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월드로 향한 NBA 선수들 | 지큐 코리아 (GQ Korea)

디즈니 월드로 향한 NBA 선수들

2021-01-06T15:36:18+00:00 |ENTERTAINMENT|

바이러스의 대혼란 속에서 NBA 선수들은 디즈니 월드로 향했다. 그곳에 틀어박혀 경기를 하게 될 줄은, 심지어 생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NBA 구조작전

유타 재즈 소속의 ‘빅맨’ 루디 고베어는 두려움에 질려 있었다. 키가 22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머니와의 통화를 시도했지만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있는 프랑스는 새벽 4시였어요. 주무시고 계실 걸 알면서도 10분마다 전화를 했어요. 어머니가 뉴스를 보기 전 제가 직접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루디 고베어가 회상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2019/2020 시즌이 진행되고 있던 3월 초에 벌어진 사건이었다.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와의 경기를 앞두고 루디 고베어는 감기 증세를 보였다. 훈련에 참가하지 않았고, 출전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처음에는 땀을 내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 금방 회복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의 홈구장에서 소속팀의 경기를 관전하려던 참이었다. 누군가 코트에 나타나 경기 운영진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표정들이 무척 심각했어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죠. 그들이 저를 따로 부르더니 코로나19 검사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알려주더군요.”

그 소식은 거의 동시에 뉴스피드를 뒤덮었다. 며칠 전 루디 고베어가 참석했던 기자회견 영상도 일파만파 퍼졌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예민한 분위기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앞에 놓인 마이크와 취재진의 녹음기들을 일일이 장난스레 손으로 만졌다. 웃어 넘겼던 기행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루디 고베어가 여론의 뭇매를 맞는 동안 NBA 선수들의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아담 실버 NBA 총재는 단호하게 결단을 내렸다. 정규 시즌 자체를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모두의 안전을 리그 재개의 우선 조건으로 달았고 중단 기간은 최소 1개월로 예상했다.

그로부터 141일이 지난 7월 30일, 시즌이 재개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세상을 바꾼 만큼 리그 형태도 달라졌다. 집단 감염 위험성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홈과 원정을 오가며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없었다. 궁리 끝에 잔여 시즌과 플레이오프를 한 지역에서 격리 형태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올랜드의 월트 디즈니 월드 리조트가 개최지로 낙점됐다. NBA 선수단과 구단 스태프, 심판진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마법 같은” 테마파크로 집결했다. 일반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했다. 경기는 리조트 내에 위치한 ESPN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무관중으로 진행했다. NBA 사무국은 1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대형 격리 시설과 방역 인프라를 마련했다. 스포츠 역사상 전례 없는 작전이 펼쳐진 그곳은 이른바 ‘버블’이라 불렸다.

Chapter 버블에서 산다는 것

7월 초, 22개 팀이 디즈니 월드에 모였다. 3백여 명의 선수를 위해 미키 마우스 투어 버스를 개조한 차량이 동원됐고 3개의 호텔에 숙소가 마련됐다. 내가 버블에 도착한 날은 7월 12일이었다. 블리처 리포트와 터너 스포츠의 의뢰로 시즌이 재개된 NBA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완벽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버블 밖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상당수의 선수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이런 시기에 농구라는 스포츠가 필요한 것인지 의문을 품기도 했다. 분명한 건 바깥세상과 철저히 통제된 버블은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것이었다. 나는 ‘Tier 1’이라는 허가증을 지급 받았다. 이를 소유한 언론 관계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일주일간의 자가 격리 후 버블에서 선수들과 지내는 것이 가능했다. 코로나19 진단 결과 오류 때문에 충격과 공포에 시달렸던 해프닝을 제외하곤 모든 절차를 무사히 마친 뒤 버블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어땠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름 캠프 같다고 얘기하곤 한다. 특별한 점이라면, 캠프 참가자 대다수가 백만장자였고 신장이 2미터가 넘었다는 것 정도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LA 레이커스의 ‘최강 듀오’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가 자전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갔고, 징크스처럼 매일 아침 똑같은 다리를 건너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토론토 랩터스의 포인트가드 카일 로우리를 보기도 했다. 버블은 스타나 셀러브리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NBA 선수들에게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자유를 제공했다. 이곳에는 경호원도 없었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길을 막아서는 팬도 보이지 않았다.

버블 안에서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이 총동원되곤 했다. 보스턴 셀틱스의 켐바 워커와 인터뷰 말미에 ‘헤즈 업! Heads Up!’이라는 스마트폰 퀴즈 게임을 한 적도 있다. 그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대해 이런 힌트를 줬다. “빗자루를 타고 막 달아다니잖아.” ‘올해의 신인 선수’로 선정된 자 모란트와 농구 슈팅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시즌 직전 맞트레이드된 크리스 폴과 러셀 웨스트브룩은 한 팀이 되어 크리스의 가족과 스마트폰으로 카드 게임을 하곤 했다.
러셀 웨스트브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는 모범적인 버블 시민이었다. 호텔 객실을 늘 깨끗하고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는가 하면 하우스키퍼들을 위해 8천 달러의 팁을 남겼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 말이 사실인지 물어봤을 때 그는 감사 편지와 함께 팁을 넉넉히 뒀다고 얘기하면서도 끝까지 정확한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금액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옳은 행동을 하고 싶었어요” 밀워키 벅스의 조지 힐은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 직전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느라 국가 제창 시간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는 연습 경기나 시범 경기를 할 때 시작 6분 전마다 화장실에 가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공식 경기와 훈련은 숙소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진행됐다. 선수들은 일정이 끝나면 가장 먼저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로 달려갔다. 올스타 선수로 발돋움한 마이애미 히트의 뱀 아데바요는 첫차를 놓치면 크게 낙담하곤 했다. 저녁에는 대부분 삼삼오오 어울려 카드 게임을 하거나 호텔 바에 모여서 시간을 보냈다.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CJ 맥컬럼은 버블의 비공식 와인 공급자였다. 그는 자신이 출시한 피노 누아 와인 ‘맥컬럼 헤리티지 91’을 호텔 방에 잔뜩 쌓아놓고 선수들에게 베풀었다. 이내 CJ의 와인은 버블 세계의 인기 아이템이 됐다. LA 클리퍼스를 이끄는 카와이 레너드가 지나가던 그를 붙잡고 헤리티지 91의 엄청난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CJ 맥컬럼은 어깨를 으쓱했다. “NBA의 슈퍼스타가 제 와인의 품질을 보증한 거죠” LA 레이커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 도중 상대팀의 앤서니 데이비스는 자유투 라인에 서서 그에게 “와인 잘 마셨어요. 끝내주던데요”라고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헤리티지 91의 가장 열렬한 팬은 따로 있었다. CJ 맥컬럼의 팀 동료인 데미안 릴라드는 그 와인을 마법의 물약, 행운의 부적이라 불렀다. 그럴 만도 한 게, 전날 밤 와인을 마시고 경기에 나설 때마다 그는 신들린 플레이를 펼쳤고 그 결과 ‘버블 시즌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CJ 맥컬럼은 “다른 건 다 필요 없다면서 데미안은 제 와인을 찾았고 우리는 매일 마시다시피 했어요”라고 말했다.

올랜도가 위치한 플로리다 중부의 여름은 폭염의 한복판과 다름없기 때문에 호텔 수영장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특히 휴스턴 로켓츠는 구단 행사를 치르듯 수영장에 모여 먹고 마시는 자리를 자주 가졌다. 그때마다 팀의 에이스인 제임스 하든은 호텔의 핫도그가 얼마나 맛있는지 열변을 토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서부 컨퍼런스 소속의 휴스턴 로켓츠와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의 선수들이 수영장에서 각각 아애패드로 LA 클리퍼스와 댈러스 매버릭스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무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쳐 경기를 시청하며 훈수를 두기 시작했다. 휴스턴 로켓츠의 오스틴 리버스가 당시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다들 경기에 몰입한 채 ‘방금 슛을 던졌어야지’, ‘맞아. 직접 해결했어야 했어’, ‘수비가 아쉬워’ 등의 얘기를 주고받았죠. 코트에서 벌이는 상대팀에 대한 신경전이나 경쟁심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굉장히 쿨했어요.”

버블 안에서 선수들은 끈끈한 유대감을 쌓았다. 우정은 더 돈독해지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일도 어렵지 않았다. 베테랑 선수들은 버블에서 지내는 시간을 NBA의 다음 세대와 교류하는 기회로 활용했다. 17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던 카멜로 앤서니는 자신보다 열 살도 더 어린 피닉스 선즈의 데빈 부커와 LA 레이커스의 카일 쿠즈마에게 “너희들이 NBA의 미래”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이제는 앞으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들려줬다고 한다. LA 레이커스의 대니 그린은 파이널 우승을 달성한 직후 예전 소속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으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그 내용은 이랬다. “팀 동료인 르브론과 앤서니에게도 축하한다고 전해다오. 수비에는 좀 더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

소원했던 감정과 오랜 앙금을 털어낸 이들도 있다. 토론토 랩터스의 사장 마사이 우지리는 LA 레이커스와의 경기를 관전하던 중 누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챘다. 바로 더마 드로잔이었다. 2009년 토론토 랩터스에 입단한 더마 드로잔은 9시즌 동안 팀의 간판 스타로 활약했지만 2018년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트레이드됐다. 소속팀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냈기에 큰 상처를 받았고 공개적으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토론토 랩터스는 더마 드로잔의 반대 급부로 샌안오니오 스퍼스에서 카와이 레너드를 데려와 창단 첫 우승을 거뒀다. “그가 저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더니 말없이 꽉 안아주더라고요. 트레이드 이후 우리가 그런 식으로 감정을 주고받은 건 처음이었어요. 지난 시간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계로 넘어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마사이 우지리는 경기 외적으로 버블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Chapter 시간의 블랙홀

프로 선수의 일상은 무섭도록 규칙적이다. 그들은 완벽히 짜인 루틴을 반복하며 자기 컨디션을 유지한다. 공간 제약과 활동에 대한 제재가 많은 버블에서 NBA 선수들은 새로운 습관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랑 데스티노 타워의 950호실을 배정받은 마사이 우지리는 매일 오전 5시에 기상해 책을 읽고 실내 자전거에 올라 운동을 한 뒤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몇 주가 지났을 때 그는 카와의 레너드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위에 별일 없으시죠?” 2018/2019 시즌 토론토 랩터스의 우승을 이끈 후 LA 클리퍼스로 이적한 그는 바로 아래층 방에 묵고 있었다. 예전 상사의 운동 소리 때문에 수시로 잠에서 깼지만 한 번도 투덜거리거나 불평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조로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힐은 매일 똑같은 메뉴로 하루를 시작했다. 베이컨, 달걀, 치즈가 들어간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해시브라운 캐서롤, 베이컨 2인분 그리고 커피와 감귤 주스를 곁들였다. LA 클리퍼스의 감독이었던 닥 리버스는 버블 생활을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 비유했다. 이 작품은 똑같은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시간의 블랙홀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코로나19 진단 앱을 실행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검사를 받았어요. 그러고는 코치들과 미팅을 갖고 경기 영상을 분석했어요. 선수들과도 다시 봤죠. 훈련을 마친 뒤에는 자전거를 탔고, 일과를 마치면 숙소로 돌아왔어요. 이런 하루가 매일 되풀이됐어요. 제자리를 맴도는 기분이었어요.”

격리 형태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바깥세상에서 중대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 동안 은둔자처럼 디즈니 월드에 숨어 지낸다는 생각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 모란트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라고 털어놓으며 딸의 첫 번째 생일을 함께하지 못했다고 했다. 딸이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을 한 일생일대의 순간도 페이스타임을 통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이 어땠을지 이해가 됐다. 버블에서 지내는 어려움에 대해 묻자 자 모란트가 입을 열었다. “이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흥밋거리로 여길 뿐이죠. 실제로 겪어보면 그런 소리는 못 할 거예요.” NBA를 대표하는 베테랑 포인트가드이자 선수협회의 리더인 크리스 폴도 가족과 떨어져 있는 상황이 녹록지 않다고 말했다. 그도 딸의 여덟 번째 생일을 놓쳤다. “그날 상담이 필요할 만큼 너무나 힘들었어요.”

고립의 감각에 유연하게 순응한 이들도 있었다. 보스턴 셀틱스의 제임스 테이텀은 버블에 들어온 날 호텔 방에 짐을 풀면서 사방의 벽들에 둘러싸여 지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오스틴 리버스는 객실 발코니에 앉아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 “전망이 나쁘지 않았어요. 신데렐라 성 같은 게 보였거든요.” 뱀 아데바요는 해가 지면 호텔 뒤의 인적이 드문 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LA 레이커스에 우승 트로피를 내어준 파이널 6차전 후에도 어김없이 산책에 나섰다. 우승 축하 파티가 진행 중인 레스토랑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즌이 정말 끝났구나 싶더라고요. 마지막 산책이구나, 버블에서 지내는 것도 오늘로 끝이구나, 이런 생각만 들었어요.”

Chapter Ⅲ ― 위기 경보

시즌이 재개된 지 한 달이 안 됐을 때였다. 8월 23일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흑인 남성 제이콥 블레이크가 세 아들이 보는 앞에서 비무장 상태로 백인 경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로 인한 후폭풍이 번지기 시작할 무렵 버블에서는 토론토 랩터스 소속의 프레드 밴블리트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뉴스를 접한 그는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농구에 관한 질문에는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질문할 차례가 돌아왔고 지금 어떤 심경인지를 물었다. 프레드 밴블리트의 대답은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면서 날것 그대로였다. 가슴이 찢어지는 동시에 생존자의 죄책감을 느끼며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버블 안에 고립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어릴 적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대다수 선수들이 그와 똑같은 심경이었다. 조지 힐은 당시 소속팀인 밀워키 벅스의 감독인 마이크 버든홀저와 코치들에게 조찬 회의를 요청했다. 그는 평소처럼 크루아상 샌드위치, 베이컨 2인분, 감귤 주스를 주문한 뒤 경기 불참을 통보했다. “바깥 상황을 모른 척하고 경기에 출전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위스콘신주가 밀워키 벅스의 연고지이기도 했지만 비단 제이콥 블레이크의 피격 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10대 백인 청소년이 인종 차별 반대 시위대에 총을 쏘아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그런 짓을 하고도 녀석은 집까지 무사히 도주했어요. 경찰에 의해 바닥에 내쳐지거나 수갑이 채워지지도 않았어요. 사건 발생 후 다음 날이 되어서야 체포가 이뤄졌죠.” 조지 힐은 불평등이 만연한 현실에 질려버린 상태였다. 코치진은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같은 팀의 스털링 브라운은 이번 사건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도 경찰의 과잉 진압을 겪었다. 2018년 주차 위반을 이유로 밀워키 경찰이 스털링 브라운에게 전기 충격기를 발사한 것이다. 밀워키 벅스 선수단 전원은 올랜도 매직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을 앞두고 출전을 거부했다. 이를 신호로 다른 경기도 모두 취소됐다.

밀워키 벅스의 보이콧이 아니더라도 NBA는 다시 한번 중단됐을 것이다. 밀워키 벅스의 선수들이 경기 불참을 논의하는 동안 경기를 앞둔 토론토 랩터스와 보스턴 셀틱스 선수들도 회동을 갖고 의견을 모았다. 이와 별개로 마사이 우지리는 보스턴 셀틱스의 감독 브래드 스티븐스와 경기를 포기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어요. 밀워키 벅스가 나서지 않았다면 우리가 나섰을 거예요.” 다른 팀의 상황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커다란 고민과 맞닥뜨렸다. 저마다의 생각은 달랐다. 이대로 이번 시즌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다. 리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Chapter Ⅳ ― 승부처와 해결사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밀워키 벅스를 제외한 전 구단의 선수와 코치들이 대응책을 논의하기 위해 그랑 데스티노 타워에 모였다. 언론 관계자는 배제됐다. 닥 리버스 감독은 그 자리를 떠올리며 “감정이 섞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충돌이 생겨날까 상당히 걱정스러웠어요. 한편으로는 그런 자리가 마련됐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어떤 이들은 백만장자가 된 NBA 선수들이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날 눈물을 글썽이고 격양된 태도를 보이는 선수들을 여럿 봤어요”라고 말했다. 조지 힐은 “다들 자신의 생각을 서슴없이 꺼내고 대화가 오갔어요. 시즌을 왜 속개해야 하는지, 왜 중단해야 하는지, 버블 밖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대변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논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금전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 대립의 조짐도 보였다. 버블에는 고액 연봉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시즌 중단으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선수들이 적지 않았다. 수천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맺은 선수는 소수에 불과했다. 조지 힐이 말했다. “기본적인 인간성을 포기한다면 돈이 무슨 소용이냐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고, 일각에서는 ‘우리는 돈이 필요하다’고 맞섰어요. 어느 한쪽을 탓할 수 없었어요. 각자 짊어지고 있는 삶과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밀워키 벅스가 다른 팀들에 알리지 않고 경기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언짢게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다수의 선수들 말에 따르면 밀워키 벅스가 리그 전체를 대신해 결단을 냈다는 식의 불만이 장내에 팽배했다. 집단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LA 클리퍼스와 LA 레이커스는 자리를 박차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의 회동은 가시적 성과나 결론 없이 막을 내렸다. 리더십이 필요했다.
다음 날 선수협회의 임원들은 구단의 고위 관계자들과 전화 회의를 가졌다. 샬럿 호네츠의 구단주 마이클 조던을 비롯해 스포츠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회의에 참석했다. “마이클 때문에 회의가 진척될 수 있었어요”라고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이 말했다. “그동안 인종 차별 문제에 의견을 내지 않았던 마이클이 선수와 구단주 사이에서 중요한 중재자 역할을 했어요. 선수들과 깊은 대화를 나눴고 ‘좋아. 우리는 한 배를 탔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라고 말하며 그들의 요청 사항에 귀를 기울였어요.” 선수들과 구단주들은 합의점을 찾았다. 리그 차원에서 투표 기회 확대와 경찰, 사법제도 개혁 등 사회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했고 선수들은 복귀에 동의했다.

Chapter Ⅴ ― 종료 부저

8월의 마지막 일요일, 플레이오프가 재개됐다. 경기는 연일 명승부를 낳았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와 브리오나 테일러의 얼굴이 새겨진 커스텀 농구화를 신고 뛴 자말 머레이를 비롯해 신들린 활약을 선보이며 새롭게 스타 대열에 합류한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리그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이 감지됐다. 훈련과 경기를 마친 뒤 휴게 시설에서 어울리는 이들도 확연히 줄었다. “생각 이상으로 버블 생활이 힘들었어요”라고 닥 리버스가 말했다. 특히 그가 지휘했던 LA 클리퍼스의 폴 조지는 부진한 모습을 보인 탓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5차전 승리를 이끈 후 기자회견에서 그가 컨디션 난조의 이유를 밝혔다. “버블에 갇혀 지내느라 약간의 우울증을 겪고 있어요.”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심리적인 문제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닥 리버스는 “폴 조지는 굉장히 조용한 선수거든요. 그가 말하기 전까지 저도 몰랐어요. 그제야 이게 진짜로 현실적인 문제구나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서로를 챙기고 지탱하는 건 선수 본인들의 몫이었다. 파이널 5차전 마이애미 히트와의 경기에서 중요한 3점 슛을 놓친 LA 레이커스의 대니 그린은 팬들의 비난을 샀다. 문제는 비난 수위가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일부는 약혼녀의 SNS 계정에까지 몰려가 살해 협박을 가했다. 대니 그린은 자신을 지지해준 동료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폴 조지도 포함됐다. 유니폼 색깔과 상관없이 폴 조지는 손을 내밀었고 SNS를 통해 “넌 잘하고 있어. 최고의 슈터 중 하나야”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버블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깥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 벽 너머에 존재했고, 그곳의 시간은 버블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현실 인식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미국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 멤버이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뛰었던 큰할아버지 루 브록의 부고 소식이 희미해진 현실감을 일깨웠다. 다음날 보스턴 셀틱스의 제이슨 테이텀은 ‘R.I.P. 루 브록’이라고 추모 메시지를 새긴 농구화를 신고 코트에 섰다. 경기를 마친 그는 나를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버블에 들어온 후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큰할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컨퍼런스 결승전 직전 버블을 떠나야 했다.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비로소 내가 역사적인 시공간에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버블에서 NBA 선수들은 우승 트로피를 놓고 최선을 다해 경쟁하는 한편 평등이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어깨를 맞대고 투쟁했다. 서로 격돌하고, 지지하고, 연대하며 세계 최고의 실력만큼 선의와 선행도 유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버블 시스템은 보건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3개월 동안 175경기를 치르는 동안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구성원은 한 명도 없었다. 다사다난했고 그 자체로 극적이었던 NBA 2019/2020 시즌이 끝난 뒤 버블 밖에서 제이슨 테이텀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집에 돌아왔을 때 ‘이젠 뭘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뭔가를 해야 하거나 가야 할 곳도 없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매일 아침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심박수와 체온을 측정하지 않는 상황이 며칠 동안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빌어먹을, 내가 버블을 그리워하는 건가 싶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