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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지만 강렬한 레드 와인, 피노 누아 입문 가이드 – 1

2020.10.12GQ

선명한 레드 와인을 곁에 두기 좋은 계절이다. 여리지만 때로는 강렬한 품종 피노 누아 입문 가이드.

왼쪽부터 | 빅 오 피노 누아, 파토마노 퍼포먼스 피노 누아, 모두 리델. 투투 글라스, 이첸도르프. 와인윙스 피노 누아, 리델. 부르고뉴 글라스, 마크 토마스. 비늄 피노 누아, 리델.

피노 누아에서 지배적으로 나는 향은 체리, 라즈베리, 딸기 등의 붉은 과일, 바이올렛, 아이리스 등의 꽃 향이다. 와인의 숙성 이후에는 숲이나 이끼처럼 축축한 땅, 머스크, 가죽, 버섯, 트러플, 바닐라, 계피 등의 복합적인 향이 피어난다. 피노 누아에서 나무 아래의 향이란 뜻의 ‘수 부아 Sous Bois’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수 부아’를 잘 표현하는 클래식한 피노 누아를 만나면 신세계가 열린다. 또한 피노 누아는 실크처럼 부드럽고 섬세한 텍스처를 느껴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화이트 와인의 빨간 버전처럼 가볍게, 편안하게,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부르고뉴의 신흥강자
다비드 뒤방 아버지와 함께 와인 협동 조합에서 일하다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출발부터 큰 성공을 거두며 이름을 알렸다. 피노 누아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깔끔하면서도 단단한 힘을 지닌 와인을 잘 만든다. 2006년부터는 유기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모레 생 드니 와인’을 추천한다.

프랑수아 밀레 최근 메종을 오픈했으며 두 아들과 함께 와인을 만든다. 2017 빈티지가 전 세계적으로 처음 선보인 와인이다. 코어가 단단하고 표현력이 좋은 복합적인 맛을 추구한다. 기승전결이 확실한 강단 있는 스타일로 뚝심있게 와인을 만든다. 프랑수아 밀레가 만든 와인 가운데 ‘샹볼 뮈지니’ 마을의 와인을 강력히 추천한다.

벤자민 르루 브루고뉴의 떠오르는 75년생 젊은 와인 메이커. 포마르 마을 최고의 도멘으로 인정받는 콩트 아르망에 2000년 수석 와인 메이커로 합류해 탁월한 실력을 키웠다. 2007년 도멘을 설립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와인을 만들어 ‘대박’이 났다. 2015년부터 미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50여 종의 와인을 양조하는 중견급 메종으로 거듭났다.
이승현(한독와인 대리)

부르고뉴의 숨은 마을 찾기
피노 누아는 재배하기 어려운 품종이다. 게다가 부르고뉴의 면적은 제한적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포도 생산량까지 줄어들고 있다. 유명 도멘은 품귀 현상으로 계속해서 가격이 오른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지역에서 새로운 와인을 찾아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부르고뉴의 중심에는 황금의 언덕이라 불리는 ‘코트 도르’가 있다. 이 언덕 너머 위치한 ‘오트 코트 드 뉘’, ‘오트 코트 드 본’에서 최근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맛이 좋은 엔트리급 와인을 찾아볼 수 있다. ‘코트 도르’의 남쪽에 자리 잡은 ‘코트 드 본’은 ‘뫼르소’, ‘퓔리니 몽라셰’ 등 세계 최고의 화이트 와인이 주로 생산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 유명한 마을 뒤에 숨어 있는 ‘몽텔리’, ‘오세 뒤레스’, ‘생 로맹’ 등 비교적 생소한 마을에서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뛰어난 레드 와인을 발견할 수 있다. 변화는 부르고뉴의 수도인 디종 주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한때 이 지역에도 포도밭이 존재했으나 도시화 현상과 해충 피해를 입고 대부분이 사라졌다. 최근 들어 디종 시가 옛날 문헌을 찾아 그 당시 뛰어났던 포도밭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시에서 직접 도멘을 운영하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값이 치솟는 부르고뉴 와인이지만 흥미로운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이상황(배리와인 대표)

부르고뉴 밖의 피노 누아
피노 누아의 킹덤으로 알려진 부르고뉴. 명실공히 최고의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의 기라성 같은 그랑 크뤼 밭에서 나온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 혁명을 일으킨 일명 기존 AOC에 대한 반란자들은 재배하기 까다로운 피노 누아를 가지고 예상 외의 지역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첫 번째 지역은 프랑스 중심부의 화산 지역 오베르뉴 2차 세계 대전 이후 거의 잊힌 포도밭을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조금씩 다시 일구고 있다. 이들이 화산토를 기반으로 생산하는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의 부드럽고 풍성한 맛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약간 스모키하면서 과일 향이 넘치는 개성 강하고 매력적인 피노 누아다.

추천 생산자 Pierre Bauger, Patrick Bouju, Jean Maupertuis, Marie et Vincent Tricot.

두 번째로 떠오르는 새로운 산지는 알자스 리슬링과 게뷔르츠 트라미너로만 알려진 지역이지만 최근 파리 지역 레스토랑 비스트로에서 뜨겁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 바로 알자스산 내추럴 피노 누아다. 화강암, 석회토 등 다양한 알자스의 토양에서 재배되지만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병입한 지 1~2년 지나서 보여주는 과일 향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오래 숙성된 피노 누아는 부르고뉴를 능가하는 것도 꽤 있다.

추천 생산자 Bruno Schueller, Jean Ginglinger, Jean-Pierre Rietsch, Christian Binner, Catherine Riss, André Rieffel, Kumpt et Meyer.
최영선(<내추럴 와인메이커스>저자)

가스테헬미 케이크 스탠드, 이딸라.

부르고뉴의 거장들

르로아
르로아 여사는 세계 와인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태어난 지 15분 뒤 입술에 와인을 대고 세 살 때부터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일화는 믿기지 않지만, 탁월한 미각과 테이스팅 능력을 가졌다. 1955년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 전 세계적으로 희소 가치를 인정받는 와인을 양조하고 있다. 한때 로마네 콩티를 관리하며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비오디나믹 농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며, 포도의 풍미를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와인을 양조한다.

아르망 루소
부르고뉴 지브리 샹베르탱의 아이코닉한 생산자다. 경작하는 포도밭의 상당수가 그랑 크뤼 지역에 위치한다. 설립자인 아르망 루소의 사망 이후 아들이 도멘의 명성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다. 손자인 에릭 루소는 살충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토양 관리 신기술을 접목시켜 포도를 재배했다. 와인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하는 가족의 마음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현재는 에릭의 딸 시실리아 루소가 도멘의 철학을 이어나가고 있다.

에마뉘엘 루제
부르고뉴의 전설적인 와인 메이커 앙리 자이에의 조카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삼촌이자 멘토였던 앙리 자이에의 양조 철학을 그대로 물려받아 1977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앙리 자이에는 포도가 가진 최고의 캐릭터를 끌어내기 위해 작은 면적의 재배를 강조했으며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 에마뉘엘 루제 또한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고 포도를 손으로 수확한다. 건강한 포도밭에서 복합적인 풍미의 포도가 나올 수 있다는 양조 방식을 추구한다.

    피쳐 에디터
    김아름
    포토그래퍼
    김래영, 홍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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