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시행 6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놓인 ‘도서정가제’

2020.09.27GQ

책에 가격을 매기기에 앞서, 책이 품은 사유의 가치를 묻는다. 시행 6년 만에 존폐의 기로에 놓인 도서정가제 앞에서.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이 유독 흰빛으로 느껴졌던 것은, 겨울 초입의 저녁 어둑한 창밖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수신인의 이름을 부르다 지친 배달원들은 상자를 쌓아놓고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사람들처럼 조금은 들떠서 상자에 붙은 송장의 이름을 확인하던 그들은 옮길 수 있는 만큼만 들고 자신의 부서로 갔다가 돌아오길 반복했다. 그중에는 내 것도 있었다. 커다란 상자 세 개. 발치에 내려놓고 생각했었다.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더라. 그것이 책인 것만은 분명했다. 모두 내가 산 것들이었는데, 대체 무엇을 샀기에 이렇게 큰 상자가 세 개씩이나 놓여 있는 것일까. 조금은 부끄러웠고, 한편 화가 나기도 했었다.

2014년 도서정가제 시행 전날 이야기다. 그때 나는 출판사 편집자였다. 대개의 편집자가 그러하듯 내게도 책 욕심이 있었고, 그 욕심을 일에 필요하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잘 포장해두었었다. 그날은 핑계도 필요 없었다. 주요 인터넷 서점의 서버가 다운됐다 복구되길 반복하는 동안 허겁지겁 장바구니에 책을 쓸어 담았다. 평소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가격에 책들이 부려지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어떤 책을 샀는지 기억하지 못했던 까닭은. 어디 나뿐이었을까. 사내 다른 편집자들도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상자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꺼내며, 아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책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이제 나는 서점을 운영하며 책을 파는 사람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책을 쓰는 사람이다. 훨씬 오래전부터는 책을 읽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책은 내게, 업이고 팔자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이를테면 이삿짐센터 직원에게서 “책을 좋아하시나 봐요?”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일까.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책이 없으면 그립고 보고 싶고 책을 덮을 때는 못내 아쉽고 그런가. 거짓말은 못 하겠다. 그렇지 않다. 그럼 아닌가. 하지만 나의 방은 책으로 뒤덮여 있고, 그것 중 하나를 펼치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불안해진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덥석 책을 사고 그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나의 이력을 알고 책에 대해 질문을 던져오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는 우물쭈물할 수가 없다.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대답을 하면서 상대를 살핀다. 어떤 이는 속이 다 후련하다는 표정이며 어떤 이는 여전히 아쉽다는 표정이다. 하여간 어떤 경우든, 나는 되묻고 싶어지는 마음을 애써 숨기게 된다.

나의 질문은 상당히 원론적인 것인데, 그것을 거칠게 풀어놓자면 이렇다. “그런데 책이 뭔가요?” 물론 나는 그렇게 묻지 않는다. 돌아올 대답은 뻔하다. “책이 책이지. 뭔가요.” 책. 직육면체의 종이뭉치. 쓸모보다 무겁고, 생각보다 지루한 것. 구시대의 유물. 당장의 현실을 일구기엔 무용한 것. 하여 없다 한들 불편하지 않은 것.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콕 집어 왜, 왜 중요한가 알 듯 모를 듯한 것. 많다 하여 문제될 리도 없는 그런 것. 이 모든 것이기도 하고 이것 중 무엇도 아니기도 할 터. 애초에 정답을 찾아 열거한 것도 아니다. 자, 지금 당신과 가장 가까운 책을 한 권 꺼내 들어보자. 기왕이면 정가가 매겨진, 당신이 어디선가 직접 구매한 것이면 좋겠다. 이번에는 숨기지 않고 묻고 싶다. 그것은 책인가. 당신이 들고 있는 그것은 책이 아니다. 그것은 책의 복사본에 불과하다. 심오한 수수께끼나 터무니없는 말장난이 아니다. 당신이 구매한 그것에 당신의 것이 정말 있는가. 책의 앞표지부터 뒤표지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그 책에 대한 권리는 작가 혹은 출판사가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 책을 한 장 한 장 찢어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도 있고,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지고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다 해도 그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책의 집필 의도나 주제, 논리와 전개 방식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이웃의 책장에 꽂혀 있으며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책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오직 하나. 읽는 것뿐이다. 읽어서, 저자의 생각과 출판사의 의도를 흡수하고 그 너머를 보게 되는 것. 그것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자 전부이다. 책은 논리적으로 풀어낸 어떤 사유 그 자체이다.

누구나 리포트 한두 장쯤 적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느라 밤을 새워본 경험 또한 간직하고 있을 터다. 한 권의 책은 A4용지 수백, 수천 장만큼의 공력과 시간, 쓰고 엮고 그린 모두의 열정과 노력이 들어가 우리 앞에 짠, ‘나타난다’. 그것은 새로운 미래를 품은 씨앗이기도 하고, 어제와 오늘의 흔적이기도 하다. 어떤 체계와 지식이 필요할 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앞선 이의 지혜를 구할 때 우리는 책을 찾는다. 당장의 쓸모가 아니어도, 배꼽을 잡고 웃거나 입맛을 다시며 눈으로 훑는 활자가 머릿속 뇌막에 영사되어 상상과 재미를 부려 넣을 때, 그때 역시 우리 곁에는 책이 있다. 심지어 집필과 편집, 제작과 홍보 전 과정에 들어가는 물적 재화와 인건비를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저렴한 값으로 우리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책은 그리고 독서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소의 공공재이자 최대의 산물로 그 가치를 존중받는다. 이 평가가 온당한가, 여전히 유효한가. 시시각각 새로운 매체, 새로운 플랫폼의 영상과 사운드가 유혹하는 2020년에도 우리는 앞서 열거한 가치를 온전히 이 책에 부여할 수 있는가는 별도의 논의다. 분명한 것은 책은 스마트 기기와도 건강 보조 식품과도 다르며, 아직까지는, 기대하기로는 앞으로도 ‘다른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다름’은 그저 소박하다. 책의 가치만이 독선적으로 주장되어 지식의 공용화에 저해가 되기를 원치 않는 것처럼, 지나치게 저렴해져서 온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라 믿을 뿐이다. 가격 경쟁력만으로 책과 출판사가 평가받는 순간, 정글에 떨어진 출판사의 생존 경쟁에서 빚어진 가격 거품은 나날이 증가할 것이다. 지금도 대형출판사, 대형유통사가 장악한 도서 시장에는 ‘대박 세일’ ‘초특가 할인’ 같은 낯뜨거운 홍보 문구가 난입해 다수 독자의 선택의 폭을 단조롭거나 협소하게 끌고 갈 것이다. 도서정가제 이전 수년, 수십 년 동안 그러해 왔듯이. 도서정가제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가 아니라, 소비자가 더 나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돕는 최소한의 장치라는 호소가 이 글까지 합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혹은 더 많은 이웃과 우리 모두에게 숨 쉬는 공기처럼 간절하기에, 필요하다면 앞으로도 몇 번이고 거듭 말하고 쓸 것이다. 그저 너무 오래는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뿐. 도서정가제에 대한 논의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생산되는 출판물 사이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닌 줄 안다. 전자책, 웹툰, 웹소설이라는 새로운 매체와 콘텐츠들에 같은 룰이 적용되는 데 대한 불만 역시 익히 들어온 터다. 이에 대해서는 새로운, 그리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그에 걸맞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논박을 주고받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테니까.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 나의 생각은 정가제 하루 전 내가 구매했던 그 책 더미에 머물러 있다. 나는 그것들 중 대부분의 책을 아직도 열어보지 못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근사한 책 한두 권 사고 무심히, 다음 날도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거릴 것이다. 내게 필요한 책이 무엇일까 궁리하면서. 글 / 유희경(시인, 서점 운영자)

    피쳐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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