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의 기쁨과 슬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재택근무의 기쁨과 슬픔

2020-10-19T23:37:36+00:00 |culture|

출퇴근이 사라지고 집이 곧 일터가 된 뉴노멀 시대. 누구도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혼란한 상황 속에서 재택근무는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똑똑하지만 얄미운 구석이 있는 친구 같았던 알랭 드 보통이 처음으로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 역시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이면 베개에 얼굴을 묻고 훌쩍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다. 몇 년 전 TED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 경우에는 커리어의 위기가 보통 일요일 저녁에 찾아오곤 합니다. 해가 질 무렵이 되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커지기 시작하고,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훌쩍이게 되죠.”

무수히 많은 일요일 밤에 베갯잇을 적셔본 또 한 사람으로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출근 하지 않는 삶이다. 그것이 일하지 않는 삶은 아니다. 내가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일이 아니라 출근이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출근을 통해 진입하게 되는 밀도 높은 세계, 일을 기반으로 끈끈하게 붙어 있는 점도 높은 공동체. 그 안에서 나는 숨 쉬기 어렵다. 상당수의 인구가 그러하듯이. 파티션을 산소 호흡기쯤으로 여기며 근근히 버티는 동안(파티션이 창의성을 떨어 뜨린다는 주장에는 분노를 느낀다.) 나의 화두는 심플해졌다. 집에서 일하기.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집에서 일하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기술은 일종의 권력이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도 나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탐구 중이다.

그런 점에서 전 세계가 거대한 재택근무 실험 중인 요즘의 상황이 일면 흥미롭다. 내 주위만 해도 거의 모든 사람이 ‘공식적으로’ 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현재까지의 상황은 혼란, 그 자체다. 수렵 사회에서 농경 사회로의 전환만큼이나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엉겁결에 줌 Zoom 앞에 앉게 된 사람들은 근미래의 노동 환경을 점치기에 앞서 당장 눈앞에 놓인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단 재택근무 시에는 뭘 입어야 하나? 셔츠는 과하고, 목 늘어난 티셔츠는 너무하다. 나의 지인은 과하거나 너무한 옷밖에 없다는 핑계로 ‘적당한’ 실내복을 새로이 사들였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립 제품 매출이 하락했다거나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며 하의보다는 상의가 더 잘 팔린다는 분석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모르겠지만(CJ 대한통운이 택배 물량 분석을 토대로 내놓은 리포트다), 주 5일 내내 수트나 원피스를 갖춰 입어야 하는 직종의 직장인들이 느끼고 있을 해방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불과 2주 동안의 재택근무 기간에 구두를 안 신은 것 만으로 발이 말랑해졌다거나, 재택근무를 시작한 기념으로 좋은 양말을 들였다는 트위터 멘션도 떠 올랐다. 업무 시간 동안 양말을 신고, 퇴근 시간이 되면 양말을 벗는 재택 플로를 만들었다는 누군가의 의식은 신성하기까지 했다. 한 친구는 재택근무의 최대 난제를 묻자 “점심 메뉴”라는 단 한마디를 보내왔다. 그동안 집에서 좀처럼 요리를 하지 않았는데, 자신과 배우자가 동시에 집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요리에 대한 부담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계기로 식생활을 업그레이드 하여 건강하고 아름다운 런치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람도 많다.) 또 하나의 난제로는 고양이가 있다. 알다시피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지만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니까. 대다수의 사람은 화상으로 진행되는 회의에 동료의 고양이가 함께하는 것을 이미 받아들인 상태다.

물론 이보다 진지하고 중요하며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산재해 있다. 나의 경우만 해도, 방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는 아이와 길고 긴 대화를 사랑하는 남편,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손목을 사냥감쯤으로 여기는 고양이가 있는 공간에서 일을 하려면 모두가 깊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집에서 일할 공간을 확보할 수 없는 개인들의 근무 환경은 누가 보장하나?(스위스에서는 이미 회사가 재택근무자의 주택 임대료 10퍼센트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난 적이 있다고 한다.) 일과 사생활의 분리는? 화상 회의를 빙자한 온라인 감시는? 끊임 없이 울려대는 메신저는? 성과 중심 평가의 공정성은? 분명히 야근을 했는데도 야근 수당을 올리기 눈치 보이는 이유는? 누구도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지 않은 혼란의 시대다.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발표했는데, 200장이 넘는 두툼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일하다 효율이 오르지 않아 카페에서 일하면 복무 위반 소지가 있다”거나 “재택근무 중 자택 방문자 확인, 우는 아이 달래기, 혹서기 샤워 정도는 회사가 양해해야 한다” 등의 공허한 항목들로 채워져 있다. 차라리 문자 만으로도 소리치는 듯한 효과를 주는 대문자의 나열을 업무 메신저상에서 금지했다는 한 외국 기업의 매뉴얼이 좀 더 실용적으로 느껴진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일과를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택근무를 산뜻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노동 환경에서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비대면 업무 여건이 비교적 잘 구축된 IT 업계에서 일하는 나의 친구는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 “나도 꼰대가 된 건지, 재택이 힘들어. 뭐가 힘드냐고 따져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힘들어.” 그녀는 나쁜 흐름을 끊어내기 위해 하루에 20분씩 산책도 하고, 아무도 없는 회사에 한 번씩 가기도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치 디톡스를 통해 체질 개선을 하듯이 말이다. 느슨하게 풀어져 있는 날과 죽기 살기로 밤을 새우는 날을 반복하며 괴로워 하고 있는 한 후배는 호텔 업계에서 내놓고 있는 ‘워캉스(워크+바캉스)’ 프로그램을 이용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무런 방해 요소가 없는 호텔에서 일하겠다는 것인데, 일의 의미가 무색하게도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많은 하루가 될 것이라는 사실만 제외하면 완벽한 계획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큰 화두는 생산성일 것이다. 지난 6개월간 전면적 재택근무 방침을 시행했던 미국의 금융기업 JP모건체이스는 얼마 전 생산성 하락을 이유로 사무실 복귀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분석 결과, 젊은 직원일수록, 월요일과 금요일일수록, 창의성이 요구되는 직무일수록 생산성이 하락했다고 한다. 성과 중심의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는 넷플릭스의 CEO조차 직접 대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트위터 CEO 잭 도시는 “직원들이 원한다면 영원히 재택근무를 해도 좋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구글 CEO 순다르 피차이는 최근 인터뷰에서 “사무실을 재배치하고 직원에게 장기적인 재택근무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더 많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미래의 근무 형태에 대해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기존 방식과 실험 결과를 섞어놓은 혼합형일 것이라는 것. 혼합의 형태는 물론 기업에 매우 유리하게 빚어질 테고.

이처럼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재택근무 실험은 몇 가지 화두를 던진다. 우리가 강박적으로 쫓고 있는 생산성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회복해야 할 노동의 리듬감은 무엇인가? 자유 의지를 기반으로 설계해볼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기까지 적어 내려가다 보니 앞서 언급한 알랭 드 보통 TED 강연의 주제가 생각났다. 그 강연의 주제는 재택근무가 아니라 성공이었다. 그는 성공에 대해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성공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이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성공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해봐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성공적인 삶은 출근하지 않는 삶이다.
글 / 김지선(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