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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 "꾸준히 지금처럼 음악을 하고 싶어요"

2020.11.24GQ

크러쉬가 만든 비트, 리듬, 화음, 그리고 스토리. 그 모든 것이 모여 작은 울림이 되었다.

락 포인트 롱 재킷과 골드 링, 모두 지방시.

멀티 애니멀 패턴 하프 슬리브 셔츠, 레오퍼드 매시 톱, 크래클 팬츠, 혼 캡, 크로커다일 엠보싱 레더 슬립온, 레오퍼드 스카프, 모두 지방시.

아이보리 재킷, 프론트 지퍼 셔츠, 레드 컷아웃 백, 골드 체인 링, 모두 지방시.

락 포인트 롱 재킷, 스퀘어 넥 슬리브리스 톱, 크랙 팬츠, 베이지 컷아웃 백, 페이턴트 부츠, 골드 링, 모두 지방시.

프론트 지퍼 셔츠, 레더 팬츠, 마시멜로우 슬라이더, 블랙 혼 캡, 청키 골드 앤 실버 체인 벨트, 모두 지방시.

어떻게 하면 <지큐> 커버를 장식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네요. 신기하게도 말하는 대로 이루어졌어요. 우주의 힘이 크러쉬 주변을 돌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늘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사람이라 그런가봐요(웃음). 뭔가 잘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였죠.

이루고 싶은 것이 또 있어요? 다음번에도 활자가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기록해두죠. 전역하고 나서도 꾸준히 지금처럼 계속 음악을 하고 싶어요. 현재로서는 그게 제일 현실적인 목표 같아요. 사실 보름 정도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반려견 두유, 로즈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잘 쉬려다 가려고요.

2020년은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렸을 거라고 짐작해요. 데드라인이 명확하게 정해진 상황 속에서 음악을 만든다는 건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해진 시간 안에 증명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바심이 났어요. 음악을 하면서 뭔가를 쉽게 만들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로 인해 의도치 않게 시간이 좀 뜨면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많이 했어요.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원했던 방향과 목표를 다 이루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은 좀 후련해요.

앨범을 세상에 내보내기 전 느끼는 직감 같은 것도 있나요? <with HER>는 여러 방면에서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확실히 들었어요.

이소라, 윤미래, 태연, 이하이, 비비, 전무후무할 피처링 라인업이에요. 있을 법한데 한 번도 없었던 기획이 아닐까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좋아하는 배우가 선물처럼 등장하는 옴니버스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도 이런 포맷의 앨범을 누군가 시도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아보면 없더라고요. 사실 싸이 형이 처음에 약간의 힌트를 줬어요. 이런 라인업과 콘셉트의 앨범을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어요.

다섯 뮤지션을 배우에 비유하자면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나와 있는 상태에서의 캐스팅이었나요? 혹은 출발부터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력한 원동력이 있었나요? 둘 다였던 것 같아요. 어떤 곡은 시나리오가 확실했고, 어떤 곡은 이 사람이 꼭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하기도 했고요.

이소라 씨는 곡을 듣지도 않고 무조건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들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말한 적 있는 음악가와 결국 작업을 했네요. <비긴어게인 코리아>에서 함께 노래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어요. 이소라 누나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누가 긴장을 안 할 수 있을까요? 많이 떨렸어요.

크러쉬에게 노래를 부른다는 건 연기와 비슷한가요? 완전 그렇다고 생각해요. 음악에 얼마나 몰입해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목소리가 점점 무르익어간다는 표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스스로 담금질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곡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만들려고해요. 테크닉적인 기교가 많아야 하는 노래가 있는 반면에 어떤 노래는 담백하게 불러야 좋으니까요.

이번 앨범을 해외 버전으로 만든다면 누구와 하고 싶어요? H.E.R., 제네 아이코, 아리아나 그란데, 아델. 너무 말이 안되는 조합이죠.

휴대 전화에 녹음된 수천 개의 음성 파일을 절대 지우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요. 크러쉬의 작업 폴더에 지금까지 만든 무수히 많은 비트가 담겨 있을 테고, 그것들이 언제 어떤 경로로 세상 밖으로 나오는지 궁금해요. 이번 앨범에서 하이 씨와의 작업을 예로 들자면, ‘Tip Toe’의 비트 자체는 2년 전에 만들어놓은 거였어요. 서로 이런저런 작업을 해보다가 우연히 비트를 들려줬고, 듣자마자 “너무 좋은데요?” 하면서 시작된 곡이에요. 비트를 만들 당시엔 제목도 없었기 때문에, ‘2018년8월23일’, 이렇게 그냥 날짜로 적혀 있었어요. 1분짜리 스케치해놓은 비트를 듣고 서로 흥얼거리다 갑자기 “팁토 팁팁토”라고 가사를 붙여 ‘뚝딱’하고 나오게 된 거죠.

하이 씨에 대해 복제 인간을 보는 것 같았다고 했어요. 작업하면서 옆에 정말 저와 똑같은 한 명이 있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하면 어때?” 하고 물어보면 그것에 덧붙여 더 좋은 방식의 다른 것을 뽑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더라고요. 아이디어가 정말 많고 되게 과감한 사람이에요.

포켓 디테일 셔츠, 컷 아웃 슬릿 팬츠, 베이지 커머번드, 레더 벨트, 크로코 엠보싱 레더 부츠, 골드 체인 네크리스, 베이지 안티고나 미니 버티컬, 모두 지방시.

아이보리 수트, 크로코 엠보싱 레더 슬립온, 골드 체인 링, 모두 지방시.

락 포인트 재킷, 크랙 팬츠, 크로커 엠보싱 레더 스니커즈, 볼드 체인 네크리스, 모두 지방시.

스퀘어 넥 슬리브리스 톱, 아웃포켓 장식 팬츠, 블랙 커머번드, 첼시 부츠, 안티고나 U 크로스바디 백, 모두 지방시.

락 포인트 재킷, 크랙 팬츠, 베이지 컷아웃 백, 볼드 체인 네크리스, 모두 지방시.

레더 윈드 브레이커, 메쉬 탱크 톱, G 링크 골드 네크리스, 모두 지방시.

크러쉬는 아주 작은 목소리, 호흡마저도 악기처럼 섬세하고 치밀하게 조율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켜켜이 쌓은 코러스의 존재감이 더 크게 들려요. 확실히 혼자만의 목소리로 20, 30개를 쌓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10개를 쌓는 것이 청각적으로 큰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랬을 때 하모니가 더 극대화되어 들리는 것 같아요.

오리지널 원단의 알앤비라고 표현한 Step By Step이 하모니의 정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코러스 트랙이 정말 많은 곡이었어요. 미래 누나랑 저랑 모두 합쳐서 거의 100개 정도 쌓아 올렸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 2집 <From Midnight To Sunrise>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미래 누나와 녹음하면서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많이 공유했어요. 1980~1990년대 알앤비 음악부터 트렌디한 요즘 노래까지, 누나도 음악을 듣는 스펙트럼이 정말 넓더라고요.

크러쉬의 음악 강좌를 연다면, 제1강의 주제는 뭐가 될까요? 일단 음악을 많이 아는 게 제일 큰 재산인 것 같아요. 최대한 많이 다양하게 들으면 들을수록 음악적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결국 저라는 사람도 더 확고해지는 것 같아요. 자신이 듣는 걸 믿지 못하면 음악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유희열 씨가 그런 말한 적 있어요. 크러쉬는 음악 듣는 귀가 밝다고. 어느 누군가는 크러쉬가 가진 음악 스펙트럼이 질투 날 만큼 부럽다고 말하기도 해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자화자찬인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외람된 이야기일 수 있는데 그동안 받은 트로피를 진열해놓고 보는 걸 잘 못 하는 성격이에요. 자기애가 너무 강한 모습은 견디기가 힘들어요.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어서.

지금까지 만든 72곡 가운데, 재조명받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곡은 없나요? 제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OHIO’라는 곡이 좀 더 조명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요. 정말 신나는 곡이라서 공연장에서 꼭 관객과 다 같이 떼창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였거든요.

작년 12월 31일, 콘서트가 끝나고 공연장을 빠져나가는데 눈이 내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날 눈이 왔었어요? 사실 그때 무대 위에 올랐던 순간 외에는 기억이 하얗게 지워졌어요. 긴장도 너무 많이 했었고 육체적으로 지치기도 했었고요.

화려한 조명 아래 있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면 허전한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예전엔 그랬지만 반려견 로즈를 새 식구로 들이면서부터 공허함을 느낄 겨를이 없어요. 강아지들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대소변도 치워줘야 하고. 그러다 보니까 사색에 잠길 틈이 거의 사라졌어요.

오늘의 크러쉬를 있게 한 뮤지션을 다섯 명만 뽑는다면? 유재하 선배님, 쳇 베이커, 스티비 원더, 그리고 다이나믹 듀오.

타임 슬립할 수 있다면,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시공간이 있나요? 의심의 여지없이 1950~ 1960년대로 가고 싶어요. 쳇 베이커, 빌 에반스,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 클리퍼드 브라운. 바에 앉아서 그때 활동했던 재즈 뮤지션들의 공연을 그냥 가만히 듣고 싶어요.

산이 보이는 집에 살고 싶다고 했는데, 도시를 잠깐 떠나보니까 어땠어요? 막상 살아보니 쉽지 않더라고요. 마음 편한 곳이 제일 살기 좋은 공간인 것 같아요. 한때는 집에서 작업하는 게 제일 좋았는데 어느 순간 패턴이 꼬이면서 폐인처럼 변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집과 작업실을 완전히 분리했어요. 이제 집에 남아 있는 음악 관련 장비라고는 턴테이블밖에 없네요.

크러쉬를 만나면 언제나 좋은 노래를 선물처럼 받곤 했어요. 12월의 마지막 밤에 어떤 노래를 들으면 좋을까요? 칼라 블레이의 ‘Lawns’. 좋아하는 술 한잔 마시면서 들으면 정말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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