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뮤지컬 [위키드]에 열광하는 이유

2021.03.02박희아

한 시간 전에 공연장에 도착해도 캐스팅 보드를 찍거나 MD를 구매하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뮤지컬 <위키드>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1 옥주현과 정선아, 그리고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조화
이미 한국 뮤지컬 산업에서 배우 옥주현과 정선아의 티켓 파워는 오래전에 증명됐다. 이제 걸그룹 핑클 출신이라는 점이 회자되면 새삼스럽다는 반응이 더 많이 나오는 옥주현과, 십대 후반에 뮤지컬 <렌트>를 통해 발랄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한 캐릭터 미미를 연기하며 무대에 선 정선아. 두 사람은 함께 작품을 하기도 하고, 각자 다른 작품에서 활약하며 대중에게도 널리 이름을 알린 몇 안 되는 뮤지컬 배우다. 그리고 뮤지컬 <위키드>에서 오랜만에 함께 페어로 무대에 오른 두 사람은 여전히 복잡하고 서글픈 현실을 반영한 오즈의 세계관 안에서도 엘파바(옥주현)와 글린다(정선아)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감동적인 순간을 여러 차례 선사한다. 여기에 이제 갓 뮤지컬 배우로 발돋움 중인 손승연이 또 한 명의 엘파바로, 이미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하는 배우로 인정 받는 나하나가 글린다로 무대에 서면서 <위키드>에도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같은 배우들이 같은 역할을 맡으며 정체돼있다시피 했던 뮤지컬계, 특히나 대극장을 중심으로 시작된 세대 교체의 흐름. 그안에 <위키드>도 있다.

2 어른들을 위한 동화, 판타지 속에 숨은 현실
<위키드>의 원작은 사실 매우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의 모습을 <오즈의 마법사>라는 동화를 활용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원작을 읽고 공연장에 가면, 시작부터 결말까지 어디가 비슷한지 어떤 부분이 완전히 다른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굳이 원작을 읽지 않고 작품을 보기를 권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토록 환상적인 세계 안에서 선과 악을 논하게 만드는 엔터테인먼트는 흔치 않다는 점 때문에. 둘째, 비극처럼 보이는 엘파바의 삶 안에서 오히려 숨통이 트이는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뮤지컬 <위키드>는 가볍게 바라보면 메시지적으로나 작품의 화려한 만듦새로나 아주 쉽게 다가오는 작품이고, 그래서 아직 비유와 상징을 이해하기 힘든 일부 어린이 관객들에게도 표면적으로나마 유의미하게 다가갈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선’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초록색 피부를 지닌 엘파바와 그의 행적을 편안한 등받이 의자 안에서 바라볼 여지는 거의 사라진다. 정치적 올바름과 인종주의, 포퓰리즘 등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문제와 이데올로기에 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위키드>는 우리가 삶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 것인지를 묻고, 어른들은 그때 비로소 이 작품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지, ‘진실’이란 무엇을 뜻하는지 고민케 만든다. 다행인 것은 휘황찬란한 무대 장치와 캐릭터마다의 특성이 잘 부각된 넘버들이 이 진지하고 무거운 물음에 가벼운 수준부터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이다. 대중적이면서 대중적이지 않은, 이 기묘한 스토리텔링이야말로 <위키드>의 매력이다. MD를 구입하려는 줄이 그만큼 길게 늘어서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에스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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