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키싱 부스]의 주역 제이콥 엘로디와의 만남

2020.09.18GQ

넷플릭스 영화 <키싱 부스>로 스타덤에 오르고 HBO 드라마 <유포리아>로 배우로서의 궤도에 안착했다. 신작을 준비하며 고향 브리즈번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제이콥 엘로디를 만났다.

셔츠, 스니커즈, 주얼리, 모두 배우의 것.

티셔츠, 송 포 더 뮤트.

재킷, 티셔츠, 팬츠, 모두 송 포 더 뮤트.

티셔츠, 팬츠, 모두 송 포 더 뮤트. 양말, 배우의 것.

티셔츠, 배우의 것.

티셔츠, 송 포 더 뮤트. 셔츠, 팬츠, 모자, 시계, 모두 배우의 것.

티셔츠, 송 포 더 뮤트.

제이콥 엘로디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머리를 기른 듯했다. 앞은 짧고 옆과 뒷머리는 긴 멀렛 스타일을 원한 듯도 했다. “부드러워 보이죠?” 엘로디가 위로 향한 내 시선을 읽었는지 머리를 기르는 중인 일상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5월 중순이었고, 호주 브리즈번에 사는 그의 부모님 집 현관 앞에서였다. 세계 곳곳이 문을 걸어 잠그고 떨어져 지내는 시기였기에 우리는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정하게 다듬어 뒤로 넘긴 윗머리와 어깨에 닿을락 말락 내려온 뒷머리는 80년대 빌리 레이 사이러스 스타일에는 아직 못 미쳤으나 조금만 더 기르면 될 것 같았다. “굉장히 자유로운 기분이에요.” 엘로디는 손으로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보통은 뒤와 옆을 짧게 친 전형적인 미국식 머리를 하는데 저는 그런 스타일이 정말 싫거든요. 이렇게 머리를 길러보는 건 처음이에요.”

브리즈번 해변가에서 마주칠 것 같은, 어떤 특정 종류의 호주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의 헤어스타일은 역설적으로 그가 지금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계획대로라면 엘로디는 널리 호평받은 HBO 드라마 <유포리아>의 두 번째 시즌을 찍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어딘가의 촬영장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에 들어가야 했는데 LA 상황이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엘로디가 전 지구적 팬데믹이 일어나기 직전의 어수선한 상황을 떠올렸다. “안 좋은 상황일 때 미국에 있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서 비행기표를 끊어 빠져나왔죠.” 엘로디를 비롯해 젠데이아, 모드 애퍼타우, 헌터 샤퍼 등 젊은 출연 배우들은 어떻게든 촬영이 진행되기를 기대했지만, 첫 촬영 날 배우들은 제작이 무기한 중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엘로디는 당시 팬데믹 관련 뉴스를 챙겨보지 않았기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단박에 상황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제작이 멈출 정도면 엄청난 상황이리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나 드라마 촬영은 내전이 일어나도 계속되거든요. 그런데 중단이라니.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거겠죠.”

엘로디는 대본 초고에 참여하고 미국식 억양을 연습하는 등 <유포리아> 두 번째 시즌에 헌신적이었을 뿐 아니라 LA에서의 삶에도 꽤 많은 것을 투자한 상황이었다. 작은 원룸에 살며 낡은 미쓰비시 차를 몰던 그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더 큰 집으로 이사할 준비를 마치고 차도 새로 산 터였다. 엘로디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 재수 없는 놈처럼” 레인지로버를 샀는데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큰 차가 필요해서”라고 했다. 엘로디의 키는 193센티미터다.

어쨌든 그는 9개월간 <유포리아>를 촬영하는 대신 비행기를 타고 브리즈번으로 돌아왔고, 부모님 집에 머무르며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큰 집과 새 차는 LA에 쓸쓸히 남겨졌지만, 사실 엘로디는 굉장히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우선 늘 그랬던 것처럼 매일 아침 8시 3분에 일어난다.(“몇 년 전 오전 8시 3분으로 알람을 설정한 적이 있는데 그 후 매일 그 시간에 기상하게 됐어요.”) 일어나서 커피를 내린 뒤 바깥에 앉아 토스트에 잼을 발라 먹는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일을 시작한다. “차분한 성격은 아닌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 게 어려워서 그냥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는 편이죠. 지금은 영화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어요.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초고를 마치고 고치는 단계예요. 집에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있어요. 기본으로 돌아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규칙도 없고 지켜야 할 기한도 없죠. 아무거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발견하는 과정이 즐거워요.”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엘로디의 표현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는 영화 <키싱 부스>를 본 이라면 알 것이다. 호주에 살던 청년 제이콥 엘로디는 2018년 넷플릭스 영화 <키싱 부스>로 단박에 주목받았다. 줄거리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는 하이틴 로맨스였지만, 극중 주인공인 엘의 남자친구이자 가죽 재킷을 걸치고 모터사이클을 타던 노아 역은 엘로디의 얼굴을 알리는 데 훌륭한 계기가 됐다. 그는 유명해진다는 일이 아직도 낯설고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동안 엄청났어요. 자고 일어났더니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였죠. 하지만 2년이나 지났고 이제는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아요. 속편이 공개되고 나면 또 잠시 동안 유명세를 치를 수는 있겠지만.”(<키싱 부스 2>는 지난 7월 24일 공개됐다.)

엘로디는 초연해 보였으나 그에게 관심을 보인 건 열성 팬들만이 아니었다. 업계도 그를 주목했다. 다만 <키싱 부스> 이후 들어온 배역은 대부분 잘생기고 잘나가는 고등학생 역이었다. 물론 섭외가 들어오는 일은 좋은 징조지만, 어쩐지 엘로디에게는 이미 새로울 게 없는 분야였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이미 경험해본 역할이고 그렇기에 그 안에서 재미를 찾기는 굉장히 어려워 보였죠. 게다가 저는 계속해서 나이를 먹고 있고 그게 얼굴에도 드러난단 말이에요. 계속해서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일은 조금 부담스럽죠.”

많은 배우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잊히는 것이다. 애써 얻은 스포트라이트가 결국 꺼지고 마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난 6개월 동안 세계 대부분의 영화 및 TV 촬영 세트장이 그러했듯 <유포리아> 촬영장에도 먼지만 쌓이고 촬영 재개까지 앞으로 한참 더 걸릴 거라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엘로디 또한 현재의 인기가 사그라들면 어쩌나 고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엘로디는 그런 고민과 거리가 멀다고 선을 그었다. “저는 제 자신을 항상 유의미하고 중요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브랜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좋은 연기를 펼치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어요. 여전히요.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완전히 망할 수도 있겠지만 굳이 고민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인 작업도 많이 하기에 머리가 녹슬 일도 없죠.” 엘로디는 그가 원한다면 익명으로라도 작업을 할 사람이다. “배우가 누군지 아무도 모르게 정체를 숨기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출연한 배우의 정체를 몰라도 관객은 영화를 좋아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겠죠. 실제로 이뤄진다면 굉장히 멋진 일 아닐까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엘로디처럼 주목과 관심에서 벗어나 생활하기를 원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에서 주된 활동 무대를 잃은 셀러브리티와 인플루언서들이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온라인으로 우르르 자리를 옮기는 게 이 업계다. 마돈나는 SNS에 욕조에서 찍은 영상과 자신의 노래 ‘Vogue’를 노래방 반주기로 부르는 모습을 올리기도 했다. 가사를 생선튀김에 대한 내용으로 바꿔서 말이다. 다른 종류의 영상도 있다. 이제는 팬데믹 같은 위기 상황 속에 새로운 유형의 셀러브리티 영상과 포스팅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공익광고처럼 그럴싸하게 포장되었으나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당면한 사회 이슈에 엄숙하게 한마디 얹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뜻으로 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엘로디는 특정 인물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신중하게 말을 이었다. “저 또한 코멘트를 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과 관련해 이메일을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연기자이고, 여러분이 이 일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설교적인 것 같더라고요.”

엘로디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 <키싱 부스>였다면 <유포리아>는 그가 지닌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유포리아>는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대중의 반응까지 이끌어냈다. HBO의 발표에 따르면 자사 프로그램 중 젊은 시청자 사이에서 <유포리아>가 가장 인기 많았고, 호주의 주요 유료 TV 채널인 폭스텔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시리즈다. “특히 <유포리아> 이후 최고로 멋진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엘로디는 미국 HBO에서 <유포리아> 시즌 1이 방영된 작년 6월 이후의 상황을 돌아보았다. “제 존재가 사람들에게 각인됐어요. 연기력이 있는 배우로 인식되기 시작한 거죠. 덕분에 제가 존경하는 배우나 감독들과 만나 어울릴 수 있게 됐어요. 그들이 <유포리아>에서 제 연기를 좋게 봤기 때문에 서로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성숙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죠.”

엘로디는 랩톱을 충전하고자 집 안으로 들어가 2층 침실로 향했다. 바로 이곳에서 그는 처음으로 배우라는 꿈을 품었다.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할리우드 힐즈의 우스꽝스러운 파티에서 우연히 알 파치노를 보게 되는 그런 꿈을 키워나간 곳이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했다. 배우가 되었고, 수백만의 팬이 생겼으며, 현재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연기자라는 명성을 빠르게 쌓아 올리는 중이다. <유포리아> 시즌 2 제작은 최소 2021년까지 보류될 수 있지만 그보다 먼저, 미국에서 오는 11월 공개 예정인 스릴러 영화 <딥 워터>로 근황을 전할 예정이다. 밴 애플렉과 레이철 블랜처드, 아나 데 아르마스와 함께 촬영했다. 엘로디는 카메라를 돌려 침실 한쪽을 비췄다. 배경 천을 드리우고 조명과 삼각대가 놓은 그곳은 마치 스튜디오 같았다. 삼각대를 설치해둔 비디오카메라가 보였다. “여기가 제가 셀프 테이프를 찍던 곳이에요. 고생하며 몸부림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요.” 엘로디는 배우를 꿈꾸던 그때를 회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췄다. “기분이 정말 이상하네요.”

    Jake Mi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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