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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 "CGV에서 모든 걸 다 했어요"

2021.02.24GQ

전종서의 말소리는 나직하고 느릿해서 가까이 다가서게 만든다. 태풍의 눈 한가운데로 끌고 가듯.

화이트 티셔츠, 오프 화이트. 진, 엘런아크. 브라운 햇, 니나리치. 체인 링, 더뉴노멀. 푸른색 의자, 빈티지 임스 라 폰다 체어 at 웨이브렛 × 분더샵.

그레이 티셔츠, 엘런아크. 블랙 슬랙스, 듀이듀이. 블랙 앵클부츠, 지니킴. 체인 링, 더뉴노멀.

핑크 점프 수트, 펜디. 레몬색 의자, 빈티지 임스 라 폰다 체어 at 웨이브렛 × 분더샵.

원피스, 한킴.

머리를 염색한 건 차기작 때문이에요? 아뇨,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저는 ‘이거 하고 싶네’ 생각해도 그걸 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결국 하긴 하는데. 오래전부터 탈색을 하고 싶었는데 계속 생각만 하다가 며칠 전에 하게 됐어요.

오래 생각하다 며칠 전에 갑자기 왜요? 어느 시점에 결단을 내렸어요? 스핑크스 고양이 아세요?

털 없는 고양이? 네, 피부가 분홍색이잖아요. 매력적인 거예요. 속살이 보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으로 염색을 해보고 싶었어요. 사람 두피가 원래 핑크색이잖아요.

건강한 사람의 두피는 그렇죠. 그런 거예요? 어쨌든 두피가 훤히 보이게 탈색하고 싶더라고요. 비슷한 예시 사진을 얼마 전에야 찾아서 지난주에 했어요. 원래 더 밝은색이었는데 하고 나니까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살짝 어둡게 했어요.

종서 씨 개인의 비밀 SNS 계정이 있을지는 몰라도 공개 계정은 없잖아요. 작품 외적인 모습을 볼 일이 없다가 이럴 때야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구나 알게 되네요. 저는 패션, 헤어스타일, 이런 데 관심이 많아요. 당시 인스타그램을 없앤 이유가 <무한도전>을 재방송으로 많이 보는데 거기서 ‘지식퀴즈’ 이런 걸 많이 하잖아요. 제가 기본적인 역사 상식, 시사 상식에 너무 무지한 거예요. 너무 못 맞히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나 책도 안 읽고 사네, 맨날 넷플릭스랑 영화만 보고 아날로그를 멀리했네, 좀 회의감이 들었어요. SNS 안에서의 모든 것이 거짓말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없애고, 잠깐 책 읽고 단기적으로 공부하고…. 그때 잠깐! 지금은 회사에서도 인스타그램은 꼭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무 숨어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많다고. 다시 인스타그램을 만들까 해요.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거니까.

요새 클럽하우스라는 소셜 플랫폼도 유행이잖아요. 종서 씨가 클럽하우스를 개설한다면 어떤 얘길 하고 싶어요? 아, 그건 토픽이 있어야 해요? 클럽하우스 말만 들어보고 잘 몰라요.

주제가 없어도 되지만 룸을 개설하는 스피커가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에 흥미 있는 사람들이 참여한대요. 이게 유명해진 게 일론 머스크가 자기 비즈니스나 과학에 대해 클럽하우스에서 얘기해서라고도 하잖아요. 일론 머스크 좋아하는데, 저. 과학에 미친 사람인 것 같아서.

일론 머스크를 두고 훌륭한 사업가 혹은 뛰어난 사기꾼이라고도 하죠. 저는 사업은 잘 모르지만 사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일론 머스크는 돈만을 좇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 정도 부를 가졌으면 어디 바다 보이는 데 가서 저택 짓고 편히 살 것 같은데 이 사람은 땅에서 할 수 있는 도전은 다 해보고 이젠 지구 밖으로 나가는 거잖아요. 진짜 미친 사람 같아요.

어쩌다 일론 머스크 얘기까지 왔지? 아! 제가 호스트가 된다면…. 저는 호스트 말고 다른 방에 가서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강아지와 관련된 얘기들. 요즘 여기저기 찾아보고 있거든요. 멍청한 강아지는 없고 멍청한 주인은 있대요.

민트 원피스, 드미어. 체인 링, 더뉴노멀.

전종서가 데리고 온 반려동물 유키와 빌리. 벨벳 원피스, 코스. 베이지 사이 하이 부츠, 잉크. 체인 링, 더뉴노멀.

블랙 점프 수트, 모스키노. 블랙 니하이 부츠, 레이첼콕스.

블랙 점프 수트, 모스키노.

벨벳 원피스, 코스. 베이지 사이 하이 부츠, 잉크.

이번 <지큐> 3월호가 창간 20주년 기념호예요. 사람으로 치면 스무 살이죠. 종서 씨의 스무 살은 어땠어요? 제가 스물한 살 때까지 고등학교에 다녔거든요. 열여섯이었나 어릴 때 캐나다에 가서 열아홉 살 때 다시 한국으로 왔어요. 캐나다에서 다닌 것까지 합쳐서 고등학교를 5년 반 다녔어요. 스무 살 딱 되면 ‘성인이다’ 이런 느낌이 있잖아요. 저는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스물두 살 때였어요.

5년 반? 지금도 꿈을 꿔요. 나 열아홉 살인데 아직 1학년이네? 그 경험이 제게 좀 셌나 봐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굳이 왜 한국에서 또 갔어요? 원래 동시통역 일을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었다고 해야 하나? 부모님이 공부하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저는 책상에 앉는 것도, 방에 책상이 있는 것도 싫었어요. 어디 앉아서 뭔가 외우고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학교가 너무 싫었어요. 캐나다에서는 혼자 있으니까 계속 영화를 봤거든요. 그러면서 연기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서 부모님과 한바탕하고 연기를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찾다가 예술고등학교라는 게 있다고 누군가 알려줘서 가게 됐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는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어떤 액션을 취해야 했을 것 같은데.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프레젠테이션요? 스물세 살에 대학생이 됐는데 부모님과 너무 많이 다투게 되는 거예요. 애가 대학교에 갔으면 학교도 잘 다니고 그러면 좋겠는데 저는 맨날 학교 가는 척하고 영화관에 가고 그랬거든요. CGV에서 모든 걸 다 했어요. 영화를 안 보더라도 극장 안에 있는 카페에 가서 책 읽고 그랬어요. 밤낮 구분도 없었어요. 그런 생활이 반복되니까 “너 이제 용돈 안 준다”, “같이 한 상에서 밥을 먹어야 식구지, 네 밥 네가 알아서 차려 먹어라”, “너 왜 인생을 거꾸로 사니”, 별말을 다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돈이 필요했어요. 왜 돈이 필요했냐면 회사(기획사)들과 미팅하고 싶었어요. 연기학원도 다니고 싶었고, 운동도 해야 할 것 같았고, 프로필 사진이라도 찍어서 만들어 돌리고 싶었고, 이런 준비를 다 하려면 돈이 너무 필요한 거예요.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시간을 절약하고 싶었어요. 이런 내용을 담아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마지노선은 1년. 스물다섯이 되는 스물넷 12월까지 데뷔 못 하면 다시 동시통역 공부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1년만 투자해달라고. 다행히 승인됐죠.

데뷔작인 <버닝> 촬영이 2017년, 종서 씨가 스물네 살 때니까 약속 기한을 지킨 거네요. 스물네 살 여름 넘어가던 시기에 오디션에 붙었으니까 지킨 거죠. 부모님은 지금도 그때 프레젠테이션 얘기를 해요.

뭐라고요? “굉장히 설득력 있었다”고. 하하. 지금 생각하면 낯간지럽죠. 어떻게 그렇게 했지?

그러게요. 프레젠테이션 하는 전종서라니, 바로 상상되진 않네요. 그런데 저는 어릴 때부터 휴대 전화 하나를 바꾸고 싶어도 아빠에게 이메일로 바꾸고 싶은 이유, 새로 사고 싶은 휴대 전화가 가진 기능과 지금 내가 쓰는 기종의 차이, 왜 이 기종을 쓰고 싶은지 이유를 적어 보냈어요.

그건 누구 아이디어예요? 아빠요. 아빠와 이메일로 소통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건 그냥 편지 식이었죠. “아빠, 저 종선데요, 저는 이게 이 이유로 갖고 싶고요” 이런. 프레젠테이션은 진짜 PPT 만들어서 노트북 들고 했어요. 그때 엄마, 아빠가 믿어주고 밀어주고 지원해주셔서 회사 찾으러 엄청 많이 다니고, 연기도 배우고, 운동도 진짜 열심히 하고. 그때 많이 발전한 것 같아요, 스스로.

1년 전 종서 씨와 다른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잖아요. 이후에 우연히 예능 <아는 형님>에 나오는 모습을 봤는데 아휴 참, 오해받기 십상인 사람이야 싶었거든요. 하하하, 어떤 부분에서요?

가까이에서 본 종서 씨는 가림막 없이 옆에 와서 툭 앉는 느낌의 사람, 말없이 있어도 편안한 느낌을 단시간에 주는 사람 같았는데 화면에서는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잖아요.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반응만 포착되곤 하니까. 활동을 하면 할수록 평가라고 해야 할까요, 판단의 대상이 될 일이 많아지겠죠. 거기에 대해 그렇게 예민하게 보진 않아요. 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 싶은 건 어쨌든 연기가 첫 번째이면 좋겠어요. 성격이나 성향, 이런 부분도 있겠지만, 연기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서 거기에 집중하려고 해요. 그 외 부분은 그냥, 다들 다른 거니까.

<버닝>, <콜>, <모나 리자 앤드 더 블러드문>, 이 외 차기작으로 언급되는 작품들까지, 종서 씨가 택한 캐릭터들은 일순간 확 치고 나가는 힘이 있는 역할 같았어요. 폭발적인 힘, 폭주하는 힘. 저는 늘 자극적인 걸 좋아하긴 해요. 세다면 세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자극적인 게 재밌다는 생각이에요. 사람들은 이 정도 선을 봤는데 그게 재미있으면 다음 번에는 그 선보다 더 나아간 정도를 찾잖아요. 거기서 더 가보고, 더 가보고. 저는 그 기준선이 스스로 많이 높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그런 자극이 전부라고는 말 못 해요. 여태까지 작품을 보면 자극치가 굉장히 끌어 올려진 상태였고, 앞으로는 좀 더 정적이고 잔잔한 감성이 담긴 작품도 해보고 싶어요.

자극적인 게 재밌는데 왜 정적이고 잔잔한 감성의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그게 저를 더 불안하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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