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날씨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2021.03.15GQ

날씨마저 원망의 대상이 됐다. 연일 날씨를 겨냥해 짜증과 불평을 쏟아낸다니 가당찮다. 날씨가 베푸는 낭만과 행복의 찰나를 누리기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짐 못 싸는 여행자의 대회가 있다면 내가 일등일 것이다. 매년 12월 초 열렸던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2020년에는 아트 바젤을 비롯해 대부분의 아트 페어가 코로나19로 취소되고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애틀랜타에서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고 20여 시간을 날아 예술적 기운과 파티 바이브로 가득한 마이애미에 당도하자마자 트렁크에 넣어온 거무튀튀한 재킷과 후디는 꺼낼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5월에 열리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갔을 때는 1백18개의 섬이 4백 개의 다리로 이어진 물의 도시에서 허벅지에 쩍쩍 달라붙는 가죽 스커트 때문에 애를 먹었다. 10월에 런던에서 열리는 프리즈 아트 페어에 갔을 때는 뼛속을 스미는 유럽 특유의 수분기 가득한 추위 때문에 매일 잠들기 전 기도하는 심정으로 감기약을 삼켰다. 그때마다 나는 함께 간 동료나 친구의 트렁크에 남은 옷을 꿰입거나 급한 대로 쇼핑을 했다. 특정 장소와 시간에 온도, 기압, 풍속, 강우와 같은 대기의 상태를 이르는 날씨라는 존재를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폭설이 예상된다고 했다가 마른하늘의 오후에 전 국민의 욕받이가 된 기상청을 나는 원망해본 적이 없다.

바이러스는 전 세계를 여행이 자산가들만의 여흥이었던 몇 세기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브리저튼>을 보면서 “요즘에는 외국으로 가는 신혼여행이 유행인가 보더군요”라는 대사를 듣는데 시대적 격차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다른 위도와 경도로 날아가는 게 아닌 국내 여행에서도 고심 끝에 싼 짐이 무용지물일 줄은 몰랐다. 얼마 전 경주에 갔을 때는 우박을 동반한 돌풍이 불었다. 보름달이 뜬 밤에 신라 왕성의 별궁 터, 동궁과 월지를 보겠다고 숙소를 나서 사실상 광활한 공터일 따름인 황룡사지 터를 지나며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패딩 점퍼를 가져올걸. 서울보다 남쪽, 영상의 기온을 보고 챙겨간 캐시미어 코트는 채신머리 없이 세차게 펄럭이며 이가 딱딱 부딪치는 강추위에서 나를 구원해주지 못했다. 지상에는 사방 1킬로미터 이내에 사람 하나 없고 지하에는 신라 최전성기의 영화로운 전설이 묻혀 있는 사찰 터를 기이할 정도로 거센 바람에 맞서 걸어 나가려니 천 년 묵은 귀신을 본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폭풍의 언덕>이 떠올랐다. 1847년 작품 발표 후 다음 해에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져 서른 살의 나이로 요절한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널드는 원작 소설의 제목 <Wuthering Heights>에 걸맞은, 거센 바람 그 자체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wuthering’은 영국 방언으로 (바람이) 쌩쌩 강하게 분다는 의미다.) 황량한 언덕 위 외딴 저택 하이츠, 감독은 고립된 공간에서 싹튼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1.33:1이라는 독특한 화면 비율과 광폭하다고 할 정도의 카메라 앵글, 대사와 배경음악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그저 바람 소리만 가득한 사운드로 그려냈다. 어느 늦은 밤에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머리가 어지럽고 양 볼이 얼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대 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안개, 빛, 무지개, 바람 등 날씨의 특정 요소를 체험하게 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2003년 런던 테이트모던 뮤지엄 터빈 홀에서 선보인 ‘The Weather Project’는 길이 152미터, 폭 22미터, 높이 35미터의 거대한 공간에 인공 태양을 띄워 올린 작품이다. 천장 전체를 거울로 덮어 아득한 홀의 높이를 더 높아 보이게 하고 노란빛의 단색광을 발하는 원반으로 해를 만들었다. 여기에 기계가 뿜어내는 안개구름이 이질적이고 초현실적인 풍경을 완성한다. 종말이 온 듯한 풍경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사람, 천장에 손가락 크기로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찾는 사람,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의식과도 같은 춤을 추는 사람들 모두 이 작품이 선사하는 스펙터클의 일부가 되었다. 기상학, 유체역학, 물리학 등의 연구자들과 협력해 환경과 기후 문제를 주제로 한 시각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토마스 사라세노는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로 정교하게 만든 구름 조각 ‘On the Disappearance of Clouds’를 하늘에 걸었다. 대기의 온도 변화와 오염으로 구름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환기하는 작품이었다. 비판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새하얀 비눗방울 같은 구름 조각이 물 위에 떠오른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2018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날씨의 맛>은 날씨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모은 그룹전이었다. 이 전시에서 바이런 킴의 ‘Sunday Paintings’을 보았다. 작가는 2001년부터 매주 일요일에 바라본 하늘을 가로세로 35센티미터의 소형 캔버스에 그려왔다. 곡선으로 연출한 하얀 벽에 조금씩 다른 하늘 그림들이 죽 걸려 있는 걸 보는데 청명한 하늘을 볼 때처럼 마음이 화창해졌다. 미술관에서 날씨를 공감각적으로 체험할 때면 날씨야말로 가장 친근하게 자연과 만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초 인왕산 아래 빌라로 이사를 했다.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가면 1억 8천 년 전 중생대 화강암으로 이뤄졌다는 인왕산이 위용을 자랑하듯 서 있고, 식탁에 앉아 있으면 수성동 계곡을 통해 등산 가는 사람들의 설레는 목소리가 거실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저녁이면 오렌지 빛으로 노을이 겹겹의 그림을 그리고 폭설이 내린 날에는 20평의 프라이빗한 눈밭에 첫 발자국을 냈다.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즉각적으로 부응할 수 있게 해주는 집에서의 사계절은 행복하게 흘렀다. 3월이 되자 통인시장에 갖가지 나물이 깔리고 새들의 지저귐이 한층 싱그러웠다. 이윽고 2차선 도로 양쪽의 벚나무에 분홍 꽃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면 귀갓길에 부옇게 빛나는 벚꽃 아래서 셀카를 찍었다. 인왕산 여기저기서 만발하는 꽃을 보러 자주 산에 올랐고 누리장나무꽃, 큰개불알꽃 같은 이름을 알게 됐다. 더워지기 전까지 두릅튀김에 샴페인으로 낮술을 하며 나긋나긋하게 풀어져 테라스의 계절을 보냈다. 여름은 복숭아잼을 졸이며 시원하게 내리는 장맛비를 감상하던 어느 오후로 수렴된다. 가을에는 틈날 때마다 산책했다.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그 집 커다란 은행나무의 찬란한 노란빛이 장관이었다. 인왕산 깊이 들어가면 한여름에도 제법 시원했고 영하 15도까지 떨어진 겨울날에도 포근하고 따뜻했다. 하얀 입김을 뱉어내고 살짝 얼어 무거워진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만난 밤의 인왕산은 내밀하고 서정적이었다.

소설가인 남편은 단편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남편은 “숲과 빙하와 북극곰과 피노 누아 그리고 계절의 감각들. 이 모든 것을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여기 실린 소설들의 동력이다”라고 썼다. 지구 온난화로 부르고뉴 피노 누아의 생산량이 격감하고 그나마 만들어진 와인에서는 특유의 뚜렷한 신맛이 사라진다니! 기후 변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들 가운데는 우울한 미래를 내다보며 자살을 하거나 위기에 빠진 지구를 물려줄 수 없어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토록 심각한 위기에 대해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어떤 실천도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은총 같은 햇살이 쏟아지고 온기가 맨살에 닿을 때 느끼는 관능적인 기쁨,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모두 날씨와 관계가 있는데도 말이다.

 

    에디터
    글 / 안동선(프리랜스 에디터)
    이미지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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