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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흐름과 변화를 말하는 책 50

2020.09.11GQ

지속 가능성, 인종과 성 차별 반대, 건강한 정신.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대해 첨예하게 말하는 50권의 기념비적 책.

김지선 <우아한 가난의 시대> 저자

<우리에겐 쉼표가 필요하다> 마이클 해리스 | 현암사 휴대 전화로는 끊임없이 인스타그램 알람이 밀려 들어오고, PC 화면에는 메신저 창이 서너 개쯤 띄워져 있으며, 머릿속이 천 갈래로 갈라져 있는 듯한 상황을 우리는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해리스는 이런 상태를 “여백의 종말”이라 칭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엔 존재하던 몽상의 가능성이 사라진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시간에 대하여.

<나는 당당한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했다> 린디 웨스트 | 세종서적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인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강인함이 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 린디 웨스트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들추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만들어낸 문화와 사회로 확장 된다. 일상 곳곳에 스며 있는 여성 혐오와 싸워온 그녀의 무기는 특유의 유머다. 재미있는 여자는 힘이 세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 위즈덤하우스 작년 겨울, 트위터에서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부케를 들고 드레스를 입은 두 명의 신부. 아직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열린 ‘보통의 결혼식’이다. 이들의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명랑하고 똑 부러지는 어조로 “레즈비언이지만 잘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반갑다. ‘커밍아웃의 기술’과 같은 매우 실용적인 팁도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 기회라니?> 더글러스 애덤스 | 홍시 솔직히 고백하자면,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 이야기는 지루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와 동물학자 마크 카워다인의 탐사기를 읽고 이 생각을 급히 철회했다. 매우 재미있으면서도 심각한 위기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야생 동물 이야기를 정신없이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 어크로스 고독은 낭만적으로 포장되기 쉬운 개념이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받아들여야 하는 고독감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잔인할 만큼 치열한 방식으로 고독을 탐구한 예술가들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 책은 혼자가 된다는 일이 지닌 의미를 복원한다. 내밀하고도 선명한 언어를 구사하는 올리비아 랭은 외로운 도시에서 깨어 있고 열려 있는 삶의 가능성을 찾는다.

김슬기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

<노 임팩트 맨> 콜린 베번 | 북하우스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라는 부제만 보고 숭고하고 장엄한 친환경 인간의 수기를 만날 줄 알았다. 정작 만난 건 어린 딸에게 종이기저귀를 채우며 일회용품의 도시에서 살아남는 포복절도할 생존기. 자전거를 타고 장바구니를 드는 건 이해할 만한 실천이었지만 하나만은 끝까지 궁금했다. 화장지 없이 큰일은 어떻게 치렀을까.

<앤 드루얀 코스모스> 앤 드루얀 |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로부터 40년이 흘렀다. 여전히 과학은 이 창백한 푸른 점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을지 분투 중이다. 앤 드루얀의 속편에서 가장 절절히 느껴지는 건 기후 변화와 핵 재앙으로부터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고민. 지구의 모든 사람이 각성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며, 과학은 사랑처럼 그런 초월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다.

<멀고도 가까운> 리베카 솔닛 | 반비 나조차도 숨 쉬듯 해온 ‘맨스플레인’을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준 리베카 솔닛의 책 중에서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읽기와 쓰기와 고독과 연대에 관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에세이.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의 삶과 자신의 삶, 눈의 여왕과 메리 셸리, 남편과 아이의 사체를 뜯어먹으며 생존한 에스키모 여인의 삶을 통해 여성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됐다.

<바르도의 링컨> 조지 손더스 | 문학동네 조지 손더스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떠도는 ‘바르도’에 장티푸스로 열한 살에 죽은 링컨 대통령의 아들 윌리 링컨을 초대한다. 안타깝게 죽은 이들을 비추는 이 애도의 문학은 결국 흑인 노예들과 여성들과 소년들의 목소리를 21세기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증언만이 가득한 이것이 소설일까? 놀랍게도 누군가를 만나고 체험하게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다.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 어크로스 도시의 삶은 외롭다. 특히 사랑이 떠난 뒤라면. 올리비아 랭은 지독한 외로움에 지쳐 외로운 예술가들에게 의지했다. 뉴욕에서 홀로 지냈던 앤디 워홀, 에드워드 호퍼, 클라우스 노미 같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도시에서의 고독한 삶, 동시에 예술을 통해 구원을 얻은 삶에 관해 들려준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박혜진 출판 편집자

<기후변화의 심리학> 조지 마셜 | 갈마바람 모두가 기후변화를 중요한 문제라 생각하지만 누구도 기후변화를 걱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25년 동안 현장에서 환경 분야 활동가로 일해온 저자가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의 태도를 인지,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는 이 책은 과학적으로 반론하는 대신 심리적으로 탐색한다. 우회하는 것 같지만 우리 내면의 인지 편향과 왜곡을 인식함으로써 기후변화를 직시하게 만드는 정공법이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 크리스천 밀러, 켄 암스트롱 | 반비 강간 신고가 허위였다고 ‘자백’한 이후 무고죄로 기소된 소녀와 연쇄 강간범을 추적하는 두 여성 형사의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르포르타주는 성범죄자의 피해 증언이 얼마나 불공평한 토양 위에서 이루어지는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방조한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인 동시에 ‘믿지 않는’ 강간 이야기다.

<공통 언어를 향한 꿈 > 에이드리언 리치 | 민음사 미국의 20세기를 관통하는 시인이자 비평가였고 페미니즘 사상가였던 에이드리언 리치의 대표 시집이다. 수록된 시들은 편편이 여성들의 흩어진 목소리에서 공통 언어를 찾아내 연대의 구심점으로 삼는다. 혐오와 폭력으로 얼룩지지 않은 언어 안에서 여성의 영혼은 자유 그 자체다. 오염되지 않은 최초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선 독자들에게도 자유 그 자체를 선사한다.

<검은색> 알랭 바디우 | 민음사 “까마귀나 고양이의 검은색을 주술로 바꾸는 것은 바로 인간이며, 오로지 인간뿐이다. 검은색에 대한 소송을 시작하는 것은 인간이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검은색을 떠올리며 이어간 사유의 흔적을 묶었다. 인간에게는 색깔이 없지만 어떤 이는 흑인으로, 어떤 이는 백인으로 불린다. ‘검은색’의 의미를 따라가는 과정은 인간이 만든 차별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슬플 때> 마이클 로젠 글, 퀜틴 블레이크 그림 | 비룡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느끼는 슬픔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는 슬픔을 이겨보기 위해 샤워 중에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숟가락으로 탁자를 탕탕 내리치기도 한다. 소리를 지르거나 탁자를 내리친다고 슬픔이 치유될 리 없다. 하지만 내가 가장 슬플 때 타인의 슬픔을 숨죽여 관찰한 시간은 힘이 된다. 어쩌면 그 시간들만이 유일하게 힘이 되어준다.

김복희 시인

<쇼리> 옥타비아 버틀러 | 프시케의숲 SF 작가들의 작가이자 흑인 여성 작가로서 인종과 젠더 문제에 더해, 이야기할 수 있는 모든 나쁜 것, 모든 좋은 것을 동시에 다루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마지막 소설이다. 주인공은 흑인 뱀파이어 소녀 ‘쇼리’다. 인종 문제, 젠더 문제, 그토록 굳건한 정상가족주의, 에로티시즘을 모두 다루는데 어느 하나 소홀한 구석이 없다.

<눈 속의 에튀드> 다와다 요코 | 현대문학 독일 베를린에 살며 독일어와 일본어 두 가지 언어로 소설을 쓰는 다와다 요코의 장편소설이다. 독일 베를린 동물원의 유명한 아기 북극곰 크누트의 실제 이야기가 씨앗이 되었다. 북극곰이 주인공이라지만, 북극곰만의 이야기도 아니고 이민자들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따라 읽다 보면 인간과 동물과 나라 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생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 오늘 자기 자신에게 성실한 여자, 무엇이든 스스로 생각하고 알려고 하는 여자는 괴물인가? 뮤즈인가? 소위 사랑받을 만한 남다른 여자인가? ‘니나’에 대해, 서정적이긴 한데, 조금 광기가 느껴지는 ‘슈타인’의 일기가 군데군데 뭉텅이로 등장한다. 여자를 사랑하기 전에, 대부분의 이들이 참고 도서로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휘파람 부는 사람> 메리 올리버 | 마음산책 환경을 왜 보호해야 하죠? 여러 가지 대답이 있겠지만, 시인 메리 올리버는 그것이 자신에게 글을 쓰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 같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풍부한 것들을 우리 스스로 버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자연은 상징도 자원도 아니며, 인간이 만든 그 모든 것보다 언제나 놀랍고 경이롭다.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김현 | 봄날의책 09시에 출근하고 18시에 퇴근하는 시인 김현은 아주 성실하다. 18세기 스타일의 낭만적인 시인은 아닌 것 같고, 19세기 스타일의 저주받은 시인도 아닌 것 같다. 현대의 시인 김현은 늘 무언가 쓰고 있고 늘 무언가 활동하고 있고 독자를 만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다. 주변을 세세히, 자신의 일상을 단단히 여미는 김현의 에세이를 읽노라면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진다.

김기창 소설가

<우리가 사랑할 때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에스터 페렐 | 웅진지식하우스 불륜은 엄청 나쁜 짓 같지만 그만큼 나쁜 짓은 아니고, 좋기만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비난도 쾌락도 과대포장된 측면이 크다. 우발적 교통사고 같은 불륜 이후,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은 윤리적 비난이 아니라 불륜으로 인해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좋은 안내서이다.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 매기 오파렐 | 문학과지성사 삶은 기후에 비유하자면 ‘이상기후’에 가깝다. 기대와 어긋나는 예측 불가능성이 삶의 근간을 이룬다. 신문을 사러 나간 아버지가 실종될 수 있고, 예기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푹 빠질 수도 있으며, 난독증을 가족에게 평생 숨기고 살아야 하기도 한다. 1976년 영국의 폭서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그런 삶의 불가해한 측면을 끌어안는 장면을 후끈하게 보여준다.

<싱글맨>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 | 창비 공터가 원래 빈 곳이라면, 폐허는 원래 있던 것이 사라져버린 곳이다. 연인이 떠나간 집은 폐허나 다름없다. 소설은 ‘폐허’에서 살고 있는 어느 싱글맨의 하루 일과와 내면의 흐름을 감성적으로 묘사한다. 소설 주인공이 상실한 대상은 동성 연인이었는데, 소설이 발표된 1964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것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소설만큼 서글프다. <종의 기원> 찰스 로버트 다윈 | 사이언스북스 책에 따르면 지금까지 살아남은 종들은 현재의 기준으로 진화의 최전선에 위치하고 있다. 모두 ‘적자’라는 의미다. 기나긴 진화의 과정에 담긴 장엄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각 종간, 혹은 동일 종간 우열을 논하는 것이 우매하고 비과학적인 일임을 증명하는 혁명적 사고의 첫 번째 실재화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책은 비둘기 이야기로 시작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새잎 원자력발전은 친환경성, 낮은 발전 단가를 지닌 경제성, 타 발전소에 비해 낮은 사고율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위험 Risk은 사고 확률 Likelihood × 피해 Consequence로 계산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점을 이 책은 아련한 통곡으로 증명한다. 원자력 사고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체르노빌’은 끝이자 벽이다.

강영희 보안책방 운영자

<공통 언어를 향한 꿈> 에이드리언 리치 | 민음사 칼 드레이어의 1928년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위압적인 남성들만의 언어에 둘러싸여 내적, 외적 투쟁을 벌이던 팔코니티의 투명한 얼굴을 기억한다면 이 시인의 꿈에 조금 더 가까워진 건지도 모르겠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들은 눈물과 침묵을 통해 생존한 여성들의 얼굴을 호명하고, 여성 존재의 공통된 윤곽을 더듬어 서로를 하나로 연결시킬 온전한 언어를 꿈꾼다.

<망명과 자긍심 :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일라이 클레어 | 현실문화“분류 정리를 한다는 것은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라던 로버트 단턴의 글을 기억한다. 사회가 분류하고 규정한 ‘정상’의 범주에 넣을 수 없을 때, 이에 대한 두려움은 대개 혐오나 배제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몸이라는 게 얼마나 섬세하고 모호한 경계들로 이루어졌는지. 그런데 여기 ‘훌륭히’ 분류된 범주들 사이를 미끄러지는 “불구자, 퀴어, 프릭, 레드넥”이 우리에게 던지는 새로운 통찰이 있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김병운 | 민음사 퀴어 서사를 다루는 방식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가 존재할 테지만, 내게 김병운의 소설은 소수자들이 선 자리의 구조를 절실하게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우리의 밀려난 자리를 ‘나중’이 아닌 ‘지금’으로 돌려놓기 위한 이야기. 지금 이 사랑을 유예하지 않기 위해 후회로 무너진 자리에 다시 짓는 이야기.

<북극을 꿈꾸다> 배리 로페즈 | 봄날의 책 빛과 얼음, 생명과 대지에 관한 시적인 보고서. 그 어떤 생태주의 책만큼이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절박한 울림을 전달한다. “나는 밤 산책을 하면서 절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 외딴 곳에서 마주친 예기치 못한 생명의 풍성함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경외감이건 환상이건, 모진 마음이건 혹은 무관심이건 지구 반대편의 우리는 이 대지와 또렷이 연결되어 있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박보나 | 바다출판사 박보나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미술 작가들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며, “세상과 예술을 비껴 보는” 그들의 태도가 작업을 넘어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와 어떻게 조응하는지 이야기한다. 예술가의 시선과 태도를 읽는다는 것은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고 내 생각과 마음에 새로운 형태를 입히는, 나를 위한 사려 깊은 과정이기도 하다. 좋은 예술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테니까.

박수지 큐레이터

<일탈> 게일 루빈 | 현실문화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게일 루빈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사도마조히즘, 포르노그래피, LGBTQ 분야에서 정답으로 제시되는 ‘정치적 올바름’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번역판으로 무려 900페이지에 육박하는 두께지만 그만큼 치열하고 급진적이다.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권명아 | 갈무리 통념으로서의 외로움은 이제 그만. 권명아가 지칭하는 외로움은 슬픔과 애도를 묻고, 우정과 공동체를 상상하며, 반려를 경유해 사랑의 담론으로 뻗어나간다. ‘혼자 감당해야 하는 힘든 노동’으로서의 싱글 라이프가 아닌 사랑의 담론을 되새김하는 개별적 개인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움은 내 마음속에 있지만 온전히 내 마음에 속한 것은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의 원천은 나의 밖에 있다”는 말에 끄덕이게 된다면 페이지를 넘겨보길 추천한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 동녘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려 깊은 논점으로 가득한 책이다. 시대를 읽는 통찰을 2년 넘는 기간 동안 쓴 짧은 편지들로 구성했다. 개념어 하나 사용하지 않고 정확하게 말하는 법을 알고 있는 아름다운 지식인 바우만. 그는 쉽게 공포를 예언하지 않고, 대중에게 경고하지 않는다. 삶을 구축시키는 방법을 다시 상상해보자고 제안하는 현명한 발신인의 수신자가 되어보길 권한다.

<지각의 문> 올더스 헉슬리 | 김영사 헉슬리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었을까? 0.4그램의 메스칼린을 직접 복용하며 그 체험을 예술적 지각과 연결시킨 헉슬리의 환상경험은 지적이고도 유려한 문체로 쓰여 있다.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는 약물’이라는 챕터는 약물을 사회악으로 보기보다 예술적이고도 영성적인 감각지를 향상시켜주는 촉매로 여긴다.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앤드류 포터 | 김영사 누구나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만 서로 다른 의미로 쓰고 있는 게 아닐까? 진정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요구와 안 보이는 신념, 그리고 이것을 마케팅화 하는 요즘 세상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책에 등장하는 촌철살인의 예시들을 읽다 보면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두 번 다시 쓰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SNS를 일주일 정도 그만둘 수도 있다.

김학선 음악평론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른 여자> 빌리 홀리데이 | 삼신각 난 빌리 홀리데이가 1930년대에 녹음한 결과물이 ‘I’m A Fool To Want You’로 대표되는 슬픈 노래보다 더 멋진 기록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슬픈 삶을 살았고 슬픈 노래를 불렀단 사실은 분명하다. 흑인으로, 여성으로, 또 소수자로서 겪은 삶의 고통과 음악의 고통을 솔직하게 써내려간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힘겹게 재즈를 지켜나간 박성연이 추천사를 썼다. 아름다운 연대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더글라스 러미스 | 녹색평론사 책 제목 그대로다.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우리는 당연한 듯 늘 ‘발전’과 ‘성장’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진정한 발전과 성장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젠가 지구가 멸망하는 날, 아메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삼은 유럽인의 삶보다 원주민의 삶과 철학이 더 가치 있고 고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리 호이나키 | 녹색평론사 힘겹게 비틀거리며 걷는다. 교수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농부의 길을 택한 리 호이나키는 국가나 자본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소속되는 대신 한 명의 인간으로서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성찰한다. 물론 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룩한 바보’의 질문에서 어렴풋이 답을 보기도 한다.

<평행과 역설>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 마티 이스라엘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유대인 다니엘 바렌보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팔레스타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우정을 쌓아가던 둘이 나눈 대담을 모았다. 자신들의 정체성부터 시작해 역사, 정치, 음악, 문학에 대해 폭넓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의 만남은 아랍 청소년과 유대인 청소년으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로 이어진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 동녘 친구를 만나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헤어지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닌 세상이 돼버렸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에 매달리는 시대에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발적 ‘고독’을 이야기한다. 바우만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건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독의 쓸모에 대해 좀 더 오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김뉘연 작가, 편집자

<거대도시 서울 철도: 기후위기 시대의 미래 환승법> 전현우 | 워크룸 프레스 이 책의 주인공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교통의 미래가 될 ‘철도’다. 현재 에너지 효율과 탄소 배출량 면에서 철도를 대체할 수단은 없으며, 그러므로 기후위기의 대응책으로서 철도를 최대한 그리고 가능한 한 정교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암담한 시기의 희망으로 읽힌다. “철도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지속 가능성이 크게 향상된 교통의 세계와 도시”를 구체적으로 꿈꾸게 하는 책.

<G. H. 에 따른 수난>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 봄날의책 누구의 이름도 될 수 있을 무명의 이름, G. H.라는 여성의 목소리가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비워진 방의 옷장에서 발견한 벌레를 죽이게 되고 그걸 마주하는 여성, 그 내부와 외부가 뒤엉켜 이루어지는 언어가 다른 종류의 독서 경험으로 몸에 받아들여진다. 여성이라는 존재의 삶, 나 자신을 넘어선 삶, 삶을 넘어선 무엇에 대해 연속적으로 생각을 확장해 나가게 하는 여성의 글.

<두 사람이 걸어가> 이상우 | 문학과지성사 이상우의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과 나이와 성별과 신체와 그 밖의 것들을 가진 인물들이 지나간다. 작가는 자신이 발견하고 만든 인물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내뱉고 나누는 말을 보고 듣고 드러내고 겹친다. 그렇게 흘러가는 문장들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되고, 움직이는 소설 앞에서 어쩐지 “불가능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다시 어떤 가능함을 떠올리게 된다.

<여행하는 말들> 다와다 요코 | 돌베개 독일어와 일본어 두 언어 사이에서 글을 쓰는 저자의 단상들은 무심히 사용해온 모어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보게 한다. 속해 있던 언어에서 여러 이유로 벗어나 다양한 언어로 쓰이게 된 글들의 모험에, 자신이 속할 영토를 스스로 만들어 가면서 나아가는 여정에 또 다른 방식으로 동참하고 싶어진다. 말과 글의 다양성을 예민하게 의식하며 모어를 보다 흥미롭게 활용하는 데 발판이 될 책.

<게에게 홀려서> 판판야 | 미우(대원씨아이) 익숙하게 오가던 동네에서 무언가를 다시 보게 되고, 다른 차원의 동물들과 어울리고, 이상한 물건들을 만들어 쓰는 세계. 판판야의 단편들은 무엇이든 새로워 보이고 가능해 보였던 어린 시절의 조각들이 뒤틀려 재조합된 듯하다. 일상에서 시작해 예상치 못한 곳에서 끝나는 이야기를 뒤쫓다 보면 그동안 존재를 알지 못했던 감각을 사용한 것 같아지고, 주변을 다르게 인식하게 된다.

김은아 국제 인권 NGO 활동가

<난민, 난민화되는 삶> 김현미 외 13인 | 갈무리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불거진 전 세계적 ‘Black Lives Matter’ 시위 행렬을 보면서 “그래도 한국에는 ‘이런’ 인종 차별까지는 없잖아?” 했던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필자 중 김현미는 2018년 여름 ‘국민’의 이름으로 행했던 ‘제주 예멘 난민 반대 운동’을 소환해 한국 사회가 보여준 ‘21세기 신인종주의’를 말한다. 피부색이 아닌 ‘문화적 차이’를 내세워 추방과 배제를 합리화하는 고도화된 인종주의에 있어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아주 적나라하게.

<검은 피부, 하얀 가면> 프란츠 파농 | 문학동네 그는 카리브해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섬 유복한 가정에서 ‘백인’ 교육을 받고 자란 흑인.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당시 ‘조국’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자원 입대한 군대에서 백인 프랑스 군인과 흑인 프랑스 군인이 받는 차별적 대우에 평생을 ‘탈식민주의’ 개념에 매진한 사람. 그가 정의한 ‘식민화된 사람’은, ‘지역 문화의 독창성이 무너지는 바람에 속으로 열등 콤플렉스가 생긴 모든 사람’이다. 해당 안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를 대단하다고 하지 마라> 해릴린 루소 | 책세상 뉴욕에 사는 뇌성마비 장애 여성 해릴린은 그의 장애에 대해 한 번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본 적 없는 친구들과의 ‘가상의 대화’를 길고 구체적으로 적어보곤 한다. 그가 차례로 ‘괴물 같은 자아’와 ‘비장애인 자아’,‘장애인 자아에게’ 쓴 편지를 읽으면서는, 결국 울었다. 대단해서가 아니라 미친 듯이 부러워서다, 그의 자아가. 나의 ‘힐링 서가’에 오래도록 꽂혀있는 책.

<It’s Freezing in LA!> 마르타 딜런 | 앙텐 북스 “지금 로스앤젤레스에 있는데요, 얼어 죽겠습니다. 지구온난화는 무슨, 얼어 죽을!” 2013년 트럼프의 일자무식한 발언을 그대로 제목으로 차용한, 기후 위기를 말하는 독립 잡지.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잡지인 만큼 재생 종이에 콩기름 리소그라피 인쇄, 데이터 센터 탄소발자국까지 신경 쓰는 웹 호스팅으로 꾸려가는데, 진면모는 정치, 거버넌스, 법, 뷰티, 연극을 넘나들며 ‘이것도 기후 위기랑 연결돼?’ 싶은 온갖 ‘다양성’을 탑재한 이야기가 넘쳐난다는 것.

<아메리카나 Americanah>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 | 앵커 북스 나이지리아에서 나고 자란 10대 소녀가 동경해 마지않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난생처음 인종차별을 마주한 뒤, 이를 실체화하고, 넘어서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 그가 미련없이 버린 상류층 백인 남친, 영주권, 미국식 영어 억양, 매일 아침 쫙쫙 피던 머리카락은 나에게 각각 무엇으로 치환될지 끊임없이 생각해보게 한다.

    피쳐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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