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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 남자들

2020.10.20GQ

1. 그의 첫인상은 좋은 편이다. 약간 넓은 삼각형 코와 고동처럼 단단한 귀, 균형이 잘 맞는 커다란 체격. 그에게는 고전적인 풍모로서의 남성적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가 트레이너로 있는 헬스클럽에 등록했다. 그의 교습 방법은 ‘보여주고 깨닫게 하리라’ 스타일이어서, 매일 스스로 그날 해야 할 루틴의 횟수를 혹독하게 늘리고 목표는 반드시 해냈다. 가슴 근육이 줄어든 것을 한쪽 눈을 잃은 것보다 더한 결핍으로 여길 것 같은, 석연치 않은 의문은 있었지만 보고 있으면 어떻든 각오가 생기긴 했다. 어느 날 그가 뭔가를 설명하려고 번쩍 든 팔에 맞아 내동댕이쳐진 나는 운석처럼 땅에 꽂혔다. 사과의 의미로 점심을 사겠다고 해서 며칠 후 그를 밖에서 만났다. 운동을 마친 그는 벌개진 얼굴로 차 안에 있었는데 도널드 덕처럼 번잡하고 분주했다. 한 손으로는 핸들을 지탱한 채 허벅지 사이에 끼워 넣은 텀블러에 가루를 쏟고 우유를 붓는 동시에 끼어들기와 좌회전, 불법 유턴까지 시도했다. 화창한 휴일, 시민들을 경악하게 한 교통사고 참사 현장에서 허벅지 사이에 텀블러를 끼운 남자와 함께 발견되고 싶지는 않았다. 간신히 그에게서 뺏은 텀블러를 힘차게 흔들었으나 뚜껑이 덜 닫혔는지, 부정형의 뿌연 액체는 순식간에 차 천장으로 솟구쳤다. 그 순간 신선한 우유에만 생긴다는 왕관 모양의 결정을 본 것도 같았다. 당장 먹어야 하는 단백질 파우더를 잃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미안함 대신 의심이 생겼다. 혹시 집에 가면 벌거벗은 몸에 앞치마만 두르고 있는 성도착자이거나 오븐용 장갑을 끼고 아내를 두들겨 패는 변태는 아닐까? 아니란 법도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몸에 집착하는 이유가 또 있을까. 몰라. 알 수가 없어.

2. 그 목소리를 뭐라고 하면 좋을까. 냉담하게 떨리는 이상한 발성. 머리에 커다란 뿔이 솟은 사슴처럼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Knockin’ on Heaven’s Door’라면 무척 많이 들었지만 건즈 앤 로지스도 에이브릴 라빈도 밥 딜런도 그렇게는 안 불렀다. 노래를 듣는 동안 심장이 멍들 것 같았다. 민요와 블루스와 한숨을 섞은 것 같은 ‘안토니 앤 더 존슨스’의 노래를 하필이면 새벽에, 그것도 마음이 무너지는 계절에 다시 들었다. 거의 10년 만에. 밴드의 보컬인 안토니 헤가티는 암스테르담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열두 살 때 처음 노래를 만들었는데 짙은 화장을 한 사람들이 거대 거미에게 저항하는 내용이었다. 어른이 되고 뉴욕에 와서 ‘검은 입술 퍼포먼스 컬트’란 밴드를 결성, 게이와 트랜스젠더, 무섭고 더러운 유머로 가득한 ‘피라미드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가 보이 조지와 루 리드, 앤 드뮐미스터의 팬이란 것도 새삼 생각났다. 사람이 얼마나 아픈 일을 겪으면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참 생각했다. 참, ‘Hope There’s Someone’도 좋다. 한때 너무 좋아서 일부러 안 들었는데 그 기분은 굳이 설명하자면 아주 예쁜 사진은 액자에 넣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헛소리.

3. 버드나무처럼 체격이 가늘고 팔다리가 길며 머릿결이 귀엽다. 톰 크루즈처럼 이를 드러내고 좋아 죽겠는 얼굴을 하지도 않고, 휴 그랜트처럼 어리숙한 듯 우아해 보이려는 제스처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고 더러운 가죽 재킷을 입고, 밀푀유(기껏해야 디저트 이름이지만) 같은 아름다운 발음을 한다. 섹스 신에 관대하고 엉덩이가 작고 영화 속에서도 잘 웃지 않는다. <사랑해 파리>의 구스 반 산트 감독 편에 나온 가스파르 울리엘의 모습을 넋을 놓고 봤다. 눈을 반쯤 가린 앞머리에 회색 저지 톱, 세련된 가죽 블루종을 입고 수다나 떨다 들어갔지만, 영화가 끝나니 그 얼굴만 또렷했다. 외울 만큼 많이 본 영화라서 영상을 틀어두고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었다. 극단적으로 낮은 고무다리 의자에 앉아 몸을 윙윙윙 돌리는 기괴한 몸짓, 허공을 쓰다듬는 것 같은 이상한 손동작이 생각났다. 정신적으로 황폐했던 그의 기행들도. 자고 난 호텔방의 열쇠를 죄다 모으고 이스라엘 항공사의 비행기만 타며, 스타인웨이 피아노만 치는 것까지 주로 편집증적인 행적들. 고상하면서도 기품 있는 좁은 얼굴, 여윈 몸에 어울리는 흰 셔츠와 수트 차림의 지적인 이미지보다 글렌 굴드의 외모를 말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한여름에도 끼고 다니던 장갑이다. 예술가의 집착, 나약함과 불운을 한데 모아 뭉친 우울의 실로 짠 털장갑. 생각하니 하도 가엾어서 그가 아침에 오면 차를 끓여주고 낮에 오면 창문을 열어주고 밤에 오면 초를 켜주고 싶다.

    편집장
    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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