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로까지 뻗어 나간 BTS | 지큐 코리아 (GQ Korea)

현대 미술로까지 뻗어 나간 BTS

2020-09-25T14:32:54+00:00 |culture|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은 현대 미술로까지 뻗어 나간다. 유명 작가와 협업하고 방문한 갤러리를 화제에 올려놓는다. 그 이면에 존재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그룹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요즘은 어딜 가나 한 번쯤 BTS가 대화의 소재로 오른다. 그런데 미술계에서는 분야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를 느낄 수 있다. 최근 만난 국내 공공 미술관장은 BTS의 아트 프로젝트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대중 스타와 예술이 관계 맺는 건 미술사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 앤디 워홀의 팝아트 이후 대부분의 작업은 주류와는 결이 다르잖아요. BTS의 아트 프로젝트도 그런 해프닝 중 하나로 보이는데요?”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미술사와 공공의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 이들은 미술의 역사에 그간 어떤 작업이 있었고, 그 맥락에서 특정 작품이 가진 의미를 늘 염두에 둔다. 그러니 BTS의 아트 프로젝트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사뭇 다른 평가를 들을 수 있는 건 바로 미술 시장이다. 아트페어나 갤러리에 가면 BTS를 입이 마르게 칭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BTS 멤버가 다녀가고 나면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고, 다음엔 아미들의 ‘순례’가 이어진다. 한 명의 눈길이 아쉬운 갤러리 입장에선 BTS가 관심을 모아주니 고마운 존재임이 당연하다. 최근 이 ‘BTS 사랑’에 독특한 큐레이터가 합류했다. 바로 H.U.O.,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다. 8월 BTS는 H.U.O.가 1993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두 잇’에 참여했다. 올해 초에는 <커넥트, BTS> 참여 갤러리로 그가 아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영국 서펀타인 갤러리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의 모 사립미술관 학예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전시할 때만 해도 BTS를 신기해하는 분위기였는데. ‘아미 효과’를 한번 보더니 뿅 간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한 번 더 하는 걸 보면요.” 트위터 계정(@HUObrist)만 봐도 분위기가 느껴진다. 평소 올린 트윗엔 10개 남짓한 ‘하트’가 달린다. 그런데 8월 18일 올린 BTS의 ‘두 잇’은 하트 6,500개에 리트윗이 1,900건이다. 큐레이터에게 ‘좋아요’가 중요하냐고? H.U.O.에겐 그럴 수 있다. 그는 ‘관종’으로 국제 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괴짜 큐레이터다. 유명한 인물이라면 일단 손글씨를 받고, 사진을 찍으며, 방대한 양의 인터뷰를 내보내 관심을 모은다. 마치 앤디 워홀이 스타의 유명세에 기대듯, H.U.O.는 예술계 호사가들의 입을 노린다.

2014년 미국 <뉴요커> 매거진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그를 다뤘다. H.U.O.가 쉴 새 없이 누군가를 만나고, 그 와중에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인증샷’에 집착하고, 계속해서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서펀타인에서 주최한 ‘예술 마라톤’은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눈부신 참가자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이 주제와 썩 어울리진 않았다. 오브리스트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끊임없이 떠들기만 한다면 괜찮은 것처럼 보였다.” <커넥트, BTS> 전시가 처음 공개된 간담회에선 ‘BTS와의 연관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해외 작가는 기존에 진행하던 연작을 장소를 달리해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 전시에도 의견은 분분했다. 이쯤 되자 H.U.O.의 유명세를 인식한 일부 미술인들은 ‘왜 그가 참여했을까?’를 궁금해했다. 독일 기반 한국인 큐레이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유명세와 시선이 쏠리는 곳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프로 참석러’거든요. 개인이 살아남는 전략으론 훌륭하나 그것이 미술계 주류라는 착각은 없었으면 해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왜 H.U.O.에게 후원하고 아트 프로젝트를 진행했을까? 누군가는 H.U.O.가 ‘세계 영향력 1위’ 큐레이터라지만, 그건 영국 미술지의 평가일 뿐이다. 분명히 해야 할 건 미술은 ‘좋아요’나 ‘클릭 수’가 아니라 ‘인권의 확장’이라는 미술사의 인류 보편적 가치에 따라 흘러간다는 것이다. 만약 인기 순으로 미술사가 쓰였다면 인상파도 팝아트도 모든 것이 지워져야만 한다. 이들 예술은 모두 처음엔 엄청난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팝아트를 불멸의 대열에 올린 건 처음으로 ‘대중’을 인식하고 품었던 용기다. 인상파는 그리스 신화와 왕을 캔버스에서 몰아낸 미술이다. 최근엔 더 복잡한 철학적 양상과 맞물린 작품이 미술사를 주도한다. ‘20세기의 다빈치’ 요셉 보이스나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들의 그것이다. 유리장 속 예쁜 장미가 예술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에겐 반짝이는 것만 훌륭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의 공공 미술관에서 묵묵히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찾는 예술은 그런 것이 아니다. 작품을 미술사적 맥락에서 고려하는 것은, 마치 한 음악가를 알기 위해 앨범 전체를 들어야만 한다는 리스너들의 불문율과 비슷한 일이다. 누군가는 스트리밍의 시대, 관종의 시대를 이야기하겠지만 모두에게 그걸 따라 하라 강요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빨리빨리’의 나라에선 본질에 대해 제대로 얘기해본 적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유행이 한 순간의 파도라면 본질은 대양에서 묵묵히 흐르는 해류다. 그리고 파도를 만드는 건 저 멀리서 흘러온 해류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다만 BTS와 아트 프로젝트는 분리해서 보고 싶다. 아트 프로젝트가 워낙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멤버들이 급히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사실 <커넥트, BTS>는 내용적으로 봐도 BTS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인다. 외신에서도 엄밀히 “후원 프로젝트”라고 보도한다. 별개로 미술계 현장에선 RM에 관한 독특한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RM은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를 연 미술관 큐레이터에게 이메일을 보내 질문을 한다거나, 한 작가의 도록을 꼼꼼히 섭렵하며 공부한단다. 해외 투어를 할 땐 취향 맞는 가구 스튜디오에 방문하고 싶다는 연락도 보낸다. 이럴 땐 RM이 아닌 본명 ‘김남준’으로 메일을 보내 그를 못 알아보는 경우도 있단다. 한국계 지인이 뒤늦게 유명 그룹의 멤버라는 걸 알려줘 투어 중 급히 방문한 적도 있다고. 이렇게 탐구하는 ‘찐 애호가’의 모습은 응원하고 싶다. RM을 비롯한 BTS 멤버들이나 지드래곤, 탑과 같은 연예인들이 예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건 반가운 일이다. 가뜩이나 ‘저 먼 세상’ 일로 취급받는 예술이 조금이라도 친근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연예인이 특정 작품을 샀다는 것만으로 ‘좋은 컬렉션’이라고 판단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보다는 연예인이라는 창구를 통해 관심을 가진 뒤 스스로 경험하며 자신의 눈으로 좋은 예술을 알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보도 자료를 받아쓴 기사에선 온갖 찬사가 넘쳐 흐르지만, 미술 시장의 화려한 장막 뒤에선 연예인 컬렉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이 흐른다. A 씨는 “전형적인 돈 많은 초짜 취향”이라거나 B 씨는 “외국 갤러리의 ‘재고 처리’에 물려 처치 곤란한 작품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다”는 말도 들린다. C 갤러리스트는 “연예인 컬렉터 중 어디서 ‘투자하라’는 소문만 듣고 작품을 산 뒤 올 때마다 ‘얼마 올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나중에 많이 오를 수 있는 작품 추천해주세요”라고 하는 손님에게 “그런 작품은 없습니다”하고 정중히 내보내는 갤러리스트다. 작품을 돈으로만 보지 말아 달라는 완곡한 경고다. 우리 모두 ‘화려한 홍보용 수사’와 제목에 속지 말자. 연예인들이 주장하듯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니까. 모든 사람의 눈은 다르다. 나는 나의 본질과 취향을 가꾸면 그만이다. 글 / 김민(<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