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 "신선한 재미가 있는 것들을 찾아다녀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오정세 "신선한 재미가 있는 것들을 찾아다녀요"

2020-12-28T13:56:10+00:00 |interview|

한없이 무채색에 가까울 때도, 선명한 컬러를 표현할 때도 오정세의 매력은 숨겨지지 않는다.

베스트, 슈트W. 니트 피케 톱, 에르메네질도 제냐. 몽크넥 니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안경, 레이밴 at 룩소티카.

재킷, 보스 맨. 패턴 니트 톱, 미스터 P at mrporter.com. 코듀로이 팬츠, 메종미네드. 슈즈, 구찌. 비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케이터링으로 준비한 과일 박스에 딸기가 있는줄 몰랐어요.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주셔서 예상치 못한 컷이 나왔네요. 테이블 위 딸기가 보이더라고요. 먹다 보니까 이걸로 화보를 찍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더콜>에서 딸기 장수 역할로 등장하기도 했고요.

사실상 카메오에 가까운 비중이었어요.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 값(2015)>을 보고, 어떤 역할이라도 좋으니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들었는데. 지나가는 엑스트라 정도만이라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큰 역할을 맡았어요. 등장하는 신이 많지는 않지만, 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어요.

2021년 개봉 예정인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에서도 사건의 중심에 있기보다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역할로 등장해요. 주변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은데, 그 가운데는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접근한 작품이에요.

이태겸 감독이 다른 인터뷰에서 오정세 배우는 스타니슬랍스키 같았다고 말했던데 어떤 의미일까요? 생김새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나? (웃음) 아마도 제가 온전히 ‘막내’라는 인물이 되어서 메소드 연기를 했다는 의미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기억나지 않는 배우, 누구지 싶은 배우라는 말을 슬로건처럼 자주 하셨는데, 최근 연기한 대부분의 인물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 <스토브리그>의 권경민,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 <모범형사>의 오종태까지.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한 3년 치 감사한 마음이 저장되어 있는 것 같아요. 이걸 한 번에 다 받아먹으면 체할 것 같아서 나중에 온도가 조금 떨어지면 그때 조금씩 아껴서 꺼내 먹으려고요.

오정세 배우에겐 얄개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진지한데도 장난기 있고, 영원히 철들지 않는 사람으로 나이 들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산뜻한 정서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비롯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십 대, 이십 대, 삼십 대를 대부분 찜찜함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잘 지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나이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아요. 여전히 젊다고 생각하고요. 평소에 신선한 재미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찾아다녀요. 익숙하지 않은 신선함 혹은 익숙함 속의 새로움이 있는 것들. 전시든 공연이든 주변을 돌아다니다 그런 것을 발견하면 잘 저장해 두었다가 제 삶이나 작품에 잘 녹이기도 하고요.

인디 밴드 공연을 종종 찾아다닌다고 들었어요. 음악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는데,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 음악가가 언제 어디서 공연을 하는지 찾아봐요. 어떻게 보면 저는 연기할 때 필요한 영감을 음악에서 더 많이 받아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분들을 보면 나도 저런 느낌의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어떤 음악가들에게서 영감을 받나요?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선입견에서 벗어난 분들. 좋은 가수는 이런 음역대의 높은 음을 낼 수 있어야 하고, 목소리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죠. 서툴지만 그 사람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연을 만났을 때, 배우 역시도 어떤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진심 하나만으로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음악가들에게서 영감을 받나요?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리고 어떤 선입견에서 벗어난 분들. 좋은 가수는 이런 음역대의 높은 음을 낼 수 있어야 하고, 목소리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죠. 서툴지만 그 사람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연을 만났을 때, 배우 역시도 어떤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진심 하나만으로도 좋은 배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오정세 배우에게도 인디펜던트했던 시기가 있었죠. 그리고 여전히 역할의 비중과 관계없이 독립과 상업 영역을 누구보다 유연하게 오가고요. 그 이유에 대해 실험할 수 있는 장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 있어요. 배우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실험의 장은 무엇이었나요? 십여 년 전에 설치 미술 작업에 배우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미술관에 카메라 3대를 설치해놓고 제가 15분 동안 움직이는 연기를 펼치면 그걸 롱테이크로 촬영하는 작품이었죠. 최대한 자유롭게 연기를 펼쳤고 나름 만족 했는데, 일반 사람들이 연기한 또 다른 다큐멘터리 작품을 봤더니 제가 아무것도 안 하려는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멘붕이 왔어요. 종이 한 끝 차이긴 한데 진짜를 보고 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기가 정말 어렵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연기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예전에는 이런 목표가 있었어요. 실제로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인물을 구현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점 주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달까. 사실 제가 추구하는 건 무엇을 표현하려는 연기보다 표현되어지는 연기에 가깝거든요. 오정세가 관객들에게 슬픔을 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슬퍼 보일지를 고민하는 연기보다는 그냥 제가 가만히 있는데도 슬퍼 보이는, 그게 정답이었으면 좋겠는 그런 연기요.

<스토브리그>의 빌런 권경민이 쓸쓸하게 거리를 걷는 뒷모습이 그런 지점과 맞닿아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한국판 조커라고 회자되던 장면이고요. 제가 아직 <조커>를 못 봤지만 칭찬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 좋아요. 사실 그 장면을 위해서 굉장히 추운 날씨에 스태프들과 장소를 여러 번 옮겨가며 찍었어요. 감독님이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모두가 고생해서 만들어간 장면이었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날 바람과 낙엽이 도와줬어요. 제가 걷는 신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낙엽이 특수효과처럼 휘날렸죠. 저는 그런 순간이 꼭 선물처럼 느껴져요.

드라마 속에서 자주 입었던 권경민의 버건디 슈트는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사실 경민이란 인물이 등장하는 신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확실한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선을 넘은 듯한 권경민만의 색깔이 버건디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인물이 정서적으로 변화하는 시점부터는 색깔을 조금씩 뺐어요. 넥타이만 색을 넣는다든지 조금씩 색을 줄여나가다 마지막엔 남색의 옷을 입기도 했죠.

오정세가 뽑은 다른 작품 속 매력적인 빌런은 누구인가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하비에르 바르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대령 크리스토프 왈츠. 그런 익숙하지 않은 묘한 느낌의 악역이 기억에 남아요.

빌런으로 활약한 작품 반대편엔 숨어서 보고 싶은 로맨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가 있죠. 좋아하는 멜로 영화는 뭔가요? <500일의 썸머> 같은 톤의 영화를 만나보고 싶긴 해요.

한국의 짐 캐리라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조셉 고든 레빗이 겹쳐 보이기도 하네요. 두 배우 모두 정말 좋아합니다. 에드워드 노튼, 주성치도 좋아하고요.

인터넷에 떠도는 댓글 가운데 오대리님 같은 사람 누가 좋아할까요? 라고 모두가 속으로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 팀에 나 포함 세 명 이상이 좋아하고 있는 상황이란 문장이 떠오르네요. 이 문장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결국 매력이란 단어가 남죠.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찍을 당시에 제 매력이 뭘지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을 해봤어요. 사실은 제가 다른 역할로 캐스팅되었다가 남자 주인공을 덜컥 맡게 되었는데,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거든요. 하루는 감독님이 투자자 미팅을 갔는데 그쪽에서 “오정세 씨의 매력은 뭔가요?”라고 물어봤을 때 답을 못했대요. 같은 질문을 저에게도 하셨는데, 저 역시도 답을 못 찾았어요. 마성의 매력이라고 해야 하나? 제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예의와 휴머니즘이 담긴 유머 감각 아닐까요? 면접 보는 기분이 드네요. 합격! (웃음)

작품을 함께한 후배들이 좋은 어른이라는 말을 꺼내더라고요. 누구보다 계산대 앞으로 빨리 가신다고도 들었고요. 계산이 끝났을 때 달려가는 척을 하는 편이죠. (웃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잘 안 되니까 힘들어하는 사람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그보다는 제 주변에 저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아요.

2021년 새롭게 새운 계획이 있나요? 치열하게 달려온 만큼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다짐을 해요. 그런 느림의 시간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리고 영상을 찍어서 조금씩 편집해보고 있어요. 지금은 서툴지만 3분, 5분, 20분 그렇게 차츰 늘려가보고 싶어요. CF를 되게 좋아하는데, 최근에 본드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똑딱똑딱 시곗바늘이 움직이다 본드 한 방울이 똑 떨어지면, 그 순간 초침이 멈추고 “3초 안에 붙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뜨는데 정말 미치도록 좋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이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Duplet Bench’는 김다은 작가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