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가격 춘추전국시대 | 지큐 코리아 (GQ Korea)

와인 가격 춘추전국시대

2021-02-10T17:49:27+00:00 |drink|

저마다 다른 와인 가격에 경쟁은 더 아래로, 아래로 치닫고 있다. 초저가 와인을 향한 러시. 와인의 저변이 넓어지는 만큼 깊어지고 있을까?

소설 첫 문장을 쓰는 일처럼 1년 동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와인 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돔 페리뇽, 부아젤 브뤼 리저브, 마스 드 도마스 가삭 블랑, 도멘 라파주 타론자, 틸라동 세냐 르 블레몽, 르 퓌 에밀리앙, 도멘 콩트 조르주 보귀에 샹볼 뮤지니.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와인 리스트는 레스토랑의 미장센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다. 요리가 레스토랑이라는 문장의 골격을 이루는 주어와 동사라면 와인은 힘과 우아함을 더해주는 수식어이기 때문이다. 구비한 와인의 산지와 품종, 성향, 가격군과 편차는 레스토랑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주 고객층이 어떤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와인 트렌드도 담아내야 한다. 소믈리에가 없는 이상 레스토랑이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오픈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우리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요리는 성공적이었던 반면 와인 리스트는 지난 1년간 와인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고객의 눈높이와 차이가 컸다. 리스트에는 그 차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했다.

국내 와인 시장은 매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 통계를 보면 와인의 전년 대비 수입금액은 2017년 10퍼센트, 2018년 16퍼센트, 2019년 6퍼센트로 늘어났다. 이 기간 와인 시장의 성장 동력은 저가 와인이었다. 질보다 양에 집중됐다. 이는 레스토랑의 와인 시작가에도 영향을 끼쳤다. 4만원에서 3만원, 2만원까지 내려갔다. 시중에서 만날 수 있는 저렴한 와인을 찾는 고객이 늘어서였다. 강남도 예외가 아니었다. 와인의 해외 소매점 평균가와 평점을 알려주는 앱인 비비노나 와인서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인기 품목을 제외하면 해외 판매가와 국내 판매가의 괴리는 여전히 크다. 그 때문에 난처한 상황도 겪었다. 소개팅 테이블이었다. 글라스 와인을 주문해 기존 하우스 와인의 곱절인 시음주를 서비스했다. 보틀을 궁금해하길래 보여줬더니 갑자기 휴대 전화를 꺼내 비비노 앱으로 레이블을 찍었다. 응?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앱에는 그 와인보다 하우스 와인의 가격이 곱절이었다. 응? 서로가 얼굴을 붉히는 결과가 됐다. 그렇다고 소개팅 손님에게 주류세와 수입사별 마진율, 직거래와 주류 도매상, 대형 마트와 로드 숍, 레스토랑의 납품가와 마진율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쨌든 코로나19(이하 코로나)로 레스토랑의 와인 매출이 바닥을 친 지난해도 와인 수입금액은 11퍼센트 신장을 기록했고, 와인 매출이 엄청나게 급성장했다. 비대면과 홈술이 주요 키워드인 해였기 때문이다. 동네 와인 숍이 하루에 7천만원이 넘는 최고 매출을 올렸다는 소문도 들었다. 편의점의 와인 매출도 2배에서 많게는 4배 이상 올랐다. 동력은 1만원 이하의 초저가 와인이었지만 소매점가 10만원 이상인 프리미엄 와인도 괄목할 만했다. 한 와인 수입사 대표는 레이블에 부르고뉴라고만 적혀 있어도 순식간에 매진된다 했다.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의 유명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매년 가격이 올라가는 추세다.

하지만 지난해 우리나라 프리미엄 와인 시장은 미국과 칠레 와인 중심이었다. 핸들링이 어려운 프랑스 와인보다 코르크를 뽑아서 바로 마실 수 있는 미국이나 칠레 와인의 국내 선호도가 높아서다. 실제로 수입사들의 미국과 칠레 프리미엄 와인 재고 물량은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다. 계약된 물량 외에 추가 물량을 확보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코로나로 인한 홈술 확산은 우리나라만의 트렌드가 아닌 까닭이다. 그래서 몇몇 대형 와인 수입사는 미국 와인 가격을 인상하기도 했다.

편의점과 대형 마트가 와인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면, 외식 감소는 프리미엄 와인 수요의 증가에 기여했다. 프리미엄 와인 수요 증가에는 지난해부터 와인 애호가의 성지로 급부상한 자양동 새마을구판장과 조양마트도 한몫했다. 새마을구판장을 처음 안 건 지난 초여름 즈음이었다. 와인 수입사 영업사원마다 자양동의 한 마트 때문에 곤혹스럽다고 했다. 5만원 이상의 중가 와인과 10만원 이상의 프리미엄 와인을 너무 싸게 판매해서 다른 거래처에서 항의가 계속 들어온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방문하니 그럴 만했다. 우리 레스토랑 공급가보다 와인을 싸게 팔 정도였다.

새마을구판장은 자양 전통시장에 위치한 식자재 마트다. 진열대 한쪽에서 프리미엄 와인 몇 가지를 저렴하게 팔다가 전국적인 입소문을 탔다. 오봉클리마나 서브미션, 샤토 탈보, 투핸즈, 케이머스, 마초맨, 이스카이 같은 국내 인기 품목을 주로 취급한다. 이제는 춘천 세계주류마켓, 김포 떼루아 와인아울렛과 함께 소위 ‘와인 성지’ 반열에 올랐다. 온누리상품권 사용처라는 혜택을 크게 봤다. 제로페이 앱에서 온누리상품권을 매월 70만~1백만원 한도까지 10퍼센트 할인 구매할 수 있는 덕이었다. 늘 북새통을 이루는데 와인을 20~30병씩 구매하는 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우리 레스토랑 단골 고객마저도. 건대 양꼬치 골목에 있는 조양마트는 새마을구판장을 벤치마킹해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보르도 5대 샤토 같은 초고가 와인도 취급한다. 새마을구판장처럼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새마을구판장의 경우 가격이 온라인에 공개되는 걸 상당히 꺼린다. 매장에도 지인 공유는 가능하지만 블로그나 SNS에 가격 노출을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소비자가를 유지하려는 수입사가 납품 단가를 올리거나 물량을 줄이는 걸 우려해서다. 블로그의 새마을구판장 와인 판매가 사진에 모자이크를 넣어달라고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이들이 생긴 배경이다. 이런 와인 성지보다 더 저렴하게 와인을 구매하려는 이들은 해외 직구나 경매로 시선을 돌린다. 비비노 앱의 해외 평균가를 기준으로 직구 시 금액과 새마을구판장 판매가를 비교해 판단한다. 초고가 와인의 경우 특히 그렇다. 좋은 빈티지의 유명 와인은 해외 평균가와 국내 평균가의 차이가 더 심한 탓이다. 다만 직구의 경우 보관 상태가 불확실하다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새마을구판장과 조양마트의 와인 활황은 검색 한 번이면 최저가가 뜨는 비교 쇼핑 시대에 여전히 정보 공유에 제한적인 와인 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주세법 때문에 국내에서는 온라인 판매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와인 수입사와 주류 도매상이 악용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와인임에도 업장에 따라 납품가가 천차만별이고, 해외보다 훨씬 높은 마진을 붙여 유통시키는 현재의 구조에서 승자는 항상 와인 수입사와 주류 도매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 와인 수입사 직원이었던 지인은 퇴사 후 와인을 더 이상 마시지 않는다. 한 병에 5백원짜리 와인을 수입해 1만원에 판매하는 폭리의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초저가, 최저가 와인 트렌드는 소비자의 그런 불만들이 쌓인 결과다. 와인이 대중화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와인뿐만 아니라 와인 잔이나 디캔터, 내추럴 와인이 각광받는 것도 와인 대중화의 다양한 신호 중 하나다. 다만 일부 인기 품목 쏠림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와인이 가진 깊이는 의외성과 다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는 고민을 담은 3백 병 정도의 와인 시음과 지인들의 도움을 통해 50여 가지가 조금 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내추럴 와인을 포함해 합리적으로 직거래 가능한 와인 수입사 위주로 선택했다. 코로나가 휩쓴 1년 동안 이제야 문장 하나를 완성한 셈이다. 다만 고객의 눈높이나 요구를 제대로 읽었는지는 이 지긋지긋한 상황이 끝나야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