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자인을 소유한다는 것의 의미

2020.11.01GQ

예술 작품처럼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디자인 가구를 컬렉팅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디자인 가구를 소유하는 일의 즐거움에 대하여.

프랑스 남부 부아부셰 영지 Domaine de Boisbuchet의 샤토에 어느 노신사가 살고 있다. 독일 귀족 가문 출신인 노신사의 이름은 알렉산더 폰 페게작 Alexander Von Vegesack. 어느 여름 부아부셰 영지에서 일흔을 훌쩍 넘긴 그를 만났고, 그는 가장 근사하고 인상 깊은 디자인 컬렉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70년대 함부르크시의 도시 문화 활성화를 책임지는 일을 맡았던 그는 초기 토넷 체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토넷 체어는 183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마이클 토넷이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벤트우드’ 공정을 발명해 생산한 의자다. 토넷 체어 No14.는 현재도 여전히 생산되고 있는 것은 물론, 초기 오리지널 모델은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옥션에서 거래되기도 한다. 알렉산더는 일찌감치 토넷 체어를 수집하며 벤트우드 가구 컬렉터이자 전문가가 되었고, 토넷 박물관을 설립하며 디자인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1989년에 이르러서는 비트라와 함께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을 설립했다.

그는 뮤지엄의 초대 관장으로서 운영에 깊이 관여했는데, 비트라 가구만을 전시하려던 회사에 반대하며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가구 컬렉션을 전시해야 함을 강력하게 추진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2010년까지 박물관을 이끌며 디자인 및 건축 분야의 필수 장소로 자리매김 시킨 동시에 1986년에는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프랑스 남부의 한 영지와 샤토를 구입해 매해 여름 세계적 디자이너와 건축가를 초대해 참가자들과 함께 담론과 실험을 펼치는 ‘부아부셰 워크숍’을 설립한 것이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곳을 구입하고 운영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나의 가구 컬렉션 중 많은 부분을 팔아야 했어요. 하지만 모던 디자인이 태동하고 발전해온 과정을 지켜본 나의 경험과 디자인의 가치를 공유하는 곳을 만들겠다는 꿈을 마침내 이룰 수 있었기에 행복했죠.” 가구 컬렉팅으로 시작해 박물관을 열고 디자인 커뮤니티를 한 곳으로 모으는 가장 특색 있고 유명한 워크숍이라는 일생일대의 꿈을 이룬 그의 표정은 진정 행복해 보였다. 전설 같은 디자이너 찰스 & 레이 임스 부부와도 막역한 사이였던 알렉산더는 부아부셰 워크숍을 처음 만들 때 찰스 임스의 말을 떠올렸다고 했다. “찰스는 종종 이렇게 말했죠. ‘당신에게 즐거운 일을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저는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말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한다. 디자인 가구든 예술 작품이든, 수집의 즐거움이란 얼마나 크고 중대한 일이 될 수 있는지.

알렉산더의 꿈결 같은 모던 디자인의 역사와 인물의 이야기에서 돌아와 다시 서울. 파리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박원민 작가를 만났다. 그는 아트 퍼니처 전문 갤러리인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 소속 작가로 부쩍 작업과 관련된 뮤지엄 및 여타 협업 프로젝트로 잠시 서울을 방문했다. 카펜터스 워크숍 갤러리는 웬델 캐슬을 비롯해 론 아라드, 나초 카르보넬, 스튜디오 욥, 마르텐 바스 등의 쟁쟁한 소속 작가 라인업을 지니고 있으며 칼 라거펠트, 릭 오웬스, 버질 아블로 등의 패션 디자이너가 만든 아트 퍼니처도 선보이고 있다. 파리 마레 지구와 런던 메이페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 각각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여파가 크지는 않은지 물었다. “전시가 살짝 주춤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컬렉터들의 수요는 높아요. 갤러리에서는 내년에 이탈리아 시실리의 어느 대지를 구입해 전시 공간과 레스토랑, VIP를 위한 빌라를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에요. 저도 그 공간의 한 부분 디자인을 맡았고요. 아트 퍼니처는 화이트 큐브보다는 주거 공간에 배치했을 때 더 와 닿게 되지요. 갤러리의 VIP와 작가들을 초대해 공간에 자연스레 녹아든 아트 퍼니처를 선보이게 될 거예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랑 카날의 유서 깊은 궁전 ‘Galleria Giorgio Franchetti alla Ca ‘d’ Oro’의 장엄한 공간에서 작가 14명의 샹들리에와 의자, 커피 테이블과 시계까지 전시해서 주목받은 갤러리의 과감한 선택답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장면들을 볼 수 있을까? 밀라노에서 수학하고 프랑스에서 경험을 쌓은 공간 기획자 김도현 대표는 한탄 섞인 어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트 퍼니처가 지금 분명 흥미롭고 떠오른 대상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주거 문화 때문에 한계가 있기도 해요. 해외의 경우 컬렉터들이 세컨 하우스를 많이 소유하고 있고 도시에도 층고가 높은 주거 공간이 많은 반면, 우리나라는 획일적인 아파트 문화 때문에 아트 퍼니처, 특히 사이즈가 조금 큰 작품을 소장하기는 어렵죠. 해외처럼 아트 퍼니처만을 전문으로 소개하는 갤러리가 드물고 아트 마켓과 비교해서 아직 비중이 적은 이유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트 퍼니처를 컬렉팅하기보다는 차라리 전시와 공간을 경험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 또한 분명 즐겁고 유의미한 일이다. 결국 취향과 보는 눈을 높여줄 테니까.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컬렉터블 디자인, 즉 예술 작품처럼 수집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일상에서 사용하는 디자인 가구라면 또 상황은 달라진다. 10여 년 전 라이프 스타일 에디터로 한참 현장을 취재하고 다닐 시절 화두는 뭐니 뭐니 해도 ‘짝퉁 가구’였다. ‘어디선가 본 듯한 가구가 분명 멋져 보이기는 하는데, 가격이 비싸네?’ 이렇게 생각한 사람들은 겉모양만 똑같이 카피한 을지로의 짝퉁 가구를 사기 시작했고, 기자들 사이에선 어느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짝퉁 가구와 조명을 버젓이 설치해놓았더라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 실정에 어두웠던 해외의 오리지널 가구 회사들도 짝퉁 가구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눈치채곤 일제히 반발하며 적극적 대응에 나섰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라이프스타일과 디자인 가구에 대한 관심은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높아지면서 이제는 가짜 열 개 보다는 제일 좋아하는 가구 하나를 갖겠다 하는 인식이 자리 잡힌 것으로 보인다. 그뿐 인가. 한국 시장의 판매율이 급성장하자 유럽 유수의 오리지널 가구 브랜드들이 저마다 화려한 쇼룸을 열고 홍보에 주력하는 등 급반전된 위상이다. 덴마크 디자인의 큰 자산이자 자부심인 아르네 야콥슨의 에그 체어, 세븐 체어를 생산하고 하이메 아욘과 넨도 등 동시대 디자이너와도 협업해 새로운 가구를 내놓는 덴마크 회사 프리츠한센의 아시아 CEO 다리오 레이크를 Dario Reicherl 또한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인 한국을 자주 찾는다. 그와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5년간 일어난 가구 트렌드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자기만의 취향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는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디자인 가구를 많이 찾기 시작했음을 느꼈어요. 여전히 아트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자신의 컬렉션을 뽐내려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심미적이며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디자인 가구’가 일상 생활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전공을 마치고 돌아와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오늘도 바르셀로나 체어와 LC4 셰즈 라운지를 구입하려면 월급을 얼마 동안 더 모아야 하는지 계산한다고 말했다.

그 의자를 어느 공간에 어떻게 배치할지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즐거워 보였다. 찰스 임스의 말처럼, 예술이든 디자인이든 결국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수집하는 일 아닌가. 그러니 부디 저마다 취향에 맞는 멋진 디자인을 찾아 깊이 파고드는 몰입과 탐험의 즐거움을 누리기를!
글 / 강보라(칼럼니스트)

    피쳐 에디터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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