뉴스 나이트> 등 뉴스 보도물 출연이 영화 홍보의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최근 예능을 위협하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영화 홍보 플랫폼은 유튜브다. 실제로 유아인은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를 통해 펭수를 만났고, 황정민-이정재는 박준형이 진행하는 <와썹맨>에 출연해 ‘브라더’ 케미를 선보였다. 강동원은 <문명특급>, <영국 남자> 등 아예 유튜브에만 올인한 경우다. 대중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유튜브의 장점. TV에 비해 포맷 변경이 자유롭기에 출연 배우/영화 맞춤으로 콘텐츠를 꾸밀 수 있어 홍보에도 용이하다는 평이다. 젊은 층을 공략하기에 이보다 더한 게 없기도 하다.

인기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무조건 출연 1순위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 콘셉트와 배우 캐릭터, 즉 궁합이 중요하다. <#살아있다>가 그러한 경우인데, 콘셉트와 관련해 홍보의 한 획을 그은 또 하나의 영화는 <데드풀2>다. <데드풀2>로 내한한 라이언 레이놀즈는 복면을 쓰는 콘셉트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MBC <복면가왕>에 출연해 유니콘 가면을 쓰고 노래를 열창했으니, (데드풀 버전으로 표현하자면) ‘약 제대로 빤 홍보’였다. 반대 지점에서 콘셉트의 중요성을 실감케 했던 영화는 <아수라>다. 주연 배우들의 <무한도전> 출연으로 장안의 화제를 낳았다. 그로 인해 인지도를 확실하게 잡았다. 문제는 그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아수라>에 대한 ‘톤 앤 매너’를 착각하게 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점이다. 영화 <싸움> 홍보를 위해 KBS <체험 삶의 현장>과 <개그콘서트>에 도전한 김태희의 이색 행보는 배우 이미지와 동떨어진, 마케팅 전략의 잘못된 예였다. 돌아온 건 대중의 반감이었다.

<아수라>와 <싸움>이 보여주듯, 스타의 예능 출연이 영화 흥행으로 이어지는 건 결코 아니다. <#살아있다> 역시 유아인이 낳은 여러 이슈에 비하면 관객 수는 아쉬웠다. <무릎팍도사>에 나와 특유의 애교로 전 국민의 호감을 샀던 한예슬의 <용의주도 미스신>이 흥행 앞에선 무릎 꿇은 사례는 마케터들 사이에서 전설로 남아 있다. 예능 반응에 고무돼 흥행을 기대했던 영화사는 낙담했고, 마케터들은 절망했고, 방송국은 머쓱해했다. 이슈는 이슈일 뿐, 흥행은 또 다른 세계란 이야기다. 물론 유아인이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아쉬운 성적표를 안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엄밀히 말해 예능 출연을 통한 영화 홍보는, ‘작품’이 아닌 ‘배우’의 매력을 파는 일. 예능이 내용물까지 책임져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불확실한 흥행의 세계에서, 예능에서 발견된 배우의 매력이 또 어떤 효과를 낳을지 알 수 없기에, 영화와 방송의 거래는 오늘도 지속된다.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김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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