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탐정을 찾는가? | 지큐 코리아 (GQ Korea)

사람들은 왜 탐정을 찾는가?

2020-10-12T16:45:40+00:00 |culture|

사람들은 왜 탐정을 찾는가?

흰색 스니커즈에 청치마, 아이보리색 티셔츠를 입은 이가 카페로 들어섰다. 검고 긴 생머리, 화장기 없는 눈매. 고등학생일까, 대학생일까. 마스크로 절반이 가려진 얼굴이었으나 앳된 분위기는 감춰지지 않았다. “혹시?” 동석한 취재원 김봉주 민간조사사가 두리번거리는 손님을 향해 휴대 전화를 들어 올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오는 미간에서 경계심이 비치는 듯도 했다. 의자 등받이 끝자락을 잡은 채 여전히 크게 뜬 눈으로 김봉주 씨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는 상대에게 김봉주 씨가 편히 앉으라는 손짓을 건넨다. 마침 오늘 의뢰인과 미팅이 있다던 그였다.

김봉주 씨는 경력 4년 차 민간조사사다. 민간조사사, 영문으로는 PI(private investigator). 해외에서는 사설탐정 private detective이라는 의미와 통용된다. 국내에서는 탐정이라는 단어 대신 민간조사원, 민간조사사라는 명칭을 사용해왔다. 한국에서는 탐정이라는 명칭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2020년 8월 4일까지 그랬다. 이제는 다르다. 2020년 8월 5일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신용정보법) 제40조 제5호 신용정보회사 등은 정보원, 탐정 등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라는 법 조항이 헌법에서 삭제됐다. 이제 탐정이라는 명칭으로 영리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센텀민간조사기업이란 사명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회사를 운영해온 김봉주 씨는 사명에 레드캣 탐정 사무소라는 명칭을 추가했다.

탐정. 드러나지 않은 사정을 몰래 살펴 알아냄,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직종을 흥신소, 심부름센터라고도 불러왔다. 김봉주 씨는 흥신소라 불리는 경우를 싫어한다며 제일, 아주, 가장 싫어한다 강조했다. “민간조사사는 다릅니다. 흥신소가 아니에요. 의뢰인과 정당한 비용과 합법적인 사항으로 계약을 맺고 법 테두리 안에서 의뢰 내용을 해결해주는 것, 그게 민간조사사가 하는 일입니다. 불법적인 의뢰는 애초에 받지도 않습니다.” 불법적인 의뢰라면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발가락을 잘라 달라고 하더라고요.” 누구 발가락을? “자기 발가락을요. 보험금 받고 싶다고. 자기 이상한 사람 아니라고. 차마 말 못 할 얘기가 많아요.”

2020년 8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하고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민간조사사 관련 민간자격발급 기관은 27곳이다. 이 중 4곳이 실제로 민간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2020년 6월 기준.) 국내 최초로 2009년부터 ‘PIA(private investigation administrator) 민간조사사’라는 명칭을 만들고 민간자격증을 발급해온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 한 곳만 놓고 봐도 그간 민간조사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4천5백여 명이다.(2020년 1월 기준.) 최소 4천5백여 명의 탐정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

“상담하는 과정부터 보여드리면 좋을 것 같아서요.” 김봉주 씨의 소개로 가까이 마주한 의뢰인 얼굴이 멀리서 볼 때보다 더 말갛다. 예상대로 학생이다. 어떤 음료를 마시겠냐는 질문에 달고나 라테를 말하는 스물한 살. 2000년에 태어난 19학번 대학생. 이 청년은 어째서 민간조사사, 사설탐정을 찾아온 것일까. 상담하는 자리에 동석해도 되는지 얼떨떨해하는 나와 달리 의뢰인은 오히려 덤덤해 보였다. “제 이야기 쓰셔도 돼요. 상관없어요.” 무엇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나, 나는 두 사람을 관찰하기로 했다.

사건일시 2019년 6월 30일.
(의뢰인은 사건이 일어난 날짜를 묻는 김봉주 씨 질문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특정일을 짚었다. 의뢰인 보호차 기사에는 실제 날짜와 다른 날을 적는다.)
사건내용 성폭행. 의뢰인은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 A와 술을 마시다 취해서 의식을 잃은 뒤 다음 날 모텔에서 깸. 동의한 적 없는 성관계가 발생함.
의뢰내용 해당 사건 내용을 익명으로 A의 지인들에게 전달 및 SNS에 유포.

“잠깐만요.” 내가 외치고 싶은 말을 김봉주 씨가 차분히 내뱉었다. “경찰에 성폭행 신고했어요?”, “아뇨.” 의뢰인이 왼손으로 오른손 엄지손톱 주변을 잡아 뜯었다. “왜 안 했어요?”, “그냥….” 뜯을수록 거스러미가 하얗게 일었다. “신고하면 그날 일을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고 들어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성폭행 고발에 10개월 걸린 수사… ‘코로나 때문에?’”(2020년 9월 1일 ), “‘7개월 동안 아무것도’ … 경찰, 성폭행 사건 부실 수사 논란”(2020년 6월 6일 <뉴스투데이>), “청와대, 여중생 집단성폭행 수사 미흡 인정 ‘2차 피해 없도록 제도 보완’”(2020년 5월 19일 <인천일보>)…. 신고 과정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받는 정신적 고통도 있겠지만 믿었던 공권력이 무심히 행하는 2차 가해의 사례를 우리는 종종 목도했다. “그날 일을 몇 번이고 말해야 한다고 들어서” 신고하지 못했다는 의뢰인의 고백을 두고 해보지도 않고 겁먹느냐고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외에도 의뢰인은 올해 초 성폭력 상담센터에 전화했으나 “왜 이제 신고하려고 하느냐, 시기가 너무 늦었다” 식의 대답을 들었다고, 비웃음만 산 것 같다 말했다. 변호사에게 전화 상담했을 때는 “증거가 있느냐, 증거가 없으면 힘들다” 했다고도 전했다. 의뢰인이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라테 속 달고나 한 조각이 가라앉았다.

“결코 오래된 일이 아닌데 왜 이제 신고하려고 하냐니 이상하네요. 증거가 없으면 힘든 싸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맞아요. 그런데 원래 성폭행 사건 자체가 피해 당일에 바로 신고하지 않는 이상, 아니 당일에 신고한다고 해도 증거를 보존하기가 힘들어요. 모텔 CCTV 영상도 이제는 찾기 힘들 거고….” 김봉주 씨가 종이 위에 ‘모텔’을 적다가 가위표를 쳤다. “그래도 방법은 있어요. 일관된 진술. 그날 일을 일관되게 진술만 할 수 있으면 돼요. 그걸로도 증거가 돼요.”

변호사 송혜미 씨도 <법률방송뉴스>에서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성범죄는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발생하거나 갑작스럽게 일어나기에 피해자가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유일한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뿐인 경우에도 그 내용이 시간, 장소, 행위 태양(모습), 전후 상황에 대해 진술이 명확하고 일관된 경우라면 유죄 판결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피해자 진술에 일관성, 신빙성이 있어 유죄로 판결 난 사례가 적지 않다. 말없이 손톱만 뜯던 의뢰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A 주변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요. 그건 안 되나요? 다른 업체는 해준다고 했는데.” 순간 김봉주 씨와 내 눈이 마주쳤다. 다른 업체? 그보다 무엇을, 어떻게 해준다고 했단 말인가?

“A의 전화번호만 있으면 추적해서 지인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다고 했어요. 최근 통화 기록에 여러 번 남은 연락처가 측근일 거라고, 그 번호들로 익명 메시지를 보내면 된다고.” 보통 사람은 애인이나 친한 친구, 가족 등 가까운 관계와 자주 연락한다. 만약 업무적인 관계일지라도 빈번하게 연락하는 사이라면 그런 상대에게 사생활이 노출됐을 때 A는 타격일 것이다. → 그러니 통화 기록을 본다. → 자주 통화한 연락처에 사건 내용을 전송한다. 나름 통찰력이 깃든 사고 회로다. 그런데 A의 통화 기록을 어떻게 본단 말일까?

“그거 불법이에요. 그 업체 어디예요?” 김봉주 씨가 단호히 선을 그었다. 법에 대해 뭘 모르는 내가 들어도 타인의 휴대 전화 통신 기록을 보는 일이 합법적일 것 같진 않다. 수사 기관도 자유로이 조회할 수 없는 게 통화 내역이다. “아마 A의 휴대 전화에 스파이 앱을 깔아서 ‘복제폰’을 만들 거예요. A가 휴대 전화를 쓸 때마다 그 내용이 다른 휴대 전화에 그대로 복제돼요. 그거 불법이에요. 의뢰한 사람도 문제될 수 있어요. 얼마 줬어요? 이미 줬어요? 업체 어디예요?” 김봉주 씨 말투에 옅게 배어 있던 경상도 사투리가 급격히 진해졌다. “1백30만원요. 아직 안 줬어요. 생각해본다고 했어요.” 조금 겁먹은 얼굴로 휴대 전화에서 무언가를 찾던 의뢰인이 김봉주 씨를 향해 화면을 내밀었다. “이 업체예요. 이 사람들 사기예요?” 김봉주 씨가 작게 탄식했다. 상담 내내 꼿꼿이 허리를 펴고 있던 그가 소파에 등을 푹 묻었다. “이 업체… 민간조사사 자격증도 따고 제가 한 실무 특강도 들은 사람인데….”

법에 밝은 독자라면 민간조사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기관이 ‘민간자격발급 기관’이라는 사실에서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다. 자격기본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자격은 4개로 구분된다. 국가 자격, 국가기술자격, 공인 민간자격, 그리고 등록 민간자격. 현재 민간조사사, 즉 탐정 관련 민간자격은 등록 민간자격이다. 법률에 저촉되는 내용이 아니라면 누구든 관청에 등록 후 자격증을 발급할 수 있다는 뜻이다. 훌륭한 민간자격증도 많지만 무분별하게 남발된 자격증이라는 오명을 갖기도 한다. 영리 활동에 탐정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된 만큼 경찰청은 하반기 중 탐정 업무와 관련 있는 민간자격증을 발급하는 단체를 대상으로 해당 자격에 관한 허위·과장 광고 여부를 점검하고, 자격증 발급 사무의 적정성을 지도·감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탐정 명칭을 사용하는 업체 및 심부름센터, 흥신소에 대해서도 특별 단속해 불법 행위를 엄단할 방침이다. 이 특별 단속을 담당하는 경찰청 수사기획과 이연욱 경정에게 물었다. 이제는 탐정이라는 명칭으로도 민간조사 업체가 숱하게 검색되는데 합법 업체와 불법 업체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현재 관련 제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껏 활동해온 민간조사사의 궤적은 무엇인가? “민간조사사 등 탐정업을 특정하는 관련 제도는 아직 없지만, 누구든 어떤 행위를 할 때, 예를 들어 폭력 행위를 하면 폭력방지법 위반이고 개인 정보를 유출하면 개인 정보 보호법 위반이듯이, 하는 행위 각각에 따라 불법과 합법이 가려집니다.” 그랬다. 대한민국에서 탐정이란 아직 명칭만 합법화된, 이제 막 사회와 법망에 한 발자국 디딘 단계인 셈이다.

“그러니까 이른 시일 내 법안이 만들어져야지요. 탐정이 자유업으로 가능은 해졌지만 아무나 탐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지금.” 인사동 화랑 거리,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 대한민간조사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하금석 회장이 믹스커피를 건넸다.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 대한민간조사협회는 앞서 설명한 민간조사사 민간자격발급 기관 4곳 중 한 곳, 그중에서도 국내 처음으로 ‘PIA 민간조사사’라는 명칭을 고안, 특허등록하고 관련 교육 및 민간자격증을 발급해온 기관이다. 김봉주 씨가 취득한 PIA 민간조사사 자격증 발급 기관, 실무자로서 특강을 한 교육 기관이 이곳이다. 코로나 때문에 진행 여부를 논의 중이지만 예정대로라면 9월 중순에 열릴 제32회 민간조사사 자격시험 응시자는 2백30여 명이다. 평균적으로 이 중 70~80퍼센트가 합격한다. 시험은 매해 2~3회 열린다.

“원래 출판 문화 교육 사업을 했어요. 1998년에 당시 한나라당 하순봉 의원이 처음으로 ‘공인탐정에 관한 법안’을 냈을 때 입법하려고 토론회하고 미국에 가서 간담회하고(미국 최초의 사설탐정 사무소 핑커톤 전미탐정 사무소가 1850년에 설립됐다. 미국은 사설탐정 역사가 깊다), 그러는 과정을 함께하게 됐는데 지금은 퇴직한 마포경찰서 이한익 수사과장이 관련 분야를 한번 추진해보면 어떻겠느냐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한 게 지금 22년 됐어요.” 하금석 회장이 지난 세월을 되감듯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황무지에서 민간조사 학술 연구 개발을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에 탐정법 추진하는 데 미쳐가지고 제가 진짜 돈도 많이 까먹고 사무실도 없이 쫓아다니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죠. 그 당시에는 민간조사 관련 자료가 없어서 경찰론, 경찰법, 이런 책을 참고해 교육 자료를 만들다가 이것만으론 안 되겠다 싶어서 외국 전문 서적, 특히 옆 나라 일본의 교육 자료를 수입하고 매년 관련 법과 학술 분야 전문가들 모셔서 한국 탐정 제도 방향 세미나 열고 그러면서 발전해왔죠.” 하금석 회장이 책장에서 협회가 출간하는 교재를 꺼내왔다. , , …. 책 맨 뒤 페이지의 교재 집필·연구 교수진 및 강사진 목록에는 백석대학교 법정경찰학부 경찰학 전공 교수 송병호,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형사과 김희숙, 전 안양동안경찰서 형사과장 강성덕 등 분야 전문가 30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물론 협회에서 민간자격증을 발급하고 있고 그 자격시험을 위한 교재인 만큼 속된 말로 ‘자격증 사업’의 일환일 뿐이라 볼 수도 있다. 김봉주 씨가 한숨을 내쉰 불법 행위 자행 민간조사 업체, 뭘 몰라서 그랬을 거라 믿고 싶다고 여러 번 되뇌게 만든 그 업체도 이곳 출신이다. 협회가 만든 책과 시험이 민간조사사를 배출해낼 수는 있어도 자질까지 검증한다 확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어서 법안이 만들어지고, 관리 범주라도 하루빨리 제정되어야지요. (민간조사사들이) 그동안에도 타 법률에 규제되지 않는 선에서 활동해왔으나 지금은 붕 뜨게 된 거예요. 지금 상태에서는 전과자도 탐정이라고 칭하며 민간조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거예요. 탐정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게 된 건 아주 잘 됐다고 봅니다. 일반 시민에게 탐정이란 단어가 더 익숙하잖아요.” 하금석 회장이 이번에야말로 법제화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탐정에 가까워질수록 근원적인 질문이 선명해진다. 애당초 탐정이 왜 필요한가?

국내 민간조사사가 행한다는 업무로는 이런 일이 있다. 피해자 요청으로 뺑소니 차량 목격자 및 증거 자료를 조사해 사실 확인을 해주는 업무. 민원인의 요청으로 미아 찾기 및 가출인 소재를 파악해 찾아주는 업무. 의뢰인의 수임을 받아 채권·채무 관계로 인한 소재 파악 및 정보·자료 수집 업무. 각종 사건·사고·정황증거 자료 수집 및 사실 확인 업무…. 우리는 사건·사고·피해가 발생하면 경찰에 신고하라 배우고 법적 분쟁이 일어나면 변호사에 의뢰하라 조언받아왔다. 국민에게는 경찰이 있고 변호사가 있다. 범죄 수사의 권한은 수사기관에 있다. 민간조사사, 탐정이 하는 업무는 원래 수사기관과 법조 단체가 하고 있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 기회라고 봅니다.”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겸 법무대학원 원장인 강동욱 교수가 교내를 걸으며 답했다. 수화기 너머 멀리 학생들의 인사 소리가 들렸다. 동국대학교는 2018년 1학기부터 특수대학원인 법무대학원 내 8개 석사 학위 과정 중 하나로 탐정법무 전공을 신설해 운영해오고 있다. “그때가 제20대 국회일 때죠. 2016년에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이 ‘공인탐정법안’, 이완영 의원이 ‘공인탐정 및 공인탐정업에 관한 법안’을 내는 등 탐정법이 거론됐어요. 그 과정에서 우리(동국대학교)가 선제적으로 관련 전공을 만들면 좋겠다, 탐정 관련 법과 제도에 대해 이론 쪽 배경을 뒷받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탐정 업무가 다 직간접적으로 법과 관련되는 일이잖아요. 실무자들이 법 지식을 쌓으면 불법에 대해 알 수 있고 적법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탐정에 대해 지적 수준을 높여주는 역할이죠. 의외로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주시더라고요.” 동국대학교는 2020년 1학기부터 일반대학원에 탐정법무 박사 과정도 신설했다.

기업 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민간조사사 장재웅 씨도 “시장성을 본” 케이스다. 웅장컨설팅 대표 장재웅 씨는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기업에 고충이 많다는 사실을 느끼고 창업했다. 그 고충이란 이런 거다. “크게 두 가지 분야를 다룹니다. 기업윤리실 업무와 탐정 서비스. 대기업은 기업윤리실과 법무팀이 내부에 있는 데 반해 중소기업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계약서 검토라든지 발주처에서 체납이 발생해 생긴 리스크에 대처한다든지, 그런 기업윤리실 업무를 컨설팅해준다고 보시면 됩니다. 로펌, 노무사, 회계법인과 계약 맺고 인프라를 구축해놨습니다. 기업윤리실 업무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탐정 업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탐정 서비스는 좀 더 내부 기밀에 대한 내용이에요. 가령 내부에 산업 스파이가 있다고 의심되거나 계약처의 비위 행위가 의심될 때 조사하는 거죠.” 장재웅 씨는 탐정 서비스가 적용될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표현했다.

“무궁무진합니다.” 강동욱 교수도 같은 말을 했었다. 차 문을 닫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고요해진 분위기에서 강동욱 교수가 말을 이었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외국에서는 경찰에서 미진한 부분을 탐정에 수사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탐정이라 하면 불륜 조사라든지 범죄 수사에 대한 보조 정도만 생각하는데 할 수 있는 영역 자체가 매우 많습니다. 탐정 업무라는 게 사실은 그동안 경찰이 여러 여건상 소홀했던 일들을 하는 거거든요. 대표적으로 성인 실종은 경찰에서 수사를 거의 안 해준다 그럽니다. 얼마 전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멀쩡하게 수의과대학 다니던 딸이 마지막 학기 종강 파티 후 사라졌습니다. 그게 14년 전 일입니다.”

“사람 찾아달란 의뢰가 제일 많아요.” 김봉주 씨가 얼음이 다 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마셨다. 의뢰인이 카페를 떠난 후였다. 다른 업체에서 해준다는 내용은 불법이라고, 고소장을 내면 A는 조사받으러 수사기관에 들락날락해야 해서 일상에 지장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도 알게 될 수밖에 없다고, 그런 방법도 의뢰인이 원하는 대로 ‘평판을 가장 두려워하는 A가 괴로울 수 있는 일’이라고, 변호인과 연계해줄 테니 합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해보자고. 김봉주 씨가 의뢰인에게 건넨 말들이 아직 주위를 맴도는 듯했다. 가만히 테이블을 내려다보다 떠난 의뢰인은 어떤 선택을 할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굳이 만남 장소를 서울 모처로 잡은 이유, 그 이유를 찾아 나섰다. “한 달 전에 사라진 딸을 찾아달라는 의뢰예요. 탐문해봤는데 여기 카페 근처 빌라에서 친구랑 지내고 있다는 것 같거든요. 정말 여기 살고 있는지 오늘 그걸 확인하는 거예요.”

김봉주 씨가 운전하는 차가 지나가자 빌라 근처에 주차된 소형차가 브레이크등을 깜빡인다. “우리 요원 차예요. 제게 이상 없다고 신호 보내는 거예요. 현장에 나올 때는 보통 2인 1조로 움직입니다. 저 차에 남자 요원 1명, 여자 요원 1명이 타고 있어요. 중년 부부 콘셉트예요.” 김봉주 씨가 오늘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막상 잠복 과정을 설명하자니 멋쩍은 모양새다. 이렇게 잠복하고 있는 게 불법은 아니냐는 질문에 김봉주 씨가 능숙한 운전 실력으로 골목 모퉁이를 돌며 말했다. “만약 대상자가 집에 거주하고 있는지 우편물을 뜯어 확인한다든지, 불안감을 느낄 만큼 미행한다든지, 그러면 불법의 소지가 있죠.” 실제로 현행법상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리거나 잠복하는 경우는 제재하기 어렵다. 우편물을 뜯어보는 건 비밀침해죄에 해당하지만, 쓰레기 더미에서 나오는 우편물과 택배 송장을 열어보는 건 처벌 대상이 아니다. “이건 그냥 기다리는 거예요. 딸이 어디에 있는지, 무사한지 걱정된다는 의뢰인에게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확인하는 과정이에요. 혹시라도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의심스럽지 않도록 요원들도 평범한 아빠, 엄마 같은 분들로 설정한 거고요.” 이번 실종자, 정확히는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가출한 스무 살 여성의 거처를 찾는 데는 5일이 걸렸다. 불법 행위는 없었다는 단언 아래 어떻게 찾았는지는 김봉주 씨의 영업 비밀이라고 했다.

이번 취재 중 내가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아마 “그거 불법은 아닌가요”일 거다. 대한변호사협회도 비슷한 질문을 던져왔다. 15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지난 20년 동안 탐정·민간조사업 관련 법안이 13차례 발의됐다 번번이 폐기된 배경에는 대한변호사협의 반대가 주효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인 변호사 모 씨는 탐정업 법제화에 대한 질문에 단박에 답했다. “반대합니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이란 어두가 나왔다. “뭐가 더 생기면 생길수록 소비자에게는 비용 문제가 있을 거예요. 변호사만 있을 때는 변호사 수임료만 지출하면 되는데 탐정을 고용하면 또 탐정에게 지출하는 비용이 생기겠죠. 탐정으로 해결이 안 되면 또 변호사를 고용하고…. 되풀이될수록 결국 소비자에게 손해 아닐까요.”

일부분 동의하는 바다. 탐정 업무 비용은 민간조사사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변호사 수임료보다 조금 낮거나 엇비슷한 수준이다. “탐정이란 합법적인 흥신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위법 행위의 위험도가 높습니다. 그러니까 더욱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법이 있다고 위법 상황이 없어지면 세상에 나쁜 일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탐정업 법제화에 앞으로도 끝까지 반대한다는 변호사 모 씨의 인사를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사람 찾아달라는 의뢰를 지금까지 40~50여 건 받았는데 100퍼센트 해결했습니다. 범죄와 관련된 실종 케이스는 없었어요. 다행이죠. 대부분 가출한 자녀나 오래전 인연을 찾아달라는 의뢰였어요.” 룸미러로 빌라 입구가 보이는 곳에 차를 주차한 김봉주 씨가 골목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혹시 저이가 찾는 사람일까, 길 위 흔적들에 눈을 둔 채 나는 낮에 만난 젊은 의뢰인을 떠올렸다. 오른손 엄지손톱을 잡아 뜯는 왼쪽 팔에는 긁어대서 난 상처로 보이는 흉터가 점점이 박혀 있었다. 단순한 피부 질환인지, 생각할수록 분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의 잔상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의뢰인이 말한 사건의 내용이 얼마나 진실한지 그 역시 알 수 없다. 법이 있어도 나쁜 일은 일어난다. 법이 있어도 고통은 계속된다. 법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법이 있어서 다행인 일도 있다. “사실 민간조사사를 찾는다는 건 해볼 때까지 다 해봤다는 의미거든요. 경찰도 찾아가 보고 변호사도 찾아가 보고 뭐든 해봤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를 찾는다는 건….” 그러니 물어야 한다. 사람들은 왜 탐정을 찾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