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정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2020.12.05GQ

정우가 다시 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벨벳 로브, 김서룡 옴므. 블랙 팬츠, 우영미.

브라운 니트, 몽클레르 × 릭 오웬스. 블랙 팬츠, 오프화이트.

네이비 카디건, 나마체코 at 지.스트리트 494 옴므.

2018년 영화 <흥부> 이후 2년 만의 행보네요. 영화 <이웃사촌>이 11월 개봉 예정이죠? 오랜만이죠, 네.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에 처한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가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심경 변화를 겪게 되는, 그런 이야기예요. 저는 도청팀장 대권 역이고요.

실제로는 2017년 겨울에 촬영한 영화죠? 3년 전 자신의 얼굴을 지금 마주하면 생경한 기분일 듯해요. 며칠 전 블라인드 시사회(일반 관객 대상으로 사전 영화 정보 없이 진행하는 시사회) 때 너무 궁금해서 가서 봐버렸거든요. 혼자, 몰래.

스크린보다는 관객들 반응을 더 눈여겨봤겠어요. 성적표를 앞에 둔 학생 심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눈은 스크린에 가 있지만 귀가 관객분들에게 가 있었죠. 0.1초 사이, 내 감정을 느끼기 전에 옆 사람의 감정을 보고 듣게 되는 그런 참 새로운 경험을 했죠. 같이 웃고 같이 울고.

이런 경험을 자주 했어요? 관객 중 한 명으로 내 영화를 보러 가는. 영화 개봉하고 나서는 종종 가봤지만 개봉하기 전에 본 건 이번이 처음이죠.

그만큼 오래 기다려온 순간이겠죠? 대중은 배우 정우를 2년 만에 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우 씨가 작품 활동을 쉰 적은 없어요. 2017년엔 <이웃 사촌>, 2018년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2019년엔 <뜨거운 피> 영화 촬영으로 바빴죠. 맞아요, 네. ‘나는 향후 몇 년간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일은 쉬지 않고 계속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여러 이유로 개봉이 미뤄지고 있죠. 배우 입장에서는 흔한 일일까요? 세 작품이 연달아서 미뤄지는 경우는 드물죠. 그런데 개봉 시기라는 게 배우가 어떻게 조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배우도 기다리는 입장이다 보니까, 설렘을 가지고 영화가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죠.

옛날 일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로 너무나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 후로 차근차근 밟아오는 와중에 본의 아니게 긴 휴식기를 갖게 된 거잖아요. 저라면 초조했을 것 같아요. 초조한 마음은 없고, 그냥 이런 것 같아요. 열아홉 살 때부터 배우 생활하면서 이제 20년 가까이 됐는데 제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일이 되진 않더라고요.

영화 <바람>(2009) 속 대사가 떠오르네요. 인생은 바람이야, 바람.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래서 뭐가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그냥 좀 내려놓으려고 해요. 그냥 물 흐르듯이, 그냥 내려두면 어떤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서 하나둘씩 풀리더라고요.

마침 <바람>을 꼭 짚고 싶었어요. 파면 팔수록 배우 정우, 인간 김정국을 향해 돌아가게 되는 지점은 결국 영화 <바람>이더라고요. 아이구, 그럼요. 자전적 이야기이고 그만큼 나의 모습이 많이 비춰진 작품이니까요. 돌아간다는 느낌보다는 아직도 가지고 있죠. ‘짱구’가 아직도 제 안에 있죠.

저는 이 대사도 기억에 남아요. 아버지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다. 괜찮은 어른이 되겠다고. 그건 감독님이 쓰신….

정말요…? 으하하하하. 제가 쓴 원안의 거의 95퍼센트가 시나리오에 반영됐는데 그 대사는 감독님이 쓰신 거예요. 저도 마음속에, 마음속에는 그 말이 있었지만 그걸 표현하지 못했는데 감독님이 해주신 거죠. 그런데 이건 아마 저뿐만 아니라 모든 아들들이 그런 마음이지 않나….

말로 표현을 잘 못하는 아들 스타일이군요. 그땐 또 너무 철없다 보니까. 어머니, 아버지께서 장사를 하셨는데 장사를 하면 일요일이 따로 없어요. 가장 손님이 없는 날이 휴일인 거죠. 서점을 하셨는데 감사하게도 장사가 굉장히 잘됐어요. 잘돼서 쉬는 날이 없었죠, 그만큼. 그러다 보니까 아버지랑 얘기할 수 있는,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았고, 그리고 또 그땐 표현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죠.

니트 베스트, 메종 마르지엘라. 네이비 팬츠, 발렌시아가 at 무이. 스니커즈, 아크네 스튜디오.

터틀넥, 셔츠, 모두 벨루티. 링, 포트레이트 리포트.

수트, 피어 오브 갓 ×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 셔츠, 던힐.

이제는 정우 씨도 아버지가 됐잖아요. 12월 15일이면 딸의 네 번째 생일인데. 으하하하하.

잊고 있었어요? 지금 생각난 표정 같은데요? 아뇨, 아뇨. 깜짝 놀라서.

생일 선물로 생각 중인 게 있어요? 사실 저는 기념일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에요. 가족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항상 하는 얘기가 매일을 생일처럼, 그래서 생일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를 정도로 매일을 생일처럼 그렇게 살아가자고 해요.

진짜 그렇게 얘기해요? 네, 그렇게 얘기해요. 그런 말 있잖아요. 말에는 힘이 있다고. 그렇게 말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묻지 않을 수 없네요. 요즘 자주 하는 말은 뭐예요? 잘될 거야. <이웃사촌> 잘될 거야. 그런데 정말 지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이웃사촌>은 배우로서 제가 여러 면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예를 들면요? 특별히 어떤 면에서요? 무엇보다 감독님과의 협업을 배웠어요. 대권은 도청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혼자서 엿듣고, 혼자서 감정을 쌓아가고, 또 혼자 그 감정을 표출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카메라와 저 사이의 온도가 굉장히 중요했는데 카메라는 차갑잖아요. 그런데 카메라를 보고 있는 감독님이 굉장히 뜨거운 사람인 거예요. 그게 카메라를 뚫고 제게 전달됐어요. 제가 웃으면 감독님도 카메라 너머에서 웃고, 제가 울면 감독님도 펑펑 울었어요. 감독님이 나와 120퍼센트 소통하고 있구나 싶어 굉장히 짜릿했어요. 좋은 에너지가 상승되는 효과를 겪었죠.

그런 감정은 일방통행이지 않을 것 같아요. 정우라는 배우가 그렇게 액션했기에 감독님의 리액션이 있지 않았을까요. 저는 예민해요.

예민하다고요? 연기에 욕심내면 낼수록 현장에서 저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뾰족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안 좋아할 텐데…? 안 좋아하죠. 으하하하하.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 예민함이 모여 한 작품을 만드는 거 아닌가. 완벽까진 아니어도 완성시키는 거 아닌가. 물론 예민함을 표현하는 방식은 각자 조금씩 다르겠죠. 제가 예민함에 추가하고 싶은 건 즐겁게 촬영하는 거예요. 즐겁게.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열심히 하더라도 즐기는 애한테는 이길 수 없다고. 이제는 즐기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영화 <바람>이 10대 정우의 이야기라면, 성인이 된 후 상경기 내용으로 써둔 글도 있다고 들었어요. 짱구 김정국이 서울에 올라와 배우 정우가 된 결말은 알아버렸으니, 첫 장면을 귀띔해준다면요? 맨 첫 장면은 오디션장이에요. “208번 김정국. 그럼 준비된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그게 영화의 시작이에요. 제목은 <일기장>이라 지어놨는데 <바람>만큼은 아니고 한 30, 40퍼센트가 제 이야기예요. 그런데 <바람>과 비슷해요. 성장기를 지나는 청춘, 어린 남자가 사회 초년생으로 자기 꿈을 이뤄나가려고 하는 모습, 그런 성장 드라마죠.

제목이 <일기장>이군요. 그래서 평론가분들이 만약 이 영화를 보시면 “일기는 일기장에”라고 적으실 것 같아요. 으하하하하. 제목을 바꿔야 하나.

문득 짱구 김정국이 서울에 올라와 유명 배우 정우가 된 결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결말은 야외 촬영 현장 모습이에요. 영화로 치면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촬영장. 제가 그때 그 영화 촬영 당시 권상우 형이랑 김하늘 선배랑 야외에서 막 싸움을 벌이던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이 그냥 지금 생각해놓은 마지막 신이에요.

막 배우로 데뷔한 모습을 보여주고 끝나는 거네요. 그다음의 자전적 이야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을 꼭 넣고 싶어요? 좀 더, 좀 더 삶의 시간이 지난 후에 돌아보면 쓸거리가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지금까지 해온 작품도 다 제 살붙이, 피붙이라서 소중하지 않은 기억이 어디 있겠냐마는, 제 안에는 또 무수히 많은 캐릭터가 남아 있으니까. 이것들을 갈고닦고 연마해서 관객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설렘, 그런 기다림이 있어요.

마음이 무척 뜨거운 사람 같아요. 아니,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평소에는 따뜻한데 버튼을 누르면 뜨거워지는 사람.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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