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팬데믹 시대, 흔들리는 한국 극장가

2021.01.19GQ

극장가에도 깊숙이 침투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국 영화 산업의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무너질 것인가, 재건될 것인가.

“거의 무너졌죠.” 영화계의 지인에게 팬데믹 이후의 한국 영화 시장을 묻자 무슨 뻔한 질문이냐는 듯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코로나19(이하 코로나) 이후의 한국 경제를 K곡선이라고 부른다. 잘되는 건 K의 윗변처럼 쭉 치고 올라간다. IT나 택배나 제약회사의 주가처럼. 안 되는 건 K의 아랫변처럼 뚝 떨어진다. 영화 산업은 K곡선의 아랫변 산업 중 하나다. 항공업, 관광업, 국제전화업처럼.

“그 큰 극장에 사람이 저밖에 없더라고요.”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을 좋아하는 다른 지인은 여전히 극장에 자주 간다. 혼자서. 그는 두 달 전 영화 <언힌지드>를 보던 때를 떠올렸다. “저야 좋은 극장을 저 혼자 빌린 것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죠.” 12월 초에 <피아니스트의 마지막 인터뷰>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그의 체감은 숫자로도 드러난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까지 극장 매출은 전년 대비 70퍼센트 감소했다. 영화계 지인이 느끼는 체감 감소세는 90퍼센트다.

이건 극장 산업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극장 산업은 오래된 금고처럼 견고한 현금 창출 모델이었다. 사람이 극장에 가서 돈 주고 표를 사서 영화를 보면 즉시 현금 매출이 생긴다. 현금 매출이 바로 생기는 비즈니스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모든 영화는 극장 매출을 목표로 제작되었다. 극장에서 성공해야 그에 따른 부가 판권 등의 사업에서도 이득이 따라왔다. 극장 흥행 → 부가 판권 흥행에 따른 추가 수익이라는 시스템은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무너지지 않고, 그러니 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믿음 역시 굳건했다. 2020년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는.

이 모델을 뒤흔드는 강적 역시 이미 있었다. 넷플릭스였다. “넷플릭스가 난다 긴다 해도 (코로나가 불러온 불경기처럼) 이럴 줄은 몰랐던 거죠.” 영화계 지인은 이야기했다. 극장 수입 베이스의 한국 영화 산업은 이미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다. 넷플릭스는 <옥자>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개봉 후 작품이 다른 플랫폼으로 유통되는 시점인 홀드백 이슈 등에서 극장과 의견 차이를 보였다. 이건 택시업계와 타다의 다툼처럼, 누가 맞다기보다는 각자 유리한 관점에 따라 주장이 달라지는 이야기다. 보통 이런 이야기의 끝은 법의 개입으로 마무리된다. 한국 극장 시장은 거기까지 가기 전에 코로나가 강하게 개입했다.

영화 <승리호>. 코로나와 넷플릭스가 현 시점의 시장을 완벽히 바꿔버렸다는 증거이자 상징이다. <승리호>는 제작비 2백억원을 써서 한국에서 처음 만든 우주 SF 영화다. 그런데 개봉 시점을 놓쳐 넷플릭스로 공개한다. 동시에 1백90개국에 공개되고, 제작비를 조금 넘는 계약금을 받기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시작한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예상 수익의 최대치가 낮아지고 수익 분배 등의 이슈가 있을 테니 제작사 측에서 바란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제작비라도 회수하려면 별수 없다. 영화 전문지 <씨네21>은 아예 이런 제목의 기사를 냈다. ‘넷플릭스로 가려는 한국 영화, 종각부터 종로 5가까지 줄 섰다고?’ 기사에 나오는 영화업계 사람들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하지 못한 대형 투자배급사의 영화 편집본을 이미 다 봤다고 한다.”, “매주 한국 영화 80편의 편집본과 시나리오가 넷플릭스에 접수된다는 얘기가 있더라.”

드라마에 대형 배우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도 코로나 효과일까? 최근 황정민, 최민식, 하정우, 주지훈 등 거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던 배우들이 드라마에 출연한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특히 최민식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건 24년 만이다. 이것도 코로나가 불러온 변화일까? 코로나 때문에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대배우들마저 출연할 곳이 없어진 걸까?

“그건 원래 그랬어요. 코로나와 상관없는 흐름이에요.” 지인은 선을 그었다. “드라마가 더 잘 되다 보니 배우들이 드라마로 빠졌어요. 코로나 전부터 영화 캐스팅이 힘들었어요. 배우들이 더 이상 ‘나 영화배우야. 드라마 배우 아니야’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영화와 드라마의) 출연료 단위도 다르고요. 영화 출연료는 한 편 단위지만 드라마는 회차 단위잖아요. 무대인사를 다녀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배우도 우리 같은 속세의 생활인이다. 2020년 1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리키 저베이스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여기 당신들 ISIS에서 스트리밍 서비스한다고 하면 에이전트에 전화하라고 할 거잖아(계약하려고).”

독설 안에 진실이 있다. 재능은 자원에 몰려들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원은 돈이다. 마블 영화를 테마파크라고 한탄했던 마틴 스콜세이지는 극장의 낭만을 파괴하는 넷플릭스의 돈으로 <아이리시맨>을 만들었다. 뭐든 상황이 변하면 민낯이 드러난다. 코로나는 넷플릭스가 한 꺼풀 벗긴 산업의 민낯을 세 꺼풀쯤 더 벗기고 있다.

코로나는 촬영 현장의 분위기도 바꿨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거기 더해 도심 촬영도 많이 불안해졌다. 도심은 인구밀도가 높으니. 큰 규모의 예산이 들어가는 대작 영화는 전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은 후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들만 제작에 들어가기도 한다. 누군가 코로나에 걸리면 영화 제작이 2주 멈춰버리고, 그러면 제작비에서 막대한 손해를 본다. 실제로 비슷한 일이 생겨 난처해진 팀이 몇 있다고 한다. “어디 외딴 데 들어가서 세트 만들고 찍는 영화가 많아질 거예요”라는 말도 들었으니 앞으로 몇 년 동안의 한국 영화는 세팅이 비슷해질지도 모른다.

산업으로 보면 이것도 돈 싸움이다. 돈을 써서 얼마나 버티느냐의 싸움. 지금 잠깐 멈춘 투자금도 코로나만 종식되면 금방 다시 투입될 것이다. 코로나가 종식되기만 하면 텅 빈 극장 역시 금방 사람들로 꽉 들어찰 것이다. 사람들은 잘 잊으니까. 다만 그때가 언제일지가 문제일 뿐이다. 그때까지 버텨줄 제작사나 투자배급사가 얼마나 있을지도.

개별 회사의 운명을 넘어 영화업계의 무게중심은 이미 시소 반대편으로 넘어간 걸까.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영상 콘텐츠 플랫폼이 생겼고, 그 때문에 전통적인 수익 모델도 크게 변했다. ‘영화판을 지킨다’던 배우 등의 고급 인력도 이미 자신들의 수익과 권리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가고 있다. 훗날 2020년은 극장 산업 기반의 한국 영화업계가 본질적으로 변한 원년으로 기록될 수도 있겠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친구는 인상적인 말을 했다. “CGV 채권은 아무도 안 사.”

업계의 미래는 업계분들이 생각하면 된다. 그건 그거고, 개인에게는 지금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가장 좋을 때다. 신작도, 찾는 사람도 없으니 온갖 명작 영화가 재개봉하거나 실험적인 영화가 그 틈을 타 개봉하거나 카를로스 클라이버 같은 명지휘자의 공연 실황을 극장에서 틀어준다. 영화업자들이 말하던 ‘한국 영화 전성시대’와 비교했을 때 지금 상영 중인 영화의 종류가 훨씬 다양하다.

게다가 한적하다. “지금 코로나로부터 가장 안전한 곳은 극장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극장을 찾는 지인이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극장에 갈 거라고 한다. 나도 갈까 싶다. 코로나를 견디지 못하고 그새 극장이 많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코로나가 끝나면 남은 극장에는 또 사람들이 붐빌 테니, 한가하고 깨끗한 극장을 즐길 때는 지금뿐일지도 모르니까. CGV에서는 지금 <덩케르크>를 아이맥스로 재상영 중이다. 글 / 박찬용(‘요즘 브랜드’ 저자)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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