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과 골프여제 박세리의 지혜로운 안내서 | 지큐 코리아 (GQ Korea)

보건교사 안은영과 골프여제 박세리의 지혜로운 안내서

2021-01-18T18:39:31+00:00 |culture|

완전무결한 남자는 영원히 없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더 괜찮고, 더 지혜로운 남자는 될 수 있다. 무엇을 더하고 빼야 할지 알 길이 없다면 예의와 품격, 태도와 마음에 관해 한 수 위인 그녀들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안은영의 씩씩함

“나는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돕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씨발.” 쌍시옷 발음을 차지게 뱉는 안은영은 팔자가 사납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젤리 형상의 불길하고 음험한 존재들을 퇴치하며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구하느라 애쓰지만, 정작 구원을 받는지도 모르는 타인들에게 안은영은 그저 특이한 사람일 뿐이다. 미취학 아동이나 갖고 놀 법한 무지개색 플라스틱 검을 허공에 휘두르고, 투명한 비비탄총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덜 자란 사람 같기도 하다. 그야말로 이번 생은 망한 슈퍼히어로인 셈이다.

능력이라기보단 저주에 가까운 운명을 타고난 안은영이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운명에 몰입하는 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팔자를 타고난 탓이다. 사실 누구도 그에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모른 척할 수 없는 성정을 가진 탓에 입으로는 쌍욕이 나와도 이미 발은 세상을 구하려 뛰고 있다. 고매하고 강직한 이상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는 걸 눈감을 수 없으니까.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이라는 건 그저 피곤하고 귀찮은 일의 연속일 뿐이다.

혹시 매일같이 행복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SNS 너머의 타인들과 자신을 비교한 적 있는가? 아니면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이상적인 자아를 포스팅하며 누군가의 선망을 받길 기대하는가? 만약 자신의 일상이 너무 가볍게 여겨져 자신의 인생을 가엾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을 처방해주고 싶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스스로 타고난 인생은 원망해도 누군가의 인생을 선망하지는 않는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자기 삶을 살아간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늘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갈 곳도 없다. 그래도 여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꽤 의미 있는 것 같다. 이런 걸 보람이라고 하는 걸까?” 안은영은 끝내 자신의 빌어먹을 인생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낸다. 결국 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에 당당하게 맞선 자에게만 주어지는 온전한 자존감이 있는 법이다. 저마다 생긴 대로 사는 법이라는 말도 해석하기 나름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가 바라보는 거울 속 자신은 결코 멋질 수도, 예쁠 수도 없는 법이니까.

당장의 삶이 불만족스럽다 해도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서 세상과 대면해야 한다. 타고난 팔자가 기구할지언정 스스로 자신을 기구하게 여기는 존재가 돼선 안 된다. 윤택해 보이는 타인의 삶에 비춰 스스로를 하찮게 여겨선 안 된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있기 때문에 오늘도 세상이 돌아간다는 자뻑이라도 좋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길 필요까진 없어도 해낼 필요는 있다. 그리고 안은영처럼, 시원하게 육두문자라도 날려보는 거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씩씩하고 강건하게. 민용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채송화의 슬기로운 엄격함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가 못 하는 건 노래뿐이다. 드라마 속 대사를 보자. “한마디로 단점이 없어. 자기 일은 당연히 알아서 잘하고 남 일도 다 자기 일처럼 도와줘. 완벽한 모범생이지. 그런데 노는 것도 좋아해.” 여기에 한 가지 더. 채송화는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할 줄도 아는 사람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2회. 직급이 높은 다른 교수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수술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려 하자, 레지던트는 환자를 위한 명분으로 채송화에게 수술을 대신해달라고 조른다. 그녀가 난감해하자, 레지던트는 환자들에게 담당 의사를 바꾸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한다. 채송화는 자신이 수술 어시스트를 맡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고는 수술 후 레지던트를 불러 이렇게 말한다. “말 그렇게 하지 마. 너 논문 때문에 그런 거잖아. 환자 때문이라는 핑계 왜 대. 한 번만 더 환자들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해. 나 너 안 봐.”

드라마 전개로 보면 모든 결과가 좋은 상황이다. 환자는 최적의 수술법으로 치료를 받았고, 자존심을 다친 사람도 없다. 나였다면 모든 게 좋은 상황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후배의 잘못도 좋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괜히 내가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틀어진 관계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다. 그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면 피곤할 일이 없는데, 피곤함을 모르고 사는 채송화는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하기까지 한 것이다.

“남자라면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어야지”란 말을 하곤 한다. 남자라면 애써 자잘한 것까지 신경 쓰지 말라는 건데, 현실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까다롭게 행동하면 꼼꼼한 사람이 아니라, 피곤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는 게으름에서 생겨난 게 분명하다. 피곤하고 게을러서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세상 사람 모두가 게으르기 때문에 함께 게으른 사람이 편해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건지도. 남자들이 채송화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무기력해 보이는 게 문제다. 운동으로 근육을 다져봤자 무기력해 보이면 꽝이다. 채송화처럼 “강의도 나가고, 수술도 많이 하시고, 전공의 논문도 꼼꼼히 봐주시고, 학회도 나가고, 주말에는 등산도 하고, 캠핑도 하고, 그러면서 아침 7시에 꼬박꼬박 출근도 안 늦는” 사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엄격해야 할 때 엄격할 수 있는 거라도 챙겨보는 게 좋겠다. 강병진(영화 저널리스트)

아콰피나의 치명적인 겸손

아콰피나의 성공 스토리는 다른 어떤 사람의 사례보다 더 많은 자신의 재능으로 채워져 있다. 데뷔랄 게 딱히 없는 유튜브 세대로 스타메이커의 조력 없이 자체 제작한 콘텐츠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고, 래퍼 시절의 흠잡을 데 없는 실력, 캐릭터를 뛰어넘는 배우 본인의 매력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그녀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77년 역사 최초로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시안 여배우라거나 차기 마블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에 주연으로 캐스팅됐다는 커리어 성과도 굉장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그녀의 인기와 호감도는 누구와도 비교 불가다. 불과 몇 년 사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아콰피나 본인도 ‘초현실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성공을 거뒀고, 그만하면 충분히 자만해도 좋을 터다. 하지만 아콰피나는 시상식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인데도 여전히 톱 배우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유수의 매거진 표지를 장식할 때마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하고, 종종 무명 시절부터 같이 작업을 해온 스태프들을 태그하며 그들에게 자신의 공을 돌린다. 아마추어 개그맨처럼 인스타그램 게시글로 사람들을 웃기려고 애쓰는 초심, 뜬금없이 얼굴을 가꾸기는커녕 고질적인 거북목을 교정조차 하지 않는 자기다움, 괜히 털털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관찰 예능에 출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솔직함, 이 모든 게 그의 자아가 단단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그렇다고 아콰피나가 스스로 성공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낮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힘을 필요한 곳에 쓸 줄 안다. 인터뷰에서 자신이 아시안 아메리칸을 대표하는 것처럼 프레이밍되는 것에 일침을 놓기도 하고, 발음과 억양을 외국인처럼 연기해야 하는 아시아인 역할은 거절한다. #BlackLivesMatter 무브먼트에도 기꺼이 목소리를 냈고 인종과 다양성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업적을 세상에 남긴다. 그리고 그 업적 모음이 상승곡선을 그릴 때, 특히 그 곡선이 테슬라 주가처럼 수직 상승했을 때 자만감에 빠지면 약도 없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남자를 너무 많이 봤다. 자기의 업적에 스스로 조명을 비추는 것,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할까 봐 섭섭해하는 것, 오히려 겸손한 양 에둘러서 은근히 자신을 치켜세우기까지 계산하는 것, 남들이 모를 것 같지만 다 안다. ‘라떼’ 부장님들이 소개팅을 하던 그 시절부터 떠돌던 금언 “지가 멋있는 줄 아는 남자가 제일 구리다”는 말은 아콰피나 시대에 더욱 유효하다는 걸 잊지 말기 바란다. 이경은(프로젝트 매니저)

피비 파일로의 간결함

옷을 더 잘 입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개는 소위 옷 잘 입는다고 정평이 난 남자들의 사진을 뒤지기 시작할 것이다. 요즘은 인스타그램에도 그런 ‘인플루언서’가 넘쳐나니 참고할 ‘레퍼런스’ 역시 넘쳐난다. 안타깝게도, 그러다 보면 대부분 비싸고 유행하는 옷들을 구매 리스트에 올리는 것으로 귀결되고 만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옷을 잘 입는 거라고 생각하는 건 커다란 착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자기 몸을 먼저 잘 알아야 한다는 둥,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알아야 한다는 둥, 많이 입어봐야 한다는 둥, 허다한 말이 너무나도 쉽게 충고해주지만 경험해보지 않으면 무용한 가르침일 뿐이다. 이번 기회에 좀 더 유용하며 구체적인 조언을 해볼 참이다.

지금보다 더 옷을 잘 입고 싶다면, 무수한 남자 패피들 대신 피비 파일로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피비 파일로 추종자들은 대부분 여자일 테지만, 그녀가 여자들에게만 귀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크’의 대명사라느니, ‘잇백’의 창시자라느니, 그녀를 수식하는 말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옷을 너무 잘 입는다는 거다. 아주아주 세련되고 간결한 방식으로. 피비 파일로가 옷 입는 방식을 통해, 아주 간결한 ‘웰 드레스드’ 법칙 몇 가지를 소개한다.

먼저 몸에 잘 맞는 검은색 수트 팬츠를 사라. 피비 파일로는 공식 석상에 십중팔구 검은색 팬츠를 입고 등장했다. 그것이 특유의 ‘시크’를 구축하는 단단한 바탕이다. 그럼 어떤 핏을 살까? 난이도 하, 스트레이트 핏의 노턱 팬츠. 난이도 중, 허리는 딱 맞지만 아래로 갈수록 넉넉하게 떨어지는 원턱 와이드 팬츠. 여기까지는 운동화를 신어도 울지 않을 정도록 똑 떨어지게 수선한다. 그리고 살짝 골반에 걸쳐 입을 수 있는 배기 테이퍼드 팬츠. 이건 적당히 신발 위에서 우는 게 핵심인데, 그래서 난이도 상.

두 번째, 니트 웨어를 사라. 뭘 사냐면 그냥, 지금 구글에 피비 파일로를 검색해서 그녀가 입고 나온 스웨터와 유사한 것들을 하나씩 사라. 검은색 터틀넥, 낙타색 크루넥, 석탄색 터틀넥, 남색 크루넥…. 검색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나온 순서대로 그냥 사라. 너무 붙지도 너무 넉넉하지도 않으면 된다. 그리고 위에서 산 검은색 팬츠와 입으면 된다. 물론 그 안에 함께 입을 셔츠도 있으면 좋다. 코튼 포플린 소재의 칼라에 심지가 없는 깔끔한 디자인으로, 흰색과 연한 하늘색 딱 두 개면 충분하다.

세 번째, 흰색 스니커즈를 사라. 가장 추천하는 건 역시 피비 파일로의 상징과도 같은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이지만 이건 난이도가 높다. 팬츠 길이에 민감하기 때문에. 차선으로 저렴한 쪽으로는 컨버스 척 테일러나 반스 어센틱을, 비싼 쪽으로는 커먼 프로젝트를 추천한다. 이 모든 것을 소화한 다음에 스탠 스미스 사는 것을 허락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검은색 재킷을 사라. 이전에는 아끼더라도 여기에는 돈을 좀 써야 한다. 싸고 좋은 재킷은 지구에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 로랑의 노치드 라펠 스모킹 재킷이나 톰 포드의 피크트 라펠 이브닝 재킷이 가장 좋은 후보다. 이 둘을 기준으로 재량에 맞게 타협하기 바란다. 여기까지의 조언이 식상하게 들린다면 이미 충분히 잘 입는다는 얘긴데, 해본 사람은 알 거다. 이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가장 빠르고 간결한 묘책임엔 분명하다. 성별과 관계없이 호불호가 아주 적다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니 지금 당장 검색하자, 피비 파일로를. 박태일(<벨보이> 디렉터)

장도연의 착한 유머

장도연은 착하다. 아니, TV에서 몇 번 본 걸로 연예인의 성격을 유추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테니 분명한 사실만 말하자면 장도연의 ‘개그’는 착하다. 장도연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식의 코미디는 하지 않는다. 실제 그녀는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등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개그 철학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다른 사람을 언짢게 하는 개그는 하고 싶지 않다. 내 이야기를 통해 몇 명은 그 자리에서 웃었을지 모르겠지만 누구 한 명은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말에 대한 영향력이나 중요성을 더 체감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녀는 틈틈이 신문과 책을 읽고 배운다고 덧붙였다. 본인의 무지로 인해 혹시나 상처받는 사람이 없도록.

이제까지 수많은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술자리에서, 직장 생활에서 선 넘는 유머에 숱하게 웃어왔음을 고백한다. 나는, 아니, 우리는 유머에는 유독 너그러웠다. 왜? 개그는 원래 독해야 제 맛이니까. 개그를 다큐로 받는 꽉 막힌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장도연은 온전히 유쾌한 코미디가 가능하다는 걸 증명해냈다. 단 한 번도 장도연의 코미디를 보고 불쾌했던 적이 없다. 웃고는 있지만 어딘지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적도 없다. 장도연과 같은 공개 코미디 무대에 서는 남자 개그맨이 방청객의 외모를 소재로 웃음을 끌어낼 때마다 느꼈던 바로 그 기분 말이다. 장도연은 다른 이들을 끌어내리거나 약점을 찌르는 대신 센스 있게 말을 받아치고 스스럼없이 망가지는 쪽을 택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기비하가 아닌 자기희화라는 점이다. 레전드 ‘분장짤’을 몇 개나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망가짐에 두려움이 없으면서 무리하지는 않아서 보는 이를 결코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자, 이쯤에서 장도연식 유머를 구사하는 남자를 상상해보자.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도 비하하지 않는 배려심과 균형감, 열등감 없는 산뜻함, 적재적소에 말을 더하는 순발력…. 그녀의 유머엔 독기 대신 다정함이 있다. 원래 재미있고 다정한 남자가 가장 매력적인 법 아닌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는 2008년 <베니티 페어> 표지의 주인공은 티나 페이, 크리스틴 위그, 세라 실버먼이었다. 이 여성 코미디언들의 사진 위에는 “누가 여자들은 재미없다고 했나?”라는 커버라인이 적혀 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겐 더욱 많은 여성 예능인이 필요하고 장도연 식의 유머가 절실하다. 특히 불편러들의 시대가 도래했고 그만큼 재미가 반감됐다고 툴툴대는 일부 남자들에겐 더욱더. 그리고 이런 한마디를 붙여도 될 것 같다. “누가 착한 개그는 재미없다고 했나?” 권민지(칼럼니스트)

이슬기의 엉뚱한 상상력

이슬기 작가는 사물, 언어, 노래, 전통, 공예, 자연에 관한 상상을 연결해 촘촘하게 직조하며 인류학적 여정을 떠난다. 마초적인 탐험의 서사가 아닌, 익숙하지 않은 대상을 향한 진지한 호기심과 따스한 시선, 포용과 공감이 늘 앞선다. 우리는 이슬기를 통해 멕시코의 사라지는 언어 익스카테코어를 야자수 잎으로 짠 바구니로 보고,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여인들이 부르는 야한 민요를 듣는다. 만약 상상력의 빈곤에 처해 ‘그냥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면, 이제는 잊힌 혹은 점차 사라지는 문화적 경험과 유산을 마주하게 만드는 이슬기의 엉뚱한 상상력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

이슬기의 작품은 때론 야릇하고 때론 낭만적이며 때론 아이의 장난 같은 아이디어가 그 출발점이다. 통영의 누비 장인과 협업한 <이불프로젝트 U>는, “속담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줄 한 줄 촘촘히 정성 어리게 박아나가는 것은 마치 염원의 주술 같지 않은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불이 그걸 덮고 자는 이의 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이라는 흥미로운 질문과 답변의 연쇄작용을 거쳐 완성된다. 속담에서 문양으로, 이불에서 통영 누비로, 그리고 누군가의 꿈까지…. ‘우물 안 개구리’, ‘ 싹이 노랗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다’, ‘내 코가 석 자’ 등 삶의 페이소스와 공동체의 오랜 기억이 담긴 한국의 속담이 추상미술을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문양과 강렬한 오방색의 폭신한 몸을 얻게 됐다. 전시장에서 ‘작품’은 벽에 걸리거나 바닥의 기단에 놓이지만, 관객은 얇고 까슬까슬한 이불이 내 몸을 덮고 있다는 촉각적 청각적 상상을 하게 된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올해의 작가상 2020>전에서 선보인 ‘동동다리거리’도 이슬기의 상상과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전시장을 “벗기듯” 거의 비움으로써 관객에게 이곳에 와서 쉬라고, 그리고 놀라고 유혹한다. 그는 사람의 얼굴이나 자연을 닮은 전통 문살 모양에서 영감을 받고 4개의 거대한 문을 그렸다. 볼록한 ‘문’의 형태는 달의 회전과 연결 지었고, 관객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누워 있는 형태의 기둥을 중앙에 만들었으며, 민요의 장단을 형태로 새긴 문살을 춤추는 사람처럼 세워두었고, 전시장 천장에서 다리세기 민요가 흘러나오게 했다. 한 벽면에는 세계 각지의 바닷물과 강물이 담긴 아주 작은 유리병이 목걸이처럼 나란히 걸려 있다. 문살의 틀을 끼워 맞추듯, 작가가 뿌려놓은 퍼즐 조각을 하나둘 맞춰나가는 즐거움이 가득한 전시다. 괜히 뻣뻣하게 굴지 말고, 엉뚱한 상상의 연결고리를 찾아 산토끼처럼 껑충껑충 신나게 움직여보자. 세상이 달리 보일 테다. 김재석(갤러리현대 디렉터)

박세리의 건강함

딱히 뭘 하지 않아도 편안한 사람이 있다. 박세리가 그렇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직접 정의해주는 ‘웰빙의 끝판왕’이자 삶을 즐기는 여유로운 태도까지 갖췄다. 박세리가 온 마음과 몸으로 뿜어내는 완벽한 건강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태도다. 평생 운동을 해왔고, 명예의 전당까지 오른 전설의 스포츠 선수에게 건강함은 당연한 게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다. 타고난 승부욕과 불타는 경쟁심을 이토록 긍정적으로 승화시켜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것부터가 일단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그의 건강함은 ‘척’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할 수 있을 땐 할 수 있다 말하고 못 할 땐 못 한다고 말하는 것.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고 ‘괜찮은 척’을 하지 않는다. 고비를 만나더라도 상황을 인정하고, 지금은 힘들지만 결국 해내고야 마는 자신의 가능성을 믿는다.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할 때 박세리처럼 ‘뭐, 안 될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은 안 될 수도 있지만 끝내 되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건강한 믿음이 한국 골프와 박세리의 역사를 채웠다.

골프 은퇴 후 사업과 방송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지금도 ‘척’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불편한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불편하다고 이야기한다. 종종 농담처럼 “방송국 놈들 가만 안 둬”라고 하는데 이건 진짜다. 선을 넘는 것을 요구하면 박세리는 그 상황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가 연장자이자 챔피언이고 남들보다 기가 센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자신이 원하는 걸 솔직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줄 안다. 제대로 배려하고 제대로 요구한다. 성공 앞에 당당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요즘 너무 물려버린 ‘플렉스’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에서 “13억짜리 요트를 구입해서 전국 일주를 하자”는 후배들 말에 박세리는 “13억? 안 될 건 없지”라고 대답하고 무심하게 과자를 먹는다. 돈을 세다 손에 노란 물이 들어버렸다는 힙합식 허세 플렉스가 아니다. 과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모두가 박세리를 멋있다고 말한다. 숨기거나 보탬 없이, 드러냄에도 거리낌이 없다. 힘이나 재력으로 서열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자체만으로 충분한 존중을 받는다. 서열 우위에 오르기 위해 센 척을 하려는 남자들이 있다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타인의 ‘리스펙트’를 만들어내는 박세리를 보라. 단 한 번도 센 척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또 건강하다. ‘몸 튼튼, 마음 튼튼’ 그 자체인 그는 이 시대의, 남자들의 귀감이 되어야 마땅하다.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

시몬의 우아한 내면

미드 <와이 우먼 킬>은 패서디나의 한 멋진 저택에서 시대를 걸쳐 벌어지는 세 여자, 세 가족과 얽힌 살인 사건 이야기다. 아내를 속이고 뻔뻔하게 외도를 이어가는 1960년대의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남편, 사회적 시선에 자유롭지 못해 게이인 사실을 속이고 결혼한 1980년대의 남편, 약에 의존하는 무명작가이자 폴리아모리 아내의 여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1990년대의 남편까지, 세 가족의 문제는 모두 남자들에게 있다. 평화롭고 빈틈없이 장식된 로맨스 뒤에 숨겨진 거짓과 속임수. 문제적 남편을 처리하는 세 여인이 극의 중심에서 제각기 활극을 펼치는데, 화려한 막이 내리고 난 뒤에 오직 한 캐릭터, 루시 리우가 연기한 시몬이 특히 마음에 남는다.

세 번째 남편 칼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우아한 사교계의 셀러브리티로 살고 있던 시몬은 우연히 자신의 남편이 게이임을 알고 분노한다. 과시욕을 놓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행복을 찾던 상류층 부인인 시몬은 친구 아들의 적극적인 대시를 받아들일 때까지만 해도 세 여자 중 가장 막무가내처럼 보인다. 우아함을 가장한 이 코믹하고도 얄미운 캐릭터는 자신을 철저히 배신했다고 생각한 파트너 칼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걸 알고 그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180도 달라진다. 동성애가 터부시되던 1980년대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편 때문에 자신의 사교계 인맥을 모두 잃어버릴 위기가 닥쳤지만, 이 모든 고난을 함께 이겨내겠다고 남편의 편에 선 것이다. 시몬의 진짜 우아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은 시몬은 화려한 옷을 입고 속 빈 공작새처럼 꾸미는 대신 인류애를 통해 발굴한 내면의 우아함을 장착한다. 화장기 없이 말간 얼굴로 나타난 시몬은 상대가 나에게 준 상처, 그로 인해 잃은 것이나 피해에 몰입하지 않고 상대방이 나에게 주었던 긍정적인 면들에 집중한다. 남편을 나를 위한 액세서리가 아닌 존재 자체로 인정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남편의 곁을 지킨다. 미안해하는 파트너에겐 “우린 괜찮아. 절대 지지 않아”라고 굳건한 믿음을 주고, 에이즈로 투병 중인 남편 친구의 병문안을 함께 가는 등 사교계에 갇혀 있던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나간다. 이 모든 과정에 생색냄은 1퍼센트도 없이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상황을 변화시켜가는 것이 시몬의 우아함이다.

시몬에게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할을 바꿔 생각해보자. 당신은 주변의 시선에 상관없이, 또 내가 얻는 이익과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옳은 행동을 할 용기가 있는가? 혹시 게이 문제에 대해서는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우아를 떨다가도 레즈비언 혹은 다른 소수자 문제에서는 ‘에헴’하는 철옹성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건 아닌지. 우아한 삶은 완벽한 겉모습과 화려한 언변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점점 다양해지는 사회의 균열과 혐오 문제 속에서 우리가 시몬에게 얻어갈 것은 자신의 신념을 믿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줄 아는 당당함. 그것에서 비롯된 우아함이 아닐까? 이다영(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