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훈 "변화하기로 결심했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김지훈 "변화하기로 결심했어요"

2020-10-22T15:20:23+00:00 |interview|

명백해졌다. 김지훈은 가두면 안 된다. 자유를 쥔 그가 비로소 날카로운 기상을 드러냈다.

칼라리스 재킷, 헨리넥 니트, 모두 피어 오브 갓 ×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 셔츠, 블랙 팬츠, 모두 벨루티.

저지 슬리브리스, 몽클레르 + 릭 오웬스. 블랙 데님, 8 at yoox.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가죽 점퍼, 티셔츠, 모두 피어 오브 갓 × 에르메네질도 제냐. 체크 팬츠, 벨루티. 앵클 부츠, 토즈.

보라색 터틀넥, 벨루티. 벨벳 팬츠,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몸의 체지방률이 5퍼센트 수준이라는 말이 사실인가요? 관리를 잘했을 때 그 정도였어요. 오늘 측정해보니 8퍼센트가 나왔어요.

그런 몸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요? 올해 초 화보를 위해 몸을 만들었어요. 다이어트를 할 때마다 끼니를 거르며 먹고 싶은 음식을 참는 게 힘들어 다른 방법을 찾던 중 간헐적 단식을 접하게 됐어요. 일정 시간 공복을 유지하는 식사법이라고 해서 신기했죠. 한 달을 해보니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간헐적 단식을 꾸준히 지속하고 있어요.

날렵해진 외모도 인상적이에요. 드라마 <악의 꽃>에서 연기한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두고 “김지훈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굉장히 많았죠. 간헐적 단식의 영향도 있고 뒤늦게 젖살이 빠진 것 같기도 해요. 예전에는 화면에 실물보다 통통하게 나와 제 모습이 별로 마음에 안 들었어요. 비로소 제가 원했던 얼굴에 가까워졌어요.

그 머리, 언제부터 기른 거예요? 작년에 일을 쉬는 동안 자르지 않았더니 주위 반응이 괜찮더라고요. 이미지 변신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장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악의 꽃>에서 맡은 연쇄 살인마 ‘백희성’이 기나긴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는 인물이었어요. 긴 머리라는 설정이 잘 어울릴 것 같아 감독님께 의견을 냈어요.

중후반에 등장했지만 백희성의 존재감은 대단했어요. 처음 받은 대본에는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내용만 있었다는데 어떤 확신을 갖고 있었나요? 순전히 대본 때문이었어요. 탄탄하고 짜임새가 있어 좋은 작품이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후반부 극의 중심을 쥐고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캐릭터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사실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어요. 드라마는 시청률이나 상황에 따라 기획 의도와 다르게 전개될 때가 많거든요. 대본을 믿고 모험을 한 거예요.

이준기 배우는 인터뷰에서 백희성의 정체가 드러난 이후 “역시나 칼을 갈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저보다 먼저 등판한 다른 선수들이 자기 몫을 잘 해내는 것을 보면서 부담감, 책임감을 느꼈어요. 그러다 백희성이 깨어난 이후의 대본을 분석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즐거움을 느꼈고, 촬영하는 동안 좋은 평을 들으면서 연기에 대한 확신이 생겼어요.

캐릭터를 위해 소설 <종의 기원>을 참고했고, 독특한 질감의 목소리 톤은 존 말코비치에게 영감을 얻었으며, 악역으로 인상 깊은 영화는 거의 다 섭렵했다고 들었어요. 최고의 악역은 누구라고 생각해요?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가 끝판왕이죠.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그의 연기를 보고 나면 정답이라고 느껴져요. 원작소설에 묘사된 한니발의 존재감은 그 정도로 강렬하지 않아요. 평면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배우의 일이라면 누구도 그보다 완벽하게 연기할 수 없었을 거예요. 물론 앤서니 홉킨스는 본인 연기기 1백 퍼센트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그렇게 비정상적인 감정을 오가며 휘몰아치듯 연기하고 나면 어때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걸 느꼈어요. 대본에 묘사된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하거든요. 또 어두운 감정을 유지하려고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기도 했어요. 악역을 연기한다는 건 외로운 작업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나면 허무함이 클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제 연기에 관심을 가져주고 좋은 반응을 보여줘서 기분 좋게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있어요.

종방 직후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솔직히 감독님의 안목을 재평가해야 할 만큼 김지훈이 사이코패스 캐릭터에 완벽하게 어울릴 줄 몰랐어요. 반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독님이 처음부터 악역의 이미지와 동떨어진 배우를 원했어요. 또 큰 비중 때문에 신인보다 검증된 기성 배우를 우선순위로 뒀고요. 결국 저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와 연기 경력이 이 역할과 잘 맞아떨어졌죠.

어제 일처럼 말하고 있지만 고착화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은 갈증을 견디며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알다시피 주말 드라마와 일일 연속극을 많이 했고, 공교롭게 그런 작품들이 잘되면서 ‘주말극 배우’라는 이미지가 생겼어요. 그 틀 안에 저를 가두거나 제 한계를 좁히는 시선이 많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노력해도 깨기 힘들 정도로 이미지가 굳어졌어요. 열심히 달리다가 문득 돌아보니 제가 원하는 곳에서 멀어진 것을 그제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멈추고 기다렸어요. 제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기회를 만나려고.

주말극이나 기존의 이미지를 답습하는 작품들을 거절했다면서요. 하던 일을 안 하게 되면서 꽤 답답했겠단 짐작을 했어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하고 싶은 마음이 크더라도 본의 아니게 일을 하지 못하는 시간이 1년, 2년 길어지면 하루하루가 스트레스로 다가와요. 저는 원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낙천적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일을 쉬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하루는 두통이 심해지고, 다른 날은 몸살을 앓고, 이유 없이 다리가 아프고. 술, 담배보다 스트레스가 몸에 더 해롭더라고요.

그런 상황이라면 스스로 타협할 법도 한데요.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만족했다면 타협을 했겠지만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어요. 다시 일하고 싶은 간절함보다 이미지를 깨고 싶은 의지가 더 컸던 것 같아요. 평생 연기를 할 건데 틀에 갇혀 자유롭지 않게 연기해야 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게 뻔해요.

새삼스레 묻고 싶어요. 만족보다 갈증이 더 컸겠지만 좋았던 순간들도 있겠죠? 언제 처음 확실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나요? 2007년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의 시청률이 많이 나오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어리고 부족한 생각이죠. 배우도 성장해요. 이십 대에는 생각이 짧고 경솔한 부분이 있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건 어떤 이들은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의 저를 판단한다는 거예요.

<악의 꽃>은 바로 그 선입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주인공 도현수(이준기)는 연쇄 살인마의 아들로 평생 낙인이 찍혀 인생이 망가지고 시련을 겪어요.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어요. 어찌 보면 선입견과 차별적인 시선을 극복하는 이야기의 작품을 통해 저 역시 배우 김지훈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많이 깰 수 있어서 의미가 커요. 하지만 완전히 깨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균열이 크게 생겼을 뿐이죠.

얼마나 노력을 더 해야 할까요? 양질전환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양적인 축적이 있어야 어느 단계에 이르러 질적인 도약과 변화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물은 99도에서는 끓지 않지만 1도가 더 오르는 순간 수증기가 돼요. 노래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크게 늘지 않다가 갑자기 일취월장할 수 있어요. 노력이라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어느 순간 성과가 나타나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악의 꽃>으로 질적인 전환을 이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이 작품을 계기로 어떻게 달라질까요? 글쎄요, 저는 오래 기다렸던 시간을 통해 이미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소신과 원칙을 갖고 있어요. 첫 번째는 제가 진심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연기, 두 번째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백희성을 연기하기 위해 특별히 어떤 점에 신경을 썼냐는 질문을 받는데 매번 같은 자세로 모든 걸 쏟아 부었어요. 그런데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정작 작품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할 수 있어요. 최근의 몇몇 작품이 그랬죠. 저는 열심히 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이 “활동 안 해요?”, “쉬고 있어요?”라고 할 때마다 허무했어요. 이를 계기로 스스로 변화하기로 결심했어요.

긴 머리가 아쉬운데 자르지 않고 연기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아무래도 사극이 어울리겠죠. <다모>에서 김민준 선배님이 연기했던 역할이 떠올라요. 냉철하고 과묵하면서 순정을 지닌 검의 고수인데 애틋한 멜로 감성으로 인기를 얻었어요.

백희성을 연기하면서 “무섭다”, “섬뜩하다”라는 반응을 좋아했다고 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가장 무서워하는 건 뭔가요? 겁이 없는 편이에요. 공포영화도 가볍게 보고 귀신도 안 무서워요.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 무섭게 여긴 게 하나 있어요. 바퀴벌레는 쳐다도 못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