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신으로 업그레이드된 KBL의 변수 | 지큐 코리아 (GQ Korea)

장신으로 업그레이드된 KBL의 변수

2020-08-29T12:06:02+00:00 |culture|

KBL 외국인 선수의 평균 신장이 커졌다. 경기력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무턱대고 기대감을 갖기 전에 몇 가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농구는 키 3~4센티미터 차이로 연봉 단위가 달라지는 종목이다. 그런 면에서 6센티미터가 주는 차이는 상상 이상이다. 2020~2021시즌 남자프로농구(KBL)에서 뛸 외국인 선수의 평균 신장은 205센티미터다. 지난 시즌보다 6센티미터나 커졌다. 귀화 선수 라건아를 제외한 10개 구단 외국인 선수 19명 중 17명이 2미터 이상이다. 최장신은 213센티미터인 제프 위디(오리온)이고, 최단신은 196.6센티미터인 리온 윌리엄스(LG)다. 2미터가 넘는 외국인 선수는 뛸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규정으로 세계적 망신을 당했던 2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키만 커진 게 아니라 경력의 볼륨도 달라졌다. 얼 클락(KGC)은 NBA에서 4시즌을 뛰면서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선수다. 그 외에도 NBA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가 7명이다. 콘솔 게임에서 컨트롤했을지도 모르는 선수를 눈앞에서 보게 됐다. 다른 선수들도 유럽에서 비싼 몸값을 자랑했던 이들이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변화다. 한국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들은 처음 코로나19가 확산될 때만 해도 불안하다며 탈출하듯 한국을 떠났다.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여러모로 안정적인 한국행을 권유한 에이전트가 많다. 유럽은 명문 리그라 해도 재정이 탄탄하지 못하다 보니 임금 체불 등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 한국은 프로팀을 운영하는 절대 다수 구단이 대기업이라 체불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생활이 편리하다.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입국에 대비해 마련한 자체 자가 격리 시설 역시 세심한 정성이 묻어난다.

키가 6센티미터나 커진 만큼 팬들의 함성도 함께 커질 것인가? 이 부분은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실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숀 롱(현대모비스)은 208센티미터의 장신이지만 내·외곽이 두루 가능한 재주꾼이다. NBA 출신 제프 위디는 블록슛이 강점이다. 국내 선수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영리함도 있다. KT가 영입한 마커스 데릭슨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출신으로 공격력이 좋은 선수다. 코비 브라이언트의 동료였던 얼 클락(KGC),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출신 헨리 심스(전자랜드)도 장점이 명확한 선수들이다. 이 장점이 KBL로 잘 연결된다면? 감독은 물론이고 팬들도 정말 즐거운 한 시즌을 보낼 것이다. 이번에 온 외국인 선수들은 최근 10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이름값이 높다. 코로나19가 본격화될 무렵, 몇몇 구단 스카우트들은 내게 “운이 좋다면 진짜 좋은 선수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지금은 그 상상이 현실이 된 느낌이다.

2년 전, 신장 제한 정책은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지만 경기 자체에 불만이 많지 않았다. 득점형 가드들이 대거 가세한 덕분에 수준 높은 기술을 많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장신의 기술자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등장하는 외국인 선수 대부분은 달라진 NBA 트렌드를 보며 쫓아왔다. 키가 크지만 외곽 플레이도 즐기고, 볼 컨트롤하는 것도 선호할 것이다. 이들의 기술은 국내 선수들에게도 영감을 주고 팬들에게도 보는 맛을 더한다. 또 명문대와 명문 리그 출신 선수들의 몸 관리, 체력 훈련 방식도 선수들에게 영향을 준다. 과거 3시즌을 뛰며 화려한 개인기로 KBL 감독들을 ‘공부’하게 만들었던 안드레 에밋의 훈련 방식도 어린 선수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예전 같았다면 감독들은 외국인 선수들에게서 빅맨의 역할을 기대했을 것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90년대 농구에서 벗어나지 못해 ‘큰 선수는 센터’ 공식을 선호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감독들은 달라진 트렌드를 인지하고 있다. 더 많은 공격권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어떤 농구를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해외로 스카우트를 다니면서 달라진 성향을 파악했다. 9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 해줄 정통 센터는 이제 없으며, 만일 데려온다 하더라도 달라진 트렌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말이다. A구단 스카우트는 “나이 많은 감독들의 경우, 키 큰 선수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과 완전히 상반되는 선수가 왔을 때 이를 어떻게 타협할지 우려스럽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런 불협화음은 적을 것”이라 전망했다. 높은 네임밸류, 큰 키, 장점도 다양한 선수들의 가세가 KBL 농구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이를 ‘상상’에만 그치게 만들 만한 걱정거리도 있다. 우선 이번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는 1백 퍼센트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세계여행이 자유로웠던 1년 전만 해도 감독들은 선수를 직접 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이탈리아, 스페인은 기본이고, 일반인들은 평생 갈까 말까 한, 아니 살면서 들어볼 일도 없는 푸에르토리코의 작은 마을 체육관까지 방문한 감독도 있다. 인성은 어떤지, 벤치에 있을 때는 어떤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꼼꼼히 체크하고 데려와도 실패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계약서에 사인하고 막상 코트에 세워놓고 보면 감독이 생각했던 장점과 한국 농구 스타일이 맞지 않아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출전 시간이나 비중도 변수다. 지난 시즌부터 KBL은 외국인 선수 2인 보유 1인 출전 제도를 도입했다. 1~4쿼터에 걸쳐 1명씩만 나선다. 이에 따라 아예 1명이 못마땅할 때는 마지못해 특정 선수 1명에게만 의존하는 감독도 있었다. 이럴 경우 불협화음이 생긴다. 이번 시즌에 오는 선수들은 대부분 이름값이 높다. 유럽이나 빅 리그로 점프하려면 더 좋은 기록을 남겨야 한다. 만일 출전 시간에 제한이 걸리거나 비중이 줄어들 경우, 선수가 이를 납득하고 팀에 헌신할지가 중요하다. 자신보다 기량이 아래인 국내 선수들과 기꺼이 공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수와 직접 마주 앉아 대면 면접을 보는 감독도 있다. 납득할 만한 마인드의 선수인지 확신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검증 과정이 생략됐다. 즉, 시행착오를 겪는 구단이 생길 것이란 의미다.

그런 면에서 SK와 LG는 이번 스카우트 시장의 승자로도 볼 수 있다. SK는 지난 시즌 외국인 선수 랭킹 1, 2위를 다툰 자밀 워니와 닉 미네라스를 영입했다. 경력이나 가치 역시 신입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지 않고 한국의 농구 문화에도 적응을 마친 상태다. 둘은 지난 시즌 연봉 1, 2위였으며 평균 득점은 나란히 2, 3위였다. 조성원 감독을 새로이 영입한 LG도 지난 시즌 전천후 활약을 펼친 캐디 라렌과 베테랑 리온 윌리엄스로 라인업을 꾸렸다. 윌리엄스는 LG가 자신의 8번째 KBL 구단이다. KBL에 대해서는 웬만한 국내 선수들보다도 훤하다고 볼 수 있다. 라건아(KCC)와 치나누 오누아쿠(DB) 등 검증된 경력자들을 보유한 구단 역시 파트너의 KBL 적응을 도울 수 있다.

새 외국인 선수 영입은 변수가 많다. 감독이 생각했던 색깔이나 기량과 완전히 다르다면? 교체밖에 답이 없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제는 누가 오든 2주간 자가 격리는 불가피하다. 만약 선수를 교체할 경우, 계약 1주와 자가 격리 2주를 합쳐 3주 이상의 공백이 생긴다. KCC의 타일러 데이비스는 대학 시절 유망주였고, KGC의 얼 클락은 NBA에서 4년을 뛴 베테랑이지만 최근 경력이 그리 돋보이지 않았다. 부상 위험도 내포되어 있다. 코로나19로 개인 운동도 제한적이었기에 예전처럼 당장 몸이 만들어진 선수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서류상으로는 ‘업그레이드’가 분명한 KBL이지만 그 기대감을 현실에서 맛볼 수 있을지는 시즌이 개막하는 오는 10월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글 / 손대범(KBS N 스포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