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피어 오브 갓의 협업 컬렉션

2020.11.20GQ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이제라도 만났으니 천만 다행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와 피어 오브 갓의 협업은 정말이지 잘한 일이다. 이탈리아 테일러링의 정통적인 정교함과 캘리포니아 서브 컬처의 자유롭고 쿨한 무드를 합친 컬렉션이라니.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의외의 조합이란 점도 신선하지만, 각자의 장르에서 최고가 뭉쳤다는 프리미엄 또한 매력적이다.

제냐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알레산드로 사르토리와 피어 오브 갓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제리 로렌조가 만나는 장면부터 상상해보자. 알레산드로는 짧게 자른 단정한 머리, 까칫하게 조금만 기른 수염, 커다란 뿔테 안경 너머로 예리한 눈이 섬광처럼 번쩍인다. 제리 로렌조는 스케이트 보이처럼 종종종 딴 머리에 풍성한 턱수염, 호기심으로 꽉 찬 총명한 눈빛. 둘 다 티셔츠를 입고 있지만 알레산드로는 몸에 잘 맞고 재단이 잘 된 검정을, 제리는 솔기가 밖으로 드러난 헐렁하고 바랜 회색을 입고 있다. 첫인상은 확연하게 다르지만 막상 대화는 척척 잘 통한다. 둘은 “남성적인 우아함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얘기를 시작했다. 극명하게 다른 스타일이어서 핑퐁처럼 아이디어가 오가고, 마침내 둘을 합치면 아주 독창적인 컬렉션이 만들어지리란 확신이 생겼다. 여기에 하나 더. 남성복을 여자가 입을 때의 독립적이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에 대한 둘의 취향이 같았다. 굳이 설명하자면 ‘하이브리드한 엘레강스’ 랄까. 이렇게 해서 그간 본 적 없던 드문 컬렉션이 만들어졌다.

뚜렷하게 직관적이고 더없이 현대적이며 젠더 패러다임을 최대한 배제한 이 컬렉션은 지난 3월 파리 컬렉션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새로운 미의 방식을 제안한다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제냐의 탁월한 테일러링 감각과 피어 오브 갓의 쿨한 여유로움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두 도시가 섞여 재창조된 실루엣과 비율이 신선하며,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라인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석한 소재가 탁월하다는 총평. 알레산드로 사르토리는 제리 로렌조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는 균형적인 분위기에 속에서 작업을 했고, 그 덕분에 독창적인 워드로브를 만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오랜 팬이라 밝힌 제리 로렌조 역시 알레산드로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음을 고백했다.

두 브랜드의 정체성이 완벽하게 결합된, ‘언제라도 기분 좋게 입을 수 있는 옷’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포켓이 측면에 부착된 수트 재킷, 천연 패브릭으로 만든 원 사이즈 코트, 제냐 로고가 새겨진 초경량 스웨이드 셔츠 재킷, 블랙 가죽 보머 등은 더없이 고급스럽지만 입는 방식은 아주 캐주얼하다. 잘 재단된 데님을 웨스턴 앵클 부츠, 롱 우븐 벨트와 매치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입으라고 권한다. 컬러 팔레트는 멜란지 그레이, 비큐나, 토프 등의 차분한 뉴트럴 톤. 그야말로 가을의 색깔이다. 마침 이 멋진 룩들을 숍에서 만날 수 있는 시기도 가을부터.

    패션 에디터
    박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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